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판단의 획득, 상실돼버린 원칙

[황홀, 그리고 영탄] 제8아해

by 소는영
무제 내 대심원이다. 공직자들의 모습이 몇몇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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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개월을 기점으로, 대심원(代審院)은 구체적 사안을 법률에 포섭판단을 함에 있어 종합판단(綜合判斷)이라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향성이 장차 무제 내 법구체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진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대심원에서 행한 종합판단을 일괄적으로 살핀 결과, 그들은 어떠한 사전원칙 없이, 단지 그때 그때 고려할 사항들을 열거적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풍조가 계속 이어진다면, '지상'에서 일어난 사법불신이 이곳에서 재현될 지도 모릅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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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문제의식에 동의합니다만, 현실적으로 무제 내 심판관들이 그들 자신에 대한 구체화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지 일률적으로 평가하긴 어렵습니다(......)저 또한 작금의 대심원이 판단한 내용에 대해 의구심이 듭니다.


그러나 구태여 선해(善解)하자면, 그들은 판단 자체의 어려움뿐 아니라, 무제 내 시민들의 반응도 생각해야 하여 일종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래서 대심원은 자신들이 생각하였을때. 가급적 쉬운 길로 가고 싶어한 듯 보입니다. 마치 [일반조항으로의 도피]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방향은 종국적으로 법에 관한 신뢰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단순계보단 복잡계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사안의 특수성에 따라 고려사항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그 자체는, 대심원의 입장 자체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종합적'이라는 수식어는 섞음을 위하여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을 재료로서 요구합니다. 문제는, 원칙으로서 가능하면 예외를 소거해나가야 함에도, 이러한 이질적 고려사항들이 어떤 개념이나 법률규정이 사안에의 포섭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규칙, 내지 기준'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 대심원 그들이 스스로 판단한 점에 있습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무제 내 법과대학 대강당연구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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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렌즈가 반짝이고 있다)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대심원이 수행한, 일명 [종합적 판단방법]은 얼핏보면 포섭판단을 한층 신중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외관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특정 사안을 해석하면서 대심원이 스스로, 차곡차곡 조심스레 쌓았던 구체화의 노력은 전부 모래성마냥 무위로 변한 것이죠. 사실관계에서의 결정적 증좌는, 그렇게 [종합]이라는 미명하에, 마치 현재의 무제마냥 깊은 바닷속으로 더욱 묻혀버리게 되는입니다.(몇몇 참석자가 박수를 친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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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게 뭐 별 거야? 여기, 무제에선 말이지, 대심원이 전지자나 다름없어. 그들을 수틀리게 했다간 좋은 결말은 기대못할테니, 입조심해야해. 만약 그랬다가는, 한창 잘나가다가 마지막에 반전요소를 넣어버릴거야 "짜잔. 무죄인줄 알았지? 아니야. 너 유죄야!"식으로 물타기를 한다니까? 제기랄!(시끄러운 소리가 주변에 들려오며)(작은 목소리로) 이봐. 작가양반. 판결과 소설은 다른게 있어. 소설에선 이야기 속 주인공만 단두대로 보내지, 독자는 죽이지 않거든(오디오로그 꺼지는 소리)


무제! 당신의 자유는, 오늘부터 이곳에서 자유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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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다)(상실에 찬 눈속에서 목소리가 나온다)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나는 바로 할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지의 영역이라는 건 분명 고혹적이다. 발굴되지 아니한 상태로서, 누군가에게 발견되고"싶어"하는 것이라 상상으로 방 한 칸을 채울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걷고 있는 이곳, 잔잔하고 은은하게 덮고 있는 게 농밀한 안개가루인지, 서서히 죽여가는 사린가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무슨 이유에서 무엇때문인지 정도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추상주관의 땅에선 한톨의 구체객관도 허(許)하지 않는 것일까. 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이라도 알려주면 정녕 안되는 것일까.(종이 찢는 소리, 그리고 바닥에 버려진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찢어진 종이를 복원하였다.



제1회 무제 법학자들을 위한 학술모임 포스터의 모습이다. 1920년 미국을 풍미한 아르데코ARTDECO풍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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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발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 학술대회 이후, 저희 연구실에서 수행한 논문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3개월간 경안국에서 작성한 수사보고서(공개)와 대심원의 결심문서(結審文書)에서, 그들의 판단논거에 사용된 일부 표현들이 다소간 부정확한 개념에 근간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우선, 196페이지를 보면, 대심원은 종합적 판단을 하였다고만 하였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에서 어떠한 점수와 가중치를 부여하였는지에 관하여 답하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저희가 우려한 바와 같이 종합적 판단이라는 괴물은, 다양성이라는 친숙한 외피를 걸친채 법관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결론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도 거추장스럽게 입은 상태라 쉽사리 발견되었지만, 앞으로는 전장 속 길리슈트처럼 위장과 은폐로 인하여 제대로 파악조차 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사안에, "다양성"의 고려사항까지 넣어버린다면 법체계의 존재의의가 몰각되리라는 자명합니다. 최소한의 복합성은 무한의 난잡성으로 변모하여. 우리가 존숭하여온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허울뿐인 명판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무제'는 무법지대로의 성대한 제령식을 맞이할 겁니다.(...)그르다는 건 다르다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게 절대 아닙니다. 아닌 건, 아닌 겁니다.(오디오 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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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놀고 싶다. 얼른 퇴근하고 뮤트올펍MUTEALL PUBS나 가야지. 진창 맥주만 마실거야. 아무 생각도 안하고 말이지.


아 맞다. 많이 마셔서 블랙아웃이라도 올지 모르니까, 네 녀석에게 잊지 말라는 생각에, 기록을 남겨두겠어. 우리집은 디오게네스 거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브라운가든 101동 4층 A실이야. 혹시나 문앞에 그 망할놈의 전단지가 또 붙여져있다면 ㅉ-(오디오로그가 바닥에 떨어지는듯 부숴지는 소리가 들린다)(오디오로그 꺼지는 소리)


전광판이다. [여러분은 독자들에게 어떠한 착시도 유발해선 안됩니다. 어떤 심상(心像)을 표현하고 싶은지, 그림을 그리기전에 미리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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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이 있고 난 뒤)조용히 하세요. 정숙! 경안국과 피고인의 주장은 잘 들었습니다. 변론절차를 마치겠습니다(. ....)(나지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지상'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은, 법치국가가 손쉽게 법관국가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지상에서의 법관도 피고인과 검사, 수사기관과 마찬가지로 인간이기에, 판단한계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의회가 단심제가 아닌 삼심제를 택한 것 또한 이러한 목적의식에 부응하고자 숙의한 결과물일테지. 커피를 더 마셔야겠어(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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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가 켜지며)목적을 고려한다는 것. 분명 법의 영역에선 굉장히 의미있고 중요한 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목적이라는 건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교수님께 여쭙고 싶군요. 대심원에 가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을 과연 [확인]이라 부를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무제'의 시민들이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으로서 범죄법(Criminal Law)에 적힌, 문구 그 자체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법발견이니, 법형성이니 어려운 표현은 법을 현실과 유리된 채로 두기 위한 술수일 뿐입니다(시끄러운 소리, 고함치는 소리 등 장중이 소란스러워진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지상'에서의 한 최고법원의 판단, "동기설"에 관한 학자의 비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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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톨의 쌀이 있다. 이것을 더미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럼 두개는? 아니다. 100개는? 글쎄다. 1가마니는 어떻고? 이 방까지 들여오는, 저 멀리 광장에서의 목소리는 단수형으로 표현해야할까, 아니면 복수형으로 써야할까? (왁자지껄한 소리, 바깥에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도 들려온다) 방음부스라도 따로 설치라도 해야지 원. 테이프 살 돈도 부족한데 말이야. 참(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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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나며)피고인. 여기, 경안국수사보고서에 써있는 내용 중 'A'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죠?(웅성거리면서)A란, A1과 A2, 그리고 A3 모두를 뜻합니다.


(핀치가 올라간듯한 목소리로)피고인?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주시겠어요?(짜증섞인 목소리로)A1은 A1a을 A1b하여 A1c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B1은 B1aa인 상황에서, B1ab했을때 B1abc한 상태이고..


(한숨쉬며)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눈빛을 쏘아대며)A의 A1에 있는 A1a는 결국, A1b와 A1c가 아닌 대상으로 B1abc와는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이제 됐습니까? 경안국 나으리?(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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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뀌기 마련이야. 무제의 본래적 목적? 3개월의 시간은 녹슨 파이프수로마냥 원상태를 훼손시키기 충분했지. 이상과 같은 이데아도, 무상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도 그렇다. 의미는 세계와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어디 책 속에 죽은채로 묻혀있는 사어(死語)는 집어치우라고."


광장의 헛소리에도 건질 건 있나보다. 확성기의 소리, 그것을 듣고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었다. "적용없이는 어떤 이해도 있을 수 없고, 이해되어야할 것은 적용의 과정에서 비로소 실현되고 완성된다는 것을!" (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REFERENCE


이미지제작 및 사용툴: Google Gemini Bana

프롬프트 설정 및 수정: 소는영


김성돈, 《죄형법정주의와 그의 적들》, 형사법연구 제34권 제2호, 한국형사법학회,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