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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Oct 23. 2019

가나에는 실제로 "따봉족"이 산다?

브라질 문화

대한민국에서 브라질의 입지는 따봉 전과 따봉 후로 나뉩니다.


포르투갈어 "Está bom"(좋다)의 줄임말인 따봉은 델몬트 덕분에 사실상 한국어가 되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농담 같을지 몰라도, 가나에는 브라질에서 건너온 "따봉"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따봉족 전통 의상과 의식. 더 이상 포르투갈어를 쓰지는 않으나, 문화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브라질 식민지 시절의 수도였던 바이아(Bahia)는 아프리카 각지에서 팔려온 노예들로 가득했는데, 그중 나이지리아와 베닌 지역에서 끌려온 하우사(Hausa)와 나고(Nagô) 두 부족은 이슬람교를 믿었습니다. 이들은 타국의 힘든 노예 생활을 버티면서도 종교 활동을 계속하였고, 단체로 코란 공부와 필사도 하는 등 상당한 단합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브라질의 옛 수도, 바이아


그러다가 1835년, 두 부족은 바이아에서 조직적으로 대규모 노예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반란의 목표가 성전(지하드)이었는지 자유였는지는 학계에서 의견이 나뉘고 있습니다만, 계획이 하루 전에 발각되는 바람에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주동자들 일부는 처형당했고, 나머지 반동분자들의 처리를 고민하던 바이아 정부는 이 노예들을 아프리카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1835년, 약 200명의 브라질 무슬림 노예들이 다시 아프리카 가나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얼핏 보면 이들은 고향인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가 행복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너무 오래전에 끌려와 가나와 아무 연고가 없었고, 언어도 몰랐으며, 노예 신분이라는 이유로 가나 사람들은 이들을 배척했습니다. 노예들은 살아남기 위해 결국 주변에 정착해 있던 네덜란드인들과 손을 잡았으며, 가나의 아크라(Accra) 지역에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이들이 포르투갈어를 하는 걸 듣고 가나인들은 이들을 "따봉"이라 불렀으며 이것이 따봉족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가나 아크라에 있는 따봉 기념관 "브라질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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