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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Nov 13. 2023

길뽀뽀의 나라 멕시코

왜 한국에선 안되는가?

중남미 친구와 미국 친구를 싸움 붙이는 아주 좋은 주제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어느 나라 사람들이 더 문란하냐"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멕시코, 브라질인들은 그래도 자기들은 가톨릭 신자이고 남녀 간의 어떠한 룰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애정행각을 하는 중남미인들이 엄청 개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교의 나라 한국이 볼 때는 둘 다 어플과 원나잇에 환장한 난봉꾼들로 보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가능


멕시코가 그렇게 보일만도 한 이유는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행각을 별로 문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밤에 공원에 가보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벤치를 하나씩 잡아놓고 진하게 키스하는 커플들을 볼 수가 있으며, 한 번은 10분 동안 택시를 기다리는데 길을 가던 커플이 갑자기 멈춰 서서는 10분 내내 키스를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코레아의 우월한 문화 "시간제 요금 호텔"의 수출이 시급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주먹을 날릴 정도로 길뽀뽀가 강력하게 규제되는 것일까요? 법적으로 공연음란죄도 아닌데.





탐구 시간: 한국에선 왜 안되는가?


공공장소의 성격

나보나 광장, 이탈리아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을 보면, 격자형 계획도시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성당과 광장을 중심으로 바큇살처럼 뻗어나가는 모델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그렇게 의도했다기보다는, 일단 큰 성당을 짓기 위해서 건축자재를 놓을 공터가 필요했고, 성당이 다 지어지고 나서 공터가 자연스레 광장으로 사용되었던 역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곧 광장은 인근 주민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삶의 때가 묻은 쉬어가는 공간으로 발달했습니다.


차가운 한국의 광장
"어디 애들 보는 데..."
"공공장소에서 뭐 하는 짓..."


반면 계획적으로 개발된 서울을 보면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광장은 유기적인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서울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광화문 광장은 넓은 차도 때문에 반쪽짜리 광장이 되었고 휴식은커녕 허구한 날 시위만 일어나는, 머물고 싶지 않은 장소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이러다 보니 한국인들에게 광장, 공원이란 지하철 역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차가운 공공장소로 인식되게 되고, 거기서 벌어지는 애정행각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로맨틱한 공원이긴 한데... (대림 e편한세상)


외국의 광장과 그나마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장소를 꼽으라면 아파트 대단지 공원이지만 이런 곳에서 10분간 키스하다가는 어떻게 될지 다들 알 것입니다.


여기서 “공공장소”는 누구나 무료로 들어왔다 나갈 수 있는 공원, 광장을 가리키는 명칭이고, 내가 요금을 내고 들어온 카페, 식당, 아파트 공원 등은 사유지이지 공공장소는 아닙니다. 사유지에서는 당연히 큰 개를 데리고 온다던지, 큰 소리로 기도한다던지 하는 불편행위는 당사자와의 협의나 주인에 의해 규제가 가능한 부분입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카페를 공공장소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첨언합니다.



연장자의 참견권 행사

한국 자막만이 가능한 초월번역


길뽀뽀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대체로 혈기왕성한 20대에게 쏟아지는 비난임을 볼 수가 있는데, 대부분 그런 뜨거운 행각을 벌이는 상대는 20대일 것이고(40대가 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보다 "어린 노무 자식"에게는 그 누구든 한마디 참견권이 주어지는 문화를 가진 한국에서 좋은 표적이 됩니다.



여유 없는 사회

지금, 수령하러 갑니다 (농협 본점)


오늘 퇴근길에 로또 10억에 당첨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갑자기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며, 불친절한 카페 알바도 그냥 웃어넘길 수 있고, 그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잊어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행복은 마치 전신갑주를 착용한 듯한 효과를 줍니다. 어지간한 삶의 스크래치는 행복한 사람의 +3 방어력에 흠집도 낼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급격한 발전과 도시화 가운데 여유를 상실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끊임없는 경쟁에 치이고 군대에 가서 까이고 재수하며 스펙을 쌓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지쳐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조금만 나를 건드려도 "지금 나 무시해?" 같은 방어본능이 발동하고 반대로 행복한 사람을 보면 박탈감이 듭니다. 남의 애정행각에 주먹까지 휘두르는 사람의 생각회로가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멕시코에서도 항상 길뽀뽀가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고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미/중남미 문화권에서 지나가던 어르신이 태클을 걸었다가는 반응이 좋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는 것입니다.


집에 가서 해라 vs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어떠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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