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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Nov 28. 2023

"경단녀" 과연 최선의 표현일까?

개인이 아닌 사회현상으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는 한자 문화권이라 그런지 공통적으로 "ㅇㅇ녀, -女, -おんな" 표현을 즐겨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건어물녀" "초식녀" 정도는 그냥 웃고 넘길 수 있겠지만, 이 "경단녀"라는 표현은 한국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사회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일단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너무 애매합니다. 경력 + 단절 + 여성... 왜 그런지 음절마다 하나씩 뜯어볼까요?


현대 사회의 난제, 일과 육아 양립


경력(Career)

여기서 말하는 경력은 수상 경력(record), 알바 경력(experience)의 뜻이 아니라 커리어(career) 즉 멀리 보고 나아가는 진로의 뜻입니다. 영어의 career break를 "경력 단절"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뉘앙스가 약간 손실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직업이 커리어가 되지는 않습니다. 커리어라는 단어에는 "내가 이 일에 전문성을 가지고 단절되지 않고 했을 때" 진급과 이직, 연봉 상승을 바라볼 수 있는 미래의 기댓값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남녀 커리어 갭을 다룬 연구에서도, 남성이 승진, 이직하는 동안 여성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기는 격차를 분석합니다.


단절(Break, gap)

미국에서 커리어 갭(career gap)이라고 검색해 보면 주로 질병, 유학, 여행 등으로 인해 이력서에 몇 달 이상의 공백이 생기는 현상에 대해 조언하고 있습니다. 커리어 갭 자체는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20대 남성에게 83% 이상의 높은 확률로 일어납니다.


단절이라는 표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왜 단절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20-30대 여성에게 1순위로 단절을 일으키는 "출산과 육아"라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빠져있습니다. 내가 자진 퇴사하고 8개월 쉬어서 경력단절이 일어난 것과,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육아휴직 혹은 퇴직을 한 것은 질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여성(Woman)

위에서 말했듯이 "출산, 육아"라는 말이 빠져있기 때문에 여자임을 나타내고자 "ㅇㅇ녀" 형태로 "경단녀"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오히려 혼란만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Career gap woman이 대체 무슨 뜻일까요? 마치 출산과 상관없이 커리어 갭을 겪는 모든 여성을 지칭하는 말처럼 되었고, 논점이 단어 안에 없기 때문에 부연 설명을 하지 않으면 외국인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경단녀가 여성 개개인을 지칭하게 되면서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문제가 개개인이 겪는 것이 아닌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ㅇㅇ녀로 부르게 되면서 마치 경단녀 개개인이 발로 뛰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렇게 하려면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찾으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회에서 핸디캡을 갖고 1:1로 경쟁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대안으로 제시된 "경력 ㅇㅇ 여성" 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유보, 보유, 이동이라는 표현들 모두 출산한 여성에게 세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강력한 페널티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경력유보여성: 유보가 되는 것은 맞으나 원상 복귀는 거의 불가능하며 대부분의 나라에서 퇴보합니다.


경력보유여성: 보유라는 긍정적인 단어는 좋지만 문제점이 무엇인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력이동여성: 출산 후 이동을 아예 못하고 단절되는 여성들도 있으며, 출산으로 인해 여성의 이직율은 남성에 비해 내려갑니다. 즉 이동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 찰떡처럼 입에 붙어있던 경단녀라는 단어를 버리고 무엇을 써야 할까요?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노벨상 수상자가 예전에 만들어 놓은 좋은 단어가 있습니다.


모성 페널티(Motherhood penalty)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 하버드대 교수는 남녀의 임금격차, 특히 출산과 육아로 인해 발생하는 커리어 격차를 날카롭게 분석한 공로로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골딘의 용어를 사용하면 이제 "누가, 왜" 단절되고 뒤쳐지는지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대상은 "아이를 출산한 여성"으로 한정되며, 그 여성들이 어머니가 됨으로써 받는 페널티는 출산을 하지 않는 같은 조건의 남성 혹은 여성에 비해 "더딘 승진, 낮아진 미래 임금, 퇴직"으로 나타납니다.


덴마크 자료: 출산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


위의 그래프는 그나마 세계에서 젠더 갭이 가장 양호하다고 여겨지는 덴마크의 자료인데, 미국,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들은 출산 직전부터 노동참여율, 임금이 뚝 떨어지고 2-3년 후 약간 회복했다가, 출산 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고착됩니다. 참고로 덴마크나 프랑스는 혼외 출산율이 50% 이상으로 높은 편이기 때문에 법적 결혼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출산" 하나만이 모든 지표를 제치고 여성의 임금에 영구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 현상은 선진국으로 갈수록 줄어들긴 하지만, 미국에서도 아직까지 나타나며, MBA학위가 있는 최상위권 여성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오히려 선진국의 고학력, 고소득 여성들일수록 커리어의 미래 기댓값이 높으므로, 출산으로 인해 막대한 페널티를 감수하게 됩니다. 골딘 교수의 해당 연구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아무래도 긴 영어단어보다는 3-4음절로 딱 떨어지는 단어가 한글 조어에 잘 맞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신조어를 만들던지, "출산"이라는 중요한 이유와 "사회현상"이라는 함의가 빠진다면 경단녀와 같은 반쪽짜리 표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하다가 출산하는 여성은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페널티를 받습니다. 한국처럼 극심한 경쟁사회, 고학력 사회에선 그 부메랑이 더 크게 돌아옵니다. 글로벌 현상인 건 맞는데 유독 한국만 심한 현상이 있다면 그것부터 파악해서 해결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요?



P.S.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는 올해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출산율을 0.84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새 자릿수가 바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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