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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Nov 26. 2023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럭셔리가 아니다

조용한 럭셔리의 특징

질풍의 20대를 거쳐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기업에 입사한 지 5년, 억대 연봉자가 된 당신은 수고한 나 자신에게 롤렉스를 하나 선물하기로 합니다. 웨이팅에 이름을 올려놓고 몇 달 뒤 당신은 모두가 공인하는 성공의 상징,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제 롤렉스 오너도 되었으니 동호회 활동을 하러 정모에 나간 당신... 그런데 뭔가 생소한 단어들이 자꾸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아~ 서브마리너 예쁘네요. 전 요즘 영국 밀섭에 자꾸 눈이 가서... 잘 아는 딜러한테 매물 나오면 귀띔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벌써 1년이 넘었네요. 맘에 드는 시계 찾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이게 얼마라고...?


밀섭이 뭐야? 하고 집에 온 당신은 구글링을 해보기 시작합니다. 빈티지 서브마리너가 하나에 2억이네? Coeval, Comex, 5513, 5517... 이게 다 무슨 말이지?




위의 이야기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럭셔리 리테일의 세계와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하는 럭셔리 문화의 차이점을 나타내기 위해 각색한 것입니다. 롤렉스를 예로 들었지만 입맛에 따라 앤티크나 올드 셀린으로 치환해도 상관없습니다. 얼핏 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둘은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오픈런보다 들어가기 힘든 경매의 세계


럭셔리 리테일:

- 돈과 약간의 발품, 웨이팅만 있으면 살 수 있다.

- 가격은 브랜드의 가격 정책을 따른다.

- 주로 백화점, 명품관 매장에서 구매한다.

- 일반 대중이 보아도 비싼 물건인 줄 안다.


럭셔리 문화(Quiet Luxury):

-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다.

-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시장가와 더불어 경매가의 영향을 받는다.

- 전문 딜러나, 장인, 네트워크 등 인적 자원이 동반되어야만 구매할 수 있다.

- 지식의 습득과 체화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 일반 대중이 보았을 때 비싼 물건이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재벌가 모임에 버버리 따위를 들고 왔다 웃음거리가 되는 여자


이 두 가지 소비 방식의 차이는 이미 베블렌의 유한계급론부터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철학까지 꽤 예전부터 논의되어 왔는데, 미국에서 HBO드라마 Succession(2018-2023)이 신흥부자와 재벌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조하는 연출을 하면서,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라는 단어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위의 시그널 매트릭스를 보면 귀족(Patrician)과 신흥부자(Parvenu)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가?"입니다. 귀족들은 일반인, 신흥부자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문 제작, 덜 알려진 브랜드, 빈티지를 추구하고 서로만 아는 시그널을 보냅니다. 반대로 신흥부자들은 일반 대중에게 잘 보이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누구나 다 아는 시그널을 사용합니다. 멀리서 이것을 보는 귀족들은 신흥부자를 구분해 낼 수 있게 됩니다.


에코백 들어!!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 더글로리(2022)에서 명품의 절묘한 사용으로 진정 "가진 자"와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자의 대조를 표현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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