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 그리고 영탄] 제12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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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펴는 소리)(책상의 앞에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전신거울도 펼쳐져 있다)이번에는 '지상'에서의 역사를 보죠. 제2차 세계대전, 특히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절멸수용소의 참상은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윤리학에 근원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선(善)과 악(惡)의 명확한 이분법적 구분이 작동하지 않는 절대 악의 구조 앞에서, 희생과 가해의 경계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뒤섞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윤리적 파국의 현상학을 가장 냉철하고 엄밀하게 해부한 개념이 바로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에서 정식화한 ‘회색지대'입니다.
오늘 시간에는, 레비가 제시한 회색지대 개념을 단순히 역사적 혹은 윤리적 ‘모호성’의 영역으로 파악하는 것을 넘어, 전체주의적 권력이 소외된 소수자 집단을 내부로부터 해체하기 위해 고안한 구조적 ‘소외 기술Technique of Alienation’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특히 회색지대의 작동 원리를 통해 소외된 이들이 어떻게 강제적인 ‘오염Contamination’의 주체로 전락하며, 이 과정에서 그들의 윤리적 주체성이 어떻게 청산되는지 논증하겠습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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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가다듬으며)존댓말은 아무래도 불편한 것 같아. 평소처럼 녹음하는 게 편하겠는 걸. (헛기침하는 소리)(휴지뽑는 소리)레비는 회색지대를 '주인과 노예의 두 진영을 나누고 연결하는' 윤곽이 불분명한 범주이자 구조로 정의했다. 이는 소외된 소수자가 극한의 생존 투쟁 속에서 권력의 하위 기능자로 포섭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생태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선택 없는 선택’을 강제하며, 희생자들에게 죄의 짐을 전가함으로써 그들의 내면에서 순수한 무죄의 안도감마저 제거하려는 나치의 악마적인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었다.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오늘은, 나는, 회색지대가 작동하는 세부 메커니즘, 즉 ‘특권 포로’와‘수감자-관리자’로 구현되는 강제적 위계질서를 해부하고, 나아가 특공대(Sonderkommando)와 룸코프스키(Rumkowski)로 상징되는 ‘오염된 주체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회색지대의 논리가 오늘날 '무제' 내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외와 무관심의 형태로 어떻게 잔존하며, 소수자의 실존에 어떤 위협을 가하는지 성찰하고자 한다. 추후에는 레비가 남긴 ‘판단 불능impotentia judicandi’의 역설적 과제를 성찰적 행동의 윤리로 재정립할 것이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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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그 켜는 소리)(삐걱대는 소리)레비의 회색지대론은 나치즘이 제시한 ‘절대선(아리아인) 대 절대 악(유대인)’이라는 극단적인 흑백 논리를 대전제로 하여, 그 중간에 점층적인 위계질서를 인위적으로 설정한 권력의 정교한 기술이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모호함이 자연 발생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의지에 의해 계획적으로 설계된 사회공학적 구조임을 의미한다. 이 구조는 소외된 소수자 집단의 윤리적 일관성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세 가지 핵심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하나씩 설명하겠다.
첫번째, 회색지대를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은 ‘특권protekcja’의 필연성이다. 레비는 수용소 내에서 특권 포로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생존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굶주림과 질병 앞에서 추가적인 식량과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획득하는 것은 명예나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생사(生死)가 걸린 생존의 환원주의(Reductionism of Survival) 문제였던 것이다.
소외된 소수자였던 그들에게는 ‘특권’은 본질적으로 불의한 체제에의 자발적인 협조가 아닌, 체제에 의한 강제적 종속을 의미한다. 생존 자체가 윤리적 가치에 선행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부당한 특권을 쟁취하거나 받아들여야 했으며, 이 행위는 그들을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 구조의 협조자라는 모순된 지위에 놓이게 했다. 이 구조는 소수자들에게 ‘나는 살아남았지만, 그들은 가라앉았다’는 생존자의 부채 의식을 내면화함으로써, 그들을 외부 권력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시키는 이중적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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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이 다시 시끄러워진다)두번째, 회색지대의 핵심적 물리적 구현체는 레비가 ‘아우슈비츠의 골간(骨幹)’이라 표현한 ‘수감자-관리자’ 범주이다. 이들은 수감(수동태)과 관리(능동태)라는 형용모순을 동시에 체현하며, 윤리 없는 윤리(gray-zoned ethic)를 실행했다. 그들은 단지, 죽 0.5리터를 더 얻기 위해 동료들을 감시하고 착취하는 ‘하위관리자’부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대장들Kapos’에 이르기까지 나치 체제의 전체주의적 권력 구조를 수용소 바닥에서 복제했다.
레비의 분석에서 중요한 건, 이들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희생자라는 이중성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이 이들을 통해 '죄의 짐burden of guilt'을 희생자들에게 전가하려는 의도가 핵심이었다. 소수자를 동족의 파괴에 연루시킴으로써, 나치는 희생자들이 가질 수 있는 ‘나는 무죄다’라는 안도감마저 제거하고 그들을 ‘공범’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소수자의 윤리적 주체성을 완전히 말살하고, 외부 권력에 대한 저항 의지를 내부적 갈등으로 대체시키는 극히 악마적이고 자기파괴적인 권력 기술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회색지대 개념은 소외된 소수자가 짊어져야 했던 실존적 무게를 두 가지 극단적인 사례, 즉 특공대와 우쯔(Lodz) 게토의 제왕 룸코프스키를 통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단순한 협조자가 아니라, 권력의 폭력적인 ‘타자화Othering’ 기술이 빚어낸 ‘환원 불가능한 모순’ 그 자체였다. (밥솥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밥시간인가? 저녁을 먹고 난 후 마저 말하겠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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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그 켜는 소리)(방 안에 백색소음이 커져온다)계속 이어 말하겠다. 두개 중 첫번째, 특공대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과 소각로 운영을 전담한 유대인 조직이었다. 레비는 이들이 "인간의 인간성 내지 인간다움을 근원적으로 묻는 계기"라고 지적한다. 특공대의 임무는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타살(murder)과 자살(suicide)을 동시에 실행하는 나치체제의 자기파괴 논리를 체현한다고 설명하였다.
소수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실존은 ‘죄의 짐을 전가받은 자’로서의 극한적 소외를 의미한다. 이들은 물리적 생존을 위해 동족의 주검을 다뤄야 했으며, 이 행위는 도덕적 오염을 강제함으로써 그들을 ‘더 이상 타인종, 반(反)인종이 아니’라 나치와 ‘함께 바닥으로 끌려 내려간’ 존재로 규정했다. 특공대는 권력이 소수자에게 부여한, 이른바 [내면화된 가해성]의 상징이다. 그들은 외부의 폭력뿐만 아니라, ‘동족을 팔아 생존했다’는 내면의 폭력으로부터도 소외되는 이중 구속double bind 상태에 놓이게 된다.
두개 중 두번째, 우쯔 게토의 유대인 평의회 의장Judenältester 룸코프스키는 회색지대의 또 다른 극단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나치 체제에 대한 반역자이자 부역자, 유대인의 구원자이자 독재자라는 양립 불가능한 대립항을 한 몸에 체화한 모순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의 사례는 소외된 소수자가 처한 상황이 개인의 선악 판단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나치가 조성한 게토라는 특수한 정치적 생태 환경이 아니었다면 결코 태어날 수 없는 ‘괴물’이었으며, 그의 행위는 게토라는 ‘식민지’ 구조 내에서 나치 권력의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에 가까웠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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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그 키는 소리)소수자 내부의 리더가 되는 순간, 그는 외부 권력의 폭력을 내부적으로 복제하는 ‘내부 식민화’의 도구로 전락한다. 룸코프스키는 생존을 위한 기민함과 동족에 대한 잔혹함을 동시에 발휘해야 했으며, 이는 소수자 집단이 스스로의 윤리적 질서를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고, 내부에서조차 타자화와 소외를 재생산하도록 강요당했음을 의미한다. 레비가 그에 대한 판단을 유예한 것은, 그의 행위를 낳은 ‘베일 뒤의 권력’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회색지대가 소수자의 주체성을 오염시키는 구조적 메커니즘이라면, 레비의 작업은 이 메커니즘을 해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윤리적 판단의 문제로 나아간다. 레비는 특공대와 룸코프스키에 대한 사법상의 판단불능을 실토하면서도, 이 불가능성이 곧 성찰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어떻게 역설한 것일까? 우선, 레비가 회색지대에 놓인 이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끝내 유예한 것은 그들의 처지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우슈비츠의 극단적인 환경은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 규범을 초월하며, 정상적인 삶의 잣대로 그들의 행위를 재단하는 것은 곧 그들의 비극적 실존을 단순화하고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정지(判斷停止)는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완전한 생각 없음sheer thoughtlessness에서 악의 상투성(이른바, 반성능력을 상실한 것)을 도출하고 최종적으로 단죄에 이르는 사법적 충동과 뚜렷이 대비된다.
판단불능을 실토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회색지대의 '뿌리'인 전체주의적 권력의 창궐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물음에, 레비는 "판단의 유예는 윤리적 성찰의 깊이를 확장하기 위한 방법론적 선택인 것"이라 답한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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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바닷물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고래가 쌍을 만나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레비의 회색지대론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그럼에도’라는 단서에 담긴 지적 긴장이다. 판단이 불가피하게 정지되는 사례들을 분석하면서도, 레비는 회색지대 자체를 더 숙고해야 할 과제로 남겼기 때문이다. “판단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성찰해야 한다는 ‘의지’ 사이의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자세를 요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긴장은 소외된 소수자의 입장에서 두 가지 윤리적 성찰로 전환된다. 첫째, 자신의 ‘오염된’ 주체성을 끊임없이 성찰하여, 그것이 외부 권력에 의해 강제된 구조적 폭력의 결과임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개인의 도덕적 파산으로 환원되지 않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문제’를 직시하고, 그 구조의 복제와 강화를 경계하는 정치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결국 회색지대를 성찰하는 것은, 순수한 희생자의 지위가 박탈된 소외된 소수자가 그들의 비극적 실존을 통해 전체주의적 권력의 본질을 폭로하고, 새로운 야만의 도래 가능성에 대비하는 성찰적 행동의 단초를 발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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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그 키는 소리)슬슬 잘 시간인가. 하품도 나오고 있다. 마무리 짓고 침대에 일찍 누워볼까한다. (헛기침나오는 소리)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발생한 회색지대가 그 특수한 현실을 넘어, “우리는 모두 게토 안에 있고 게토로 담이 둘러쳐져 있으며, 그 바깥에는 죽음의 군주들이 버티고 있고 멀지 않은 곳에는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문장은 회색지대의 논리가 역사적 사건을 넘어 근대 민주주의의 취약한 고리 속에 편재하는 구조적 소외의 현재성을 역설한다.
오늘날 회색지대의 논리는 관료주의적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정상화된다. 레비가 아이히만에게서, 한나 아렌트와는 달리 차가운 광신도icy fanatic의 면모를 읽었듯이, 악의 구조화는 개인의 악의가 아닌 비인간적인 효율성과 규범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통해 작동한다. 소수자의 입장에서는, 회색지대는 정책 결정이나 행정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각 없음thoughtlessness의 정치적 근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적극적인 적개심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치명적이다. 특정한 소수 집단의 고통과 절박함이 제도적 무관심과 표준화된 절차 속에서 행정적 처리administrative processing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 수용소의 ‘운영체제’가 현대 사회에 복제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소외된 이들은 자신의 실존적 위기가 상투적(常套的)인 절차에 의해 소멸되는 이중의 폭력에 직면한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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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 가는 소리)(흑동고래의 울음소리가 방안까지 전해진다)레비의 회색지대론은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에 전체주의의 씨앗이 내재할 수 있으며, 시민들이 위임한 권력이 체제를 막론하고 오용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특이사항은, 바로 이 소외된 소수자들은 민주주의의 약한 고리들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회색지대를 성찰하는 것은 소수자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부여한다. 단순히 피해를 주장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체제 내부의 윤리적 틈새와 구조적 소외를 끊임없이 폭로하는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이는 전체주의가 ‘똑같음’을 강요하며 창발적 사유를 적대시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결국 소수자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도덕적 능력을 상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 [배려와 보살핌으로서의 사유thought as care]를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소수자의 실존이 단순한 윤리적 딜레마가 아닌, 민주주의의 정치적 성숙도를 측정하는 기준임을 시사한다.
정리하자면, 프리모 레비가 제시한 회색지대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넘어, 권력이 소외된 소수자의 주체성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해체하고 오염시키는가에 대한 범시대적 성찰의 틀을 제공한다. 회색지대는 단순한 모호함이 아닌, 권력의 정교한 소외 기술이자, 순수한 희생자의 지위를 강제적으로 청산하고 그 짐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죄의 외주화Outsourcing of Guilt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 이곳 '무제'에서의 소외와 무관심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가는 모든 소수자에게 윤리적 감수성의 재무장을 요구한다. 레비는 판단의 몫을 유예함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에게 판단 불능을 성찰해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권력의 자기파괴적 윤리 앞에서 지성적 용기를 잃지 않고, 일체의 지적 태만과 상투성에 맞서 비판적 사유의 전범을 지켜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우리가 회색지대라는 거울을 통해 소외된 소수자의 실존적 무게를 직시할 때, 비로소 전체주의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민주주의 내부의 ‘곰팡이’와 같은 악을 발견하고 제어할 수 있는 성찰적 윤리를 확립하게 될 것이다. 이는, '무제' 내 지식인과 소외된 이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현재진행형의 정치적 임무이다.(오디오로그 끄는 소리)
REFERENCE
이미지제작 및 수정 : Google Gemini Bana
프롬프트 작성 및 전체적 퇴고 : 소는영
유희석, 《프리모 레비와 한나 아렌트 — ‘회색지대’와 ‘악의 상투성’에 관하여》,인문논총 제77권 제1호, 2020
김용우,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회색지대”》, 역사와 담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