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 그리고 영탄] 제7아해
Audio_Log_CIVIL_NO.223
(사람들이 오가는 무제 내 지하철통로)(침묵과 소음이 상존하고 있다)장소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지상'에서만 볼 줄 알았던 월세살이가 '무제'에 이를 줄은 상상도 못했거늘. 이 또한 나의 운명이란 말인가!
아무튼, 생각을 정리해본다. 만약 '장소'를 살기 위하여 머무는 공간으로서, 이른바 정주(定住)의 목적으로 본다면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방 한칸이 바로 '장소'일 것이다. 이와 달리 잠깐 머물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목적 하에, 정류(停留)하는 것이라면, 어두컴컴한 이곳은 '장소가 아닐 것이다'. 즉, '비(非)장소'에 불과할 것이다.
'지상'에선 아파트가 나의 '장소'였다면, 이곳 '무제'에선 아파트가 나의 '비장소'다. 상관없다. 사색만 할 수 있다면, [아직 살아남은 것]일 테니까. 아직은. 말이다. 서둘러 출근해야겠어.(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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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모양, 정형화, 안정성, 회색, 작위적인 사랑, 가족, 재산 등] 어떤 키워드를 말하더라도, 단언컨대 '지상'에서나 이곳 '무제'에서나, 아파트(ĂPARŘŢEe)는 상품성의 화신(化身)이다.
'지상'에선 그 잘난 헌법상의 권리로서 재산권이라 부르든, 부동산의 일종으로 재태크의 수단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자산가치로서 중요한 대상으로 인식되곤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무제'로 향하는 통통배에 올라탄걸까. 적어도, [비틀린 빈곤자 생활을 청산하고자한 당찬 포부를 바탕으로], 이곳 심해도시로 내려온 게 아니었을까? 확실한 건, 화장실청소나 하려고 이곳으로 내려온 건 아니었다. 모두가 성공한 기업가로서. 한몫 단단히 챙겨 금의환향(錦衣還鄕)을 꿈꿨을 진 모르겠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꿈 꾼 것이라면' 말이다. 만약,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 던질 수만 있다면, 부디 '무제'로 내려오지 말라고 강권(强勸)할 것이다. 갈비뼈를 부러뜨려서라도 절대, 이곳으론 못 내려오게 할 것이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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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손상된 채 놓인, 어느 '오디오로그'가 보인다)(재생해본다)
(오디오로그에서 부품이 쏟아져나온다)(오디오로그 꺼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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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PHOTƠ, 그걸 볼때면 '지상'에서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었다. 볼때마다 당시의 기억, 그때가 기억난다. 빛바랜 사진. 어쩌면, '무제'의 어두운 공간때문에 더욱 그런걸지도 모르겠지만, 더더욱 때가 탄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었더니, 슈타뮬러ŠṬAMULARGH 박사의 성형외과 간판이 보인다. [아름다울 수 있다면, 마땅히 아름다워져야만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문구는 언제봐도, 섬뜩하다. 물론 육성으로 내뱉는 건 허락받지 못한다. 그랬다간 불순한 감정소유자로 낙인찍힐테니까. '무제'에서 그런 감정을 지니는 건, 결코 허락되지 않으니까. 만약 그랬다간 남들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경안국에 끌려갈지도 모른다. 말그대로 '무제화MUJAE化'될 거 뻔하다
무제가 無題를 뜻한다는 것, 이를 아는 시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않다. 나는 아직 '지상'에서의 관념을 벗어던지지 못한 것일까. [인위적, 작위적,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세뇌된 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 당신, '무제는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보았을 때 들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 캐치프레이즈조차 [인위적, 작위적,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세뇌시키는] 것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이라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오디오로그나 낡아가는 사진뿐이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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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이다. 이번 근무장소는 무제내 복합시설 중 하나인 백화점 밖 수리시설이었다. 배관에 문제가 있던 건지, 파이프라인이 녹슬어서 그런지 [물빠짐 이상] 판정이 나온 상태였다. 다음 부품이 올때까지 잠시 기다리며, 담배를 입에 물려는 순간, 눈 앞에 놓인 이름모를 마네킹이 널부러져 있는 걸 보았다.
이상하다. 분명, 못봤던 것 같은데. 아무튼, 마네킹쪽으로 다가가니, 화려한 쇼윈도(SHOWWINDOW)가 등장한다. 무제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미적감각이 뛰어나다고 '평'받은 옷들이 팔리기를 기다리며 스스로 뽐내는 것에선, '지상'에서의 매춘행위를 보는 것 같았다. 널부러진 '사내'와 당당한 '이들'은, 쇼윈도를 경계삼아 자신의 영역을 더욱 공고히한다.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쇼윈도에 반사된 채 밖에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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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왔다. 디오게네스의 거리. 무제의 도심지. 확실히 백화점도 있는 번화가의 모습은 내 방의 것과는 비교도 안됐다. 확실히 달랐다. 구체적으로, 실물들이 많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들과 [다른 모습]으로 거리를 거닐고 있다. '근무'장소에서의 '일반'은 비근무'장소'에서의 예외상태로 바뀐다. 집 안 방 한칸 속 '나'는 '장소'로서 그곳에 정주(定住)한다. 그리고 쾌락을 삶의 일부로 삼을 수 있었다. 이때의 '-수 있다'는 능동형 표현으로 가능함을 함축한다. 허용가능한 나만의 공간, 그곳에서의 나는 누구에게조차 전시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도심지 속 디오게네스의 거리는 정류(停留)를 위한 일시적 장소에 불과하다. 일률적인 모습으로 보이던 타인조차, 보통과 표준의 잣대에선 [우수모범사례]로 승격화된다. 나는, 지금 이곳에 단지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심해도시에 걸맞게, 가히 표류(漂流)상태에 놓여있었다. 잠수복 때문인가?두통으로 인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돌아가야겠어.(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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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맑음
오늘의 기분 좋음
오늘의 기억 좋음
오늘의 건강 좋음
이하 내용 모두 좋음으로 자동처리후 제출 할 것.
추신+ 다음 테라피세션은 10월 23일. 약물 증량과 관련하여 상담받을것 (필수!!!)
REFERNCE
이미지제작 AI툴 : Google Gemini Bana
프롬프트 제작 및 수정 : 소는영
유인혁, 《아파트 디스토피아를 다시 생각하기 :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아파트 표상의 해방적 전유와 거주하기의 상상력》, 인문연구,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