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헌법, 관습의 헌법화

생각의 서고, 5편

by 소는영

들어가기에 앞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글을 찾아나섰으나 잘못 클릭한 대가(代價)로 '스크롤압박'의 [노잼]을 접하게 만든 것]에, 읽는이께 넓은 아량를 구합니다. 흥미를 찾고자 시작한 소재발굴의 과정, 그 결과라는 걸, 고작 돌고돌아 가지고 온 게, '법률용어로 점철된 글'이라니. 쉽게 쓰지 못한, 단지 글을 인용한 '필자'만을 혼내시고, 부디 인용된 '명문'은 미워하진 말아주십시오. 본 글은, 제가 읽었던 글 중 평소 궁금한 지점을 [부분발췌]하여, 독후감처럼 감상평을 쓰는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본문 이하, 피인용글을 작성한 이는, '선생님'으로 갈음합니다.




다음은 200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의 일부분이다.


우리 헌법전상으로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명문의 조항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은 사전적 의미로 바로 '수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하여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이래 600여년간 전통적으로 현재의 서울 지역은 그와 같이 일반명사를 고유명사화하여 불러 온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서울 지역이 수도인 것은 그 명칭상으로도 자명한 것으로서, 대한민국의 성립 이전부터 국민들이 이미 역사적, 전통적 사실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대한민국의 건국에 즈음하여서도 국가의 기본구성에 관한 당연한 전제사실 내지 자명한 사실로서 아무런 의문도 제기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제헌헌법등 우리 헌법제정의 시초부터 '서울에 수도(서울)를 둔다.'는 등의 동어반복적인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는 헌법조항을 설치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 후에도 수차의 헌법개정이 있었지만 우리 헌법상으로 수도에 관한 명문의 헌법조항은 설치된 바가 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통적, 문화적 상황에 비추어 수도에 관한 헌법관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울이 바로 수도인 것은 국가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자명한 사실 또는 전제된 사실로서 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국가구성에 관한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4. 10. 21. 선고 2004헌마554·566(병합) 전원재판부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위헌확인] 중 일부



해당 '헌법재판소 결정례'는, 예전 헌법교과서에서의 첫만남 때나, 수년이 지난 뒤 지금 조우했을 때나, 나에게 [기시감이 드는 위화감]이 들게 한다.

관습헌법. 아마도, 예나 지금이나 공부할 땐 가볍게 확인만 하고 넘어간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주 다루는 주제가 아니었다보니, [그냥 단어 네 글자]로만 기억한 채, 가볍게 간과했을 것이다. 서울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어떤 힘을 갖는진 지방에 정주하는 나로선 쉽사리 이해하긴 어려웠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굉장히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는 점은 2004년 그때나 2025년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수도로서 '서울'이라고 하는 사실], 그 자체로서 가지는 '힘'이 [대한민국헌법]에서 과연 도출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숙의, 논의, 그리고 쟁점과 논쟁에 관하여


그런데, 헌법적으로 중요한 기본적 사항에 해당하는 헌법유보사항에 대해 성문헌법이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를 누가 메꾸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소멸이 까다롭다면, 성립에 관한 절차도 그에 준해야 한다. 그런데 성립은 너그럽고, 소멸은 까다롭다는 이중성이 지적되어야 한다.
(남복현, 《헌법재판소의 이른바 ‘관습헌법’논리에 대한 비판적 분석》, 2006), 이하 동일

헌법이 적어도, 현존하는 실정법상 최상위의 규범으로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만들어지는 것이 어려운 건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라지는 건 어떨까? 마찬가지로 어려워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쉽게 만들고 힘들게 없애는 거나, 어렵게 만들고 쉽게 만드는 것은 공평과 다소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다. 이때, 다소 불명확한 주관적인, 심상표현으로서 '느껴진다'고 한 건, 본 글 도입에 있어 '감상'이라고 전제하였다는 사실로서 너그러이 이해해달라.

다행히도 선생님께서도 그러한 걸 '이중성'으로 지적하셨다. [같은 대상, 다른 잣대]는 '영 좋지 않은 곳' 만큼이나 온당치않다.




기본적으로 성문헌법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 관습헌법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인정된다고 가정할 때, 어떤 것이 관습헌법에 해당하는가는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여기에 중대한 논리조작이 자리하고 있다. 이 논리체계에 따르면 관념적인 헌법의 틀 속에 포용될 헌법사항이 전제되어 있고, 이를 성문헌법이 모두 포섭하여야 하는데, 헌법규범이 지닌 간결성과 추상성으로 인해 그리하지 못했음을 전제로 한다.

두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던 부분이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내가 이해한 바'를 정확하게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머리가 미진하여, 몸이 고생하니, 이 또한 고역이다.


두번째 줄에서 선생님이 언급한, '헌법재판소가 확인할 수 밖에 없다'는 부분을 곱씹어보았다. '-수 밖에 없다'는 그 외의 다른 유효적절한 수단이 부재(不在)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다시 말해, 선생님께선 확인(確認)의 대상인 '관습헌법' 이라는 녀석은, 김춘수 시인의 '꽃'마냥 "관습헌법이라고 불리기 전엔, 그저 하나의 '관습처럼생긴비스무리한것'에 불과했을 뿐, 관습헌법이라고 불리졌을 때 비로소 그것이 되었다"고 말씀한 것으로 사료한다.


법발견과 법형성을, 필자 스스로 이해하기 쉽게하기 위한 가상의 이미지다. 위는 독일어로 각각 발견과 형성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이때 '확인'이라고 쓰신 대목에서, 선생님께선 무엇을 말씀하신 것일까. 법발견을 말씀한건가, 아니면 법형성인가. 추정컨대 '전제되어있음'이라는 표현에서 법발견의 의미로 쓰신 걸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채로(비록 추상적이라 글로써 다 표현하긴 어렵지만) 헌법전에 있었고, 이를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있는지 직접 열어서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은 제정 당시 헌법의 기능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망라하여 명시적으로 규율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헌법은 추상화의 전략에 따라 중요하고 본질적인 규율을 할 수밖에 없기에 본질적으로 규율의 밀도가 낮고 헌법 스스로 공백보충의 구조적 가능성을 예정하고 있다.(…)여기서 헌법전에 기재되지 아니한 사항이란 필요적 기재사항임에도 기재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 헌법전에서의 침묵 내지 공백을 말한다.

선생님은, 이러한 전제하에, 헌법재판소가 당시 한 행태(行態)를 '논리조작'이라는, 다소 공격적인 워딩을 사용한다. 정합적이지 못한 판단이유에 관하여, 선생님의 [비판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의 요건을 갖춘 ‘서울이 수도인 사실’은 단순한 사실명제가 아니고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불문의 헌법규범으로 승화된 것이며, 사실명제로부터 당위명제를 도출해 낸 것이 아니라 그 규범력에 대한 다툼이 없이 이어져 오면서 그 규범성이 사실명제의 뒤에 잠재되어 왔을 뿐이라도 한다. 또한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자명한 사실 또는 전제된 사실이며, 모든 국민이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로부터 규범을 도출할 수는 없다. 존재에서 당위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존재에서 당위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표현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경계해야한다는 칸트적 사고의 현현(顯現)이라 할 수 있다. 뭔가 복잡하게 말했지만, 쉽게 말해 [단지 있다는 것에서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할 순 없다]는 뜻이다. 선생님께선, 생각건대 헌법재판소가 당시 한 결정의 판단논거 중 하나인 '서울이 수도인 사실'에서 '2004년 당시에도 서울은 마땅히 수도이어야만 한다'라고 해석할 수 없음을 지적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을 동원해서 이 사건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해서 효력을 상실시켰다. 이는 사실상 헌법재판소가 헌법전에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조항을 신설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즉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 결정을 통해 헌법을 개정해서 신설한 셈이다. (…)이미 프랑스에서조차도 사라진 ‘관습이 성문헌법에 우선한다’는 주장을 끌어들임과 아울러 맥락조차 맞지 않게 원용하고 있다. 또 헌법관행, 헌법관습, 헌법관습법, 불문헌법, 법관법 등 관련될 수 있는 유사용어를 ‘관습헌법’이란 용어속에 폭넓게 수용해서 논증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였다.

오용과 남용, 보통 약국이나 병원에 팜플렛으로 나눠주는 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표현이다. 정확한 표현이 무엇인진 몰라도, '좋지 않은 뜻'을 '하지 말라'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념의 오남용]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학술용어로서, 정립된 단일대오의 의미는 아니겠지만, 읽는이들께서 생각하는 '그것'이 아마 맞을 것이다. '국민'이라는 표현에 의존하여 결국 개별성, 독자성을 상실한 정치적 수사(rhetoric)를 보자.엄밀하게 정의되어, 한정된 의미로서 마치 [서로 새끼손가락 꼭 잡고 약속]한 범위 내에서만 써야하는 것을, 이곳저곳에 사용한 결과, 본래적 의미에서의 '국민' 이라는 개념이 희석된 것이다.


선생님께선 아마도 '관습헌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오남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경계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위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을 확인'한 것이, 법발견이 아닌 법형성으로 볼 해석여지를 둔 점을, 정제된 표현으로 강하게 비판하였다. 구체적으로 '유사용어'나 '논증을 위한 도구', 그리고 '폭넓게 수용'이라는 대목에서 확인가능하다. 그리고 선생님께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문장을 쓰시면서, 한 편의 드라마, 연극 속 피날레로서 인상을 화려하게 남겼다.


권위, 그리고 그것이 지닌 파국(破局)으로서의 힘


위헌의 문제와 헌법침해문제는 차원이 다른 사항이다. 정리하면,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관습헌법과 헌법개정에 있어서의 국민투표권을 동원해서 의회입법권은 물론이고 국민의 헌법개정권까지도 침해하는 헌법파괴행위를 벌였고 이를 헌법재판소에 의한 쿠데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행정수도의 이전을 추진하던 세력에게 그 추진동력을 약화시킨 편익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헌법재판소 자신도 회복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인 점에서 다를 바 없다', '-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의 표현은, 실제로 그러하지 않은 대상을 글쓴이 나름의 논거를 바탕으로 '의미동치(意味同値)'를 하기 위한, 도구적 문장이다. 법학에선 사안적용시 유사성을 밝히고자 '포섭(Subsumtion)'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선생님께선, '관습헌법' 이라는 대상이, 단순한 허울뿐인 유령이 아닌 실물로서의 프랑켄슈타인처럼, 실제위험을 야기한 헌법재판소의 행태를 꼬집는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현상을 생경(生驚)한 세대가 아니므로, 나는 해당 사안에 관하여 섣부른 발언을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시의 기록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남기는 것이었다. 당시의 흔적을 읽던 나로선, [적어도, 선생님께선 '그렇게 보이셨'나보다]하고 넘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서울의 수도성을 확인하고자 [과거 1392년 이성계 Case]까지 언급해야 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공부를 하면서 다시 '관습헌법'을 마주할 일이 과연 얼마나 될 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때 이후로 관습헌법을 주제로 한 [빅 이벤트]는 없었다는 점이다. 기묘하고도 오묘했다.




2025. 10. 4.



REFERENCE


AI 이미지 제작 : Google Gemini Bana

프롬프트 작성 및 수정 : 소는영

남복현, 《헌법재판소의 이른바 ‘관습헌법’논리에 대한 비판적 분석》, 한양법학, 제19집, 200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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