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備忘錄), 기억을 위한 단초

[황홀, 그리고 영탄] 제3아해

by 소는영




광장, SPLICER.png 가면과 가면, 그리고 '가면'



Audio_Log_CIVIL_No.48.


차분히 준비하자. 서둘러서 좋은 건 없으니까. 결행일까지 가면(假面)을 쓴다면 안 들킬 수 있을 거야. 제목은 뭘로 하는 게 좋을까. 「그날이 오면」? (웅성거리는 소리)(시끄럽게 말싸움하는 소리) 아니야. 식상해. 뭔가 신박한 제목이 필요해. 아무도 생각못한, 그런 '참신'한 것으로 말야.


(옆에서 누군가 소근거리며)디데이(D-DAY)? 카운트다운(Countdown)? 유치하군. 음.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테니까.




Audio_Log_CIVIL_No.4.


지상. 아마 4월이 시작한 어느 봄날로 기억해.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가웠지. 전혀 봄 같지 않았어. 포근하고 따스한 어미의 자궁. 난 그것을 언제나 원했었거든. 겨울. 맞아. 겨울이야. 12월의 엿같은 추위가 몸을 훑어 지나갔었어. 이 망할 겨울. 난 그게 정말 싫어. 안 좋은 기억도 별로 없는거 같은데 말이야. 그래도 싫은걸 어떻게 해. 별 수 없지 않겠어? 날씨 얘기는 이 정도만 하도록 하자.


요즘엔 유튜브에 빠져 지내고 있어. 오해는 말아. 난 누구들처럼 '역겨운' 연예인 동영상이나 찾아다니는 성적(性的) 하이에나들과는 다르니까. 30초 광고 보는 것도 지겨워서 프리미엄 월정액까지 끊은 사람이다 이런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몇 안 되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해. 어쨌든 나는 유튜브를 봤었어. 아니 보는 게 아니라 듣는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검색하는 거나 ‘보는 거나’ 전부 음악이니까 말이야. 내가 주로 검색하는 건 Lofi·jazz·White noise·Train. 차분한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언제부터인가는 거의 고정 검색어가 되어버렸지.


이봐. 오디오로그. 말이 나와서 그런데 내 얘기를 좀 더 들어봐줄래? 오늘은 얘기를 좀 하고 싶어.

Hey. Mr.Audio Log. Speaking of which, would you mind hearing a little more of what I have to say? I feel like talking today.




독서실책상과 명상.png 눈을 감으면, 세상이 모두 내 것인 것마냥 자유로운 순간이 온다.



Audio_Log_CIVIL_No.5.


백색소음. 뭐라고 생각해? 그냥 소음 중의 일부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일단 소음은 맞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noise니까. 그런데 우리가 주변에서 쉽사리 접하는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소음하고는 달라. 전자가 의도적으로 탐닉하고자 접근한 대상이라면 후자는 그 반대니까 말이야. 생활소음으로 이해하면 편할 거야. 층간소음 같은 거 겪으면 살인 충동을 느낀다고 하지? 그래. 그런 의미에서의 소음인거야. 여하튼 몇몇 ‘소음’은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찾는다고 하더라고. 단순한 ‘카더라’ 얘기가 아니야.


내가 구독하고 즐겨보는 한 Lofi 채널만 해도 매일 순 접속자 수가 5만 명이 넘어. 전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채널인 셈이지. 아이러니하게도 보통은 켜놓고 자기 할 일만 하는데 말이야. 생각해보면 신기하지 않아? 어떤 작업을 하는데 음악을 틀어놓고 한다는 거 말이야. 집중이 잘 안될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걸까? 적어도 jazz나 lofi는 듣기 ‘좋은’ 음악이라도 나오지, 백색소음은 말그대로 무전 단파나 다름없거든. 그런데도 이상하게 들을 때마다 다채롭게 느껴진단 말이야. 특정 주파수 대역의 음이 규칙적으로 나열된 일련의 배열 상태. 거기서 오는 평온함이 좋아서 듣는 걸까? 일리 있어 보이긴 해. 쿵쿵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은 이유는 다음에 나타날 소음이 어떤 방향으로 튀어오를 지 모르기 때문일 테니까 말이야. 만약 일상소음도 그 나름대로 규칙성을 지닌다면 분명 살인 충동같은 ‘흉흉’한 감정도 안 나타나지 않을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자. 어차피 이건 나중에도 얘기할 내용일 테니까 말이야. 검색어 중에 train이 있어서 이게 뭔가 싶을 수 있는데, 이것도 백색소음이나 다름없어. 말 그대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거야. 철컹철컹. 덜컹덜컹. 하얀 설산을 오르는 노쇠한 검은 소의 울음소리. 미치도록 차가운 거친 철의 냄새. 매캐한 담배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철인의 이산화탄소. 이 모든 요소를 다 갖춘, 움직이는 규칙기계. 너무 멋지지 않아? 나만 그런가. 아니야. 상상력을 잘 발휘해봐 친구야. 아 그렇다고 너가 상상력이 전무한 한량이라는 뜻은 아니니 괜히 기분 나빠하진 마렴.


어쨌든 나는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전자파 없인 일상생활이 어렵게 된 지경이야. 중독일까. 뭐 적어도 알코올이나 스모크보다는 훨씬 ‘건강’해보이긴 하는구나. 아마도 말이지. 그렇겠지?




Audio_Log_CIVIL_No.5.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창작이잖아. 기본적으로는 말이야.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점에서 위대한 탄생이요, 대단한 창발(創發)이 아닐 수 없어. 나는 어렸을 땐 책이 정말 싫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독서’겠지. 교양만화 같은 건 정말 즐겨봤으니 말이야. 그것도 책이긴 하잖아. 내가 싫은 ‘책’은 전문서적이야.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들로 점철된, 천한 이들은 발도 못대는 신성한 사당(祠堂)같은 새끼. 내 국어점수가 형편없던 것엔 이 못난 두뇌의 기본등급이 낮은 것으론 불충분했어. 내 습관이 그러한 결과를 빚어낸 거지. 깊이 있는 사고랑은 거리가 멀었거든. 난 말이야. 외우고 적용하는 기계적 학습에는 그래도 자신이 있었는데 스스로 ‘사고’하는 법은 배우질 못했어. 신기한 건 나 말고 다른 아이들은 그러한 능력을 갖췄었다는 거야. 오히려 걔네들은 나의 수학·영어 실력(?)을 부러워했지.


지상에 있었을 때, 나는 국어를 잘하는 애들이 너무나 부러웠는데 말이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니 지금 다시 돌아간다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거 같아. 독서는 쉬운게 아니거든. 일단 머리를 써야 해. 이것만 해도 벌써부터 짜증이 밀려오잖아? 그리고 내용의 전개 방식에 대해서 스스로 그물을 짜야 하기도 해. 물고기 잡는 어부처럼 그곳에선 글쓴이의 생각을 낚아야 하니까 말이야. 배경 지식은 또 어떻고? 이 망할 것의 국어시험은 ‘전 범위’였어. 아니 애초에 범위도 없지. 교과서랑 다르게 말이야. 전국 시험은 그야말로 독해력을 평가하는 날이었지. 외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거든. 과학 얘기 2번만 나와봐. 미치는 거지. 너가 길을 잘 가고 있는데 누가 멋대로 붙잡아서 도에 대해서 30분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봐. 짜증 안나겠니. 그런 기분이었어. 나는 과학을 별로 안 좋아했거든. 관심이 없으니까.


내가 문과를 선택한 이유엔 과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애처로운 판단 과정이 있었어. 왜 애처로운지는 말 안해도 알거야. 젠장.



Audio_Log_CIVIL_No.6.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어. 독서도 어느 정도 습관화됐고 전문서적을 멀리하는 버릇도 나아졌거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누군가는 축복이라 볼지 모르겠는데 꼭 그런 것 만은 아닌 거 같아. 바로 지적 허영심이 생겼다는 거야.


앞에서 말한 비유 기억나? 천한 것들을 막는 사당. 맞아.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어느새 나만의 아르케를 구축하기 위함으로 바뀐 것을 느낀 건 며칠 되지 않았어. 도서구역에 꽂힌 여러 개의 전문서적들을 볼 때면, 입이 씰룩거리는 걸 멈출 수 없더라고. 솔직히 그렇잖아. 남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술술 읽어 머릿속에 넣는다고 해봐. 얼마나 경쟁력이 있겠냐 이 말이야. 상상도 못하지. 암. 한권 한권 넣을 때마다 내 머릿 속의 소우주는 점점 커지는걸 느껴. 지식의 기쁨. 그래 맞아. 그 망할 놈의 ‘전 범위’는 사실이었어.


모든 영역의 독서는 사실 구분되어선 안되는 거였어. 사회/인문·과학·정치·법학·예술은 나뉘어진게 아니다 그런 말이야. 전부 이어져 있어. 오롯이 한 분야의 책만을 읽는 것도 어리석지만 애초에 그것으로 모든 걸 통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만큼이나 멍청한 것도 없을 거야. 맞아. ‘전 범위’ 그 세글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아. 난 너무 무식했어. 그래서 용감했던 거야. 물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무식’의 상태는 지속될거란 걸 알아. 그래도 양적인 개념이잖아? 이전보단 ‘덜’ 무식해졌다는거 말이야.




Audio_Log_CIVIL_No.52.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들에게, 반드시, 보여줄 것이 있으니까.

The time is approaching. Because I have something I must, absolutely, show them.


이봐. 일어나. 슬슬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시끄러운 술집에서 TV소리가 흘러나온다)

Hey. Wake up. It's starting to get dark. (The sound of a TV drifts in from a loud bar)


소멸.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상태. 우리는 관심종자다. 관심을 먹고 싶어 하는 아귀이자 특이한 바이러스다. 스스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그래서 우리는 ‘위험’한 종자다. "무제는, 오늘 사라진다."

(A crowd's distant shouts are heard) Annihilation. A state that never existed in the first place. We are attention seekers. We are hungry ghosts, Pretas, and a peculiar virus that craves attention. We are seeds of 'danger,' because we refuse to reveal ourselves willingly. "Mu-Jae disappears today."

Wait.png 그날이 온다.




Audio_Log_CIVIL_No.7.


독서를 하다 보면 느끼는 건데, 정말 남는 장사긴 해. 신체적 능력을 요하는 여러 직업을 떠올려 보자고. 운동선수는 어때? 소위 말하는 리즈 시절을 지난 이후부턴 어떤 걸 할 수 있지? 이전에 했던 기록을 갱신할 수나 있을까? 그/그녀를 지탱해주던 콘크리트의 버팀목도 시간이 갈수록 녹스는데 가당치도 않지.


신체란 그런 거야. 이건 나만의 독단이 아니라, 여러 시간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도서관이 설득해온 결론이야. 모든 생명체-히드라는 빼고-는 늙어. 늙으면 필연적으로 신체 능력이 쇠약해지게 돼. 그러면 당연히 그 바닥에 기둥을 쌓은 건물도 흔들리지 않겠어?


하지만 말이야. 정신적 능력은 달라. 뇌에는 여러 성질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가소성(可塑性) 개념을 떠올려보자고.


우리의 두뇌는 약 10억 권 분량의 책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다고 해. 장난 없지. 10억 권이라니.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으론 턱없이 모자르고, 아마도 생각건대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정도나 되는 분량의 독서를 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여. 이 작은 두뇌가 정말로 ‘우주’에 비견할 만한 능력을 지녔다는게 참으로 놀라워. 게다가 뺐다 넣었다 뺐다 넣었다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신기하고 말이야. 이 뇌는 하면 할수록, 그러니까 다룰수록 더 대단해진단 말이야.


얘는 녹도 안 슬어. 아 물론 재수없게 알츠하이머라도 걸리면 답이 없지만. 그런데 이 독서가 또 치매에 도움 된단 말이지. 정말 최고 아냐?





Audio_Log_CIVIL_No.8.


어떻게 이런 귀한 행위를 사람들은 안 하는 걸까.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다 그럴만한 핑계는 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변명에 불과하다고 봐. 시간이 없는 사람치고 유흥생활 안하는 놈 있으면 데려와 봐. 돈은 없으면서 쓸데 없는 로또나 술·담배에다 탕진하는 건 또 어떻고? 어리석기 짝이 없지. 아 괜히 오해하진 말아줘. 나는 사는 걸 문제 삼지 않았어.


「책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살 수가 없거든」이라고 지껄이면서 정도를 넘어서는 술·담배같은 기호식품에 탐닉하기 바쁜 돼지들의 행태를 지적할 뿐이야. 내 태도가 건방지다고 볼 수도 있어. 그 점은 인정해. 해보기 전엔 모르니까 말이야. 그런데 말이지. 난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딴 걸로 의지하고 싶진 않아. 너무 추하잖아. 내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지적도 들어왔어. 글쎄. 그런가.




Audio_Log_CIVIL_No.9.


지상에 있었던, 아우슈비츠의 역사를 살펴보면(역사라는 표현은 긍·부정의 뉘앙스를 내포하지 않은 중립적인 단어니까 괜한 오해는 하진 말고)나치독일에 의해 만들어진 유대인 학살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는 그야말로 살인공장 그 자체였다고 해.


매일 건물에서 나오는 검은색 연기는 오늘날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무심한 흑운(黑雲)따위랑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한탄이었어. 수많은 이들이 단지 그 시간대에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원치 않은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으니까. 감이 잘 안잡힐 것 같아 보이니까 좀 더 부연설명을 해줄게. 그 당시 COVID19 초기, 사망한 사람의 수는 약 2만여 명에 이른다고 해.


그런데 아우슈비츠에서 죽임을 당한 유대인의 수는 수백만 명에 이르러. 감이 잡히지 어느 정도로 비극적인지? 그런 곳은 ‘일상’이라고 부를 만한 낭만 따윈 없었어. 여기서의 일상 개념은 오늘날의 지루한 반복생활로 보도록 하자고. 매일 매일 옆에 있던 현존재(現存在)가 사라지는데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이나 하겠냐고. 한두 명만 죽어도 애도하고 슬퍼하는게 작금의 규칙인데 말이야.


그런 상황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어떤 심리적 상태에 놓일 것 같아? 만약 내가 그랬다면,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더 이상 그 본래의 무게를 못느낄 것 같아. 마치 중력이 없는 달에서 몸무게를 재는 기분이랄까. 맞아. 나는 그런 기분이 들어. 다른게 있다면 나의 ‘탐지기’는 현재를 아우슈비츠로 본다는 것이지. 사람 대신 수 많은 ‘나 자신’들이 갈려 나가고 있다는 것으로 말이지.



환상.png 눈을 감으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나'가 태어난다.



Audio_Log_CIVIL_No.10.


요즘엔 하도 많은 뉴스들을 접하다보니 원치 않은 소식도 듣게 되더라고.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나는 생명의 유한함을 다루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표정을 더 이상 변하게 만들 수 없게 됐어. 혐오스러운 대상을 보았을 때 자연스레 바뀌는 이목구비의 모양새라든가, 수치스러운 상황에 놓였을 때 어찌할 줄 몰라하는 어린아이의 모습. 그런 것과 유사한 감정이 약해진 기분이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볼 때면, 얼마나 속이 뒤틀렸는지 위선이라고까지 생각한다니까?


사실 내가 접한 죽음에 관한 뉴스는 앞서 언급한 참극에 비춰볼 때 희극 수준이지. 하지만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만 했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을 깊이 있게 애도함으로써 그/그녀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했었단 말이야.


아우슈비츠의 사태는 그런 점에서 다중세계에서의 동시다발적 분서갱유(焚書坑儒)와 다름없다고 볼 수 있어. 수많은 도서관이 불쏘시개가 되어 그 생을 마감해야만 했으니 말이야. 너무 많은 수라 그런지, 우린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할 수도 없어. 모두를 위한 추모도 불가능하고 말이야. 7,000,000이라는 숫자는 정말 잔인해. 규모 면에서 그렇다는 뜻이 아니야. 저 숫자는 개개인의 인간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덧셈의 비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우리가 인간이라고 불리우는 지적 생명체는 내재적 특성상 여러 요소를 함축하고 있어.


그런데 그런 소중한 지표들을 모두 깡그리 무시한 채 「1」로 수렴시켜 버리니 비극이 아닐 수 있겠냐고. 숫자는 잔인해. 차라리 앞서 언급한 10억 권의 책으로라도 치환해서 그들의 죽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단위만 커져도 단언컨대 그 중대함을 경외롭게 쳐다볼걸? “7,000,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보다는 “70,000,000,000,000,000권의 책이 소멸했습니다”가 더 크게 와닿을 테니 말이야. 사실 그냥 숫자를 안 쓰는게 제일 좋을 텐데(쉿. 그런 걸 주장했다간 아나키스트라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 조용히 입이나 닥치고 있자고)




Audio_Log_CIVIL_No.13.


새벽이 오고 있다. 나는 지금 굉장히 화난다. 화가 나서 글을 쓴다. 글을 쓰면 그나마 화가 풀리곤 해서 말이다. 심호흡을 하거나 명상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생각이 복잡할 때면 종이를 끄적인다. 뭐라도 적으면, 아니 서술하면 응어리가 사라지곤 한다.


매커니즘은 단순하다. 복잡하다는 것은 한번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하나씩 풀어서 해결할 수만 있다면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은 분명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줄 자르기식 문제해결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이런 류의 케이스는 줄이 풀 수 없게 꽁꽁 묶여 있다 보는 것 보단 그냥 단순하게 여러 번 붙인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일까.


이런, 약효가 벌써 다됐나보군. 생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오디오로그를 꺼야겠군. (오디오로그를 끄는 소리)



그럼 그렇지.png 그럼. 그렇지.









REFERENCE


AI IMAGE: Google Gemini Bana

프롬프트 제작 및 수정: 소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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