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 그리고 영탄] 제10아해
누군가의 기억인가. 저번의 오디오로그마냥 비관적이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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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만 같았던, 법과대학원에 입학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기쁨도 잠시, 오늘부터 공부해서 꼭 대심원에 들어갈 것이다. 열심히 해야겠다. 기록을 위해 한번 오디오로그를 켜볼까? 아. 이미 켜져있구나.
짐 챙기고, 슬슬 무제메트로를 타러 가야겠어. 배차시간이 기니까 미리 가있어야 겠지. 오늘도 사람이 많을테니, 가방은 가볍게 하고 나갈까나. 아 맞다. 새로 산 오디오로그의 배터리잔량을 확인해봐야겠는데(툭툭 건드리는 소리)전원이 이건가. 이걸 누ㄹ-(오디오로그 꺼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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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이라. '지상'에선 민족이라는 표현을 썼나보네. '무제'의 시민하곤 좀 결이 다르려나?(……)적어도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다 비슷비슷한 삶을 살았던 건 맞나보다. 권력과 암투? 너무 나선 생각이었을라나.
아무튼, 적어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특정 개념을 사유화하려는 시도는, '지상'에서나 이곳이나 크게 다를 바 없어보였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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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대심원에서 법감정에 관한 논쟁이 오고갔다던데, 나도 언젠간 그 자리에서 훌륭한 법논리와 철학적 사고를 설파할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면 좋겠다. 얼른 말이다. 뭐.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강의나 마저 봐야지(웃으며)
(강의를 보고 있는 자리에서 강사이자 노인의 당찬 목소리가 들려온다)우리는 철학자로서, 법이라는 구조물이 얼마나 섬세하고 또 얼마나 위험한 역설 위에 세워져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올바른 법감정'의 필수 요건으로 제시되는 두 가지 기둥—합목적성Zweckmäßigkeit과 법적 안정성Rechtssicherheit—은 우리의 비극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법적 안정성은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효력을 지닌 법을 구속적인 것으로 존중하는 정조"를 요구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선(善)'의 요구와 무관하게, 일단 제정되고 유효하게 통용되는 법에 복종하는 차가운 규율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과거 '지상'에서의 어느 전범국가는 바로 이 법적 안정성의 맹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들은 인종법, 시민권 박탈법 등 명백히 부당하고 반인륜적인 법률들을 '국가의 단결'이라는 합목적성의 허울 아래 체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지식인과 일반 시민들은 "부당하지만 유효한 법"에 복종하라는 법적 안정성의 냉혹한 명령에 따라 양심의 목소리를 묻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법적 안정성은 질서 유지가 아닌, 대규모 학살을 합법화하는 절차적 감옥이었던 것입니다.
정의가 유효한 법에 의해 질식당하는 순간, 법감정은 이미 그 생명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오디오로그 꺼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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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계속 들려온다)(주변에서 가족과 같이 온 어린아이가 목놓아 울고 있었다)(수근거리는 인파 속에서)이런, 너무 시끄럽단 말이지. 하. 다른 자리로 옮겨야되나. 여기 열람실이 제일 편하고 좋은데. 그나저나 왜 저렇게 우는 거야 진짜. 에휴.
(화면속 강사는 계속해서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법감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법을 다루는 기술Technik'이 전제된다는 진술은, '지상'에서 벗어난 우리에게조차 뼈아픈 회고의 지점일 수 있습니다.
법해석의 여러 방법론—문법적, 논리적, 역사적, 그리고 가장 위험했던 목적적 방법—은 정의를 향한 길잡이가 되어야 마땅했습니다. 또한 법의 공백을 채우는 '유추Analogie'와 추론, 그리고 법적용의 '삼단논법Syllogismus'은 그 기술적 정교함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술적 정교함은 지옥의 문을 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전범국가의 법학자들은 그들의 목적Goal을 '민족 공동체의 순수성 확보'라는 광기에 헌납했습니다. 모든 법해석은 이 목적을 향했고, 논리적 추론은 유대인을 법의 바깥에 두는 논리로 정교하게 가공되었습니다.
법 기술의 숙련자들이 자신의 지적 도구를 정의 실현 대신 야만적 통치에 봉사하게 했을 때, 그들의 박사 학위와 논리적 탁월함은 부끄러운 배신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법을 '사용'하실때마다 명심하십시오. 법 기술은 그 자체로 선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봉사하는 목적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갈 뿐이지요.(오디오로그 꺼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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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라떼는 품절이라니. 이런. 제일 좋아하던 음료였는데. 카페인만이라도 내가 원하는걸 마시면서 채우고 싶었는데. 오늘의 커피? 이거라도 마실까. 가격은 싼데. 맛은 어떨지 모르겠군.
그나저나 커피머신은 볼때마다 시끄럽단 말야. 최신기술로 만들어진 '무제'에서 왜 저런 고풍스러운 잡동사니를 고집하는 건지 모르겠다. 할거면, 디자인만 차용하지, 왜 부품의 낡은 것까지 재현한 걸까. 참.
(강의를 마저 들으면서)법치국가에서 일반 국민도 법감정의 주체이며 언론의 자유 위에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성격과 경험의 차이만큼 다양한 강도의 법감정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비극은 "가장 중요한 법감정의 주체"—직무상 법적 결정을 내리고 통제·평가하는 법 전문가들—에게서 발생했습니다. 대심원 역할을 한 '지상'의 법원, 위원회로서 '지상'의 의회, 경안국을 비롯한 행정집단으로서 '지상'의 행정부 등 그들은 시스템을 바로잡을 지적 권위와 실질적 권력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직관적 결정'에는 수많은 법적 지식과 역사적 교훈이 녹아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상'에서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죠.
그들에게서 "법감정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양심의 단순한 부재를 넘어선 지적인 실패를 뜻합니다. 그들은 정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침묵한 것이 아니라, 법적 안정성과 합목적성이라는 논리적 덫에 걸려 스스로 귀를 막은 것입니다.
그곳의 학계나 법조계 역시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지성이 정의를 위한 직관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권력의 논리를 정교하게 포장하는 데 머물렀을 때, 그 침묵은 수많은 비극적인 죽음의 공범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날을 회고하는 것은, 그 마비된 지적 감각을 다시 일깨우고, 법의 논리와 인간의 정의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의 책임을 다시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수고하셨습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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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소리가 들린다)논문을 읽다가 문득 펜을 들었습니다. '개인적 법감정의 형성', 차가운 논리의 언어로 쓰인 이 구절은 내 안의 어떤 사적인 풍경을 건드렸습니다. 법감정이란 성격의 한 부분이며, 타고난 소질 위에 경험을 쌓아 구조화된다니, 결국 법이란 가장 주관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 자라나는 감각이 아닐까요?
저자는, 법감정의 근원을 '심리적·지적 인자가 얽힌 복합체', 그 천성으로 타고난 소질이라 언명합니다. 섬뜩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과학적 해명이 어렵다는 그 미지의 영역. 우리가 왜 특정한 고통과 불의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왜 어떤 이는 법의 강제력 앞에서 무너지고 또 어떤 이는 굳건히 대처하는지, 그 모든 것은 결국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새겨진 설계도 같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와 감정은 결국 소멸로 이어지는 여정인데, 그 여정의 초기 설계가 우리의 법적 감각을 좌우한다는 사실은, 삶의 부조리함을 다시금 상기시킵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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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소리가 난다)테이프가 다 됐었네. 다시 이어서 기록하자(목소리 가담는 소리)어린 시절의 '놀이'는 작은 사회의 예고편입니다. 페어플레이와 반칙의 경험'을 통해 법과 불법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죠.
하지만 내 관심은 그 너머에 있었습니다. 놀이에서 추방당한 아이, 규칙을 어겨 '사회적 죽음'을 경험한 그 아이의 기억은 어떻게 될까요?
법적 경험은 단지 인식(Einsicht)을 확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내면을 깎아내고, 단단하게 만들며, 때로는 치유 불가능한 상처로 남습니다. 가정과 학교, 사회로 확장되는 경험의 폭은 우리가 현행법에 대한 '식견을 갖춘 단계'로 성장하게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불완전함을 목도하게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통찰은 이것이었습니다. "법과 정의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에도 긴장관계와 불완전함이 내재해 있다."
법은 완벽하지 않으며, 정의는 항상 미끄러지는 개념입니다. 나는 매일의 기록을 통해 이 불완전함, 이 긴장 관계를 응시하고자 합니다. 완벽한 법도, 영원한 정의도 없음을 아는 것. 이 통찰이야말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자 유한한 존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독하고도 정직한 인지활동이었기 때문입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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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무제 라디오방송에선 클래식이 들려온다)만약 법적 인식이 지극히 개인적인 특성에 좌우된다면, 나의 신체적 조건, 심리적 성향, 지적 수준, 도덕적 태도… 이 모든 것이 필터가 되어 외부의 법적 경험을 걸러낼 것입니다.
[사태에 침착하게 대처하는가, 아니면 불안하고 과민하게 대처하는가?
정의란 누구에게나 통용되어야 한다고 믿는가, 아니면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주장하는가]
이 문장들은 단순히 법학적 변수가 아니라, 한 인간이 '죽음'과 '소멸'이라는 근본적인 실존적 위협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대한 은유처럼 읽힙니다.
불안한 영혼은 작은 불법에도 과민하게 반응할 것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이는 곧 소멸할 육체를 위해 잠시 정의를 유보할 것입니다.
나의 법감정은 마치 나의 사망 선고서에 대한 응답과 같습니다. 소멸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나는 어떤 법적 태도를 취하며 하루를 기록할 것인가? 정의를 보편적인 가치로 옹호할 것인가, 아니면 이 짧은 생애의 안락을 위해 눈을 감을 것인가? 즉, 이 에세이는, 객관적인 법의 기술을 사적인 심연으로 끌고 들어와, 내가 매일 마주하는 불완전한 법과 유한한 나의 기억 사이에 서 있는 나 자신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하품소리가 커진다)법감정은 곧 자화상이며, 나는 이 자화상을 매일의 기록 속에 남겨두고자 합니다. 나의 소멸 이후에도 남을, 가장 사적인 법의 지도 말입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REFERENCE
이미지 제작 및 도구툴 : Google Gemini Bana
프롬프트 제작 및 수정: 소는영
백낙청, 《민족문학의 현단계》, 38면
임웅, 《법감정에 관한 연구》, 한국법철학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