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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Oct 29. 2019

브라질판 기생충, Que Horas Ela Volta

브라질 문화

그 수영장엔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마!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본 일이 있습니다. 어릴 때 놀러 갔던 친구의 집에 비싼 장난감이 풀세트로 쌓여 있는 모습. 중학생 때 과외하러 간 집의 원목 바닥. 이사 왔다는 아랫집 거실에 놓여 있던 명품 오디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한 집에 들어가 있으면 뭔가 발바닥이 꼬물거리는 불편함이 들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그 집이 편안하고 집주인이 착하더라도요. 2019년 개봉해 전 세계를 강타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은 이 꼬물거리는 불편함을 '한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극단까지 증폭시켰는데요, 브라질 영화사에도 같은 주제를 다뤄 국제적으로 성공한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기생충>을 보고 떠오른 이 브라질 영화의 포르투갈어 제목은 "엄마는 언제 와?" 영어 제목은 "Second Mother"입니다.




유복하지만 소통이 없는 집


고향을 떠나와 상파울루의 부잣집에서 식모로 일하는 Val은 집안에서 또 하나의 가족같은 존재입니다. 어릴 때부터 먹여주고 재워준 아들 Fabinho와는 각별한 사이기도 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Val의 딸인 Jessica에게서 전화가 한 통 걸려옵니다. 시골에서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던 Jessica는 상파울루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는데, 방학 동안에 상파울루에서 잠시 살면서 수능시험(Vestibular)을 준비해도 되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Val은 집주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대견한 딸을 위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고... 사모님은 당연하다며 흔쾌히 승낙해 줍니다. 그러나 Jessica가 도착한 순간부터 집의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Jessica: 우와, 방이 너무 좋아요! 여기서 지낼래요!
Jose: 여기서 지내고 싶니?
Val: 너 제정신이니? 세상에, 세상에...


자신의 위치를 철저하게 지켜왔던 Val은 자꾸 선을 넘는 눈치 없는 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Jessica는 부잣집에 얹혀살면서 지켜야 하는 수많은 무언의 규칙들에 지쳐갑니다. 분수를 너무 잘 아는 어머니와 너무 모르는 딸은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Jessica: 여기서 수영해본 적 한 번도 없죠?
Val: 난 다른 데 가서 수영하면 돼.


모든 영화에서 금기는 결국 깨지게 마련입니다. Jessica는 친구들과 수영장에 뛰어들었다가 대판 혼나게 되고, 대체 누구 편인지 모르겠는 어머니에게 화를 냅니다. 그와 반대로, 늘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엄격하게만 자라왔던 Fabinho는 점점 삐뚤어지고 Val을 어머니로 여기게 됩니다.


Val의 깨알 같은 짝퉁 루이뷔통

이 장면은 많은 것을 암시해줍니다. 문 주변에서 서성이는 어머니와 달리 딸은 천진난만하게 부잣집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눈빛에서 경멸이 느껴집니다.

공부를 잘했던 Jessica는 보란 듯이 수능을 잘 치게 되고, 방황하던 부잣집 아들 Fabinho는 2호선을 탈 수 없는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인자하던 사모님의 멘탈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고...


낮은 수영장 물은 교회의 세례식을 연상케 합니다.

Val은 남몰래 감격에 겨워 딸에게 절대 들어가지 말라던 수영장 안에서 첨벙거리며 아이처럼 좋아합니다. 딸 덕분에,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 스스로 정해놓았던 삶의 방식을 조금씩 회의하게 됩니다. <기생충> 같은 소름끼치는 반전은 없지만, <Que Horas Ela Volta>는 도시와 시골,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주인과 하인의 대비를 통해 빈부격차가 극심한 브라질 사회에 질문을 던졌던 영화입니다.


과연 이 두 가정의 동거는 계속될 수 있을까요?


상파울루와 대비되는 Val의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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