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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Nov 23. 2023

괜찮은 남자가 없는 경제학적 이유

상향혼이 시사하는 것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투브에서 "괜찮은 남자가 없다"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연구들이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남자가 결혼 상대로 선택을 받고 실제로 결혼까지 갔는가?"를 분석해본다면 다수가 탈락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다 보고도 안 나타나면 경제학 논문을 봅시다.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지금부터 찬찬히 살펴봅시다.


• 잠깐 상식 •

선택적 만남(assortative mating): 선택적 결혼, 즉 가장 좋은 조건을 보고 결혼하려는 전략

동질혼(homogamy): 소득, 교육 수준이 비슷한 수준의 남녀가 결혼하는 것

상향혼(hypergamy): 자신보다 소득,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

결혼시장 미스매치(marriage squeeze): 어느 한 세대에서 결혼 적령기 여성과 남성의 수요, 공급이 맞지 않아 탈락자나 보류자가 대량 양산되는 현상


한국의 혼인 문화에 관한 연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모든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현상은 한국에서 아직도 남성과 여성의 배우자 선택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며, 일반적으로 선진국으로 넘어갈수록 증가하는 소득 동질혼이 드물다는 점입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 사회학과: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교육 수준 상승은 계급동질혼과 여성의 상향혼이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젠더불평등(gender-inegalitarian) 사회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경우, 대졸 여성의 혼인율 중 10-30%가 여성의 교육 수준 상승으로 인하여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적 불평등 저널 2023. 9월자:

한국은 교육 수준에 있어서는 높은 동질혼 성향을 보이나, 결혼한 남녀 소득의 격차는 여성의 낮은 사회참여로 인하여 큰 편이며, 남편의 소득과 아내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반비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가족학회 2022. 12월자:

상향혼에 영향을 미치는 부모 효과는 남성에게서만 나타나, 부모의 높은 사회경제적 자원이 남성의 상향혼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 연구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남성의 결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논의에서 더 나아가, 그 긍정적인 영향이 실제로는 다양한 결혼 유형의 선택지 제공에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럼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를까요?


세계 공통:

- 여성들의 교육 수준, 사회 참여율은 향상되고 있으며, 선진국 일부에서는 이미 남성을 추월해 있다.

- 임금, 학력이 매우 높은(상위 10%) 남녀는 동질혼을 강하게 추구한다.

- 혼인율, 출산율은 하향 추세에 있고 결혼이 필수가 아닌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특징:

- 여성들의 교육 수준, 사회 참여율이 단시간에 매우 급격하게 증가했다.

- 여성보다 남성의 소득이 높은 상향혼 비율이 80%로 매우 높은 편이다.

- 대졸자 비중이 남녀 모두 세계적 수준으로 매우 높으므로 교육적 상향혼은 거의 약화되었다.

- 여성이 결혼 후 노동시장에서 대거 이탈하면서 결혼한 남녀의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1970년대 여공들


이것을 바탕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 결혼이 거의 필수적이었던 한국사회에서는 여성의 교육 수준, 사회 참여율과 임금이 확연히 낮았고 따라서 자연스러운 상향혼이 이루어졌습니다. 대충 돌 던져서 아무 남자나 맞아도 "나보다 나은 사람"일 확률이 높았으니까요. 여기까지는 여타 개발도상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발전 양상입니다.


그런데 1980-90년대부터 여성들의 교육 수준과 사회 참여율이 크게 높아졌고, 한국 특유의 높은 교육열과 경쟁 사회로 인해 타 국가와 비교해서도 여성들의 경쟁력이 강력해졌습니다. 여성들이 시험과 내신에 강력한 우위를 점하면서 할당제로 뽑히는 남성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교육에서의 남녀 역전현상은 현재 미국, 영국 등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여성이 고등학교와 대학교 성적, 진학, 졸업률에서 앞섭니다.


따라서, 여성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어머니 세대에 비해 크게 상승하였으므로, "같은 수준"의 남성의 수가 예전보다 당연히 줄어들었고, "더 높은 수준"의 남성의 수는 더욱 줄어들게 되면서, "괜찮은 남자가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학 진학률이 50-60%대인 미국에서는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남성을 앞지르면서 교육적 하향혼이 늘고 있습니다. 즉 동급을 찾으려 해도 없습니다.




그러면 혹시 궁금하지 않나요?


상향혼 트렌드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실제로 매칭 가능한 여성보다 소득이 높은 남성의 수는 얼마나 될까?

2020년 이 연구를 실제로 진행한 분들이 있습니다. 1987년 미국에서 조사했던 "남성 결혼가능인구(Male marriageable pool index)"의 컨셉을 가져와, 한국 주요 시도별로 25-40세 여성 12만 명의 임금을 측정한 다음, 같은 도시에 사는 25-40세 남성들 중 여성보다 임금이 낮은 남성을 모두 탈락시켜 보았습니다. 


네 탈락입니다.


2018년 기준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남성이 더 벌수록 1에 가깝고, 덜 벌수록 0에 가깝습니다.

서울: 0.53
부산: 0.70
대구: 0.61
인천: 0.71
울산: 0.94


다시는 울산을 무시하지 마라


그런데... 저 숫자들이 어딘가 낯이 익지 않나요?

각 도시 혼인율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네요? 그럼 혹시...

서울: 0.59
부산: 0.72
대구: 0.76
인천: 0.75
울산: 0.85


위 수치는 2022년 시도별 출산율입니다. 보통 결혼하고 몇 년 후에 아이를 가진다고 가정했을 때, "여성보다 소득이 높은 남성의 비율"과 4년 뒤 출산율은 상당히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의 연구를 맹신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 보면 한국 출산율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아 보입니다.




위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의 결혼시장 또한 앞으로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결혼 미스매치: 더 많은 사람들이 조건이 안 맞아 서로 결혼을 미루고, 지방, 농촌 지역에서는 한국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 비율이 계속 올라갈 것입니다.


상향혼: 결혼 적령기의 남녀 중 50-70%는 위에서 본 일반적인 상향혼 트렌드에 맞춰 결혼할 것입니다. 남성 초혼 연령이 더 올라가면서 연상남 - 연하녀 커플이 보편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네 살 차이는 뭐라더라...


엘리트 동질혼: 미국의 트렌드를 따라간다면 상위 1-10%의 고소득층은 더욱 그들끼리 동질혼을 추구하게 될 것이며 의사는 의사끼리, 변호사는 변호사끼리 만나는 "그들만의 리그"가 공고해질 것입니다. 즉 신데렐라는 사라지고 왕자와 공주의 결혼만이 남습니다.


이 중 첫 번째 트렌드가 가장 큰 문제인데, 중국에서는 이미 남녀성비가 52:46으로 망가지면서 소도시, 시골에서는 "돈 없어서 결혼 못하는 남자"들이 대거 양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전체 가계저축 증가의 40-60%가 젊은 남성들이 결혼자금 모으느라 저축한 것이라는 조사도 있을 정도입니다.


지참금 때문에 금괴와 현금수송차가 동원되는 중국


한국은 남성에게 병역의 의무가 있어 가뜩이나 사회 진출이 늦는데, 중국처럼 되지 않으려면 결혼 문화가 크게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결혼적령기 남녀의 의식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결혼의 많은 결정권, 투자금을 쥐고 있는 부모님 세대의 결혼관이 건재한 이상 결혼 문화로 인한 남녀 갈등, 결혼시장 미스매치는 본질적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라는 표현처럼, 완벽한 사람을 찾다가 괜찮은 사람을 서로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인용 자료:

Assortative mating and earnings inequality in South Korea - Nicolas Fremeaux, SeEun Jung, Arnaud Lefranc
Marriage Trends in Korea: Changing composition of the domestic marriage market and growth in international marriage - James Raymo, Hyunjoon Park
Hypergamy Among South Korean Women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Marriage Rate - Min-Su Chung, Keunja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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