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쏘시개 연작 - 20번
0.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몽롱하다. 몽롱(朦朧). 이 단어만큼이나 부드럽고 세련된 발음을 지닌 게 또 있을까. 오른쪽 뒷머리에 손을 갖다 대고 손톱을 세워 긁적인다. 두피의 가려움이 느껴질 때면 항상 하던 습관이다. 그래도 피가 나올 정도로 긁어선 안 된다. 아프기도 하고 비위생적이니까 말이다. 침대 위 찻장에 놓인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따뜻한 재즈의 향이 방을 감싼다. 더러운 밤꽃 냄새가 풍기는 이 헛간에선 먼 이국의 향취를 떠올리게 해주는 달콤한 음색(音色)만큼이나 정신건강에 도움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은은하게 비쳐오는 노란색 형광등만큼이나 샛노란 세상을 볼 때면, 평소엔 내기도 힘든 옅은 미소가 얼굴을 지배한다.
어째서 노란색일까. 하얀 형광등을 쬘 때면 과거의 힘겨운 일상이 떠오르곤 한다. 학교를 가나, 기차를 타나, 하다못해 집 근처의 낙원상점(樂園商店)을 갈 때 조차 모든 빛은 백색의 눈(雪)을 뿜어낸다. 각막을 뒤덮는 검은 강의 줄기를 밝혀주는 구원의 빛(目). 그것을 떠올려 주기에, 어쩌면 그런지도 모를 것이기에 나는 그것을 혐오한다. 자비와 구조는 나에게 어울리는 단어들이 아니다.
설산을 내리쬐는 저 먼 행성의 인자함은 끝을 모른 채로 ‘은총’을 연일 내린다. 모든 것을 지우고 싶었던 걸까. 말 없는 태양은 그렇게 묵묵히 분열을 지속한다. 햇빛을 쐴 때면 무한한 에너지를 느끼곤 한다. 어제도 해는 있었고 오늘도 있다. 내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생각’했고, 작금의 ‘나’ 역시 생각을 한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어떨지 의문이다. 모든 짐을 미래로 넘기는 것은 시간표를 작성해놓고 지키지 않는 것만큼이나 무책임한 일이다.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책무다. 해야 한다. 당위는 능력을 전제한다는 임마누엘 칸트의 격언이 나의 가슴을 밝혀준다. 너무 뜨거운 나머지 심장이 타버리는 듯한 고통이 산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몸속의 세포들의 울부짖음은 가히 짐승의 그것과 흡사했으니 ‘의무’를 빙자한 이러한 조용(沈默)한 지옥도의 풍경(諷經)을 애써 외면한다. 무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
1.
스웨덴의 공기를 마실 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한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이상하지 않은가. 이 작은 행성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침묵의 약속이라도 깬 듯, 오늘날의 국가는 다양한 공동체를 구성해 무에서 유를 창출해냈으니 말이다. 신기하고 재밌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눈을 올려 하늘을 바라보니 잿빛 구름 두 덩이가 눈에 띈다. 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띈’ 것일까. 생각컨대 그 녀석들이 나의 눈을 희롱(戲弄)해서 그렇다고 본다. 특이한 모양새였다. 여느 때의 광경과 달리 양의 털을 입은 소의 모습. 영어로 치면 cow보단 ox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강인한 검은색 들소 ‘바이슨’이 연상됐다. 한국의 누런 쇠(黃牛)와 달리 근육으로 무장한 전차(戰車)와 같은 모습에선 특유의 순박함이 보이질 않았다.
그 녀석의 눈을 통해 ‘갸륵한’ 정기에 흠뻑 빠지고 싶었으나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볼 수가 없었다. 눈을 감는다.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 방법을 강구한다. 다시 눈을 떠서 마저 보고자 했으나, 이미 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하거늘, 나는 아직 그 녀석의 고혹(蠱惑)함을 받아들일 상태가 아니었다.
2.
“나 학교 안갈래.”
“왜? 무슨 일 있어?”
“선생님이 차별하잖아.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건지. 주변에 있는 백인들이 놀려대는 것도 방치(放置)하고 난 도저히 이 모멸감을 못 견디겠어. 생각해보면 내가 왜 이 학교에 다녀야 하는 거야? 나는 경제학사 학위도 이미 가진 상태인데, 이 학교에서 한 학기를 다닌다 해서 내 스펙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없잖아. 돈도 들고 말이야. 이러다 더 우울해질 것만 같아. 안 나갈래.”
TV에선 오늘의 화제 뉴스가 나오고 있고, 부엌의 냄비에선 콩나물국의 냄새가 뚜껑을 뚫어 흘러 나오고 있다. 다들 눈앞에 놓인 밥공기에 못이라도 박았는지 고개를 들지 않고 묵묵히 식욕을 탐닉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이해라도 하려곤 하는지, 그저 고개만 내저으며 손사래를 친다.
“또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다 너를 위한 거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니.”
그놈의 ‘위한 것’ 타령은 언제쯤 끝나는 것일까. 애초에 고국을 떠나 이 먼 이국에 잠시 정착한 것도 모든 유산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 걸텐데. 어째서 나의 모친께선 그러한 깊은 뜻을 마주하지 않으시는 것인가. 한탄이 나올 때 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던 콩나물국 냄비가 하얀 수증기를 토해내고 있을 때쯤, 서둘러 그녀는 한 손은 뒷 허리에 댄 채로 달려가 밸브를 잠근다.
“에구머니나 또 태울뻔했네. 어쨌든 또 그런말 하면 혼날 줄 알아. 알겠니?”
아직도 내 옆의 ‘가족’은 묵묵히 밥을 쳐먹고 있었으니, 가히 짐승이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조지 오웰의 뭐시기 농장과 다른 게 있다면, 그의 작품 속 세계관은 메타포로 꾸며진 장식이 놓은 접시라는 것. 그리고 이 망할 집구석은 ‘말 그대로’ 동물농장인 것이다.
3.
배식이 끝난 저녁. 그는 아직도 식탁 위에 고개를 숙인 채 흐느낀다. 한번 흘린 눈물은 그칠지를 모르고 계속해서 흰 쌀밥을 물로 적셔가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밥에다 물을 말아 먹을 것이다. 적어도 정수기에서나 퍼먹는 냉수와 달리 눈물은 짭조름한 맛이 있으니, 반찬 없이 먹을 만 할지 모르겠다. 콩나물국이 있던 가스레인지엔 텅 빈 검은 후라이팬 만이 놓여있었다. 이곳의 밤은 고국의 그것과 달랐으니, 이른바 해가 빨리 져 그의 따스한 은총을 받아 낼 시간이 적어졌다는 것을 뜻했다. 허기진 배는 어린애 마냥 반찬투정을 하며 자신을 기름진 것으로 유린해줄 것을 청한다. 마음껏 위장을 휘젓는 짐승들의 타액에 점철돼 위액을 뿜애내고 싶어 하는 피식자의 본능. 마치 한 마리의 마조히스트를 쳐다보는 기분이다.
주인을 닮는 것인가. 아니면 이것도 유전의 영향인 걸까. 전자라면 ‘기특한 내새끼’겠지만 후자면 ‘망할 놈의 개새끼’가 될 것이다. TV에선 아직도 날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실 저건 TV도 아니다. 그냥 화면만 TV일 뿐, 그 내용은 지역 방송사에서 송출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스마트폰과 연동된 녹화장면에 불과했다. 눈앞에 힌트가 놓였는데도 어째선지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먼지가 쌓인 가구, 검은 스모그로 더럽혀진 표창장과 소파. 가죽은 이미 찢겨진 지 오래인 파란색 상형 의자. 그리고 떠나간 이를 기리는 제단.
이렇게 식탁에 앉아 「고독한 미식가」라도 찍을 줄 알았다면, 있을 때 잘해줄 걸 그랬다. 후회는 뒤늦게 엄습해오고 죄의식의 망령이 목을 죄여 온다. 숨이 막혀올 때쯤, 주머니 속에 쳐박아둔 벤토린을 꺼내 서둘러 목구멍에 뿌린다. 씨익 씨익. 미약한 스테로이드 성분이 기관지를 지나가 폐를 건너 한 바퀴 돌고 나올 때 비로소 녀석의 손이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소를 들이마신다. 지긋하게 오는 두통과 약효로 인해 발병한 심근박동이 나를 다시 눈 뜨게 만든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꿈이자 평소와 다름없는 악몽이길 빌었다. 모든 것이 그저 한순간의 연극에 지나지 않기를 고대한 것이다. 귓바퀴에 얼음이 송골송골 맺을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다. 어느새 죽이 된 채 나와 눈이 마주친 물밥이 옅은 미소를 띤다.
4.
“이 학교 도서관은 정말 크다니까. 선생들이 개같은 것만 빼곤 참 좋은데 말이야.”
국립대학교의 특성상, 도서관의 규모는 한국에서 경험했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피부색의 종류가 기존의 RGB로는 파레트를 채우기에 부족하다는 정도랄까? 웅성거리는 백색소음을 지나 L열로 몸을 이끈다. 나의 키도 작은 편이 아닌데, 이곳에 있는 책장은 그것의 3배에 이르렀다. 상상이 안 간다면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 매장을 떠올려 볼 것을 권한다. 끝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뻗은 소나무의 숲을 떠올려도 좋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나무로 빚은 책장이니 말이다. 아카시아향과 갓 구운 책의 냄새. 거기에 온갖 인종들의 각양각색의 체취가 식욕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리처드 포스너의 일대기를 그린 무명작가의 책을 꺼낸다. 크기는 A2정도가 됐으며 쪽 수는 360쪽에 달하는 듯 했다. 그림이라곤 겉표지를 장식한 연방 대법관의 뒷모습뿐이었지만 충분히 읽어볼 만해 보였다.
5.
주머니에 돈이 있었나. 도서관이지만 서점의 역할도 겸했던 이 공간에선 계산대의 존재가 전혀 이상하지 않은 듯 보였다. 대출코너에 놓인 바코드 기계와 달리, 결제코너에 놓은 그것은 먼지도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양손에 힘겹게 든 책을 조심히 내려놓는다. 쿵. 바코드를 찍으려 이리저리 책을 움직이게 하는 모습에서 흡사 동물원 조련사가 물개를 타일르는 장면이 연상됐으니, 그가 가는 곳은 전부 동물농장이 되는 듯 싶었다. 겨우 바코드를 인식해 화면에 뜬 결제금액을 가지고 있던 노란 체크카드로 긁는다. 찍. 생각보다 비싸진 않았다. 평소에 구매해 오던 책들과 가격이 다를 바 없었으니 말이다. 뒤에서 기다리는 ‘학생’의 울부짖음이 들려올 때 쯤 자리를 떠 걸음을 재촉한다.
“이곳에 당신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당신이 보고 싶어.”
과거의 ‘나’가 지금 내 앞에 있었다면, 다시 한번 말려보고 싶었다.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 말이다. 뒤늦은 후회는 수많은 인파가 내려오던 에스컬레이터로 시선이 옮겨질 때 자연스레 증발했다. 아직 귓바퀴엔 얼음이 맺히지 않은 걸 보아 시간이 있어 보였다. 5kg이나 될 듯한 ‘착한’ 아령을 양손에 든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주변의 사람들이 회빛의 먼지로 변할 때 두꺼운 철문이 열려 비로소 통로를 지날 수 있었다. 쇠문이 닫히며 세상이 멈춘다. 고요해진 그 날 밤의 기억은 ‘나’에겐 그렇게 죽어버렸다.
6.
“다시 한번 생각해봐.”
“아냐 이미 결정한 거야. 나는 안나갈꺼라고. 그 망할 것의 학교 따윈.”
“알았으니 진정해. 그 칼 좀 내려놓고 말이야. 임마.”
사이렌 소리가 온 지천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뒷산에서 디스 한갑을 뒷주머니에 넣어둔 호랑이도 조용히 가로등에 숨어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공통분모가 되어 강렬한 섹스를 즐기고 있었다. 한손에 든 확성기로 ‘이방인’과 ‘대화’하는 경찰 권력의 모습에선 그를 향한 욕망의 눈초리가 자외선(紫外線)마냥 계속 내리쬐고 있었다. 칼을 자신의 목에다 겨눈 그 자에겐 더이상 그것을 막아줄 오존층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인질극도 아니었다. 사라진다 해도 그자 한명 뿐이었다. 다음날 헤드 라인을 장식할 부고란엔 이미 유명인의 이름 석 자가 게시되기로 약속되었으니, 그야말로 잊혀 질 죽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배 한 갑을 다 태운 금수는 어느새 하얀 재가 되어 사라진 자신의 검은 줄무늬를 희끗하게 쳐다본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놈은 고개를 돌려 산으로 향한다. 두발로 걷는 것보단 네발로 기는 것이 더 나은 모양이었는지 이내 사륜구동으로 전환한 SUV가 되어 힘차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만약 현장에 있던 그가 이 녀석을 보았다면 어떤 걸 떠올렸을까. 과거 스웨덴에서 본 두 바이슨이 떠올렸을까?
담배 연기가 자욱한 주택 단지는 어느새 공장의 스모그와 결합돼 찐득한 회빛 콘크리트의 장면을 현출(現出)하기에 이르렀다. 숨쉬기가 매캐해진 그 자. 다시 한번 주머니에 넣어둔 벤토린을 꺼내야만 했던 것인가. 오른쪽 손에 든 단도를 계속 목에다 겨눈 채, 왼손을 주머니에 가져다 놓아 본다. 텅빈 플라스틱의 무게감이 느껴질 때쯤 경쾌한 철분의 향취가 두뇌를 파고들었다. 탕.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은 물밥처럼 질척여진다. 눈에서는 눈물이, 코에서는 콧물이, 그리고 따스한 복부에선 핏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동시적으로 나타난 3색이 회색의 세상을 유린(蹂躪)하기 시작할 때, 귓바퀴에 드디어 얼음이 맺히기 시작했다. 송골송골. 눈을 질끔 감아야 한다. 지금이 기회야. 낯선 이의 손이 강하게 내 얼굴을 두 번 내리친다. 찰싹. 퍽. 온갖 물들이 벽을 더럽혀질 때, 고통이 잦아들었음을 감지했다. 아니 사라졌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 싶었다. 나는 눈을 뜬다.
7.
“학교에 안 갈 거야.”
“그래. 그렇게 해. 너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거야.”
두 자매는 양옆에서 그를 지긋이 바라보며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은지,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어째서 중요한지 말이다. 어머니는 그저 묵묵하게 그들의 대화를 관망했다. 가스레인지 근처에서 나오던 하얀 수증기도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들의 대화에 집중할 때, 나는 괜한 심통을 부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도 어리석었단 말인가. 두 손을 머리 양쪽에 옴폭 패인 언덕에 갖다 대 속절없는 자책을 시작한다. 커져 가는 진공청소기의 소리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고주파의 백색소음을 선사하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오페라의 막을 암시하듯, 눈물을 커져가고 몸의 무게는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자기혐오가 그 끝을 도저히 알 수 없을 때, 그의 울부짖음이 멈춘다. 대지는 숨을 죽였고 하늘은 팔짱을 낀 채, 유리창을 통해 몰래 쳐다본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 미안해. 모두에게. 나는 도저히 못 견디겠어. 나를 용서해줘.”
8.
“그거 아세요?”
10살로 보이는 어린 꼬마애가 나이든 노신사에게 정중히 묻는다.
“무엇이 말입니까?”
기대승에 답한 조선의 한 위대한 유학자처럼 그는 공손히 답문을 올린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래요.”
“아. 그것 말입니까. 저도 들은 바 있습니다. 굉장히 괜찮은 표현이죠. 저 역시 그러한 경험을 숱하게 해봤답니다.”
“정말인가요? 어떤 기분인지 저에게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도 알고 싶습니다.”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표정에선 어떠한 근심도 걱정도 볼 수 없었다. 노신사는 지긋하게 깊은 미소를 띄우며 설명을 이어간다.
하늘의 잿빛 구름이 사라지고 어느새 밝은 달빛이 그 둘을 감싸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크레인을 뒤로 당겨 배우들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할 때, 감독의 귓가엔 얼음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2020.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