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엄마는 엄마였다. 그 때부터 줄곧 엄마였다. 그때 엄마는 지금도 엄마, 앞으로도 엄마, 영원히 엄마다. 그리고 볶은 머리, 늘 입는 바지, 늘 똑같은 옷차림의 엄마였다. 공무원을 준비하시던 아버지가 집에서 코흘리개 누나와 나에게 가가거겨고교를 가르치실 때 엄마는 미용사 준비를 하셨다. 코흘리개 누나와 내가 자고 있을 때 옆에 누워서 '엄마 미용사 한다 딸, 아들.'하고 속삭이신 게 기억난다. 잠결인데도 어찌 그리 잘 기억하는지...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서 미용실을 차리셨고, 아버지도 오래 지나지 않아 공무원이 되셨다. 엄마는 미용을 30년째 하고 계시고, 아버지도 공무원을 30년째 하고 계신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다.
한 번도 엄마가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눈을 뜨면, 엄마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은 늘 달랐다. 약간은 부스스한 머리로 밥을 하는 엄마, 잔소리하는 엄마, 미용사로서의 엄마, 아버지의 아내로서의 엄마, 손님들에게는 '새댁 미용사'로서의 엄마 등등 이름이 여러가지였다. 그리고 엄마는 늘 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할 때 엄마는 늘 용돈을 주셨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6학년쯤 되었을 때는하루에 500원 용돈을 받았고 그 돈을 열심히 모아서 주말이면 닭꼬치튀김을 사먹었다.
외할머니가 요리솜씨가 좋으셔서 물에 계란 풀어서 소금 한 줌 집어 넣으면 기가 막힌 계란국이 나오는 반면에 엄마가 만든 요리가 외할머니처럼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알고 있다, 손맛도 필요하고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찌되었거나 지금 엄마의 음식솜씨는 확실히 그 때보다는 낫고, 안동에 갈 때면 엄마가 구워주는 고등어구이가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다. 하여간 당시 나는 그랬다.
나이가 들어서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입대할 때 엄마는 한번씩 눈물을 보이실 때가 있었다. 아들 100일 휴가나오면 보자, 하고 까까머리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시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아프리카로 해외봉사를 갈 때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 나도 눈물이 흘렀지만 마음속으로는 엄마는 아빠랑은 다르네, 아빠는 안우는데 하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여자였을 때
여기서 잠깐. 당신도 해보길 바란다. 지금 바로 구글을 실행시키고 여자를 검색해보라. 그리고 이미지 페이지를 선택하고 어떤 사진들이 나오는지 보라.
사진출처 구글
세상에는 예쁘고, 늘씬하며, 풍만한 몸매를 가진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있지만 젊을 때의 여자는 환하게 피어난 꽃보다 매력적이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육감적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구글에서 여자라는 검색어를 지우고 엄마에 대해서 검색해보자.
아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가 나올 것이다.
사진출처 구글
사진 속 두 딸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분을 나는 모른다. 구글에서 검색하다가 제일 인상적인 사진이라서 가지고 왔다. 잘은 모르지만 소아병원이나 치과처럼 보이는데, 지루해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온 엄마의 표정은 여자로서의 인상을 잃어버렸다.
엄마가 되는 순간, 여자는 '여자'에서 '엄마'가 된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누나가 태어날 때도 엄마, 내가 태어날 때도 엄마, 옆집 아줌마에게도 '철이 엄마', 앞집 아줌마에게서도 '예진이 엄마' 그게 엄마의 이름이었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 엄마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는 순간 당신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을 자식들에게 쏟아부는 게 바로 엄마의 역할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도 그렇다. 남자에서, 아빠가 되는 순간 그는 평생 누군가에게 '아빠'가 된다. 아기들이 태어나서 제일 처음 하는 말이 엄마(영어로는 mom)이라고 하는데, 누구는 아빠(영어로는 papa)를 먼저 할 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단어를 하나도 배우지 않은 아기, 엄마의 뱃속에서 열달동안 주는대로 받아먹다가 어느 순간,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피와 육체를 가진 한 인간으로 태어난 아기가 할 줄 아는 단어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할 수 있는 갓 태어난 아기가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가장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엄마, 아빠인지도 모르겠다. 입만 닫았다가 떼면 되는 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가장 먼저 그 사랑을 접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 때 본 엄마의 얼굴은 꽤 '미인'이었다. 얼굴이 조막만하고 오밀조밀하게 예쁘게 생긴 내 아내는 화장을 지워도 화장할 때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미인형 얼굴인데 아내가 종종 하는 포니테일은 볼 때마다 매력적이어서 포니테일을 한 아내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안아주고 싶고, 꼬집어주고 싶고, 뽀뽀해주고 싶다. 본인은 머리뿌리가 아파서 싫다고 하지만. 우리 엄마도 포니테일을 한 사진이 있었다. 1990년 봄 어느 날, 안동댐 근처 개나리가 피어 있는 유원지 벤치에 아버지와 누나와 함께 앉아서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며 마른 오징어를 뜯고 있는 엄마의 사진이 오래된 앨범 속에 있는 것을 봤다. 볼 때마다 '엄마도 참 미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은 왜 그렇게 빠른지. 어느새 27년이 지났고, 그 때 엄마 나이만큼 나이를 먹은 며느리와 그 때 엄마의 남자였던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사위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엄마도 어느새 매력적인 포니테일을 할 만한 나이는 이제 지나버렸다.
사진출처 구글
엄마로서의 여자, 여자로서의 엄마
물론 엄마가 늘 옳지는 않다. 내게도 엄마에 대해서 안좋은 기억들이 있다. 엄마가 다른 집 어느 아줌마들처럼 술을 많이 드신다던가 도박을 하시지는 않았다. 물론 그것만이 나쁜 기억, 안좋은 기억은 아닐 것이다. 내가 보기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들도 많고 아버지랑 별것도 아닌 일로 다투시던 모습도 생각난다. 내가 보기엔 분명히 엄마가 잘못한건데, 아빠가 일부러 화내시는 게 아닐건데 엄마는 왜 저러지..저건 누나가 잘못한 게 아니라 엄마가 잘못한건데 왜 저러지..이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엄마가 잘못한거야, 아니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이야기하시면 안되지, 거 참 답답하시네. 말은 그렇게 안해도 답답할 때도 있었고 싫은 적도 있었다.
어느 날, 근무하는 회사의 부장님이 딸이랑 전화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다.
"어 그래 딸, 밥은 먹었어? 응응, 아 엄마는 인제 마치고 퇴근하는데 회사 과장님이랑 잠깐 미팅이 있어서..아 별건 아니고 회사 일 때문에..아 그래? 그래 잘 되야지..그래 딸, 학원 마칠 때 전화해. 딸 기분은 좀 어때? 별로야? 아, 시간 지나면 좀 나아질거야, 엄마가 이따 집에 가면 맛있는 거 해줄게. 응응, 그래 응."
전화를 끊고 이야기를 하는데, 부장님이 질문을 했다.
"인철씨 전에 대안학교 선생님이었다면서요. 나는 딸 마음을 잘 모르겠어. 스물한살인데 얘가 어떨때는 기분 좋고, 어떨때는 우울해서 막 그러고. 딸은 엄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그거 있잖아 그 뭐야, 교사의 관점에서 , 거기서 좀 이야기해봐봐. "
나는 짧게 대답해드렸다.
"자식 마음이 뭐 다 똑같죠. 엄마는 절대 상처받지 않는사람, 엄마는 슈퍼우먼, 엄마는 원더우먼, 언제든지 용돈 달라 하면 천원짜리 몇장은 늘 준비되있는 사람, 세상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 넘어지지 않는 사람, 자식 입장에선 그게 엄마죠. 그거에요."
"그런가? 흠.."
사진출처 구글
사실 엄마도 서투른 존재다. 엄마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엄마 역할이 처음이다.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 엄마도 누군가에게 딸이었고, 누군가에게 사랑스런 여자친구였고, 누군가에겐 학생이었으며, 직장 동료였던 거다. 단지 나에게만 엄마일 뿐, 엄마도 지극히 연약한 여자다. 몰랐던 건 아니다. 엄마도 당연히 여자지, 엄마가 남자냐. 그러나 나도 한 여자의 남편으로, 내게 아내가 되어준 한 여자도 나와 결혼하면서 그런 감정이 세삼스레, 하지만 메말라있었던 땅에 물이 고이듯 천천히 스며들었던 것 뿐이었다. 그건 마치 꿈이나 이전 현실세계에서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익히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관계가 없을 뿐더러 전혀 알지도 못하는 데자뷰(de javu)와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구나.
그래도 엄마는 엄마다.
가수 김진호씨의 가족사진이라는 노래는 내가 엄마 아버지가 그리울 때 자주 듣는 노래다. 유투브에서 가족사진을 부르는 김진호씨의 노래를 듣다 보면 '엄마는 엄마로서 충분하다.'는 마음이 자주 든다.
...
가족사진 속에 미소띈 젊은 우리 엄마
꽃피던 시절은 다시 또 내게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
엄마가 엄마일 때, 나는 가장 평안함을 느꼈다. 엄마가 엄마로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함을 느꼈다.
그 존재의 가치만으로도 나는 내가 살아야 할 의미가 있음을 느끼고, 그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에야 비로소 내가 생명체로서의 고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