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 그리고 영탄], 제5아해
Audio_Log_CIVIL_NO.82
'지상'에서의 경험도 어느새 과거의 유물로 치부되고 현재의 목적만이 남게 되었다. 나의 목적은, [무제에서의 '나'를 증명하여 살아남는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유일무이하다. 나는, 나 자신을 남들에게 '스스로 드러내어' 마치 자연(自然)상태에서의 자유민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자진하여, 나 자신이 원래 그런 인간이라는 점을, 남들이 알 수 있게 하는 것」에 있다. 중간을 견지하되, 너무 튀지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이 정신나간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최대한, 나를 꾸미고 포장하여 '거래수단으로서의 "나"'의 비용을 높여야 한다. 아니, 비용보다는 가격표가 더 적절하겠지만.
Audio_Log_CIVIL_NO.81
누군가를 격렬하게 사랑했던 적이, 나에게 있었을까. 만약 있었다면, 그것은 어떤 '느낌' 이었을까.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당시의 기억을 돈으로라도 살 수 있다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무제]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실현가능하지 않을까? 분명 이곳의 과학자들이라면, 그 괴짜들이라면 분명 가능할 것이다. 여긴, 모든 것이 자유롭고 가능한, 하나의 실험도시(Experimentierstadt)니까. 지상에서 읽었던 책의 한 문구가 생각난다.《사랑한다는 말의 동의어는 ‘알려고 한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을 알았다는 오만 에 빠지는 순간 그래서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오만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Audio_Log_CIVIL_NO.83
'지상'에서 내가 알고 싶었던 것, 아니, 대상이 무엇이든간에 내가 몰랐던 점, [바로 그것]을 알려고 노력할 때 드는 에너지는, 가히 순수했었다. 편익비용곡선으로 표현한다는 건, 나에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비용이라니! 그런 '숭고한 걸' 비용 따위로 치부한 순간, 뭔가 허드렛일처럼 느껴졌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설령, '투자하는 시간'이라고 치환(置換)하더라도, [소모되어 사라져, 단지 '축적의 순간'이었다는 허황된 망상]으로 남기고 싶진 않았다. 내 인생은 그렇게 단순화되고 싶지 않았다.
Audio_Log_CIVIL_NO.85
숫자는 모든 것을 단순화하기 족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숫자는 단지, 기호에 불과하기에 어떤 [의미나 가치, 기타 신성하기 짝이 없는 복잡미묘의 섬세함]을 부여하지 않으니까. 대상(OBJEKT)에 놓인 순간, 평가자(SUBJEKT)의 먹잇감으로 변모된다. '강등되든 승격이든' 무엇이든, 그것이 적어도, '이성적 사고의 극화(極化)'가 실현된 [무제]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변화를 피할 순 없다. 대상은 평가자에게, 숫자로만 나타난다.(……)그럼에도 [숫자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곳에선 [숫자와 숫자 사이(間)에 놓인 산술기호]가 절대적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그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은 대상(OBJEKT)다. 당신은 능동형으로서 스스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피동형으로서 평가자가 바라볼 때 비로소 존재'가치'로서 출현하게 된다. 평가자가 당신을 '이로운 것'으로 본다면, [긍정신호의 증폭을 목표로] 곱하기나 제곱을 쓸 것이고, '해로운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냥 0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만약 당신이, [무제]로 오고 싶어한다면, 글쎄, 나는 그것을 선뜻 권유할 수 있을진 의문이다. '권유'는 능동형으로만 쓰이니까.
Audio_Log_CIVIL_NO.86
[무제]의 모든 통로는, 수로(水路)이자 혈관이다. 도시구역과 구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한다. 그것은 매일매일의 평가에도 어떠한 두려움 따위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평가자로 잠깐 빙의했을때]는 그랬다(……)어쩌면 저 통로만이 주체적일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통로는 투명하다. 밖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말이다. 분명 '[무제]의 위대한 설계자'는, 심해라는 특성상 엄청난 압력을 버티며 물이라는 외압으로 건재하고자 황동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색깔이 변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통로 조차 '스스로 변함을 택하여 생존방식을 터득'할 줄 아는, 가히 살아있는 유기체였던 것인가. 아아. 나는 한낱 통로만도 못한 존재(SEIN)였던 것인가!(어딘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_Log_AGORA_CIVIL_NO.2
투명하다는 것은 더 이상, 불투명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지상'에서의 온갖 기밀과 비공개, 은밀함으로 위장된 불투명 속에서 살았습니다. 정보를 얻고자 해도, '알려질 경우, 국가적 이익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음'이라는 말로, 비공개처리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게 우리가 알던, 그 잘난 헌법의 권리였습니까? 이제 우리는 '투명'해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무제]라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온갖 비밀로부터 '해방'됩시다. 불투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집시다. 우리는 '다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Audio_Log_COLLEGE_OF_LAW_NO.102
(……)광장에선 오늘도 '투명성' 담론이 화두인 듯 합니다. 위원회(Committee)에 대한 한낱 반발심에서 나온 건지, 심오한 주제로 등장한, 새로운 '유령'에 불과한지, 아니면 키워드로서 등장한, 화려하기 짝이 없는 신개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건, 민주주의를 위한(혹은 그 자체가 목적인지조차 불분명하지만)수단으로서 '투명성'이 긍정적 사회로의 전환이 될 것이라, 일반 대중이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지, 내가 온전한 권리행사를 할 수 있는지, 오늘 하루도 [무제]안에 있는 부랑자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지 등, [무제]가 본래 기획한 프로그램을 균열시킬 수 있는 발언들이 도시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만연한 불신조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숫자도 빈번해졌고, 위원회서도 이를 인지하였는지 통계조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우리도,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Audio_Log_COLLEGE_OF_LAW_NO.104
투명성. 저는 그것이 만능(萬能)적 개념이자, [무제]가 지향해야할 지점인지는 몹시 의문입니다. 위원회의 정치행태에 불만을 가지고, 그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투명성 담론을 끌고 온 것, 이해합니다. 신뢰가 사라진, 작금의 도시 내 분위기상 [투명시민 양성]을 강조하는 주장도 받아들일 순 있습니다. 하지만. [무제]의 시장경제까지 발판을 넓히려는 시도로 이어져선 안 됩니다(……)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것일 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에겐 [최소한의, 오직 나를 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간극을 두지 않은 채 즉시 공개된다면, 일상에서의 호흡이 간소화되고 모든 것이 즉흥적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방해하는 놈이 있다면, '투명성으로의 지향'이라는 표제하에 마땅히 소거될 것입니다. 획일화로 점철되면 다양성은 사라집니다. 그렇게되면, 우리는 회색지대에서 추방된 채, 창의성을 거세당할 겁니다. 이는 [무제]가 본래 의도한, '규제로부터 자유롭고 도덕관념에 지배받지 않는, 자유민으로서의 가치실현의 장'과 거리가 멉니다.
Audio_Log_COLLEGE_OF_LAW_NO.105
(웅성거리는 소리 속에서)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비밀'은 낯선 것으로서 배격의 대상으로 강등되고 '자유소통'을 방해하는 불순분자로 치부됩니다. 위원회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시민의 뜻을 받든다는 미명하에 '감시용 카메라'를 100여대 늘릴 계획이 있다고 밝혔는데 이 또한 '타자 제거'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투명성? 좋습니다. 하지만 투명성으로의 '폭력'은 파놉티콘과 상이하지 않습니다. 우리, 학계는 결코 위원회의 '인용문구'로 전락해선 안 됩니다(웅성거리는 소리, 거친 언행도 다시 섞여있는 상황이 연출된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_Log_AGORA_CIVIL_NO.3
(온갖 욕설과 고성이 난무하고 있다)(구석에 웅크린 남자가 오디오로그에 귀를 갖다대고 있다)(오디오로그에서 나오는 소리)사물은 모든 부정성을 떨쳐버릴 때, 매끈하게 다듬어지고 평탄해질 때, 아무 저항 없이 자본과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흐름에 순응할 때 투명해진다. 행위는 조작이 될때, 즉 계산하고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과정에 종속될 때 투명해진다. 그럴때는 미래 또한 최적화된 현재로서 긍정성을 띠게 된다. 투명한 시간은 운명이 없는 시간, 사건이 없는 시간이다. 이미지는 모든 연출과 안무, 미장센이 제거될 때, 모든 해석학적 깊이가, 즉 의미가 사라질 때 포르노가 된다.
Audio_Log_CIVIL_NO.88
자유라는 게 비단, 좋은 것으로만 해석될 수 있을까. 내가 오늘도 한 사람의 시민이자, 당당한 [무제]의 일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게 꼬인 충전기를 마주한 것 마냥 심란하다. 자존감은 어느새, 타존감으로 변이되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창]이 아니라 [남들이 너를 바라볼 수 있도록, 너 스스로 항상 투명한 유리인간이 되고자 갈고 닦아야만 하는 전시용 상품]이 된 것 같다. 마치, 과거 '지상'에서의 '유행/대세'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이러다가, '투명성'도 밈(MEME)으로만 소모된 채 사라지진 않을까. 그때가 되면, 매번 똑같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是亦過矣)'를 인용할지도 모르겠군.
Audio_Log_AGORA_CIVIL_NO.7
(여전히 고성이 난무하고 있다)(구석에 있던 남자는 4명에 둘러쌓여 두들겨 맞고 있었다)(그가 듣던 오디오로그는 바닥에 널부러져 부서지고 있다)(오디오로그에서 나오는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포르노는 이미지와 눈의 직접적인 접촉이다. 사물은 고유한 개별성을 상실하고 스스로를 오직 가격으로만 표현할 때 투명해진다. 돈은 모든 것을 비교 가능하게 만들면서, 사물의 통약 불가능성과 고유성을 완전히 철폐한다. 투명사회는 동일한 것의 지옥이다(……)커뮤니케이션은 같은 것끼리 반응할 때, 동일자의 연쇄반응이 일어날 때 최대 속도에 도달한다. 다름과 낯섦의 부정성, 타자의 저항은 매끄러운 동일자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지연시킨다. 투명성은 타자와 이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가속화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강제로 투명사회는 곧 획일적 사회가 된다. 바로 이 점에 투명사회의 전체주의적 특-(오디오로그 꺼지는 소리)
Audio_Log_CIVIL_NO.89
오늘도 광장에선 찬성과 반대, 단 둘의 이항대립만 존재하고 있다. '좋아요'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러는 걸까.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좋아요'를 말하는 건지' 나로선 알기 어려웠다. 쟤가 싫어서 그냥 '좋아요' 인지, '이러이러한 점에서 어떠어떠하기에 '좋아요'' 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가 좋아서 그런거지, 뭘 묻고 그래요. 짜증나게시리' 인지. 이들은 결국, 같은 하나로서 '좋아요 표시'로 치환된다. 왜? 어째서? 사유의 공백은 그렇게 전출(轉出)되고 긍정성만이 그 자리를 꿰찬다. 긍정성만이 드러나면, 부정성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가능하게 될까?
Audio_Log_CIVIL_NO.90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마치 그것이 진리(眞理)인냥 설파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내가 남을 주먹으로 때리면, 남은 나를 몽둥이로 팰 수 있다]정도는 되어야, [진리] 딱지표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진리는 모든 이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음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녀석이니깐, 신빙성이 있겠지.(……)모르겠다. 나도 그냥, 어쩌면 '대세'가 되어버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다]를 양껏 실현하고 싶다. 이것만큼 강렬한 유혹도 없다. 하지만 어쩌겠나. [무제]에 오게된 것도, 결국 '지상'에서 겪은 [거지같은 단일로의 회귀]가 싫어서 온 건데. (한숨을 쉬며)그래도,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오디오로그와 대화한다. (시계를 보며)새벽인가. 잠이나 자야겠어.(오디오로그를 끄는 소리)
REFERENCE
AI 이미지 제작 : Google Gemini Bana
프롬프트 제작 및 수정 : 소는영
《강신주의 감정수업,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강신주, 2013, 민음사
《투명사회(TRANSPARENZ GESELLSCHAFT)》, 한병철, 2014,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