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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Oct 23. 2019

브라질 대표음식, 페이조아다의 진실

브라질 문화

페이조아다는 노예들이 만든 음식이 아닙니다.


가끔 그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데, 스토리도 너무 좋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어서 계속 재생산되는 이야기들. 브라질 대표음식인 페이조아다를 소개할 때 꼭 양념같이 들어가는 '페이조아다 노예 기원설'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요약하자면, 집에서 요리하고 남는 부속고기와 내장을 노예들에게 던져주어서 그것을 끓여 보았더니 페이조아다가 되었고, 주인들도 먹어보니 맛있어서 브라질 국민 찌개로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페이조아다라고 검색해보면 보통은 이런 글들이 페이조아다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브라질의 페이조아다는

1) 브라질 노예무역 이전부터 유럽에 퍼져있던 레시피였고

2) 노예들에게 실제 주어진 음식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Jean Baptiste Debret이 묘사한 노예들의 식사


일단 1번부터가 페이조아다 노예 기원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왕실 주방의 재료 출납 기록, 레시피에 페이조아다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거든요. 콩에 고기를 넣은 스튜는 스페인, 포르투갈 지방에 흔한 레시피였을 뿐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에도 서빙되었습니다(Feijoada à Transmontana). 이 스튜는 브라질식 검은콩 대신 흰콩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남는 고기를 노예들에게 던져주었다는 이야기도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오늘날 고기가 듬뿍 들어간 페이조아다를 먹으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은, 19세기까지도 브라질에서 고기는 상당히 귀한 편에 속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흔히 부속(restos)이라고 하는 남는 부위들은 그때는 전혀 부속 취급하지 않고 모두 먹었습니다.


당시 신문 등 사료를 참조해 보면 식민지 시대 브라질의 고기 생산, 도축 및 유통 인프라는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습니다. 소와 돼지를 기르는 환경도 덥고 습한 기후로 인해 비위생적이고 낙후되어 있었고, 도축장이 있었던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브라질 대부분의 도시들은 고기 수급이 불안정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왕실이나 명문가의 재료 출납 기록을 보면 귀족들도 내장, 귀, 육포, 소세지 등을 멀쩡하게 식재료로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들이 먹기도 부족한 고기를 어쩌다가 한 번이면 몰라도, 노예들에게 풍부하게 줄 리는 없었습니다.


Jean Baptiste Debret이 묘사한 저녁식사. 브라질 식민지 초창기에는 주인들도 별로 넉넉하게 먹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노예들은 맛있는 페이조아다 말고 무엇을 먹었을까요? 일단 지역별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시골에서는 노예들이 사냥하거나 키운 동물을 잡아서 먹였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도시에 사는 노예들은 거리에 나가 식료품을 사는 것이 허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 미나스 제라이스에서 금광 열풍이 불면서, 이쪽으로 대거 끌려간 노예들은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고 쓰다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사망률이 높았는지 주인들은 마치 중고차처럼 노예 개개인의 내용연수를 계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업계획을 구상할 정도였습니다.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지방의 골드 러쉬를 묘사한 그림


그런가 하면 시대별로도 노예들의 대우는 천차만별이었는데, 노예무역 초반에는 거의 가축처럼 다루었지만 점차 노예무역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노예 값이 오르면서 하나하나 잘 먹이고 관리하는 등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부 노예들이 부속을 어떻게 구해다 끓여 먹었다고 치더라도, 기록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노예들에게 허용된 것은 콩죽(feijão), 타피오카죽(aipim)에 소금 친 것, 과일 몇 조각 정도였습니다. 어떤 주인들은 소금을 많이 쳐서 노예들이 물로 배를 채우게 하면 이득이라며 꼼수를 부린 것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누구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지적하냐고 묻는다면, 페이조아다 노예 기원설이 실제 노예들의 역사를 미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실에도 납품되는 그 비싼 소세지와 돼지고기, 곱창을 먹을 수 있는 노예는 드물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유럽인들의 탐욕 아래 농장과 광산에서 개처럼 일하다 매우 일찍 죽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합법적으로 사람을 노예로 부리지는 않지만, 욕심이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할 때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노예제가 너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역사 교과서에 한 줄 긋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은 앞으로 누가 페이조아다 노예 기원설을 언급할 때, 너무 대놓고는 말고 나중에 넌지시 바로잡아 줍시다.


*본 글에 담긴 의견은 브라질의 민속학자 Camara Cascudo와 역사학자 Gabriel Golatti 외 많은 학자들이 이미 주장한 내용들입니다. 브라질에서도 그만큼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인데 아마 쉽게 고쳐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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