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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Oct 24. 2019

유럽은 예술, 남미는 유흥?

브라질 소셜클럽 6년의 회고록

한국에도 큰 규모의 브라질 음악 단체가 있다. 사진은 라퍼커션


나는 한때 브라질 음악을 하고 공연을 기획하는 단체에 속해 있었다. 기타 소리 대신 고기 굽는 냄새 가득한 홍대 골목에서 그나마 좀 싼 집을 찾아 들어가 다양한 사람들과 뒷풀이를 하다 보면 종종 우리와 비슷하게 다른 나라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프랑스 음악 공연에도 가보고, 서아프리카 음악 공연에도 가보고, 탱고 공연에도 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공연들이 어떻게 홍보되고 소비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클래식, 재즈, 팝, 가요, 트로트처럼 굵직한 장르를 다 빼고 나면 남는 인디나 월드 뮤직의 그 작디작은 관객수를 도대체 어떻게 동원하고 있을까? 무엇을 약속했길래 그들은 홍대를 찾는 트렌디하고 바쁜 젊은이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을까?




에펠탑, 노트르담, 개선문, 그리고 프랑스 국기. 설명이 필요한가? (롯데백화점 특설매장은 덤)


내가 관찰 끝에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뭔가 있어 보이는 나라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구차하게 포스터와 홍보글에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뉴욕, 파리, 런던의 낭만 같은 키워드만 던져주면 사람들의 상상력이 그 나머지를 채워주었다. 교양 있고 지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소개팅 상대를 데려가도 될 듯했다.


반대로, 브라질이나 아프리카, 자메이카 음악을 하는 우리들에겐 도대체 델몬트의 따봉 말고는 팔아먹을 거리가 없었다. 한때는 필리핀만 따라잡아도 땡큐였던 한국은 이미 너무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이런 개발도상국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우아함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원에서 2만원(One Free Drink) 사이의 입장료를 받으면서 "남미의 정열" "광란의 밤" "뜨거운 브라질의 축제" 등을 약속했다. 어쨌든 흥겨운 북소리와 열정적인 춤은 브라질의 전매특허이니까 꽤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끔 뉴저지 한인타운에서 스시롤을 18달러에 팔면서 외제차를 끄는 일식집 사장님을 보는 맞은편 저렴이 한식집 사장님 같은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우리 음식도 맛있고 반찬도 푸짐하게 주는데 18달러 받으면 아무도 안 올 것 같은 느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문화력이란 비싸게 받아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뉴욕 고급 레스토랑의 1918년 메뉴. 프랑스어를 모르면 저녁으로 피클에 빵 한조각이 나오는 수가 있었다. 이 코미디에 아무도 반기를 들 수 없었다. 프랑스는 진리였으니까.


과거 서구의 열강들이 선교사와 군함을 앞세워 물건을 팔아먹었다면, 지금은 자본주의 시장이 그것을 더 부드럽고 교묘하게 대신해주고 있다. 효능이 똑같은 비타민 C를 팔아도 스위스 산이면 더 비싸게 팔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문화력이란 비싸게 받아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높은 경제력과 문화력을 가진 서구의 고급진 마케팅 앞에 우리는 불나방처럼 앞을 다투어 뛰어든다. 이탈리아의 어느 명품 브랜드 CEO는 아시아 시장에서의 향후 전략을 묻는 리포터에게 이렇게 대답하기도 했다. "아시아 전략 같은 것은 따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시아인들은 유럽의 유행을 따라가니까요."


한때는 전 세계가 그랬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의 요리사, 작곡가, 화가들은 파리에서 소스 만드는 법을 배우고, 지도를 받고, 작품을 출품해서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출세길이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유학생활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거나 병으로 쓰러져도 지원자는 끊이지 않았다. 모두가 파리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예술가들은 더 이상 파리에서 인정받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다. 하지만 소비자로서의 우리 대다수는 아직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유럽의 문화라고 하면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스페인이나 동남아, 남미에 가서는 신나게 놀고 춤추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배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브라질리아

브라질 소셜클럽은 여름밤의 정열, 뜨거운 카니발 같은 거 말고 브라질이 우리에게 무언가 가르쳐 줄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단상에서 2013년 시작되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브라질 같은 나라 다큐멘터리를 보고, 혹은 여행을 가서, 딱 이 정도 생각을 하고 다음 여행지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사람들이 참 순진하고 착하다~ 한국은 안그런데~"

"저렇게 놀면 일은 언제 하나? 부럽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일하기 싫겠다~ 나도 돈 모아서 여기로 은퇴했으면"


상파울루


브라질은 원시와 첨단, 전근대와 현대, 유럽과 아프리카가 공존하는 너무도 크고 복잡한 땅이다. 그렇기에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은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은 초심자를 위한 나라가 아니다." 브라질에도 화려한 음식과, 멋진 건축물과, 수준 높은 예술과, 뿌리 깊은 전통이 있다. 해변가에 놀러 가 쉬는 초심자에게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브라질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가 들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마나우스


2019. 10. 21

브라질 소셜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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