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 그리고 영탄] 제6아해
Audio_Log_CIVIL_NO.175
모든 이의 죽음은 그 자체로 숭고할까. 지상에서 내가 겪어온 바에 의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주목받는 죽음이 있는 반면, 주목받지 못한채 사장되어버린 소멸 또한 있기 때문이다. 전쟁사에서 본 희생자, 트로이의 목마에 쓰러진 수많은 목회자, 단지 숫자로만 나타나 [애도의 대상성]마저 몰각되어버린 것을, 나는 '지상'에서 체험하였다.
셀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표현[much]은, 어느새 가산적 개념으로 전용되었고[many], 감정이 내뿜는 심장고동의 절실함은, 지리멸렬한 사고(思考)로 전착귀결(電着歸結)되었다. 나는 생명의 죽음에 관하여, 이를 단순히 통계를 "위한" 수치(數値)로 보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오롯이 그것을 희망하고 바라온, 가히 거만하기 그지 없는 탐닉(耽溺)행위는 '감히 애도를 망각한 대가'로 형벌을 받게 되었다. 본형(刑)에 부가된 수치심(羞恥心)은 형량의 무게추를 더욱 중심에서 멀리하게 하였다.
무제의 라디오, 오늘도 실종자의 소식을 들려준다. 어느새 이름, 나이, 성별, 사는곳보단 3명이라는 숫자만이 익숙해졌다.
Audio_Log_COURTROOM_NO.19
(피고인석에서 목소리가 나온다)문학은 어떤 이들에겐 그 자체로 애도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넋을 기리기 위해 장례와 추도를 하듯, 저희는 이곳 '무제'에서 초혼자(招魂者)의 역할을 한 것 뿐입니다. 이것이 [선전선동으로서 우울감을 이용해 분란획책을 목적하였다]는 경안국(警安局)의 혐의부여에 관하여,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잘못을 묻는다면, 오히려 도시폭력을 수단으로 광장의 시민을 희생시킨 위원회(Committee)에게 따져아 할 것입니다. 저희는 단지, '잘난 그들'이 일으킨, 철저히 그들로부터 발생한 사건, [억압으로 인해 삶이 산산이 부서진 채 죽어간 수많은 시대의 희생자들]을 [망각의 바다에서 끌어올려 그들이 남긴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애도]한 것입니다. 어찌 이게 분란획책이라는 것입니까?
Audio_Log_CIVIL_NO.180
일기를 쓰는 것도, 내가 오늘 하루를 기억하고 글로써 기록하기 위한 수단이지, [일기를 써야 한다]는 거창한 의식이나 의무발현의 목적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곳 무제에서 경험하여온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직접 생경한 사태를 사건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모든 걸 기록해야 한다. 오염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나의 오만함을 [사견으로 보건대] 따위로 치환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을 계속 해야 한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갔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_Log_AGORA_NO.21
(오고가는 광장에서 나직이 들여오는 라디오방송, 사람들의 목소리와 섞이기 시작했다) 무제는 오늘도 당신을 응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여러분 자신과 우리 도시를 위한 것입니다. 항상 밝게 웃으시고, 행복을 명령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짜증섞인) 시끄럽네 참. (서두르며)쉿 조용히하고.얼른 짐이나 나르라고. 생각해봤자 사는데는 도움도 안되니까. 끝나고 뮤트올펍(MUTE ALL PUB)이나 가자. (화를 내는듯 큰 목소리로) 돈없어. 집에 가서 TV나 봐야지. 나참(오디오로그 꺼지는 소리)
Audio_Log_CIVIL_NO.171
(한숨을 크게 쉬며)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애도하는 방법을 찾아야할 것 같은데, 계속하여 원론적인 것만 제시하니 답답하다. 나는 그동안 무제에서 실종된 이들을 애도하고 싶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애도의 감정을 그들 개개인을 대상으로 드러내고 싶은 거지, 뭉뚱그려 [희생자들]이라는 단어에다 묵념하고 싶은 게 아니다. 해저통로 수리작업 명목으로 파견된 이들중 상당수가 연락두절되었다곤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위원회는 조용했다. 참. 머리가 아프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_Log_COLLEGE_OF_LAW_NO.23
집단을 향한, 집단에 의하여 자행된 폭력이 가능한지 논하기 위해선, 선결문제로 집단의 정의를 찾는 것이 긴요하다. 집단이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통일된 학계의 논의가 부재한 상태다. '지상'에서 이뤄진 과거의 유산은 이곳 무제에서 그대로 통용되긴 어렵다. 집단을 알려면, 무제 그 자체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원회가 언급한 [도시애도기간의 확장에 대한 건]은 무한퇴행에 봉착하게 되어 모순에 이르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Audio_Log_COLLEGE_OF_LAW_NO.25
위원회가 우리 대학에 자문을 구하는 것도 하루이틀이 아닌 이상, 평소와 달리 [캐묻고자 하는 신문방식]을 채택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애도의 대상성을 존재하는 것으로 놓고, 논의를 전개할 것을 제안합니다(……)위원회가 제안한, 이른바 [넋을 기리는 행동으로서 초혼]의 방식에 대해, 일각에선 초혼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가능한 건 초혼이 아니라, 초혼의 역할 수행자를 선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무제'에선 실종상태에 놓인 자, 사망한 자에 대한 별도의 예우절차가 부재합니다. 도시공동소각시설에 일률적으로 보내는 행정처분만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건 어떻게 해야 초혼자를 양성할 수 있는지, 이에 관한 법리적 논거를 세우는 것입니다(시끄러운 소리)(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_Log_CIVIL_NO.185
(방안 TV에서 흑백음성이 나온다)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하면, 애도작업이 지니고 있는, 그 고유한 독특성에서 [불가능]이 등장한다고 한다. 영원, 불멸, 무한으로서의 개념은 일상의 우리와 결코 유리되지 않은채,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출혈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까다로운 방식으로 자기확산을 거친다(……)애도는 소위 진정하고 위대한 문학만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지속적으로 [발명]과 [발생]되고 있다. 하다못해 [통약불가능성, 通約不可能性]을 최소한의 [어려움]이나 장래의 [당면과제]로 남기려는 발버둥이라도 쳐야 할 것이다.
Audio_Log_COURTROOM_NO.24
표현에 관한 경안국의 지적은 가당치않습니다. 문학적 표현은 참여자간 의사소통의 어려움에 기인한, 내재적 한계입니다. 실종자들을 면담할 때면, 그들은 다소 공격적인 어투와 방어적 태도로 일관하는걸 빈번히 볼 수 있습니다. 상담자인 저에게조차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없어. 저리가.꺼져] 라고 하거든요. 그렇다고 저희가 '무제'의 숭고한 이상을 저버릴 수도 없습니다. 시민이니까 시민으로서 규율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의무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이성의 극화로서, 이 심해도시는 너무나 불안정적입니다. 원한은 인간적 차원으로의 출구, 미래로의 출구를 막아버립니다. 그들에겐 시간은, 평범의 개념과 다릅니다. 비틀어져 버렸고 어긋난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그들에게, 체험은 박해이자 극단적인 고독으로서 체험입니다(……)그들의 방어기제는 일면 대화를 거부함으로써 '타인의 애도 자체에 대한 반감'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화'가 야기할 공포, 그것을 마주했을 때 나타나는, 이른바 [솔직하고도 정확한 표현]에 다름없습니다.
Audio_Log_AGORA_NO.8
(웅성거리는 소리 속에서, 저 멀리 한 인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실종'이라는 미명하 희생된 자들을. 오늘. 이곳. 광장에서! 심해의 어둠도, 우리가 내뱉는 메아리를 가릴 순 없습니다. 우리의 위로는 그들을 향한 애도로서 나타날 것입니다!(알 수 없는 소리들이 나타난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_Log_CIVIL_NO.76
(나지막한 목소리, 대화의 일부로 확인된다)결국, '주목'하는 죽음과 주목으로부터 '자유로운' 죽음. 어디에 카메라를 비출지는, 결국 우리 '작가'들의 마음대로 아니겠어? 다큐멘터리, 뉴스, 그런 범주는 중요치 않아. 우리가 만드는 구조도 결국 '무제'가 본래 지향한 자유의 화신(化身)일테니까. '사실왜곡'이라는둥, 편향이라는둥 다 볼멘소리일 뿐이야. 어차피 '사실'이란 것 자체는 허상이니까 말이야(상대방이 나지막하게 소리를 내는 듯 한다)어차피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놈들이야. 우린 우리 방식대로,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얼른 '글'이나 쓰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오디오로그 꺼지는 소리)
Audio_Log_COURTROOM_NO.22
우리, 경안국은 저들의 행태에 책임을 묻기 위해, 본 대심원(代審院) 여러분의 고견을 듣습니다. 사회안정의 목적으로서, 위원회가 창안한 '도시애도기간'은 시민의 뜻을 담은 민의(民意)로써 유효하며 적법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우울감은 부정관념의 일환이자 열병마냥 이곳저것 전염될 수 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과도한 우울'은 도시의 치안에 위협을 줄 수 있습니다. '도시애도기간'을 정하여, '애도의 종결'을 기하는 것은, 무제의 본래 목적인 [이성의 극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입니다.(……)저들은 '애도의 종결'을 막고, '종결될 수 없는 애도'로 치환함으로써, 이 도시를 '정념으로 가득찬 밀림'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대심원 여러분. 우리는 자랑스런 '무제'의 일원입니다.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왁자지껄 한 차례 소동이 나는듯한 소음이 나타난다. 깨지는 소리)(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_Log_CIVIL_NO.199
(방안, 라디오에서 패널의 발언이 나온다)(……)당사자의 경우, 결국 극단적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이를 거듭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를 통해 스스로를 부숩니다. 하지만 비당사자의 경우, 그들은 단지 당사자를 통한 폭력의 간접적 체험에 놀라며 그 고통을 극복하고 싶어하지만 이를 또 다른 폭력으로 회피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고백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보죠. 한 작품 내 당사자인 '소녀'가 '오빠'와 '엄마'로부터 죄의식을 벗어내며 영원한 애도의 과정에 참여합니다. 그 결과 역설적 긍정과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였죠. 이때 독자이자 비당사자인 '우리'는 '소녀'를 추적하는 여정 끝에 스스로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통해 비로소, 앞서 언급한 '기쁨의 미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조금이나마'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간극을 결코 좁힐 수 없을 지도 모르죠. '소녀'는 심연과 같은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리는 '소녀'의 고독을 끌어 안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Audio_Log_CIVIL_NO.201
같은 무게의 죽음이 아닌 것일까? 무엇이 정답에 가까울까. 오늘 내가 '무제'에서 보낸 일상조차, 결국은 '그저 살아남은 존재의 1일'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그렇다면, 잊혀진 이들, 이곳에서 실종으로 묵묵히 처리된 채 사라져가고 잇는 이들을, 평생 기억하며 사는 사람으로 나 자신을 정체화해야 하는 걸까?(종이 뭉텅이 비슷한게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작게 들렸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REFERENCE
AI 이미지 제작 : Google Gemini Bana
이미지 프롬프트 창안: 소는영
양순모, 《국가폭력과 애도문학의 어려움, 애도문학을 애도하기 위한 시론》, 한국문학연구학회, 현대문학의연구, 제86권,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