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 그리고 영탄] 제13아해
Audio Log COURTROOM3 PRESERVATION EXCESS ONLY(보존용으로만 열람할 것1번)
1977년 늦가을. 무제 내 아폴로거리. 맑음. 그러나 내 마음은 지옥.
내 이름은 박상호. 오늘부로 이곳, 신무제보육원이라는 곳에 갇혔다. '갇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열세 살이다. 며칠 전, 아폴로거리 근처를 배회하다가 '계도반'이라는 완장을 찬 남자들에게 잡혔다.
나는 분명 깡통 하나 들고 있었을 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무제를 좀먹는 부랑아'라고 불렀다. 부랑아? 그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기 전부터, 내 몸은 그들의 거친 손에 이끌려 이미 이 시멘트 건물 안으로 던져졌다.
여기는 감옥이 아니다. 겉으로는 '보호'와 '선도'를 외치는 복지시설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이 굳게 닫히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곳은 나를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격리'하고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을.
왜 나는 여기에 와야 했나?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행상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으셨다. 나는 그저 길 위에서 스스로 생존을 모색했을 뿐이다. 그것이 죄인가?
다른 아이들은 내게 묻지 말라고 했다. 묻는 순간, '교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돌아온다고.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다. 내가 왜 여기에 갇혀야 하는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어째서 국가가, 사회가 나를 죄인 취급하며 이 거대한 벽 안에 가두는가?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높고, 그 위로 길게 드리워진 철조망은 하늘마저 찌를 듯하다.
밤이 되면 매캐한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웅크려 잠들었고,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부산의 희미한 불빛이 마치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오늘 저녁, 밥을 먹다가 덩치가 큰 '지도원'에게 걸려 등에 매를 맞았다. 밥을 빨리 먹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고통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음은 약자들의 특권이 아니라, 이곳에서는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신호일 뿐이다. 나는 이곳에서 '부랑아'가 아니라, 번호표가 붙은 '수용자'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할 것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 이 질문이 내가 아직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지옥 바깥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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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리는 소리)오늘 학술대회는, 대심원의 심판관 한분과 무제법과대학 교수님의 대담형식으로 이뤄집니다. 각자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밝히시고, 이를 뒷받침할만한 논거를 제시하셔야 합니다. 간략한 소개를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30분 동안 휴식하시고 속행(速行)하겠습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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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는 소리가 들려온다)(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헛기침 소리가 연발한다)존경하는 대심원(代審院)관계자 여러분, 다시 한번 본 사안의 핵심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무제내 송사에 관한 시칙 제441조가 비상재심판요청의 요건으로 규정한 '그 사건의 심판과정이 무제 내에서 적법하고 유효하게 작동하는 규칙에 위반한 때'(p)의 해석 문제입니다.
현재 2020년의 대심원은 앞서 1989년 대심원이 판단한, 무제 내 훈령 제410호의 무효성을 간과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을, '법령 적용 과정에서 전제되는 사실을 오인하여 법령 위반의 결과를 초래한 경우' (F)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 (F)는 비상재심판요청의 요건인 (p)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기각은 불가피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앞서 1989년 대심원이 판단한, 즉 원판단의 잘못은 (F)가 아니라, p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합니다. (좌중에서 박수치는 소리가 들려온다)(안전요원이 제지하고 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 Log COURTROOM3 PRESERVATION EXCESS ONLY(보존용으로만 열람할 것2번)
1978년 초봄. 신무제보육원. 흐림.
이곳은 철저한 계급 사회다. 우리는 모두 ‘부랑아’라는 낙인 아래 던져졌지만, 그 안에서도 밟고 밟히는 생존의 피라미드가 존재한다. 가장 밑바닥은 새로 들어온 약한 아이들, 그리고 그 위는 오래 버텨온 자들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자들은, 바로 '지도원'이나 '선생님'이라 불리는 감시자들과 결탁한 수용자들, 즉 '고참'들이다.
이들의 눈빛은 항상 날카롭다. 배급되는 밥 한 숟가락, 담요 한 조각, 심지어 배수구에서 물 안새는 잠자리 한 뼘까지도 경쟁의 대상이다. 나는 끊임없이 경계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고발자가 될 수 있다. 이 닫힌 공간에서 생존을 위해, 인간은 가장 기본적인 신뢰마저 포기하게 된다.
며칠 전, 15살짜리 동갑내기 '해수'가 배식소에서 몰래 빵 조각을 숨기는 것을 보았다. 나는 모른 척했다. 하지만 곧 고참 중 한 명인 '상구'가 그를 잡아냈다. 상구는 지도원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대표적인 '개'다. 그는 철수를 끌고 가 지도원에게 넘겼고, 철수는 그날 밤 처참하게 맞았다. 철수가 맞을 때, 상구의 얼굴에는 희미한 만족감이 떠올랐다. 그는 다른 이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것이다.
상구 같은 이들은 폭력을 대리 행사하며 자신은 안전지대에 있다고 믿는다. 지도원들은 육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우리 사이의 증오와 불신을 조장함으로써 우리를 더 쉽게 통제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결'이 아니라 '분열'이다. 분열된 개개인은 쉽게 굴복한다.
어제 밤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옆자리의 '민호'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영호야, 너도 조심해. 아무도 믿지 마. 심지어 나조차도." 그의 눈빛은 두려움과 체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신뢰는 사치이고, 침묵만이 생존의 기술이다.
나는 이곳에 와서 인간의 밑바닥을 보았다. 굶주림과 공포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짐승으로 변할 수 있는지.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기보다는, 서로를 짓밟고 올라서려 한다.
이것이 이 '복지원'이라는 이름의 지옥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유일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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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요원관이 좌중을 진정시킨다)교수님의 문제의식은 사법정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희 대심원의 역할은 개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재심처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정된 심판에 대하여 '무제 내에서 적법하고 유효하게 작동하는 규칙의 해석 적용 통일'을 기하는 데 있습니다.
저희는, 자랑스런 무제 내 법체계의 일환으로, 대심원이 만들어지고 꾸준히 키워온, 이른바 '확립한 법리'를 수호해야 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건, '심판관이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한 결과 무제 내 규칙을 위반한 경우(F)'를 비상재심판요청의 이유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여부입니다.
신무제복지원 사건의 오류는, 문제가 된 무제 내 훈령의 무효성이라는 특정 전제를 잘못 판단하여 법 제20조의 적용에 이른 것이므로, 그 성격상 법령 자체의 해석·적용 오류라기보다는 법 적용의 전제에 대한 오인으로 보는 것이 기존 법리에 합당합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 Log COURTROOM3 PRESERVATION EXCESS ONLY(보존용으로만 열람할 것3번)
1978년 여름. 신무제복지원. 날씨 맑음. 거짓의 태양이 빛난다.
위원회와 무제 내 "시민"들은 이곳 신무제복지원을 '자애로운 손길'과 '선도 시설'의 모범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인식한다. 외부인들이 방문하는 날에는 우리는 깨끗한 옷을 입고, 미소를 지으라는 강요를 받는다. 노래를 부르고, 질서정연하게 서서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신문과 방송은 이곳을 '버려진 영혼들에게 새 삶을 주는 성소(聖所)'라 칭송한다. 그들이 보는 것은 잘 가꾸어진 정원, 정갈한 식당, 그리고 모범적인 수용자들의 모습뿐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겉모습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정문 위에 새겨져 있었다던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는 문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거대한 기만이라는 것을.
겉으로는 '노동을 통한 재활'을 외치지만, 실상은 강제 노역과 착취의 현장이다. 우리는 하루 15시간 이상,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일한다. 물 새는 동파이프를 만들기 위해 매캐한 연기를 마시고, 옷을 만들고, 새는 물을 공터에 모은다. 지도원들의 매서운 채찍 아래, 노동은 '재활'이 아니라 '고문'이다. 조금이라도 비틀거리면, 즉시 구타가 이어진다.
나는 며칠 전, 폐렴에 걸려 기침을 멈추지 못하던 '강씨 아저씨'를 보았다. 그는 작업장에서 쓰러졌다. 지도원은 그를 병원으로 옮기는 대신, "게으름 피우지 말라"며 몽둥이로 때렸다. 다음 날 아침, 강씨 아저씨는 창고 구석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은 간단히 '병사'로 처리되었다.
아우슈비츠의 학살은 가스실이라는 거대한 장치로 이루어졌다면, 이곳의 학살은 '점진적인 박탈'을 통해 이루어진다. 영양실조, 강제 노역, 폭행, 질병, 그리고 절망.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인간의 존엄성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질식시킨다.
이곳은 인간을 '부랑자'라는 이름으로 비인간화하고, 그들의 생명과 노동력을 착취하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간살상공장이다. 다만, 그 살상의 방식이 좀 더 은밀하고, '복지'라는 달콤한 포장지에 싸여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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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그 키는 소리)그렇다면 대심원에서 원판단의 오류를, 앞서 살펴본 F로 규정하기 위해 사용한 두 가지 논리, 이른바 '해체술'과 '둔갑술'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해체술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대심원은, 위법하지 않고 정당하다는 판단의 근거를 오직 법 제20조만으로 한정하고, 거기에 결합되어야 할 무제 내 훈령 제410호는 그 근거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법 제20조의 적용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왜곡한 것입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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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대심원은 어디까지나 법 제20조가, '정당행위'라는 위법하지 않고 정당하다는 판단의 형식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무제 내 훈령의 존재는 이 형식적 근거에 내용을 채워주는 요소이지만, 행위의 위법성을 궁극적으로 없애주는 규범력은 법 제20조라는 상위 법규에 근거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다시 말해, 무제 내 훈령 자체가 독립적으로 하나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위법하지 않고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기능을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죠(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 Log COURTROOM3 PRESERVATION EXCESS ONLY(보존용으로만 열람할 것4번)
1979년 봄. 신무제복지원. 맑음. 그러나 무감각
지옥에도 일상은 있다. 이것이 내가 이곳에서 배운 가장 섬뜩한 진리다. 매일 아침 5시, 쇠로 된 종소리가 울리면 기상하여, 찬물로 세수를 하고, 곰팡이 핀 밥과 국을 먹는다. 그리고 곧바로 작업장으로 끌려간다. 일하고, 맞고, 잠들고. 이 패턴은 계절이 바뀌어도, 누군가 죽어나가도 변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분노했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폭력은 끊임없이 나의 감정을 깎아내렸다. 마치 둥근 돌이 오랜 시간 강물에 씻기어 마모되듯, 나의 감정은 무뎌지고 평평해졌다. 나는 더 이상 고통에 소리 지르지 않는다. 옆에서 누군가 매를 맞아도, 그저 벽을 응시할 뿐이다.
나는 감정을 포기했다.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곧 취약성을 의미한다. 기쁨은 곧 빼앗길 것이고, 슬픔은 또 다른 매질을 불러올 뿐이다. 나는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나 자신을 무감각한 껍데기로 만들었다. 밥을 먹을 때는 그저 허기를 채우는 행위에 집중한다. 일을 할 때는 그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인다. 나의 생각은 흐릿하고, 나의 눈빛은 초점이 없다.
오늘도 식사 후 작업장으로 향하는 길에 '희준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상호야, 오늘은 점심밥에 콩이 좀 더 많더라." 나는 "응"이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녹슨 동파이프관으로 이뤄진 바닥만 보며 걸었다. 콩이 많든 적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오늘 하루를 또 살아남았다는 사실뿐이다.
체념은 생존의 방식이 되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어제도 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지도원의 눈에 띄지 않고, 덜 맞고, 내게 할당된 몫을 해내는 것만이 나의 일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기계적인 움직임. 나는 스스로를 이곳의 부품처럼 만들었다. 그래야 덜 아프다.
이 지옥의 일상에 적응한 나는, 아마도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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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대심원 여러분. 지금 여러분께서 언급하신 법 제20조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건 단지, 어떤 행동이 무제 내 법에 위반하는지를 정하는, 즉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의 금지성을 풀기 위해, 지금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규칙의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법을 요구하는 '백지 허용규범'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행위의 위법성을 없애, 결국엔 정당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 근거는 그 백지를 채우는 보충 허용규범, 즉 무제 내 훈령과 같은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법입니다.
이 두 가지는 마치 하나의 묶음 단위처럼 서로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허용 규범으로서의 규범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훈령은 법적 근거가 아니"라는 지금의 대심원의 주장은 결합되어야 할 법을 의도적으로 분리해낸 논리적 비약이자, 법 제20조의 적용 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벗어난 근거 없는 억견입니다.
무제 내 훈령의 존재가 빠진 법 제20조만으로는 특수감금의 위법성을 결코 없앨 수 없습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 Log COURTROOM3 PRESERVATION EXCESS ONLY(보존용으로만 열람할 것5번)
배신과 죽음의 새벽. 1980년 가을. 신무제복지원. 비. 뼛속까지 시린 밤.
나는 이곳에서 '태우'를 만났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열여덟 살의 청년. 그는 눈빛이 맑았고, 나처럼 세상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아이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짓밟힌 인간성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처럼 의지했다. 그와의 대화만이 내가 아직 살아있는 인간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는 함께 이 지옥을 벗어날 계획을 세웠다. 작업장에서 일하며 모은 낡은 끈, 몰래 챙겨둔 손톱깎이의 날카로운 부분. 모든 것이 탈출을 위한 도구였다. 우리는 새벽 3시, 순찰이 가장 뜸한 시간에 뒷담의 철조망을 넘기로 약속했다.
밤 10시, 태우는 내게 손짓했다. "꼭 성공하자, 형. 바깥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자."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확신으로 빛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의 시간, 새벽 3시. 냉각상태의 파이프라인에서 한기가 나오고, 심해의 바람은 뼈를 에는 듯했다. 나는 담장 근처의 지정된 장소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철조망 너머의 자유가 손에 잡힐 듯했다. 30분, 1시간... 태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엔 사소한 지연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차가운 공기처럼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결국 혼자서 움직여야 했다. 희미한 달빛 아래, 철조망 아래쪽을 간신히 뜯어내고 몸을 구겨 넣었다. 철조망을 벗어나는 순간, 나는 마치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것처럼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을 들었다. 그리고 곧,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태우가 '창고'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붙잡혔을 때 가는 그곳. 나는 몰래 창고 근처로 접근했다. 굳게 닫힌 문틈 사이로, 나는 태우의 싸늘한 모습을 보았다. 그는 전신이 굵은 밧줄로 묶여 있었고, 온몸은 피멍과 고문의 흔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나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미끼로 던진 것일까.
이 잔혹한 광경 앞에서 나의 체념했던 감정은 한순간에 폭발했다. 비명은 목 안에서 맴돌았고,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분노, 죄책감,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이 나를 덮쳤다. 나와 함께 가기로 했잖아, 태우야! 나의 나약함 때문에, 나의 망설임 때문에, 그는 저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나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 되었다. 나는 살기 위해 도망쳤지만, 이제 그의 시신은 내가 영원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되었다.
나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태우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나는 반드시 살아야 했다. 그의 시신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평생의 짐을 지고 가는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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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그 켜지는소리)(좌중은 다시 시끄러워진다)다음으로, 대심원에서 분리해 낸 무제 내 훈령의 존재를 법 제20조 적용의 전제 '사실' 중 하나로 치환한, 이른바 둔갑술의 문제를 짚겠습니다.
법적용에서 사실 문제(fact)는 법이 적용되어야 할 법의 외적인 실체적 진실을 의미하는 반면, 법률 문제(norm)는 적용될 법률의 해석, 존부, 그리고 효력에 관한 문제입니다.
지금 문제시 되는 무제 내 훈령이 상위법에 저촉되어 무효임을 간과한 것은, 법적용 대상인 감금 '사실'을 오인한 것이 아니라, 적용될 규범 자체의 '효력'에 관한 오인입니다. 지금 대심원은 범주착오의 우愚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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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애당초 저희 대심원이 '전제사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법 제20조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행위를 허용하는 규칙이 유효하게 존재한다'는 객관적 상태가 선행되어야 함을 지적한 것입니다.
여기서 무제 내 훈령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법적 요건이지만, 이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즉 훈령이 무제의 최고법인 무제헌법에 반하여 무효임을 간과한 것은, 단지 유효한 법의 존재라는 전제사실을 잘못 인정한 데 불과합니다.
지금 문제되고 있는 비상재심판요청의 법리에서 말하는 '전제사실'이란, 단지 피고인인 신무제복지원 원장의 피해자 부랑아들에 대한 감금행위뿐만 아니라, 규칙적용에 필요한 모든 선행 요건들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 Log COURTROOM3 PRESERVATION EXCESS ONLY(보존용으로만 열람할 것6번)
도주와 맹세. 1981년 봄. 아폴로 거리 은신처. 흐림.
나는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족쇄와 함께 찾아왔다. 며칠 동안 산과 들을 헤매며 도망쳤다. 배고픔과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내 눈앞에 선명하게 아른거리는 태우의 싸늘한 눈빛이었다.
나는 낡은 오둥삭 같은 곳에 숨어 지낸다. 깡통을 주워 팔아 연명하고, 세상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숨을 쉰다. 나는 이제 '부랑아'가 아니라, '탈주범'이며 '생존자'다.
밤이 되면 태우를 생각한다. "꼭 성공하자, 형. 바깥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자." 그의 마지막 말이 나의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다가 죽었다. 나는 살아남았으니, 태우의 몫까지 살아야 한다. 아니, 단순히 사는 것이 아니라, 태우의 죽음의 이유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지금의 무제위원회의 통치하에서는 진실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을. 신무제복지원은 도시의 '부랑인 정화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운영되었고, 이는 위원회의 치부나 다름없다. 그들이 스스로의 죄를 인정할 리 없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나는 다시 그들의 손에 잡혀 '폐쇄 수용'이라는 이름의 지옥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낡은 공책에 태우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내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와 결의의 쓴물이었다. 억눌러왔던 모든 감정이 터져 나왔다.
나는 맹세한다.
"태우야, 네가 겪은 고통을, 그들이 네게 행한 잔혹함을 내가 반드시 기록할 것이다. 당장 이룰 수 없을지라도, 내가 숨을 쉬는 한 이 진실을 외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숨어 지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도와줄,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는 과거의 찬란한 시절의 법률가들,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양심적인 사람들을 찾을 것이다."
나는 이제 도망자가 아니다. 기록자이며, 증언자이며, 투사다. 언젠가 거짓으로 빚은 복지원이 무너지고, 진실이 숨 쉴 수 있는 시대가 올 때까지, 나는 이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밤, 나는 태우의 혼을 기리며 길을 나선다.
나의 여정은 복수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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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중의 소란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몇몇 관중은 퇴청을 명받고 쫓겨난다)(심호흡하는 소리)대심원에서 주장하시는 '법적용에 필요한 선행 요건'은 규범의 영역에 속하는 '법적 요건'이지, 법적용의 대상인 규범 외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강변합니다. 무효인 훈령을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은 단순히 법적용의 전제 '사실'을 오인한 것이 아닙니다. 이건은 법률의 효력에 관한 판단 자체를 잘못 한 것이며, 명백히 법률 문제의 하자에 속합니다.
이 두 차원이 다른 개념을 대심원은 판단법리 속의 '전제사실'이라는 동일한 용어에 언어적으로 조작하여 포섭하였고, 그렇게 한 결과, 규칙위반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착시 현상을 유발시킨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법률의 효력 문제까지 '사실오인'으로 치환된다면, 법률 문제와 사실 문제의 구별은 무의미해지고, 결국 '무제 내 송사에 관한 시칙 제441조'의 존재의의는 그자체로 몰각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2020년의 대심원이 규칙 위반에 해당하는 사안을 '전제사실 오인'이라는 비상재심판요청의 허용요건을 외부의 사안으로 보아 기각한 것은, 철저한 판단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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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저희가 내린 결론은 '포섭판단의 오류'라기보다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 판단이 수반된 신중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주십시오
비상재심판요청은 어디까지나 규정에 적힌 바와 같이, 규칙 위반에 한정되어야 합니다. 특히 30여 년 전의 확정판결을 뒤집는 것은 무제 내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습니다.
저희는 재판이 '저울'을 가지고 대립하는 가치들의 무게를 저울질하여 균형을 찾는 작업임을 강조하여 왔습니다. 저울의 한쪽에는 피해자들의 실체적 정의가, 다른 한쪽에는 사법 시스템의 안정성과 신뢰가 놓여 있습니다.
실체의 심각성만으로 절차의 저울 한쪽이 기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저희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무제라는 사회의 시스템 구현을 위한, 최고 효율을 고려한 것입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_Log_COLLEGE_OF_LAW_NO.95
(물을 마시며 헛기침을 낸다)대심원 여러분께선 법적 안정성을 방패 삼아 실체적 정의의 실현을 외면하셨습니다. 비상재심판요청 제도는 바로 실체법의 규칙 위반이 문제될 경우, 절차적 이익(법적 안정성)보다는 실체적 정의를 우선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입니다.
말씀하신 "최적의 시스템 효율"이, 아동과 장애인을 부랑인으로 분류하여 강제 수용한 폭력적인 복지원을 무죄로 인정한 판결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뜻인지 몹시 우려스럽습니다.
진실과 정의에는 시효가 없습니다. 규칙 위반을 사실오인으로 덮어버린 채 법적 안정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정의의 칼을 숨기고 저울만 앞세운 위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 Log COURTROOM3 PRESERVATION EXCESS ONLY(보존용으로만 열람할 것7번)
끝나지 않은 여정. 2020년 겨울. 무제 내 대심원 앞. 비.
40년.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숨지 않았다. 태우와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나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증거를 모으고, 흩어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모았다. 수많은 재야의 법률가들과 무제에서 활동한 인권수호세력과 손을 잡았다. 우리는 과거의 위원회 통치 하의 대심원이 '합법'이라 심판했던 신무제복지원 사건을 뒤집고, 새로운 시대의 대심원에 그 책임을 묻고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는, 더 이상 13살의 부랑아가 아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지만, 내 심장 속에는 여전히 태우의 차가운 시신이 묻혀 있다.
우리는 '진실'과 '정의'를 믿었다. 신무제복지원 사건은 명백한 도시의 통치자들이 자행하고 묵인해온 폭력이었으며, 인권 유린이었다. 수많은 죽음과 생존자들의 파괴된 삶이 그 증거였다. 우리는 대심원이 '논리'를 넘어 '인간의 양심'으로 판단할 것이라 기대했다.
오늘, 대심원의 결정문이 나왔다. 우리의 기대는 차가운 '논리'의 벽에 부딪혔다. 대심원은 우리가 제기한 소송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40년 동안 목숨을 걸고 생존해야 했던 우리에게, 무제의 당당한 법은. 마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무너지는 듯했다. 태우의 죽음, 수많은 희생자들의 고통이 이 '법률적 논리'라는 이름 아래 무시당하는가?
하지만, 나는 결정문의 마지막 문단에서 희미한 빛을 보았다.
"이 사건은 국가가 부랑인 단속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이며, 국가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국가 폭력 사태가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
법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지 않았지만, 국가 책임이라는 진실의 씨앗을 인정했다.
우리 앞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대심원의 판결은 '정의'의 문을 닫았지만, '책임'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무제의 위원회를 상대로 개별적인 손해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이 길은 꽃길이 아니다. 40년 전의 폭력은 끝났을지 모르나, 지금은 '법률'이라는 이름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70, 80대의 노인이 되었다. 우리의 생명이 이 기나긴 법정 다툼의 끝까지 남아있을지, 솔직히 알 수 없다. 법의 차가운 논리 앞에서, 우리의 육체는 너무나 연약하다.
나는 태우의 이름을 다시 한번 속으로 외친다. 이 여정의 끝에, 우리가 진정한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무제의 진정한 사과를 받는 날이 오기를. 우리의 싸움은 단순히 돈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기록이자, 인간의 존엄을 위한 마지막 투쟁이다.
우리는 이 가시밭길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신무제복지원의 진실은 숨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은, 살아남은 자들의 마지막 의무이며,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에게 바치는 영원한 진혼곡(鎭魂曲)이다.
Audio_Log_COLLEGE_OF_LAW_NO.97
이 모든 논리적 무리수는 1989년의 대심원이 내린 원판단의 오류가 사실상 대심원 자신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시 과거의 대심원은 두 차례에 걸쳐 환송심에게 무죄 취지로 판결하도록 강요하였고, 결국 원판단은 무죄로 확정되었습니다.
비상재심판신청의 '원천적인 규칙의 위반자'로 비난되어야 할 대상은 환송심이 아니라 대심원 바로 자신입니다. 2020년 현재 대심원의 기각판결은 과거의 중대한 오류를 감추고 무오류주의적 오만을 유지하려는 은폐 시도의 산물에 다름아닙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Audio_Log_COLLEGE_OF_LAW_NO.98
무제 내 사법최고기관으로서, 저희 대심원이 과거 1989년 당시 무제 내 훈령의 위헌무효성을 알지 못했음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오류를 은폐하려는 것으로 이해해선 곤란합니다.
비상재심판요청 제도를 통해, 종래 대심원이 구축해온 확정판결을 파기하면 무제 내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 문제가 대두될 수 있으며, 사법부의 판단까지 무제 내 도시책임의 범주에 들어오게 될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저희가 판결문에서 신무제복지원 사건의 본질이 당시 무제위원회의 묵인·비호에 의한 인간의 존엄성 침해임을 명확히 한 것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장차 민사적 손해배상에 유리한 근거를 마련해 주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미리 정해진 결론을 위해 논거를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법적 변수들을 숙고한 끝에 현행 법리와 제도의 한계 내에서 최선이라고 판단한 기관적 책임의 발로입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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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쉬며)대심원의 '국가 책임 인정'이라는 달콤한 약속은 비상재심판요청 기각이라는 쓴 결론을 덮으려는 눈가림용에 불과하며, 결국은 핵심 논점을 흐린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형사재판의 심판 대상은 원판단에 규칙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이지, 피해 회복의 미래적 희망이 아닙니다. 대심원 여러분께서는 자신의 오류를 '법률의 이익'이 아닌 '대심원의 권위와 이익'에 복무함으로써, 신무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생명, 신체, 자유를 또 한 번 헌신짝처럼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는 '법령 위반'을 '사실 오인'으로 뒤바꾸는 새로운 오류를 추가한 것으로, 사법 정의의 원칙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REFERENCE
이미지제작 및 도구툴 : Google Gemini Bana
프롬프트 작성 및 수정: 소는영
빅터 프랑클(Viktor Frankl),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 1964
프리모 레비(Primo Levi),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è un uomo)》, 1945
김성돈,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적 소고》, 형사법연구 제33권 제2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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