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쏘시개 연작, 11번
외비명을 동반한 고통은 오늘도 나를 엄습했다. 휴대폰에 흘러나오는 저주파 음악의 재생시간을 보니 2시간 정도 잔 것 같다. 평소랑 다를 바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하지만 악몽의 빈도는 점점 잦아지고 있고 그 이미지는 점점 구체적으로 현출(現出)되고 있다.
심장박동수 역시 높았고 이불은 이미 식어버린 땀으로 잔뜩 적셔져 있었다. 목은 메말랐고 거기서 파생되는 이물감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두뇌는 천진난만하게 어지럽고 복잡한 세계관을 구축해놓은 채 ‘나’에게 기억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두뇌 녀석이 이왕 칭찬을 듣고 싶어 잔뜩 내 속을 어지럽혀 놓은 거라면 기꺼이 청소해주겠다. 오늘도 나는 기록하고자 컴퓨터 모니터 앞에 서 있다.
꿈. 오늘도 끔찍했다. 크게 두 가지로 대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집안 구성원들이 외딴 지역에서 나를 버리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의 누나가 내 머리를 유리병으로 때리는 걸 담고 있었다. 하나같이 기괴했다. 평소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조합의 향연이었으니 말이다. 왜 하필 엄마, 큰누나, 작은누나 이 세 명이었는지, 왜 그들은 나를 외딴곳에 버렸는지, 왜 작은누나는 내 머리에 소주병과 맥주병을 세게 휘둘렀을까, 왜 큰누나는 나의 말을 믿지도 않은 채 비아냥과 조소를 한 것일까, 왜 그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간 것일까.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소설 속 장치인 열린 결말도 이것보단 더 친절할텐데 그런 점에서 내 두뇌는 매우 오만하고 불친절했다. 나는 힌트가 더 필요했다. 최대한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일련의 작업은 현실의 청소작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꼬맹이 두뇌씨’가 만들어 놓은 난장판을 정리하는 건 언제나 ‘다 큰 황소’의 몫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내용물이 회색빛만 비추는 레고(LEGO)라는 점, 온갖 다양한 모양을 한 채 그들 자신을 치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 정도 였을 뿐이다.
이국의 정취. 나는 외국에 나가본 적이 몇 번 없다. 그럼에도 오늘의 첫 번쩨 무대가 어떤 상태였는진, 어디를 배경으로 한 지 알 수가 없었다. 외딴 나라의 버스 속에서 온갖 물건들을 바리바리 챙겨둔 가방을 맨 한 남자. 어떻게든 손잡이에 묻은 먼지를 놓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버스의 매연은 어떻게 된 모양인지 제대로 감축되고 있지 않았다. 버스 안 승객들의 얼굴까지 번진 비사먼지의 모습에서 문득 목탄 파스텔이 떠올랐다.
카메라의 시점이 가방을 맨 그 남자로 이동한다.
나는 안경알을 자주 닦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둔 닦이용 헝겊을 꺼내 서둘러 시력을 복구하고자 했다. 문득 만져진 휴대전화도 꺼내는 김에 같이 로드(Load)했다. 부재중 전화 0통. 어디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창가 밖은 보이지 않았고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녹슬고 거대한 몸뚱아리를 옮기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들은 제각각의 모습을 한 채 그들 자신의 역할에 몰두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열어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있다. 엄마도, 작은누나도, 큰누나도 모두들 부재중이었는지 연락이 통하질 않았다. 불안했던건가.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음 정류장의 알림이 뜨자 표정이 굳어졌다.
겨울은 수확할 수 없는 계절”
이라 조그맣게 수군거리는 혼잣말은 무대 밖 관중들에게 애처로운 자기 위안으로 인식되었다. 그는 다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가방이 닿은 어깨에 힘은 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정류장은 ..”
두 번째 무대는 뭔가 익숙했다. 하늘색 벽지로 꾸며진 자그마한 방. 성인 혼자 누울 수 있는 싱글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누리끼리하게 더럽혀진 배경이 눈에 띈다. 아니, 그냥 노란색이 컨셉인 하늘을 표현한 걸 지도 모른다. 태양도 노란색이니 말이다.
침대에서 허리를 세워 직각으로 앉아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왼편에는 작은 유리 책상이 있었고 그 옆에 온갖 종류의 책들이 진열돼있었다. 오른쪽엔 하얀 문이 있었고 바로 그 주변에 전신거울과 작은 옷장이 비치돼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서, 나는 고통을 호소했다. 왼쪽 손목부터 손가락 마디까지 피가 통하지 않았는지 저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넓적다리에선 미세한 경련이 감지돼 복구작업이 긴요했다.
곧 전신 통증으로 변모할 것이 뻔했다. 아픔은 곧 외마디비명이 되어 메아리치기 시작한다. 5분이 지나도 아무도 와주지 않자, 직접 나서기로 했다. 문앞에 서서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기 시작한다. 겉보기와 다르게 나무문이 아닌 철문이었다. 끼익거리며 느리게 그 위세를 선보인 철벽이 마침내 그 내용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문밖을 나서니 오른쪽엔 화장실이 있었고 바로 앞엔 4명 정도 되는 어린 아이들과 그들을 통솔하는 교사로 보이는 이가 있었다. 단언컨대 엄마는 아니었다. 그녀보다 젊었기 때문이다. 그가 누구인진 당장은 알 수 없었기에 일단은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통증이 본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려 거실·부엌으로 몸을 움직였다. 멀리 있는 외딴 방에서 들려오는 자그마한 TV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누군가 보고있는건 분명했다.
모든 감각이 통증으로 집중되니 미세한 것 하나하나가 스트레스로 다가왔기에, 작은 인기척 하나쯤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온몸에 퍼진 부정적 신호가 비명을 산출했다. 너무도 아팠다. 쓰러진 채 거친 숨을 밖으로 내뱉음과 동시에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잠시 후 각각의 방에서 2명의 여성이 나온다. 내 누나들이 그 여배우 역을 자청한 것이었다.
작은누나로 보이는 이가 아이들 방에서 나왔고 큰누나는 TV방에서 나왔다. 어째서 엄마가 보이지 않았는진 모르겠다. 작은누나의 표정이 매우 뒤틀린채로 쓰러진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저거 또 시작이네.”
어떻게 하면 사람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촌철살인이 이런거였을까.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의 모습에선 이질감이 느껴졌다. 현실의 나와 너무도 달랐기에 그렇다. 나는 잘못한 게 없었다.
아니 아파서 쓰러졌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그렇게나 질타받을 행동인가. 게다가 저 태도는 또 뭐지. 내가 알던 사람이 맞았나. 최대한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을 뇌까리며 사태파악에 나섰으나 고통이 내 머리를 세게 후려쳤다. 멍한 상태로 그들을 쳐다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큰누나는 양팔을 모은 채 아무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화폭의 물감을 보충하지 않은 상태였는지 단지 흑칠된 채로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히 그녀였다. 차이가 있다면 데시벨이 낮아서 뭐라고 말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는 점이랄까. 나는 천천히 허리를 세워 어떻게든 억울함을 하소연하고자 입을 연다.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또 거짓말하는거잖아. 안 아프면서 아픈 척하는 건 꼴도 보기 싫다. 꺼져라”
아. 정말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한다. 나는 어떻게든 내가 아프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5분동안 의미없는 공방전만 한 뒤, 잠시 후 작은누나가 부엌에 있던 관상용 맥주병과 소주병에 시선을 옮긴다. 오른손에 잡힌 맥주병. 그건 고스란히 내 머리로 내려쳐진다.
쨍그랑
갈색 유리파편과 붉은 선혈이 부엌바닥을 적신다. 고통스런 외마디를 내뱉는 것 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곧바로 소주병이 나를 강타한다. 연녹색의 자질구레한 파편조차 나보다 권한이 더 많아 보였다. 적어도 그들은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허락받을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시야가 흐려지는 줄 알았으나 오히려 더욱 또렷했다.
어느새 전신의 통증은 모두 두피로 집중돼 고통스러운 역할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아. 제대로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 몸을 바닥에 던져놓았다. 한심한 말을 내뱉고 작은누나는 다시 그녀가 있던 아이들방으로 간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애들아. 거짓말쟁이 삼촌이 또 거짓말을 해서 혼내주고 왔어요.”
태연하게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구역질이 올라온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렇게 역겨운 짓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아. 엄마.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도 이랬을까. 울엄매. 미안해요.
큰누나 역시 낮은 목소리로 경멸이 담긴 말을 한 채,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바닥이 점점 붉어져갔고 파편들도 그 색깔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동공의 RGB도 어느새 단색톤으로 조정되었다. 슬프고 억울한 날이다. 나는 제대로 주먹도 하나 뻗어보지 못한 채 사라진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3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손가락에 힘을 주는 것도 힘든 나날이다. 기록하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꿈 속의 나는 너무도 약하다. 자기 몸 하나 지키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피지배자 신분. 그것이 나다. 심장박동수가 다시금 원래대로 돌아왔고 그 외 기타 신체징후도 정상 범주로 돌아왔음을 감지했다. 침구에 누우면 다시 잘 수 있을까. 이번에는 악몽 없이 잘 수 있을까. 불확실한 작금의 현실에서 분명한 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정신이 또렷하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억울하다.
기발한 건지 뒤틀린 건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두뇌는 ‘괘씸한 천덕꾸러기’인 것 같다. 미워할 수도 없는 이걸 평생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눈꺼풀을 내린 후 천천히 눈을 연다.
까마득한 시야의 저편에서도 작은 하얀 원들은 그저 오늘도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2020.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