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과 한계
살다 보니 이유는 하나가 아니더라
사람은 생각의 집을 짓는 동물이고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내 수준에 맞는 이분법적인 이유가 필요했을 뿐
있는 그대로 사실만 보자면
아무 이유도 없던 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무한한 이유들이 섞여있더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내 정신을 지키고 싶다면
내가 할 일은 이유를 붙이지 않는 것이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 사이의 일이라고 하면
상대도 그 이유를 모를 것이고
그 자리에서 이유를 말하라고 한들
그때 그 순간 거기에서
말하기 적절한 이유였을 뿐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무쓸모한 말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와 이해하려고 한들 안 되는 것이다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마라
원인을 하나로 한정하지 마라
난 그저 모를 뿐이고 사실은 그저 일어났을 뿐이다
어차피 나는
인간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했다고 착각해 자신을 보호하는
단단한 생각의 집을 만들 뿐
그 생각의 벽은 보기에도 흉하다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남들이 볼 땐
그저 뜬금없이 우뚝 솟은
흉한 탑에 불과하다
매번 새롭게 모든 것을 대하라
그래야만 너를 바로 보여줄 수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이유가 하나가 아니기에
그렇기에 생각의 집을 짓지 말라
그 탑은 보기에도 굉장히 흉하다
이분법에 갇힌 너는 네가 아니기에
그런 모습의 너를 보여주지 마라
너만 손해다
그 순간 사람들은 너를 이분법으로만 본다
너는 세 살 이이도 이해할 만한 수준의
가벼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속에서 고통받지 말아라
부탁이다
절대 이유가 하나라고 한정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