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그리고 피고[인]
괜스레 뒤척이며 잠을 설쳤던 새벽을 지나 불현듯 눈을 뜬 10월 15일의 아침은, 사실 평소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밤새 묵은 공기를 반듯하게 잘라내며 들어오는 햇살이 눈꺼풀 위를 찔렀다. 살짝 늦게 일어난 모양이다.
첫 전투를 앞에 둔 신병의 심정이 이럴까. 설령 그것이 늘 있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처음은 누구나 마음이 떨리는 법이다. 미래의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에게 법정은 전장과도 같겠지. 내가 느끼는 감상도 그러한 종류였다. 일반 재판은 방청한 경험이 제법 있었지만 국민참여재판은 처음이었고,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미지에 대해 내가 일말의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리라.
높게 쌓은 서류들을 옆에 둔 채 묵묵히 그것들을 읽어 나가는 검사, 대본을 그대로 읽어 가며 나긋하게 말하는 변호사, 똑같은 톤으로 똑같은 판결문을 되뇌는 판사. 법정 하면 생각나는 그 광경과는 얼마나 다를까. 나는 오늘 무엇을 보게 될까. ‘보잘것없는’ 일반 시민의 상식으로 그분들의 판결을 ‘감히’ 갈음하겠다는 배심원제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다. 나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끼며 버스에 올랐다.
지방법원 316호에서는 오전 11시에 국민참여재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여 넉넉히 여유를 두고 도착했는데 웬걸,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는데도 재판이 시작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재판이 시작되기 5분 전쯤에 직원의 안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슬슬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싶을 쯤이 되어서야 연식 있는 직원 분이 방에서 나와 말했다. “지금은 배심원 선정 과정이니까 2시쯤에 다시 오시면 됩니다.” 아니, 고작 그 한 마디를 준비하는 데 30분이 넘게 걸렸던 건가.
알아보니 11시라는 것은 재판의 시작 시간을 게시했던 것이 아니었다. 배심원을 뽑는 절차를 11시에 시작한다는 의미였다. 이런 애매모호한 표현을 처음부터 지양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온 스스로를 탓하는 것 외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숨을 쉬며 법원을 나와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다가 들어가면 재판을 조금은 더 잘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형사법 기록형 책을 펼쳤다.
오늘도 책에서는 깁갑동 씨가 피고인으로 나온다. 그는 늘 나의 변론을 구하고 있다. 때로는 무전취식의 사기죄로, 언제는 혀를 차게 하는 폭행죄로, 또 다른 때에는 업무상 횡령과 배임죄로 기소되는 그를 구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물론 결과는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늘 같은 곳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들은 예비 변호사들이니까. 검찰은 무능하기 짝이 없으며 변호인들은 상대가 가진 온갖 허점을 마음껏 난도질하며 손쉽게 재판을 이겨 버리곤 한다. 무죄판결. 공소기각. 면소판결.
현실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간 기울였던 노력이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조금은 잘못된 환상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수한 문제 속에서 나오는 검사와 변호사와 판사의 정형화된 모습처럼, 마치 경제학에서 현실에 존재할 리 없는 ‘합리적인’ 소비자를 당연한 존재라 간주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처럼, 쟁점만 파악하면 족하고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서류는 쳐다보지도 않으며 의심스러운 발언은 무시해 버려도 되는 그런 ‘이성적인’ 법정의 풍경을 이때의 나는 그리고 있었으니까.
오후 2시. 비로소 방청이 허락되었고 나는 316호로 입실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제일 먼저 느꼈던 심정은, 우습게도 시야가 확 트인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방청해 왔던 단독부나 형사부에 비하면 넓이부터가 다르다. 높게 쌓인 검찰 측 서류가 주는 피로감이나 피고인들로 빽빽하게 가득 찬 방청석에서 오는 복작함이 없는 공간은, 형사재판이 열리는 법정과 고작 한 층 차이인데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첫인상을 남겼다.
허나 그것도 잠시, 법정 안을 찬찬히 눈에 담기 시작하자 맨 처음 가졌던 순수한 감상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검사석에 앉아 있는 두 명의 무표정한 검사. 딱딱하게 굳어 있는 피고인과 그를 다독이는 변호사. 진지한 태도로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배심원들. 그리고 정면의 빈자리 세 개. 그 모든 구성이 과거에 내가 봐 온 재판장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래, 이게 국민참여재판이구나.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법정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세 명의 재판관이 착석하고, 일어났던 사람들이 다시 앉는 가운데 오른쪽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국민참여재판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는 그림이 띄워졌다. 그것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시나리오를 짜 본다. 우선 검사의 공소사실을 시작으로 피고인의 공소사실의 인부를 거친 다음, 증거자료조사, 증인신문, 피고인신문 등을 차례대로 한 후에 마지막으로 판결을 내리면 끝이겠지.
하지만 여타의 재판과 달리 진행 속도는 느긋했다. 재판장은 친절하게 해당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소상히 설명해 주었고 검사도 거기에 부응하듯 부연을 덧붙여 주었다. 뭐랄까, 재판이 아니라 학교 같다고 해야 할까? 부정적인 의미로서 말한 것이 아니다. 국민참여재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반인들의 ‘상식’ 을 근간으로 하는 제도다. 하지만 법률적인 쟁점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안까지 모조리 상식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기에 전문가인 법조인들은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법률지식을 알려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소 안타까운 점이라면 훌륭한 교사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재판에 방청하러 온 이들은 나를 포함해서 단 두 명에 불과했다. 평일임을 감안해야겠지만 씁쓸한 풍경이었다. 사전 한구석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는 법률 용어를 남발하는 보통의 재판이라면 모를까,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게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는 국민참여재판의 현 주소조차 이러하다. 근래 특히 회자되고 있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무언으로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법이 내재하는 태생적인 낯섦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검사의 공소장 낭독이 재판의 시작을 알렸다. 사건번호 20OO고합OOOO, 죄명은 교통사고특례법(치사). 죄명을 듣는 순간 활자로만 보던 ‘사’ 라는 글자가 가진 무게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김갑동이 죽고 죽이는 책 속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다는 사실이 제기된 순간 법정의 분위기는 더 이상 가벼울 수가 없었다. 준비 시간에 검사가 웃으며 과실범에 대해 설명을 한 것은 이때를 위한 포석이었을까.
31세의 피고인은 구기종목 운동 강사를 해 왔다고 한다. 변호인의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듣고 있던 그의 모습은 낯설지가 않았다. 면식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는 너무 ‘보통 사람’ 처럼 생겼다. 공소사실에 대해 피고인은 자신의 죄명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완강하게 거부한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소심하게 인정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 마치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무기대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자신을 범죄자라고 생각하고 쳐다보는 시선 속에서 압박감을 견뎌야만 하는 피고인에게 연민을 느끼는 나는 잘못된 것일까. 그를 무죄라고 생각할 증거는 아직 그 어디에도 없는데.
사건은 20OO. OO. OO. 19:25 경 지방에 있는 한 도로에서 발생했는데,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의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책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졸린 상태에서 술을 마시고 면허도 없이 비 오는 날에 과속으로 달리며 신호를 위반하고 초록색 신호등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친’ 사건이라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만, 문제는 당시 피해자가 4차선으로 된 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두운 밤에 반대 차선에서 건너오는 상황인데다 차량이 왕복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도로에서.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이유를 알 수도 없다. 앞을 못 본 피고인의 잘못인가, 무단횡단을 한 피해자의 잘못인가. 현실의 사건은 이토록 복잡했다.
본격적인 공방의 시작은 재판장이 증거조사를 명했을 때부터였다. 사진에 찍혀 있는 핏자국과 피해자의 모습, 그리고 현장에 하얗게 칠해진 락카의 모습이 비춰질 때쯤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쓰러지는 장면을 봐야 했던 피해자 딸의 오열이었다. 블랙박스 영상의 재생이 시작될 때에 이르러서는 재판 진행이 어려울 수준이 되었고, 재판장은 그녀에게 통곡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판사의 혈관에 차가운 피가 흐르고 있어서가 아니다. 재판에 임한 이상 아무리 피해자의 딸이라고 할지라도 증인의 지위가 아닌 한 방청객에 불과할 뿐이다. 꾸중을 들은 그녀가 억지로 꾸며 낸 침착한 목소리는 재판의 무게를 한층 무겁게 했다.
아무튼 이 사건에서 검사는 증거조사를 통해 줄기차게 한 가지만을 입증하고자 노력했다. 피고인이 전방주시의무를 태만히 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는 법에서 요구하는 ‘객관적 주의의무’ 중 운전자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소위 방어운전부터 시작해서 꼬리물기, 칼치기, 음주운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과속 등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절대 해선 안 되는 행동’ 이 바로 그 유형이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치사)가 성립하기 위해선 없어선 안 될 구성요건인 ‘업무상과실치사죄’ 의 핵심이기에, 검사는 배심원들 앞에서 논리적으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고자 열변을 토해냈다.
피고인이 운전 중에 자신의 의무를 태만히 하게 만들 수 있는 행동에는 무엇이 있는가. 검사는 첫 번째 대상으로 휴대전화 사용을 꼽았다. 그 근거로 피고인의 당시 휴대전화 통화기록이 증거로 제출되었다. 거기에는 피고인이 사건이 발생하기 30여분 전인 18:53에 전화통화를 한 기록이 적혀있고 이후 19:26에 119로 접수된 내역도 기재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검사는 그가 당시 30여분 동안 휴대전화를 사용해서 주의의무를 태만히 한 것은 아닌지를 추궁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사고 당시의 상황을 알 순 없지만, 검사는 “기록이 없다고 해서 피고인이 안 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 고 배심원들에게 주장했다.
솔직히 법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납득 가는 소리가 아니었지만, 일반인인 배심원들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린 모양이다. 분위기를 읽었음일까, 변호인이 급히 반격에 나섰다. “유죄입증의 책임은 검사가 져야 하며 그러한 입증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아무리 정황상 피고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가는 한이 있어도,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하여야 하는 형사법의 원칙도 강조하면서 배심원들의 생각을 환기시켰다. 뒤이어 변호인은 실제 피고인이 운전을 시작했을 때가 19:20 경이라고 밝혀 검사가 제시한 18:53 전화설을 일축했다.
검사는 다음 공격으로 피고인의 속도위반 가능성을 제시했다. 검사는 피고인이 당시 제한속도 70Km인 구간에서 평균속도 66~70.3Km에 달하는 속도로 차량을 움직였다고 주장한다. 물론 평균인 이상 실제론 66Km보다 더 낮은 속도로 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언급했으나, 바로 그 ‘평균’ 으로 인해 반드시 어느 구간에서만큼은 74Km 이상으로 달렸다고 보는 것이 ‘산술상’ 타당하다고 역으로 공격을 했다. 이 점에 대해선 일단은 변호인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전체를 구간별로 나누고, 이를 다시 각각의 평균값으로 계산했을 시, 실제 사고가 발생한 것과 밀접한 구간에선 평균속도가 66.9Km에 이른다는 것이라고 방어했다. 검찰이 또 한 방 맞은 셈이다.
이제 이야기는 블랙박스로 향하게 되었다. 재판의 핵심 증거물로 제출된 것이니만큼 가장 큰 논점거리였다. 원본 영상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차로 충격하는 장면까지 기록됐을 정도로 상세했는데, 어느 순간에 차에 치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전개가 급박했다. 피해자는 쿵 소리와 함께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하다고 보기는 힘들었는데 이는 해당 블랙박스의 화질이 워낙 나빴던 탓이었다. 피해자는 고사하고 전방 자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었기에 오죽하면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당시 헤드라이트를 켰나요?” 라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쟁점은 ‘과연 블랙박스의 눈이 피고인의 눈과 같았는지’ 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검사는 수정된 블랙박스 영상을 증거로 제출했다. 검사는 원본 블랙박스의 해상도를 조정해 실제 인간의 눈과 유사하다고 보이게끔 수정한 영상이라고 주장했고, 어디까지나 자료 자체의 동일성을 유지한 채 밝기만을 조정했다는 점에 대해 변호인도 일단 증거동의를 했다.
수정된 영상은 원본에 비해 확실히 가시성이 좋았다. 오른쪽에 있던 건물의 모습도 보였고, 반대 차선에서 오고 있는 물체가 시내버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피해자의 비극적인 마지막 모습도 자세하게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영상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검사의 논리는 블랙박스의 영상이 너무 저화질이기 때문에 밝기를 보정한 영상이 사건 당시 피고인이 보았던 시야와 유사하다는 주장이었는데, 거기에 대한 별도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수정 영상을 증거를 제시했으면 제일 증명해야 하는 부분임에도. 설령 진짜로 그렇다 한들, 원본 영상과 비교했을 때 피고인의 잘못이라는 검사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줄지도 의문이었다. 밝기를 높인 영상은 어두웠던 부분이 선명해진 만큼 밝았던 부분이 눈이 아플 정도로 뭉개졌다. 눈 나쁜 사람이 안경을 벗고 바라보는 세상처럼 가로등이 뿌옇게 번져 보일 정도였고, 영상이 매우 인위적임을 변호인도 지적했다.
이에 검사는 현장의 가로등을 언급하면서 피해자 딸의 증거 영상을 추가로 제출, 가로등의 광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때문에 블랙박스 영상이 어두울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다시 한 번 펼쳤는데, 변호사는 당시 가로등은 구간별로 띄엄띄엄 설치되었던 바, 피해자가 사망한 그 지점은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의 어두웠던 구간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렇게 어두웠다는 걸 피고인 본인도 알았다면 어째서 상향등을 킬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검사의 추궁이 방향을 조금 바꿨다. 돌아온 답변은 “상대편 차들에게 방해될까봐 안 켰습니다.” 였다. 그 말에 배심원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고, 누군가는 머리를 가만히 주억거렸다. 나는 미간을 설핏 찌푸린 쪽이었다. 아직 면허가 없는 나라서, 운전 중에 상대편 차가 켠 상향등을 마주한 적이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었을까. 그때까지 피고인 쪽으로 은근히 기울어 있던 마음이 조금 덜컥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죽는 것보다 중하겠느냐는 검사의 지적이 그때만큼은 맞는 말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피고인의 머리는 무거워져만 갔다.
오랜 시간의 증거조사가 끝나고 증인신문의 차례가 왔다. 사전에 양해를 구한 대로 변호인의 증인신문을 먼저 진행하기로 한 모양이다. 첫 번째 증인은 피고인의 아내였다. 아내의 등장에 피고인은 눈물을 흘렸다. 변호인이 입을 연다. 변호인은 피고인과 증인 모두 부모님을 일찍 잃은 상태라 그들이 사건 이후에도 제대로 된 가족의 위로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그들에게는 부양해야 하는 어린 자녀들이 있다는 점과 꾸준한 경제적 능력이 있다고 보기 힘든 점 등을 수입명세서를 제시하며 상기시켰다. 마지막으로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에 대한 재판장의 질문에 증인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피고인 또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신의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나로선 도저히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증인인 피해자의 딸이 등장하자 장내는 다시 한 번 술렁였다. 그녀는 증언을 하는 동안 피고인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흥분이 쉽사리 가지 않은 상태였기에 재판장은 감정을 최대한 조절해 줄 것을 계속 부탁했다. 증인은 피고인 측이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일 년여 동안 제대로 된 연락은 6번 정도에 그친 데다 변호인들 간의 형식적인 소통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또 최초의 피해배상액을 피고인 측에서 민형사를 합쳐서 2,000만원을 제시했다고 하나, 이후 증인이 종합보험에 대한 보상금을 언급을 하자 형사비용만을 3,000만원으로 상향시키는 등 진지한 모습으로 합의에 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장은 강하게 벌할 것을 요청한 증인을 조용히 돌려보내는 것으로 증인신문을 마무리 지었다.
다음은 피고인신문 차례였다. 심리 중에 검사와 변호인이 주고받았던 여러 증거와 증인신문을 합쳐 피고인에게 모든 것을 물어볼 단계다. 피고인은 오랜 시간의 공판과정 동안 많이 지쳐 있던 것이 역력해 보였다. 대답을 잘 하지도 못했고, 그마저도 자신감을 잃은 채 우두커니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일관되게 피해자를 못 봤다고 진술하며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변호인의 질문에도, 검사의 질문에도. 그것은 피고인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스스로의 결백을 간절히 외치는 몸부림.
마지막 단계, 최후진술에서 검사는 자동차운전자에게 있어 당연히 요구되는 의무인 전방주시의무태만을 강조하며 주/야간, 기상상황, 도로상황, 교통상황, 차량상태 등에 따라 업무상과실이 인정되는 판례들을 보여주며 배심원들을 설득했다. 판례들에서의 유사성을 제시하여 본 사안도 마찬가지로 유죄로 평결을 내려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검사는 피고인에 금고 1년을 구형했다.
변호인은 다른 전략으로 접근했다. 배심원이라는 지위가 가지고 있는 무게를 강조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인 만큼 침착하게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검사가 제시한 판례들의 유사성만으로는 개별 사례가 보유한 특수성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을 보이며 피해자의 무단횡단을 예측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에 변호인은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고, 설령 유죄가 나온다 하더라도 벌금으로 선처해주길 간곡히 부탁했다.
피고인은 그 모든 말들을 그저 고개 숙인 채 들었을 뿐이다. 모든 절차가 끝났다. 남은 것은 한 시간 뒤에 있을 판결 선고뿐이었다.
어느새 시계는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과연 배심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방청객이 아닌 배심원으로 참석했으면 어땠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피고인과 그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저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법을 공부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무죄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형사소송법 325조에 따르면 범죄의 증명이 충분치 아니한 이상 무죄판결을 해야 한다. 물론 이때의 증명은 앞서 변호인이 언급한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 엄격한 수준을 요한다. 하지만 배심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피고인의 고통보다 피해자 가족의 눈물에 더 영향을 받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야 검사의 논변이 허술하게 보일지 몰라도 몇몇 배심원들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온다 한들, 나는 사건의 관계자도 아니고 배심원조차 아닌 일개 방청객에 불과하다. ‘법리적으론 무죄가 맞는 것 같아. 하지만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 좀 더 증거를 봐야 돼.’ 어쩌면 이렇게 결과에 대해 고민하는 일 자체가 위선일지 모른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 라는 책이 생각났다. 나는 책 속에만 매몰된 채 실제 그 죄의 무게를 짊어질 생각은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진심으로 재판을 대하고 있었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본다. 이 재판은 내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는지.
변호인도 가 버렸는지 홀로 앉아 있는 피고인의 모습이 유독 쓸쓸했다. ‘판결 선고’라고 적힌 대형 스크린은 뭐가 그리 잘났는지 뻔뻔하게 서 있다. 이윽고 배심원들의 결정이 내려졌다. 유죄는 3명, 무죄는 4명. 아뿔싸, 이러면 정말 유죄가 나올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재판장은 배심원들의 견해에 구속되지는 않으나, 그래도 유죄가 세 명이 나온 이상 고민이 될 것이 아닌가.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이 고조되어 가던 찰나 드디어 재판장의 입이 열렸다. “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내 피고인의 아내의 입에서 환호 섞인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재판장은 피고인의 무죄판결로 인해 피해자들의 비난 가능성을 스스로 감내해야만 한다면서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피고인은 마지막까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그의 아내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길었던 재판은 마무리되었다. 기분 탓이었을까. 검사들의 표정도 배심원들의 표정도 저마다 달랐지만 피고인을 차갑게 노려보는 사람은 없었다.
올 때와 다를 바 없는 길이었지만 집으로 가는 버스는 유독 멀게만 느껴졌다. 장시간의 방청으로 몸이 피곤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무죄 판결에서 희열을 느껴서 힘이 빠진 건지 지금으로서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점 하나는 그날의 방청이 나에게 강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무미건조하게 논지를 전개하며 깁갑동을 구하면 그만인 책 속과는 다른, 상상 이상으로 너무 달랐던 현실. 법리적으로 피고인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어 보였던 법정 공방의 끝은 4대 3, 아슬아슬한 승리로 끝났지 않았는가. 국민참여재판의 맹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판사는 물론 일반인 배심원의 법 감정을 설득하기 위한 변호인의 필사적인 모습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는 의미이지.
마지막 선고만을 앞두고 판결을 기다리면서 법원 직원 분과 나눴던 질문이 생각난다. 황야에 버려진 것처럼 홀로 우두커니 있는 피고인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던 차에 그가 말을 걸었다. “장시간 앉아서 적으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변호사 준비하시나 봐요? 로스쿨 가시게요?”
평소라면 부끄러워서, 혹은 쑥스러워서 망설였을 텐데 그때만큼은 망설임이 생기지 않았다.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다시금 피고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지금은 비어 있는 피고인의 옆자리를 보면서. " !" 짧고 굵게, 이견의 여지없이, 단호하게. 검사가 유죄를, 변호사가 무죄를, 배심원이 유죄 혹은 무죄를, 판사가 주문을 소리 높여 선언하듯이. 내가 장장 여섯 시간에 걸쳐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감상이 하나로 모여 나 자신에 대한 판결을 선고했다.
언젠가 저 자리에 서기 위해서.
2018.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