주말과 휴일만 되면 가방 가득, 양손 가득 책을 싣고 인근 카페로 향한다. 그리고는 카페 문을 닫을 때까지 묵고 한다. 책을 읽고, 칼럼을 쓰고, 원고작업을 하는 것이다. 화장실을 오가는 것을 제외하면 예닐곱 시간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작업을 한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동안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쑤시고 두통과 피로가 몰려오지만, 지적인 쾌감이야말로 가장 힘 있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무렇지 않다.
묵고의 사전적 의미는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고의 범위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묵독, 즉 숙독과도 연결되는데, 묵고의 시간을 가진 날과 가지지 않는 날에는 스트레스의 범위가 상당히 큰 폭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우선 심리적 스트레스 지수를 0-10까지로 설정한다. 이때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고 편안한 상태를 0,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를 10으로 나눈다고 가정했을 때, 책을 읽고 묵고 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스트레스 지수는 1-8, 2-9 식으로 차이가 났다. 책을 읽고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할 때는 고작 1-2 정도의 스트레스만 감당하는 반면,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면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날에는 스트레스 지수가 8-9까지 올라가는 경험을 많이 했다.
묵고, 즉 가만히 생각하는 행위는 평소 생활습관, 혹은 관심사와도 관련이 있다. 이를테면, 나는 TV를 전혀 보지 않는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쪽잠자기, 운동하기, 사진 찍기, 책 보기, 조용히 산책하기 등에 매우 큰 재미를 느낀다. 나에게 있어서 묵고 하는 것은 고되고 힘든 일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앞서 나간 선진들의 지식과 지혜를 탐구하면서 묵고 하는 행위는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묵고 하면서 얻은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우울증 테스트에서 0점을 받았고, 단 한 번도 불면증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사사로운 걱정에 빠지지 않게 되었고, 세상 만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인간관계에서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 마음이 만들어졌다. 책이든, 모닥불이든, 눈 덮인 산이든,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강변이든, 하천이든, 묵고라는 이름의 위대한 행위를 습관화하는 것은 놀라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묵고 하는 데 있어서 기준은 없다. 경제학 원론을 공부하다가 픽션소설을 쓰고, 잘 안 써진다 싶으면 1차 세계대전사를 읽는 식이다. 돌려가면서 읽고 생각한다. 생각의 틀을 깨고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데 있어서 다양한 방향성을 갖고 묵고 하는 것보다 훌륭한 방법을, 아직까지 나는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