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낮에 털릴 뻔하다

그래도 쌈바는 계속된다

by 브라질소셜클럽

히우 지 자네이루의 낮은 정말 평화롭다. 호스텔의 아주머니는 커피를 마시며 장난 섞인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여기서 넥타이 매고 다니는 사람 봤어?


나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 라파에서 어쩌다가 넥타이를 맨 사람은 사고를 쳐서 법정에 출두하는 길일 것이다. 때문에 히우의 낮은 심심하다. 내가 갔던 시기는 6월 한겨울(물론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는다) 이라, 바닷가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고 비수기의 조용함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뭐, 밤에만 잘 놀면 되니까 하고 나는 낮에 천천히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2.3.Tarsila-do-Amaral.jpg Capivari - Tarsila do Amaral


MAM-Rio로 불리는 히우 현대미술관은 평일 낮이라 그런지 무척 조용했다. 나는 칼퇴를 기다리는 표정의 창구 직원에게 외국 학생증을 제시하고 싼 가격에 미술품을 구경했다. 열대의 나라답게 브라질의 화가들은 선명한 색을 선호하는 듯했다. 텍스트를 포함한 현대미술 작품도 있었지만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여하튼 땡볕이 가실 때쯤 나는 미술관을 나와 코파카바나로 향했다. 코파카바나로 통하는 터널 근처까지 왔을 때였다. 셔츠를 입지 않은 한 흑인 남자가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순간 뭔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대낮이었지만 그 길엔 사람 한 명 없었고, 그는 내 이제 코앞까지 당도했다. 여기로 오는 도중에도 뭔가를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이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남자는 나를 와락 껴안더니, 포르투갈어로 뭐라고 말을 했다. 내 기억에, "내가 이렇게 보여도 실은 착한 사람이다"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 놀라서 포르투갈어는커녕 한국어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5초가 지나고 그는 주절거림 끝에 나를 풀어주더니, 자기 갈 길을 갔다. 뭐라고 대응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코파카바나를 향해 걷다가, 한 20초 후에 따라오지는 않을까 뒤를 보았다. 다행히 남자는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바지 뒤쪽에는 큼지막한 리볼버 권총 한 자루가 선명하게 꽂혀 있었다. 멀리서도 잘 보였다. 거지도 아니고 강도도 아니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정체가 뭐였든 나는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날 저녁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는 저녁 9시에 호스텔을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Carioca da Gema, 포르투갈어로 말하면 "뼛속까지 히우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큰 저택을 개조한 이 바는 2000년에 오픈한 뒤로 널찍한 실내 공간과 맛있는 음식, 괜찮은 서비스로 인해 라파에서 거의 제일가는 공연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공연 시작 전에 입장하니 한국 분식집 주문서 같이 기다란 종이를 한 장 받았다. 분식집과 똑같이, 먹고 마실 메뉴의 수량을 적으면 웨이터가 표시를 했다가 나갈 때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잃어버렸다간 고액의 벌금이 부과된다. 나는 앉아서 저녁 메뉴로 Calabresa 피자와 까이삐링야 칵테일을 시켰다. Calabresa는 페퍼로니 피자에 양파와 올리브를 더한 브라질식 피자인데, 맥주를 계속 찾게 되는 마성의 술안주였다. Calabresa에서 양파의 존재는 짜장면에서 양파의 존재만큼이나 절실한 기막힌 조합이다. 나는 항상 페퍼로니 하나만 올린 미국 피자가 성의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브라질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O Que E, O Que E - Ana Costa


그날 저녁의 주인공은 방송도 몇 번 타고 나름대로 라파에서 유명한 가수, 아나 코스타(Ana Costa)와 그녀의 밴드였다. Bar Semente에서 들었던 여자 가수들도 물론 뛰어났지만, 아나 코스타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좌중을 휘어잡는 만드는 포스가 있었다. 밴드 역시 큰북, 작은북, 기타, 관악기, 만돌린까지 풀세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느낌이었다. 공연의 시작부터 Carioca da Gema의 셔터가 내려갈 때까지, 아나 코스타의 밴드는 2층 계단까지 꽉 찬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오리지널 곡과 커버가 적절히 섞인 레퍼토리는 떼창을 원하는 브라질 관객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었고 댄스 플로어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쌈바는 현란한 춤인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추냐고? 정답은 그냥 춤추듯이 제자리에서 걷는다. 우리가 보는 고난도의 라틴댄스 공연이나 카니발은 쇼를 위한 것이고, 실전에서는 보통 그렇게 출 자리가 없다.


하지만 그 북적이는 공연장에서도 딱 한 명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공연장 청소부 아저씨였다. 그는 긴 빗자루를 소품 삼아 공연장 뒤쪽에서 현란한 스텝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청소부로 취직하려면 댄스 오디션이라도 보는 것일까? 그는 내가 그날 밤 본 누구보다도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히우 시의 청소부로 일하다가 쌈바의 간판스타가 된 인물이 있기는 했다. Renato Sorriso라는 환한 웃음의 청소부는 어느 날 카니발 퍼레이드의 막간 동안 바닥을 쓸다가, 흥을 이기지 못하고 쌈바를 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퍼포먼스에 열광했고 이 청소부에게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이 일로 그는 매니저에게 불려 가 혼났지만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카니발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가문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Carioca da Gema의 청소부도 어쩌면 그렇게 고정 게스트가 된 게 아닐까?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는 공연장


공연장의 밤은 길었고 나는 까이삐링야를 한 잔 더 시켰다. 사람들은 떼창을 하며 춤을 추었고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퍼커션을 하는 내 친구 Marcos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쌈바를 듣고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병원에 가봐야 해!


히우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빨리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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