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54화
1.
1949년 독일 밤베르크 고등법원의 재판정에는 두 종류의 법관이 존재했다. 하나는 피고인석에 앉아야 마땅한 자들, 즉 나치 시대에 부당한 법률을 적용하여 무고한 시민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군사법원 법관들이었다. 다른 하나는 재판석에 앉아 그 법률의 악용자를 처벌해야 하는 전후 민간법원의 법관들이었다. 흥미롭게도 밤베르크 법원은 전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법원은 나치 시대 법관들이 당시 유효했던 실정법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불법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2.
이 역설적 판결은 법관이라는 존재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동일한 법률 앞에서, 동일한 직업적 정체성을 가진 법관들이 왜 상이한 판단에 이르렀는가.
나치 시대 법관들은 법문에 충실했고, 전후 법관들은 법 너머의 정의를 추구했다고 단순화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법관의 해석 행위가 갖는 근본적 복잡성을 간과한다. 법관은 법률을 해석하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법공동체의 역사적 지평을 해석하며, 궁극적으로는 정의 그 자체의 의미를 해석한다. 이 삼중의 해석 과정은 법관 개인의 의지나 기술적 능력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차원의 문제다.
3.
본고는 사악한 법 앞에 선 법관의 위치를 해석학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특히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이 제공하는 선이해, 해석학적 순환, 지평융합 개념을 통해 법관의 판단 과정을 재조명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사악한 법 논쟁을 자연법론 대 법실증주의라는 전통적 이분법에서 해방시키고, 법관이 구체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법의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하는지를 밝힐 수 있다.
나아가 본고는 밤베르크 판결을 해석학적 텍스트로 재독해함으로써, 이 판결이 단순히 자연법 원리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법공동체의 역사적 경험과 대화하는 정교한 해석학적 작업이었음을 논증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헌법재판제도를 법공동체의 해석학적 자기성찰이 제도화된 형태로 이해함으로써, 사악한 법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적 해석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4.
법관은 법공동체 내에서 독특한 존재론적 위치를 점한다. 한편으로 법관은 법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축적해온 법전통과 정의관념을 체현한다. 법관은 법학교육을 통해 법교의제를 내면화하고, 법조실무를 통해 법공동체의 암묵적 규범들을 습득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법관은 개인적 주체이기를 넘어 법전통의 담지자가 된다. 가다머의 표현을 빌리자면, 법관은 효력사적 의식의 전형적 사례다. 법관의 판단은 과거로부터 전승된 법이해가 현재로 작용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법관은 구체적 사건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개별적 주체다. 법관은 추상적 법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자동장치가 아니라,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정의로운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이때 법관은 자신의 양심과 이성을 동원하며, 때로는 확립된 법이해에 도전하기도 한다. 즉, 법관은 전통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 해석자이자 재창조자다.
5.
이러한 이중성은 평온한 법치국가에서는 잠복해 있다가, '사악한' 법 앞에서 폭발적으로 현재화된다. 법관은 법공동체가 제정한 실정법을 존중해야 하는 의무와, 그 법이 법공동체의 근본적 정의관념을 배반했다고 판단할 때 이를 거부해야 하는 의무 사이에서 분열된다. 이 분열은 개인적 양심의 갈등이 아니라, 법관이라는 존재 자체에 내재된 구조적 긴장이다.
6.
가다머에 따르면 모든 이해는 지평융합의 과정이다. 텍스트가 속한 과거의 지평과 해석자가 서 있는 현재의 지평이 만나 새로운 의미의 지평을 형성한다. 법관의 해석작업 역시 이러한 구조를 따른다. 법률이라는 텍스트는 입법 당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특정한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법관은 그 법률을 현재의 사건에 적용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법률의 의미는 필연적으로 변화한다.
7.
문제는 전통의 지평과 현재의 지평이 조화로운 융합을 이루지 못하고 첨예하게 충돌할 때 발생한다. 나치 시대 법관들이 직면한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1934년의 배반법은 국가안보라는 정당한 목적을 표방했지만, 그 실제 작동방식은 전체주의적 억압의 도구였다. 법관들은 법률의 문언이라는 과거의 지평과, 구체적 사건에서 드러나는 부정의라는 현재의 지평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대다수는 전통의 지평, 즉 실정법의 문언에 머물렀다. 이는 해석학적 용기의 결여였다.
반면 전후 밤베르크 법관들은 나치 법률이라는 텍스트를 새로운 지평에서 재해석했다.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법공동체의 현재 지평은, 과거의 법률을 단순히 법기술적 규범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 부정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지평융합은 법률의 의미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합법이었던 것이 현재에는 범죄가 되었다. 이는 법적 불안정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법공동체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도달한 보다 깊은 법이해의 표현이었다.
가다머 해석학의 핵심 통찰은 모든 이해가 선이해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순수한 무전제의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어떤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선이해는 극복되어야 할 편견이 아니라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생산적 조건이다. 다만 선이해가 경직된 편견으로 고착될 때 진정한 이해는 불가능해진다. 해석학적 성찰의 과제는 선이해를 의식하고 끊임없이 검증하는 데 있다.
9.
그렇기에 법관의 선이해는 단일하지 않다. 이는 최소한 세 개의 층위로 구성되며, 각 층위는 상이한 기원과 성격을 갖는다.
첫째 층위는 법관 개인의 도덕적 직관과 양심이다. 이는 법관이 법률가가 되기 이전부터 형성된 인격적 기초로서, 가정교육, 종교적 신념, 개인적 경험에서 유래한다.
둘째 층위는 법관이 법학교육과 법조실무를 통해 내면화한 법적 사고방식이다. 이는 법교의제, 법률해석의 기술적 규칙, 판례법의 원칙들을 포함한다.
셋째 층위는 법관이 속한 법공동체의 역사적 경험과 헌법적 가치다. 이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집단적 기억과 공유된 정의관념이다.
이 세 층위는 위계적이지 않으며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건강한 법해석에서 이 층위들은 조화를 이룬다. 법관의 개인적 양심은 법공동체의 정의관념과 공명하고, 법기술적 사고는 이러한 실질적 가치를 구체화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그러나 '사악한' 법 앞에서 이 층위들은 격렬하게 충돌한다.
나치 시대 법관들의 비극은 선이해의 세 층위가 모두 왜곡되거나 마비된 상황에서 발생했다. 개인적 양심의 층위에서 많은 법관들은 자신이 적용하는 법률의 부도덕성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직관은 억압되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도덕적 감수성은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요소였기 때문이다.
법기술적 사고의 층위에서 법관들은 형식적 합법성에 집착했다. 법률의 문언이 명확하고 절차가 적법하다면, 법관은 판단을 멈출 수 있었다. 이는 법실증주의의 타락한 형태, 즉 통속적 법실증주의였다. 법공동체의 역사적 지평이라는 층위는 가장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나치 이데올로기는 독일의 법전통을 왜곡하고 재해석했다. 평등, 인간존엄성과 같은 보편적 가치는 인종주의적 민족공동체 관념으로 대체되었다.
밤베르크 법관들이 직면한 과제는 이렇게 왜곡된 선이해를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나치 시대의 법이해가 진정한 법전통이 아니라 일시적 일탈이었음을 선언해야 했다. 동시에 법공동체의 진정한 정의관념이 무엇인지 재발견해야 했다. 이는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었다.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참극을 경험한 이후, 법공동체의 정의관념은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법관들은 과거의 법전통과 현재의 비극적 경험 사이에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창출해야 했다.
해석학적 순환의 첫 번째 차원은 부분과 전체 사이의 상호의존성이다. 우리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전체를 참조하지만, 전체는 부분들의 이해를 통해서만 구성된다. 이는 악순환이 아니라 이해가 심화되는 나선형 운동이다. 법관의 법률해석 역시 이러한 구조를 따른다. 개별 법률조문은 전체 법질서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법질서 전체의 의미는 개별 조문들의 해석을 통해 구체화된다.
'사악한' 법의 문제는 이러한 해석학적 순환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나치의 배반법을 예로 들어보자. 이 법률은 그 자체로 읽으면 국가 안보를 위한 정당한 입법처럼 보인다. 적국을 이롭게 하는 발언을 처벌하는 것은 전시 상황에서 이해 가능한 조치다. 그러나 이 법률을 나치 체제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읽을 때, 즉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 전체주의적 통치구조, 반대파 제거의 체계적 폭력과 연결하여 이해할 때, 그 진정한 성격이 드러난다. 배반법은 독립적 법률이 아니라 억압기제의 일부였다.
역으로 배반법과 같은 개별 법률의 사악함을 인식하는 것은 나치 법질서 전체에 대한 판단을 변화시킨다. 만약 법질서의 핵심 구성요소가 근본적으로 부정의하다면, 그 법질서 전체의 정당성이 의심받는다. 밤베르크 법관들은 바로 이러한 해석학적 순환을 수행했다. 이들은 밀고자 사건이라는 구체적 부분에서 출발하여 나치 법질서 전체의 성격을 재평가했고, 이러한 전체에 대한 이해는 다시 개별 사건의 판단으로 되돌아왔다.
12.
해석학적 순환의 두 번째 차원은 해석자의 선이해와 이해대상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우리는 선이해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지만, 텍스트와의 만남은 우리의 선이해를 변화시킨다. 진정한 이해는 우리가 텍스트에 우리의 선이해를 강요할 때가 아니라, 텍스트가 우리에게 물음을 제기하도록 허용할 때 발생한다. 가다머는 이를 텍스트가 해석자에게 던지는 물음에 응답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사악한' 법 앞에 선 법관은 이러한 물음의 구조를 가장 강렬하게 경험한다. 법관은 정의에 대한 선이해를 가지고 법률을 읽는다. 그러나 극도로 부정의한 법률은 법관에게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과연 법인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부정의를 행할 수 있는가.
법적 의무와 도덕적 양심이 충돌할 때 법관은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법관의 선이해를 흔든다. 법관은 자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법의 본질, 법적 의무의 근거, 정의의 의미를 재검토해야 한다.
13.
이러한 맥락에서 밤베르크 법관들의 판결문을 읽으면 선이해의 변화가 감지된다. 법관들은 처음에는 법실증주의적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나치 법률이 형식적으로 유효했는지, 군사법원 법관들이 절차를 준수했는지 검토했다. 그러나 사안의 극단적 부정의는 법관들에게 더 깊은 물음을 강요했다. 형식적 합법성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법관의 의무는 법문에 대한 복종으로 다 설명되는가. 이러한 물음과의 씨름을 통해 법관들은 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했다.
법은 단지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법공동체의 정의관념을 구현해야 하는 규범적 질서라는 인식이었다.
14.
밤베르크 판결에 대한 전통적 이해는 이를 자연법론의 승리로 해석한다. H.L.A. 하트 역시 이 판결이 초실정법적 자연법 원리를 근거로 나치 법률의 법적 효력을 부정했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최봉철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는 판결문에 대한 오독이다. 밤베르크 법원은 나치 법률의 법적 효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원은 군사법원 법관들이 유효한 실정법을 적용했다고 인정했다.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법률 자체가 아니라 그 법률을 악용한 밀고자의 행위였다. 법원은 밀고자의 행위가 "모든 온전한 사람들의 공정성과 정의에 관한 감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법원은 칸트적 정언명령이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원법과 같은 초역사적 자연법 원리를 호출하지 않았다. 대신 "온전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을 언급했다. 이는 법공동체 구성원들이 역사적으로 형성하고 공유해온 정의감각이다.
이러한 정의감각은 자연법적 의미에서 보편적이고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이는 특정 법공동체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되고 전승된 것이며, 따라서 시대와 맥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독일 법공동체의 정의감각은 1930년대의 그것과 달랐다. 인간존엄성의 절대적 가치, 국가권력의 한계, 소수자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역사적 참극을 통해 법공동체의 집단적 의식 속에 각인되었다.
밤베르크 법원의 해석학적 작업은 바로 이러한 변화된 법공동체의 정의감각을 밀고자 사건에 적용한 것이었다. 법원은 초역사적 원리에서 하강한 것이 아니라, 법공동체의 역사적 경험에서 상승했다. 이는 가다머가 말한 지평융합의 전형적 사례다. 나치 시대라는 과거의 지평과 전후 독일이라는 현재의 지평이 만나, 법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창출되었다.
15.
밤베르크 판결의 또 다른 해석학적 특징은 군사법원 법관과 밀고자를 차별적으로 판단한 논리구조다. 법원은 법관들을 처벌하지 않았지만 밀고자를 처벌했다. 이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표면적으로는 법관에게는 법적용의 의무가 있었지만 밀고자에게는 신고의 의무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석학적으로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법관은 법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법전통의 담지자(擔持者, Trager; 어떤 이론이나 사상 따위를 잇거나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하게 담는 자)다. 법관의 판단은 개인적 결정이 아니라 법공동체 전체의 법이해가 발현되는 지점이다. 나치 시대 법관들이 배반법을 적용했을 때, 이들은 당시 법공동체의 지배적 법이해를 따랐다. 물론 이는 왜곡된 법이해였지만, 전체주의 국가에서 법공동체 자체가 왜곡되어 있었다. 개별 법관에게 법공동체 전체의 왜곡에 저항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영웅적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법원은 이를 법적 의무로 부과하지 않았다.
16.
반면 밀고자는 법공동체의 공적 대표자가 아니었다. 밀고자는 사적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의 폭력기구를 이용했다. 밀고자의 행위는 법공동체의 법이해와 무관하게 순수하게 개인적 악의에서 비롯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밀고자가 당시에도 "온전한 사람들의 정의감각"을 위반했다는 점이다.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나치 시대에도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의적 신고는 법공동체의 정의감각에 반했다. 즉 밀고자는 나치 법률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악용한 것이다.
이러한 차별적 판단은 법관의 해석학적 책임의 한계를 시사한다. 법관은 법공동체의 법이해를 구현해야 하지만, 법공동체 전체가 극단적으로 왜곡된 상황에서 개별 법관에게 단독으로 저항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 오히려 법공동체는 그러한 왜곡을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헌법재판제도의 해석학적 의의다.
17.
밤베르크 판결이 보여주는 사후적 과거청산의 고통은, '사악한' 법을 미리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헌법재판제도는 바로 이러한 예방적 해석학을 제도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은 법률이 실제로 적용되어 피해를 발생시키기 전에, 그 법률이 헌법적 가치와 조화될 수 있는지 심사한다. 이는 입법자의 법이해와 헌법재판관의 법이해 사이의 해석학적 대화다.
입법자는 헌법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그에 근거하여 법률을 제정한다. 그러나 입법자의 헌법이해는 다수의 정치적 의지, 현실적 이해관계, 단기적 목표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 헌법재판관은 입법자의 헌법이해를 재검토한다. 이때 헌법재판관이 수행하는 것은 입법자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자와 대화하는 것이다. 헌법재판관은 입법자가 헌법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재구성하고, 그 이해가 헌법의 근본정신 및 법공동체의 정의관념과 합치하는지 검토한다.
이러한 과정은 가다머가 말한 지평융합의 전형적 사례다. 입법 당시의 지평과 헌법재판 시점의 지평이 만난다. 입법자가 의도한 의미와 헌법이 실제로 갖는 의미가 대화한다. 이 대화의 결과로 법률의 의미는 재구성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이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판단이 사후적으로 피해가 발생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전적으로 법률의 시행 이전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18.
헌법재판제도를 해석학적으로 이해할 때, 이는 법공동체가 스스로의 법이해를 성찰하는 제도화된 형식이다. 법공동체는 입법을 통해 자신의 법이해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항상 법공동체의 진정한 정의관념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과정은 왜곡, 타협, 단기적 이익의 추구로 얼룩질 수 있다. 헌법재판은 법공동체가 자신의 입법 산물을 다시 들여다보고, 이것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 우리의 근본 가치와 합치하는지 묻는 과정이다.
이러한 자기성찰은 해석학적 순환의 구조를 따른다. 법공동체는 개별 법률을 헌법이라는 전체의 맥락에서 검토한다. 동시에 개별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을 통해 헌법 자체의 의미가 구체화되고 발전한다. 헌법은 추상적 원리의 카탈로그가 아니라 살아있는 규범질서로서, 구체적 적용을 통해 그 의미가 풍부해진다. 헌법재판관은 이러한 해석학적 순환을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주체다.
19.
나아가 헌법재판제도는 법공동체가 역사적 경험에서 배우는 제도적 메커니즘이다. 밤베르크 법관들이 직면했던 딜레마, 즉 이미 적용된 사악한 법을 사후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고통스러운 물음은, 헌법재판제도를 통해 예방될 수 있다. 법공동체는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그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헌법재판제도는 법공동체의 역사적 학습이 구조화된 형태다.
20.
'사악한' 법 앞에 선 법관이 지는 첫 번째 해석학적 책임은 자기성찰이다. 법관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끊임없이 검증해야 한다. 법관의 선이해는 개인적 도덕관, 법기술적 훈련, 법공동체의 전통이라는 세 층위로 구성되며, 이 층위들이 조화를 이루는지 성찰해야 한다. 특히 법관은 자신의 선이해가 경직된 편견으로 고착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나치 시대 법관들의 비극은 자기성찰의 실패였다. 이들은 법실증주의적 법이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그러한 법이해가 법의 본질과 합치하는지 묻지 않았다. 형식적 합법성에 대한 집착은 실질적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마비시켰다. 법관은 자신이 왜 특정 방식으로 법을 이해하는지, 그러한 이해가 정당한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는 법관이라는 직업의 본질적 요구다.
자기성찰은 또한 법관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을 포함한다. 법관은 전지전능한 정의의 화신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제한된 정보와 능력으로 판단하는 유한한 존재다. 법관의 판단은 오류가능하며, 미래의 법공동체에 의해 수정될 수 있다. 이러한 겸손함은 법관이 독단에 빠지지 않고 다른 견해에 열려 있도록 만든다.
21.
두 번째 해석학적 책임은 대화다. 법관은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 법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목소리와 대화해야 한다. 법관은 법률이라는 텍스트와 대화하고, 입법자의 의도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법관은 과거의 판례 및 법학설과 대화하고, 법전통이 축적한 지혜를 참조한다. 법관은 법공동체의 현재 정의관념과 대화하고,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가치를 고려한다.
이러한 대화는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상호적 경청이다. 법관은 자신의 선이해를 대화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관점이 자신의 이해를 변화시키도록 허용한다. 밤베르크 법관들은 나치 시대 법관들의 입장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려 시도했다. 이들은 군사법원 법관들이 놓여 있던 상황적 제약, 즉 전체주의 국가의 압력, 법실증주의적 훈련, 개인적 두려움을 고려했다. 이러한 이해가 있었기에 밤베르크 법관들은 군사법원 법관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동시에 법관은 법공동체의 소수자 및 피해자와도 대화해야 한다. '사악한' 법은 대개 소수자를 억압하고 주변화하는 기능을 한다. 다수의 목소리만 경청하는 법관은 소수자의 고통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법관은 의식적으로 주변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관점에서 법률의 의미를 재검토해야 한다. 이는 해석학적 정의의 요구다.
22.
세 번째 해석학적 책임은 최종적 판단이다. 자기성찰과 대화를 거친 후에도, 법관은 구체적 사안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는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법관은 모든 관점을 종합하고, 상충하는 가치들을 저울질하고, 정의로운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이 판단은 궁극적으로 법관 개인의 양심과 이성에 의존한다.
판단의 책임은 법관이 그 결과를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관의 판단은 사람들의 삶에 실제적 영향을 미친다. '사악한' 법을 적용하는 판결은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 반대로 '사악한' 법의 적용을 거부하는 판결은 법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법관은 이러한 결과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이것이 법관이라는 직업이 요구하는 윤리적 용기다.
밤베르크 법관들의 판결은 바로 이러한 책임을 감수한 사례다. 법관들은 나치 법률의 법적 효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법률을 악용한 자를 처벌하는 정교한 논리를 구성했다. 이는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고심의 산물이었다. 법관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판단을 회피하는 것은 더 큰 부정의였다. 법관들은 최선의 이해에 근거하여 판단했고, 그 판단의 책임을 감수했다.
23.
'사악한' 법 앞에 선 법관의 위치를 해석학적으로 탐구한 본고의 논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법관은 법공동체의 전통과 현재 사이의 교차점에 서 있는 존재로서, 법률을 해석하는 동시에 법공동체의 정의관념을 해석하고 궁극적으로 정의 자체의 의미를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 과정은 법관의 선이해, 해석학적 순환, 지평융합이라는 가다머 해석학의 핵심 구조를 따른다.
(2) '사악한' 법의 문제는 이러한 해석학적 과정이 극한에 이른 상황이다. 법관의 선이해는 왜곡되거나 마비될 수 있고, 해석학적 순환은 악순환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지평융합은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극한적 상황에서 법관의 해석학적 책임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된다. 법관은 자기성찰을 통해 왜곡된 선이해를 교정하고, 대화를 통해 법공동체의 진정한 정의관념을 재발견하며, 용기 있는 판단을 통해 부정의에 저항해야 한다.
(3) 밤베르크 판결은 이러한 해석학적 작업의 고통스러운 사례다. 법관들은 나치 법률이라는 텍스트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법공동체의 현재 지평을 융합하여, 법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했다. 이들은 초역사적 자연법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법공동체가 역사적으로 공유해온 정의감각을 호출했다. 이는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제3의 길, 즉 역사적 해석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4) 그러나 밤베르크 판결이 보여주는 사후적 과거청산의 고통은, 사악한 법을 미리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헌법재판제도는 바로 이러한 예방적 해석학을 제도화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헌법재판관은 법률이 실제로 적용되기 전에 입법자와 해석학적 대화를 수행하고, 법공동체의 자기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법관 개인에게 영웅적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공동체 전체가 사악한 법의 출현을 구조적으로 예방하는 제도적 지혜다.
24.
법치는 단지 법률에 대한 형식적 복종이 아니라, 법공동체가 끊임없이 정의의 의미를 해석하고 재해석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법관은 이 과정의 핵심 주체로서, 자기성찰과 대화와 판단의 책임을 진다. 헌법재판제도는 이러한 해석학적 과정을 제도화하고 예방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장치다. 사악한 법의 역사는 비극이지만, 그 비극으로부터 배우는 법공동체는 보다 성숙한 법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해석학적 법치가 약속하는 희망이다.
2026. 1. 22.
차동욱, 「위헌법률심사제도의 민주적 정당성에 관한 고찰: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의 헌법재판제도의 정당성」, 고려대학교 정부학연구소, 『정부학연구』 제12권 제2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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