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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Nov 19. 2019

브라질과 미국의 인종은 다르다

브라질 문화

브라질 국경일인 11월 20일 "흑인의 날"을 맞아서...


브라질의 유명한 사회학자 질베르투 프레이리(Gliberto Freyre)는 그의 저서 <대저택과 노예숙사(Casa Grande e Senzala)>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만약 브라질을 포르투갈이 아니라 영국이나 네덜란드가 식민 지배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프레이리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브라질은 더 부유하고 발전했겠지만, 북유럽인들이 가진 인종적 편견에 의해 지배되고, 혼혈이 무시당하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프레이리의 말은 상당 부분 일리가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영국이 식민 지배한 미국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흑과 백이 첨예하게 나뉘고 그 중간이 없는 어려운 갈등을 안고 있는 반면,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브라질은 덜 부유할지는 몰라도, 대다수가 백인도 흑인도 아닌, 인종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브라질과 미국의 차이를 만든 것일까요?


1. 개척자들의 차이


미국의 탄생은 1620년, 102명의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나 미국 동부에 닺을 내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새 삶의 터전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배에 오른 청교도들에게 지도자 존 윈스롭(John Winthrop)은 마태복음 5:14절을 인용하며 유명한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덕 위에 세운 도시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윈스롭의 말대로 청교도들은 새 질서를 창조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식민지 개척에 임했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이나 노예들은 계몽의 대상이 되거나 배제되었습니다. 


그럼 브라질은 어땠을까요?


브라질의 첫 미사를 묘사한 1860년 그림. 빛과 어둠, 문명과 원시의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1500년 군인, 선원, 공무원 그리고 죄수들을 태운 선단을 이끌던 포르투갈의 항해사 카브랄은 육지를 발견하고 브라질 북부에 닺을 내렸습니다. 카브랄의 항해에 동승했던 서기 페루 바스 데 카밍야(Pero Vaz de Caminha)는 신대륙의 발견과 원주민과의 조우를 포르투갈 왕을 위해 상세히 글로 남겼고 이 편지는 브라질의 출생증명서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중요한 사료로 남았습니다. 편지에서 카밍야의 요점은 단 두 가지였습니다.

 

금과 자원이 있는가? 그리고 원주민들을 개종시켜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는가? 


즉 투자 가치가 있었냐는 것입니다. 왕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카밍야는 둘 다 예스라고 답했고 편지 맨 마지막에 슬쩍 왕에게 부탁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훗날 이 편지를 펴본 브라질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브라질의 역사는 청탁으로 시작되었다고 자조합니다...


그리고 전하의 충실한 종인 소인에게는 단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Sao Tome 섬에 갇혀 있는 저의 사위 Jorge de Osorio를 풀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포르투갈은 애초에 브라질에 미국처럼 빛나는 도시를 세울 생각이 없었고 그저 금은보화와 자원을 챙기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벌목과 탐험, 탄광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중요한 사회 기반시설과 법, 종교 등은 비교적 느슨하게 두었습니다. 개척자들 역시 가족보다는 브라질에서 한탕을 노리고 모여든 건장한 싱글 남성들이 많았습니다. 원주민과 흑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성에 대해 무척 보수적이었던 초창기 미국과는 다르게, 브라질 개척자들은 타 인종과 관계를 맺고 결혼하는 데 크게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물론 귀족들은 백인과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겉으로는 말하고 다녔지만 암암리에 애첩을 두기도 했습니다. 흑백 간의 관계와 결혼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했던 미국과 가장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2. 우생학 이론의 차이


대항해시대에 유럽인들이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윈이나 라마르크와 같은 우생학(Eugenics)을 통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최첨단 과학이었던 우생학을 연구한 영국과 프랑스의 과학자들은 신대륙의 원주민과 동물, 자연을 조사해 보고는 유럽의 그것에 못 미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우월한 백인이 원주민이나 흑인과 자손을 낳으면 유전자가 열등해진다고 생각했고 신대륙의 덥고 습한 자연 또한 사람을 퇴화(degenerate)시킨다고 믿었습니다. 우생학을 철석같이 믿은 영국인들은 미국에 가서도 열등한 인종과 섞이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자손이 세대에 걸쳐 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1895년 그림 <햄의 구원>


포르투갈도 우생학을 일부 믿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인들에 비해서는 그 정도가 비교적 느슨했습니다. 그들은 반대로, 백인이 타 인종과 가족을 꾸리다 보면 세대에 걸쳐 우월한 유전자가 점점 열등 인자를 희석시켜 나간다는 네오-라마르크 이론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백인화(Whitening)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브라질을 포함한 몇몇 남미 국가의 지도자들은 유럽인을 계속 들여오기만 하면, 남아메리카 땅이 서서히 백인화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의 이민을 적극 장려하고, 혼혈 결혼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포르투갈인들이 타 인종을 대하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에, 브라질의 화려하고 방대한 자연 그리고 순진한 원주민들과 맞닥뜨린 그들은 영국인들과는 달리, 오히려 브라질을 좋아하고 동화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카밍야의 편지에서도 그는 난생처음 본 원주민 아가씨의 그을린 피부와 건강한 몸에 대해 "화장으로 멋을 낸 유럽의 여자들보다 아름답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회학자 프레이리는 포르투갈의 열대에 대한 이런 적응력을 루소트로피칼리즘(Luso-tropicalism)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청교도들이 브라질에 갔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상황입니다.


3. 노예제의 차이


노예해방의 날까지 미국에서 노예란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주인이 자발적으로 풀어주지 않는 한 자유가 될 수 없었고, 신분 상승의 길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는 브라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노예와 주인의 관계는 미국에 비해 느슨했습니다. 한 예로 브라질에서는 노예들이 도시에 나가거나 식료품을 사고파는 것이 허용되기도 했고, 돈으로 자유를 살 수도 있었으며, 주인의 첩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브라질을 방문한 유럽인들은 까만 흑인들은 농장에서 일하고, 갈색의 혼혈 여자들은 저택 안에서 일하고, 그보다 덜 갈색인 여자들은 주인의 시중을 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주인을 묘하게 닮은 갈색의 꼬마 아이들이 농장 주변을 뛰어다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면 스캔들이었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인 브라질 땅에서는 크게 놀랄 게 없었습니다. 노예들이 무슨 일을 당하면 지방 관리가 아니라 주인을 찾아갔을 정도로 브라질에서 노예와 주인의 관계는 주종 이상이었습니다.


주인의 아이들이 노예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브라질 포르투갈어는 노예들이 쓰던 아프리카 언어와 혼합되었습니다.


4. 정말 인종은 없는가?


브라질의 학자들은 미국과 비교해 브라질을 "인종 민주주의(Racial democracy)"라고 늘 묘사해 왔습니다. 위에 나열한 대로, 브라질에서 인종 간의 차이가 덜한 것은 사실입니다. 인구조사에서 인종을 물어보는 칸에 "커피"부터 "흙"까지 온갖 창의적인 색깔을 적어 내는 나라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브라질에 인종차별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브라질 내에서도, 아나운서처럼 외모가 중요한 직업은 백인이나 옅은 갈색의 혼혈을 선호합니다. 광고나 TV를 보면 백인 선호가 은근하게 드러납니다. 


브라질에서 오늘날 대다수의 갈색 혼혈들은 차별에서 자유로운 반면, 검은 피부의 흑인들은 아직도 가장 가난하고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집단입니다. 그래서 브라질에 가보면 인종차별이 없다고 하면서도 가장 낮은 사람들은 흑인인 경우가 많은 모순을 봅니다. 갈색에 대한 차별은 없지만 흑백의 차별은 존재하는 브라질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브라질 인종 지도입니다. 파란색=백인, 초록색=혼혈, 빨간색=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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