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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Dec 14. 2023

노벨상이 밝힌 남녀 임금격차의 진실

출산과 육아의 저주

흔히 언론에서 남녀의 임금격차를 "남자가 1달러 벌 동안 여자는 82센트를 번다"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평균치일 뿐이고 실제로 채용하면서 "넌 여자니까 82%만 줄게"라고 근로계약서를 쓰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디서 격차가 나오는 걸까요?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저소득 일자리에 분포되어 있어서인가?

여성들이 이직을 자주 하지 않아서인가? (미국에서는 보통 이직이 연봉 상승을 동반)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승진을 덜 해서인가?


노르웨이부터 인도까지 세계적으로 남녀의 노동시장을 보면 대체로 남성들이 이공계 직업과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고, 더 오래 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노동에는 이런 요소들보다도 훨씬 강력한 한 가지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2023년 10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버드대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은 1995년부터 2008년까지 대졸자들의 소득 데이터(LEHD Census) 자료를 가지고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남녀의 임금 격차는 졸업 후 14년에 걸쳐 여성에게 낮은 쪽으로 약 20-30% 벌어진다. 

남녀 대졸자 모두 시작 시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나, 전체 격차의 80% 이상이 첫 6년간(26-32세) 동안 발생한다.

격차의 44%는 남성들이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데서 발생한다.

격차의 56%는 같은 직장, 직업군 안에서 남성들이 더 높은 위치로 승진하는 데서 발생한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끼리 비교했을 때 임금 격차는 두 배 이상 좁혀진다.


종합해 보면 "남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26-32세 시점"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고, 육아 때문에 여성의 승진이나 이직이 늦춰져서 같은 직업군끼리도 격차가 발생한다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골딘 교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가지를 더 실험해 봅니다.


미국의 최상위권 MBA 프로그램 남녀 졸업생들의 격차는 어떨까? 즉 연봉 1, 2억을 가볍게 넘기는 미국의 최고 엘리트 집단에서도 격차가 존재하냐는 질문입니다.


억대 연봉으로 가는 지름길, MBA


골딘 교수는 하버드대 Katz 교수, 그리고 시카고대 Bertrand 교수와 함께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시카고 대학교 MBA 졸업생 2,485명을 대상으로 결혼과 출산이 어떤 차이를 만들었는가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졸업 직후의 평균 연봉은 남성 $130K, 여성 $115K 정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화로 약 1.6억, 1.4억)

여성들보다 남성들이 금융 관련 수업, 커리어를 많이 선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졸업 9년 뒤 이들의 평균 연봉은 $370K로 가파르게 상승하며, 투자은행의 경우 $700K까지도 상승한다. 13년 뒤, 90 백분위의 남성과 90 백분위의 여성 평균 연봉은 세 배 가까이 벌어진다.

고강도, 고소득 직업의 특성상 남녀 모두 경력 중단은 큰 페널티를 동반하며, 일반적인 근로 시간은 1주일간 61-74시간으로 매우 높은 편이었다. 

아이가 있는 여성은 해당 연도에 일을 쉬고 있을 확률이 20%였으며, 이 수치는 남편의 소득이 높을수록 크게 증가하였다. 

아이를 낳은 여성은 1년 차에 노동 시간을 크게 줄이며, 4년 차까지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 


종합해 보면 남녀 간의 졸업 직후 임금 격차의 일부는 선호하는 커리어의 종류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고, 졸업 후부터 벌어지기 시작하는 임금 격차의 가장 큰 요인은 출산과 육아로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남성 배우자의 소득이 높아질수록 여성들이 일을 아예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비중이 증가했습니다.


골딘 교수의 여러 연구들이 일관되게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녀의 임금 격차란 다름이 아닌 출산과 육아 페널티(motherhood penalty)이다.
- 클라우디아 골딘

아마 출산과 육아를 겪어본 여성들은 이걸 듣고 "아니 이 당연한 걸 가지고 노벨상을 타야 해?"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야근이 잦고 재택근무도 없는 한국에서 육아와 일에 동시에 투자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골딘 교수의 연구는 비록 미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했지만, 한국에게도 굉장히 시기적절한 시사점을 여러 개 안겨주고 있습니다. 




좋은 뉴스

코호트 조사 결과를 보면, 1940년대생들보다 교육을 더 많이 받은 1950년대생들이 출산 직전과 직후 노동참여도에 받는 타격이 덜했고, 회복도 빠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아이를 늦게 출산하는 경우(25세->30세) 출산 이전에 그만큼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human capital investments)가 선행되었기 때문에, 출산 이후에도 노동참여도가 상승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초혼연령, 출산 연령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윗세대에 비해서 출산 전후로 노동참여도의 회복이 빠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쁜 뉴스


위의 그래프는 골딘 교수의 MBA 졸업생 대상 조사 결과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컨설팅, 금융과 같은 고소득, 고학력 직종일수록 출산과 육아는 경제적 재앙에 가깝다는 결론입니다. 심지어 일 가정 양립이 한국보다 수월하고, 남성의 가사노동 기여도가 높은 미국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임신해서도 눈치 보여서 퇴근 못하는 한국이었으면 아마 처참한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직종(greedy jobs)일수록, 아이를 출산한 여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이나 여성에 비해 현격하게 뒤쳐지게 됩니다.


한국 여성의 학업 성취도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남성보다 높으며, 앞으로 고학력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가 가져오는 막대한 페널티를 인지하게 된다면, 해당 그룹의 출산율은 일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을 제외하고 매우 낮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 문제는 대기업들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스스로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힘들게 공부하고 일해서 성공한 여성이 아이를 낳는 순간 직장을 나가야 하거나 2류로 밀려나게 된다면, 그 나라는 기업의 이윤과 생산성을 위해 출산율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초저출산은 기업에게도 시장과 인력이 쪼그라드는 재앙입니다.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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