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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Nov 27. 2023

코코 샤넬은 자신의 옷을 얼마에 팔았을까?

샤넬의 독특한 역사와 철학

하루는 내가 오페라 객석을 보고 있는데, 여자들이 입은 빨강, 초록, 파랑의 강렬한 색상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어. 두고봐, 난 저 여자들에게 모두 검은색 옷을 입힐 거야.
- 코코 샤넬,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샤넬 향수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뒷마당에 유전을 하나 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 윌리엄 피츠제랄드, 샤넬의 컨설턴트

샤넬 향수를 사려고 기다리는 군인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에는 발렌시아가와 구찌, 디올 같은 "1대 창립자"가 있고, 그 브랜드를 글로벌 대기업으로 만들어낸 사업가가 있습니다. 디올은 프랑스의 재벌 LVMH그룹이 갖고 있고, 발렌시아가와 구찌는 Kering 그룹이, 그리고 샤넬은 Wertheimer 가족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샤넬과 워스하이머의 동업 관계는 유명한 악연이었는데, 나중에 다뤄볼까 합니다.)


샤넬이 첫 상점을 연 것이 1910년이니 벌써 100년이 넘은 브랜드입니다. 전쟁통에 드레스를 팔던 코코 샤넬과 비교해 오늘날의 샤넬은 아시아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며 글로벌 럭셔리계의 강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가격에도 자비가 없습니다.


오늘날 샤넬의 얼굴은 한국인입니다.


한국의 중위소득 연봉이 약 3,000만원이고 2023년 기준 샤넬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이 1,400만원이니까 반 년을 꼬박 모아야 살 수 있네요. 옷을 보아도 블랙핑크 제니가 입은 자켓은 933만원, 샤넬 F1 티셔츠 가격이 630만원으로 어지간한 일반인들은 엄두도 못 내는 가격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궁금증이 듭니다.


샤넬은 1910-30년대에 자신의 옷을 얼마에 팔았을까? 


의외로 이 정보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고 몇 시간 동안 관련 서적과 옛날 잡지 등을 다 뒤져서야 가격표를 대강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1910년대부터 봅시다.




전쟁이 탄생시킨 샤넬


샤넬은 20세기의 모든 격동기를 거치면서도 사업에 성공했습니다. 

1914-1918: 1차 세계 대전 
1930-1937: 대공황과 프랑스 경기침체
1938: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1939-1945: 2차 세계 대전
여성에게 군수공장 근무를 독려하는 포스터들


샤넬이 1차 대전기에 매장을 연 것은 지금 보면 신의 한 수였는데, 이 시대가 서구 여성 패션 최대의 전환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 유럽의 상류층 여성들은 모두 코르셋으로 대표되는 잘록한 허리라인과 화려한 모자, 풍성한 치마를 활용했습니다. 의상이 불편할수록 "나는 손 쓰는 일 안 해" 라는 자부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나라의 운명을 건 총력전으로 번지자 그런 한가한 사치를 부릴 여유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제일 먼저 여성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코르셋이 사라졌고, 화려하고 비싼 옷감을 풍부하게 쓴 실루엣 대신 옷감을 낭비하지 않는 단정한 실루엣으로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성들이 예전에 비해 더 많은 바깥일을 하고, 걸어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여성복에서의 실용성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낭비가 없는 실용적인 옷을 입는 것이 곧 애국이었습니다. 


샤넬 3호점, 비아리츠, 프랑스


전쟁이 발발하고 샤넬은 변화의 움직임을 빠르게 읽어냈습니다. 1915년 그녀는 투자받은 돈으로 비아리츠에 3호점을 내고, 당시에 가장 싸게 구할 수 있었던 져지 원단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이 원단으로 여성복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샤넬은 져지로 만든 드레스를 비싼 값에 팔아 큰 이윤을 남겼습니다.



사진에서 샤넬이 입은 이 져지 드레스의 가격은 1916년 당시 7,000프랑, 지금 돈으로 약 500만원이었습니다. 싼 드레스는 3,000프랑 정도였습니다. 이 지역이 스페인의 빌바오, 바르셀로나와 가까웠고 휴양지였기 때문에, 기존의 부유층과 전쟁으로 많은 돈을 번 사업가들이 샤넬의 주요 고객이었습니다. 


여성은 마네킹이 되어선 안된다. 하지만 트렌드를 너무 바짝 따라가다 보면 그렇게 될 것이다.
- 코코 샤넬


샤넬은 모피에도 마진율을 최우선으로 두었습니다. 다른 브랜드들이 비싼 족제비나 밍크를 쓰는 동안 그녀는 값싼 비버와 토끼털을 사용했습니다. 샤넬의 옷들은 겉보기엔 그렇게 화려해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샤넬의 고객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을 선호했습니다. "가난한 럭셔리(Pauvreté de luxe)"로 대표되는 샤넬의 철학은 1차 대전과 맞물려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재즈의 시대와 블랙 드레스


어떤 사람들은 럭셔리가 가난함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틀린 말이다.
럭셔리의 반대말은 천박함이다.
- 코코 샤넬



1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에 재즈의 시대(Jazz Age) 호황이 찾아왔고, 여성들은 단조로운 옷을 벗어던지고 다시 플래퍼(Flapper)라 불리는 멋부린 스타일을 추구했습니다. 샤넬의 경쟁자들이 만드는 화려한 드레스를 보고도 그녀는 철학을 바꾸지 않았고, 영국 귀족들과 어울리면서 알게 된 트위드 원단을 들여와 현대 샤넬의 아이콘 중 하나인 트위드 카디건을 탄생시켰습니다. 



1926년,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가 보그지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Crepe de chine 원단으로 매우 깔끔하게 만들어진 이 검은 드레스를 보고 패션계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습니다. "장례식 가는 것 같다" 부터 "패션계의 검정색 모델 T"라는 별명이 붙여졌지만 샤넬은 "모든 여성들을 위한 유니폼을 만들고자 했다"며 응수했습니다. 


이 당시 샤넬 디자인의 평균값은 약 9,000프랑으로 올랐습니다. 1927년 당시 환율과 인플레이션 계산기를 활용해 보면 당시 달러로는 356달러였고, 현재값으로 환산해 보면 한화로 800만원이라는 값이 나옵니다. 같은 년도에 포드사의 모델 T가 485달러였으니 거의 경차 한 대 값이네요. 샤넬은 옷 말고도 악세사리를 팔았고, 모조 진주나 보석 같은 값싼 재료를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일부 샤넬 제품은 저것보다는 저렴했을 것입니다.




보다시피 샤넬의 가장 유명한 옷들은 오드꾸뛰르(Haute couture)였기 때문에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의 임금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월급 받아서 생활하는 일반인들이 꾸뛰르를 사는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샤넬의 디자인을 입을 수는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냐고요? 


1920년대 Saks Fifth Avenue, Lord & Taylor 등 뉴욕의 유명 백화점들은 정품 샤넬을 취급하면서, 동시에 Authentic Copy라 불리는 일종의 세컨드 라인을 같이 팔고 있었습니다. 샤넬의 디자인이 공개되자마자 뉴욕의 드레스메이커들이 가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럼 짝퉁이 아니냐고요? 일단 진품이라고 광고하지는 않았고, 디자이너의 명시적 혹은 암묵적 승인을 받고서 만들었습니다.


1920년대 패피의 기준


샤넬 Authentic Copy의 가격은 정품보다 훨씬 낮았으며 드레스 한 벌에 당시 돈으로 49.50에서 75달러 정도면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돈으로는 약 110만원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일반인들도 돈을 모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인이 저렇게 비싼 옷을 사입었다고요? 네, 20세기 중반까지 옷의 가격은 전반적으로 비쌌습니다. 미국의 중산층은 월급의 15% 가까이를 옷에다 썼고, 대신 적게 사고 오래 입었습니다. 비교를 위해서 1927년 당시 여성복의 일반적인 가격을 첨부합니다.

코트: $150
스커트: $30
진주목걸이: $10
신발: $18.50


샤넬은 평생 상류층을 위한 디자인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디자인한 편하고 남성적인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드레스 패턴에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약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패턴만 있으면 원단을 구해다 만들 수 있었고, 파리의 재단사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정품 샤넬은 아니더라도 "샤넬 스타일"의 옷은 사입을 수 있었습니다.


샤넬은 1933년 뉴욕에 왔을 때 가품의 존재를 알았지만, 모방도 성공의 척도라며 문제 삼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스튜디오에 사진사도 못 들어오게 할 정도로 가품에 민감했지만 샤넬은 사진사들에게 마음껏 찍어 가라고 했고 가품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행복해했습니다.


패션은 지나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 코코 샤넬


샤넬의 이러한 이중적 면모는 오늘날 우리가 럭셔리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와 매우 달랐습니다.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싼 재료를 쓰고, 가품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모습은 안티패션에 가까운 파격이었고, "무엇이 샤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샤넬을 베껴도 샤넬이다"라는 모더니즘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샤넬과 동시대에 활동한 마르셀 뒤샹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티스트가 예술이라 정의했다면 그것은 예술이다"


마르셀 뒤샹, 자전거 바퀴(1913)


코코 샤넬이 오늘의 샤넬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인용 자료:

Cold Modernism: Literature, Fashion, Art - Jessica Burstein                                  
Mademoiselle: Coco Chanel and the Pulse of History - Rhonda K. Garelick
A Cultural History of Western Fashion: From Haute Couture to Virtual Couture - Bonnie English, Nazanin Hedayat Munr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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