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유형 연구의 역사
요즘 들어 MBTI와 함께 부쩍 주목받는 심리학 이론이 바로 "애착유형 가설(Attachment Theory)"입니다. 현대에 애착유형 가설의 주 용도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가설의 창시자들이 의도한 바대로 부모들이 영아 발달에 활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가설을 확대하여 성인의 연애 성향을 해석하는 용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갓난아이와 성인에게 동일한 가설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아직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해 보이며 지나친 확대 해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봅시다.
애착유형 가설은 1970년 메리 아인스워스(Mary Ainsworth)에 의해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녀는 유아들 간 애착유형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미국 중산층 100명의 유아를 대상으로 "낯선 상황(Strange Situation)" 실험을 창시했습니다. 이 실험은 유아가 양육자와 분리, 재회를 반복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험 결과에 따라 아이들은 아인스워스의 4가지 유형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안정 애착: 당황하거나 울지 않고 부모를 맞이한다
불안정-저항 애착: 낯선 사람을 불안해한다
불안정-회피 애착: 부모를 회피한다
혼란 애착: 둘 다 회피하며 혼란스럽거나 두려워한다
12-18개월짜리 유아를 방에 두고 떠났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게 더 이상한 거 같지만, 100명의 미국 유아를 대상으로 했을 때 약 70%가 안정형, 15%가 회피형, 15%가 저항형이었다고 합니다.
아인스워스의 실험은 영아 발달을 연구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되었지만, 동시에 한계점도 존재합니다. 우선 샘플이 "미국 중산층 100명"이었기 때문에 세계 공통을 대변한다고 말하기 어렵고, 아이의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1970년대 미국 어머니의 기준으로 쓰였습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에 문화마다 큰 차이가 있으므로, 일본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대부분이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맞벌이 부부가 존재했지만 아시아는 대부분 외벌이였기 때문에, 아이를 혼자 두고 다니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애착"이고 "저항"인지에 대해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애착유형 가설은 갓난아이에서 어쩌다가 성인까지 확대된 것일까요? 1987년 Hazan & Shaver는 성인의 연애에도 비슷한 프레임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3가지 애착 유형을 정립하여 설문조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안정형: 관계에서 친밀감, 믿음, 행복을 느낀다.
집착형: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계속해서 확인을 요구한다. 관계의 높낮이가 분명하고, 질투와 성적 끌림이 강하게 나타난다.
회피형: 친밀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관계의 높낮이가 분명하고, 질투를 동반한다.
최근에는 4번째 "공포형"을 추가하여 이렇게 사분면 형태로 만들기도 합니다. 공포형인 사람은 아마 그 누구와도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며 소수에 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Hazan & Shaver는 아이부터 성인까지의 추적 연구는 하지 않았고, "아마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만 열어놓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연구를 진짜로 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성인의 애착유형 연구를 오늘날의 지점까지 올려놓은 사람은 바로 미네소타대학 교수 Alan Sroufe입니다. Sroufe 교수와 그의 팀은 1970년 중반에 180명의 미네소타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30년간 이들의 일생을 추적 연구(longitudinal study)하는 집요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180명은 영아 때 아인스워스 실험을 통해 애착유형으로 분류되었고, 이후 자라면서 소년기 때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친구와 연인 관계에 대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회피형, 저항형이었던 아이들이 커서 성격장애나 우울증을 가지는 데 약한 상관관계를 보였으며, 최악은 혼란/공포형(disorganized attachment)이었던 아이들로, 아인스워스 실험 당시 양육자와 낯선 사람 둘 다에게서 도망가려 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커서 자해를 하거나 성적 학대를 당할 확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Sroufe 교수의 미네소타 추적 연구 결과는 책으로도 나왔고 "Attachment and development: A prospective, longitudinal study from birth to adulthood"라는 2005년 논문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미네소타 연구 결과는 2005년 처음 발표되었을 시 상당한 학술적 반향을 일으켰는데, "유아기의 경험이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의 발달이 하드디스크처럼 계속 덮어씌워지는 것이 아닌, "녹음버튼이 눌린 채로 태어나는 녹음기"라고 한다면 유아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미네소타 연구에 따르면 유아기 애착유형과 성인의 연애 만족도는 최대 0.50의 양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0.50이면 통계학적으로 강한 상관계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연관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표 당시 Sroufe 교수는 유아기의 애착유형이 성인이 되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으나, 2010년에는 애착유형이 전부는 아니라며 약간 절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아기에 아버지의 부재나 폭력을 목격하게 되면 그것이 발달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애착유형보다는 청소년기의 또래유능성(peer competence) 즉 성공적인 사회관계 형성이 커서 연인 관계를 조율하는 데 더 효과적인 예측변수였다고 합니다.
애착유형 연구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계속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부터 성인까지의 추적 연구는 쉽지 않고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현재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데이터는 1970년대 미네소타주의 미국인 저소득층 180명을 대상으로 하였으니, 이들을 바탕으로 도출한 상관관계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됩니다.
끝으로... 유아기 애착유형이 성인의 연애를 확실하게 결정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한 근거가 없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니, 그 주장의 출처를 요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용 논문:
Attachment and development: A prospective, longitudinal study from birth to adulthood - Sroufe (2005)
Conceptualizing the Role of Early Experience: Lessons from the Minnesota Longitudinal Study - Sroufe, Coffino, and Carlson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