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가능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토르데시야스 조약(1494)으로 인해, 남미에서 포르투갈령으로 정해진 브라질만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궁금증이 드는 부분은... 각자의 언어를 몰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할까요?
2015년 비정상회담에서 이 주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브라질 소셜클럽의 애독자이자 비공식 브라질 대사(?)로 등극한 카를로스 형과 멕시코 대표 크리스티안의 대화를 들어봅시다.
크리스티안: Carlos, te gusta las telenovelas?"(스페인어)
카를로스: Claro! Adoro novela Mexicana, novelas Mexicanas da Thalía..."(포르투갈어)
분명 다른 언어인데 어떻게 문제없이 대화가 될까요?
두 언어의 공통점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언어학에서 농담조로 “방언이 군대를 가지면 언어가 된다”고 합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각각 독립된 왕국이 된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의 대부분은 우마야드와 알모하드라는 이슬람 왕조가 지배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자잘한 가톨릭 왕국들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중세 역사는 가톨릭 왕들이 조금씩 이슬람 세력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탈환해 나가는 모습으로 요약됩니다.
포르투갈은 비교적 일찍인 1139년 왕국이 되었는 반면, 스페인은 15세기까지도 카스티유, 아라곤, 나바레 등 여러 개의 왕국으로 쪼개져 있었고 국경도 자주 바뀌었습니다. 포르투갈이 더 일찍 나라 틀을 갖추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어에는 라틴어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반면, 스페인어에는 아랍어와 지역 방언이 보다 많이 섞일 수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스페인어에서 Alcalde, Alhambra, Alferez처럼 Al-이 붙은 단어들은 높은 확률로 아랍어에서 온 것입니다.
스페인의 경우 통일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갈리시아 지방은 갈리시아 말을, 레온 지방은 레온 말을, 아라곤 지방은 아라곤 말을 썼습니다. 기차나 인터넷이 없던 중세시대에는 비록 나라가 다르더라도 지리적으로 가까우면 의사소통이 원활했고, 반대로 같은 나라라도 멀면 소통에 불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접경지역마다 언어가 다른 스위스가 좋은 예입니다)
이렇게 지역 방언들이 오랫동안 통일되지 못한 채 서로 섞였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마침내 독립된 각각의 왕국을 세웠을 때 두 언어는 비슷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일상에서 자주 쓰는 일부 단어들과 발음법을 제외하고, 둘의 문법은 거의 동일합니다. 따라서 어느 쪽이든 1년 정도만 속성으로 수업을 받아도 상대의 언어를 비교적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국경이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접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독자적인 혼합 언어를 쓰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포르투갈 위쪽 갈리시아 지방의 갈리시아어(Galician)입니다. 우리에게 성지순례의 종점으로 유명한 산티아고 데 컴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가 있는 지방이 바로 갈리시아입니다. 갈리시아어는 어떻게 생긴 언어일까요? 주기도문의 일부를 봅시다.
대체로 포르투갈어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tentacion, caer, veña 같은 단어들은 스페인어입니다. 그런가 하면 브라질 접경지대에서도 혼합 언어인 Portuñol 이 사용됩니다.
여기서는 반대로 스페인어가 지배적인데 dancar, olhar, vejo 등은 포르투갈어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문법과 단어들이 워낙 비슷하기 때문에, 아마 이 포르투뇰을 스페인어 화자에게 보여주면 맞춤법이 틀린 스페인어 정도로 보일 것입니다. 섞어도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비슷합니다. 역시 두 언어가 국경 없이 같이 발전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같은 접경 국가들은 서로의 말을 배울 인센티브가 많습니다. 따라서 제2외국어로 영어와 함께 항상 스페인어/포르투갈어를 제공해 왔고, 스페인어 사용 국가로 둘러싸여 있는 브라질의 경우 2010년 모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제2외국어로 스페인어를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브라질 대학생들은 대부분 영어와 스페인어를 어느 정도 하는 편입니다. 반면 스페인어와 너무 비슷하다고 해서 일부러 영어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택하는 브라질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결론: 두 언어가 문법적으로 상당히 비슷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프리토킹이 가능한 정도는 아닙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도 상당히 다르고 포르투갈어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대화는 어려울 것입니다. 단 조금만 공부하면 알아듣기 어렵지 않습니다.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면, 포르투갈어도 한번 도전해 보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