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12화
입법자의 행위, 즉 입법(Gesetzgebung)은 헌법 제40조가 천명하는 바와 같이 국회의 고유한 권한이며, 그 본질은 주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는 고도의 ‘정치적 결정’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입법행위의 정치적 본질은, 입법이 행정이나 사법과 달리 법률을 집행(Gesetzesvollzug)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통적으로 입법자를 사법적 통제, 특히 입법행위의 결과에 대한 ‘국가배상책임(Staatshaftung)’의 영역에서 면책시키는 핵심적인 논거로 기능하였다. 입법형성의 자유라는 이름 하에 입법자의 재량은 광범위하게 인정되었으며, 그 재량의 행사에 대한 책임 추궁은 법률적 책임이 아닌 다음 선거를 통한 정치적 책임의 문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현대 법치국가(Rechtsstaat)의 헌법질서 하에서 입법자 역시 헌법에 기속되며, 헌법 제10조가 규정하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는 모든 국가기관, 특히 입법자에게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구체화할 적극적 의무를 부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입법자는 더 이상 무한한 재량을 향유하는 '권한보유자'에 머무르지 않으며, 헌법적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 이행자'로서의 지위를 병존적으로 갖게 된다. 헌법재판소가 입법자의 법률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는 것은, 입법자가 이러한 헌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음에 대한 사법적 확인이다.
본고의 목적은, 이처럼 이중적 지위를 가지는 입법자의 입법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즉 ‘입법책임’의 성립 가능성을 탐구함에 있어, 그 핵심 요건인 ‘위법성(Rechtswidrigkeit)’을 판단하기 위한 ‘논리적 전단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입법자의 광범위한 형성권으로 인해 위법성 판단이 극도로 어려운 입법 영역에서, 어떠한 기준과 방법론을 통해 입법자의 '구체적 헌법적 의무' 위반을 확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본 연구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본고는 세 가지 핵심 논증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전개한다.
첫째, 배중화가 제시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 법리를 원용하여, 입법행위가 '정치적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불확정 개념’이나 ‘사회적 기본권'을 구체화하는 영역에서는 예외적으로 입법자에게 ‘이유제시의무(Begründungspflicht)’가 부과됨을 밝힌다. 이는 입법자의 재량을 ‘사전적 절차적 의무’로 통제하는 기제로서 기능한다.
둘째, 이계정이 제시한 법률해석 방법론을 바탕으로, 헌법적 요청에 따라 입법자가 제시한 ‘이유’가 법률해석 과정에서 법관의 자의성을 배제하고 ‘입법자의 주관적 의도’를 확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입법자료’로 기능함을 논증한다. 이는 ‘주관적 해석이론(subjektive Auslegungstheorie)’ 및 ‘목적론적 해석(teleologische Auslegung)’을 강화하는 동시에, 가다머(Gadamer)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에 기반한 해석자의 비판적 접근 가능성 및 그 한계를 재구성한다.
셋째, 최윤철의 논의를 중심으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입법자를 ‘헌법적 의무 이행자’로 명확히 규정하며, ‘헌법적 상태의 회복(’을 위한 ‘사후적 개선입법의무’를 도출함을 밝힌다.
최종적으로 본고는 입법자의 '사전적 이유제시의무'와 '사후적 개선입법의무'라는 이중적 헌법적 의무의 불이행(Pflichtverletzung)이야말로, 입법자의 '위법성'을 구성하는 핵심 논거가 될 수 있음을 시론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입법자의 헌법적 의무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입법행위의 본질을 규명해야 한다. 법치주의원리에 따라 모든 국가기관의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야 하지만, 행위의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정당화의 방식은 상이하다. 행정행위(Verwaltungsakt)와 사법행위(Justizakt)는 상위 규범, 즉 법률을 집행하는 행위로서, 행정절차법 제23조나 민사소송법 제208조 등에서 명시하듯이 구체적인 '이유제시의무'를 부담한다.
반면, 입법행위는 헌법의 집행이라기보다는 헌법의 윤곽 안에서 이루어지는 1차적인 가치판단이자 ‘정치적 결정’이다. 입법자는 헌법이 설정한 ‘윤곽규범(Rahmenordnung)’ 내에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향유한다. 이러한 입법행위의 본질상, 입법자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입법 결과물에 대해 행정이나 사법과 동일한 수준의 ‘이유를 제시할 일반적 의무(allgemeine Begründungspflicht)’를 부담하지 않는다. 입법자는 법률 그 자체로서 말할 뿐이며, 그에 대한 책임은 헌법재판소의 규범통제와 주권자의 정치적 심판을 통해 사후적으로 담보될 뿐이다.
이러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특정한 헌법적 과제를 이행하는 입법자에게 예외적으로 고도의 ‘설명의무’ 내지 ‘이유제시의무(Begründungspflicht)’를 부과하는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 이는 입법자의 형성권이 헌법적 명령과 충돌하거나 그 한계가 불분명한 영역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예외적 의무는 헌법적 심사기준(verfassungsrechtlicher Maßstab) 자체가 ‘불확정 개념(unbestimmter Begriff)’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헌법적 의무의 이행 기준이 불명확한 경우에 발생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다음의 세 가지 유형의 사안에서 이러한 의무를 구체화하였다.
첫째, 국가채무(Staatsschulden) 영역이다. 개정 전 독일 기본법(Grundgesetz) 제115조의 예외 조항인 ‘전체경제적 균형의 장애’라는 불확정개념의 충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예산입법자에게 그 근거를 설명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BVerfGE 79, 311).
둘째, 사회적 기본권(soziale Grundrechte) 영역, 특히 ‘최저생계비’의 보장 문제이다. 이른바 ‘하르츠 IV (Hartz IV)’ 판결(BVerfGE 125, 175)에서 헌법재판소는 입법자가 산정한 최저생계비의 적정 수준 자체를 직접 판단하는 대신, 그 급부 수준을 도출한 산정 과정이 헌법적 요청(인간 존엄성 보장)에 부합하는지, 즉 ‘신뢰할 수 있는 숫자(verlässliche Zahlen)’와 ‘신뢰성 있는 산정과정(nachvollziehbares Berechnungsverfahren)’에 근거하였는지를 입법자가 입증하도록 요구하였다.
셋째, 역시 사회적 기본권의 일환인 공무원의 ‘부양의 원칙(Alimentationsprinzip)’ 영역이다.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의 보수가 헌법상 보장된 부양의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입법자에게 그 보수 책정의 근거와 기준을 설명하도록 하였다 (BVerfGE 130, 263).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이러한 법리는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헌법적 통제를 관철하기 위한 고도의 법기술(juristische Technik)을 보여준다. 즉, 헌법재판소가 입법자의 실체적 판단(예를 들면, "최저생계비 50만 유로는 적정한가?")을 직접 심사하여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에 이르는 ‘절차’ 및 ‘방법’(예를 들면, "50만 유로라는 수치를 어떠한 통계와 산정 방식을 통해 합리적으로 도출하였는가?")의 합헌성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절차적 통제’의 핵심이다. 헌법적 기준이 불명확하여 헌법재판소가 실체적 위헌을 선언하기 어려운 경우, 헌법재판소는 실체적 판단을 우회하는 대신, 입법자가 헌법적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의 합리성(Rationalität)과 투명성(Transparenz)을 요구한다. 하르츠 IV 판결에서 급부 수준이 '명백히 불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산정절차' 자체의 흠결만으로 헌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판시한 점이 이를 명확히 뒷받침한다.
결국, 예외적 이유제시의무는 불확정적인 헌법적 명령(예를 들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을 구체화해야 하는 입법자의 재량을 ‘절차적’으로 구속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임무와 입법부의 ‘형성권 존중’을 조화시키는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입법자에게 헌법적으로 이유제시의무가 부과된다면, 그 의무의 이행 산물인 '이유'는 법률해석 과정에서 결정적인 방법론적 지위를 점하게 된다. 법률해석의 고전적 기준 중 ‘역사적 해석(historische Auslegung)’은 법률 제정 당시 입법자의 의도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때 '입법자의 의사'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지가 해석론의 핵심 쟁점이 된다. 이계정이 지적하듯이, '입법자의 의사'를 합리적인 입법자가 가졌을 법한 의도, 즉 '법의 목적'과 유사한 ‘객관화된 의도(objektivierter Wille)’로 파악할 경우, 이는 사실상 해석자인 법관의 자의적 결론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고 입법부 우위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입법자가 입법 당시에 가졌던 ‘진정한 의사’, 즉 ‘주관적 의도(subjektive Wille)’를 탐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때 입법자의 '주관적 의도'는 필연적으로 입법 과정에서 산출된 ‘입법연혁’, 즉 ‘입법자료’(위원회 보고서, 의사록 등)를 통해 탐구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입법자료가 입법자의 '주관적 의도'를 동등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난점이 발생한다. 이계정은 대법원 2021. 9. 9. 선고 2017두45933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이 문제를 제기한다. 해당 판결은 산재보험법상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 전환 여부가 쟁점이 된 사안에서, 증명책임 전환의 취지가 기재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검토보고서'가 입법자의 의사를 반영한 자료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 핵심 논거는, 판례 변경과 같은 중대한 사항을 결정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판례의 폐해'나 '판례 변경 시 예상되는 부작용이나 효과'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수반되지 않았다면, 해당 입법자료를 입법자의 진정한 의사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판결은 입법자료의 '선별' 문제를 명확히 드러낸다. 즉, 법원은 단순한 '자료의 존재'를 넘어, 그 자료가 입법자의 '숙의의 질'을 반영하고 '성공적으로 해당 법률 문언의 성안으로 이어진' 자료인지를 실질적으로 심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배중화가 논의한 '이유제시의무'가 이계정이 제기한 '법률해석론의 난점' 을 해결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배중화가 말하는 '이유제시의무'는 법률안 제안 시 첨부되는 일반적인 '제안이유'가 아니라, 헌법적 기준이 불명확한 영역에서 '최종적으로 의결되는 법안'에 대해 헌법적으로 부과되는 '설명의무'이다. 따라서 헌법적 요청에 따라 입법자가 제시한 '이유'는, 입법자료 중 가장 '성공적'이고 '숙의의 질'이 헌법적으로 담보된, 입법자의 '주관적 의도'를 확정하는 제1차적이고 가장 권위 있는 자료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이처럼 헌법적으로 요청된 '이유'는 법률해석에 있어 두 가지 고전적 해석론을 결정적으로 강화한다. 첫째, 입법자가 스스로 헌법적 기준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명시적으로 밝히므로 ‘주관적 해석이론(subjektive Auslegungstheorie)’의 가장 객관적인 근거가 된다. 둘째, 입법자가 해당 법률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헌법적 과제를 명시하므로 ‘목적론적 해석’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물론, 입법자의 '주관적 의도'가 확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해석자인 법관을 절대적으로 구속하는지에 대해서는 방법론적 반론이 제기된다. 이계정이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을 원용하여 설득력 있게 제시하듯이, 법해석은 '과거의 입법자'와 '현재의 해석자(법관)' 사이의 '대화'이자 ‘지평의 융합(Horizontverschmelzung)’ 과정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관점에서, 입법자의 '주관적 의도'는 해석의 출발점일 뿐, 해석자(법관)를 절대적으로 ‘구속하지는 않는다(bindet nicht)’. 법관은 '현재의 지평'(변화된 사회 현실, 가치관 등)에 의해 과거 입법자의 의사를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수정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가다머의 원칙 역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이계정이 전제하는 '비구속성'은 일반적인 입법연혁(예를 들면, 상임위 회의록)을 대상으로 할 때 타당하다. 하지만 배중화가 논의한 '이유제시의무'의 산물인 '이유'는 단순한 '과거의 텍스트(historischer Text)'가 아니다. 이는 입법 당시에 이미 헌법적 통제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헌법적 의무'의 이행 산물로서, 법률 텍스트 자체에 준하는 '규범적 구성요소'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법관이 이 '헌법적으로 제시된 이유'를 이탈하여 '현재의 지평'을 적용하고자 할 때는, 단순한 입법연혁을 무시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중된 ‘논증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입법자의 '이유제시'는 이처럼 법관의 해석학적 지평에 강력한 '규범적 중력(normative Gravitation)'을 발휘하여, 해석의 객관성과 헌법적합성을 동시에 담보하게 된다.
입법자의 헌법적 의무는 입법 과정에서의 '사전적 의무'로만 그치지 않는다. 최윤철이 강조하듯이, 입법자는 헌법 제10조(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무)와 제37조 제2항(기본권 제한의 한계) 등에 근거하여 '적극적 입법의무'를 부담하는 ‘의무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입법은 단순한 권한 행사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헌법적 과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헌법은 입법자에게 행위의 지침이자 한계인 ‘행위규범(Verhaltensnorm)’으로 작용하며, 헌법재판소에게는 입법자의 행위가 그 한계를 준수했는지를 판단하는 ‘재판규범(Kontrollnorm)’으로 작용한다.
입법자가 이러한 헌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헌법재판소는 규범통제를 통해 개입한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입법자가 ‘헌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음’에 대한 사법적 확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결정 형태는 ‘변형결정’, 그중에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해당 법률이 ‘실질적으로 위헌’임을 선언하면서도, 그 법률의 즉각적인 효력 상실로 인한 ‘법적 공백’이나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단순 위헌결정’을 유보하고 입법자에게 그 시정을 명하는 결정이다.
이 결정은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1항에 따라 모든 국가기관, 특히 입법자를 ‘기속’한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입법자의 입법권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갖지만, 그 실질은 헌법재판소가 입법자에게 헌법적 의무 불이행 상태를 시정하라고 명령하는, 가장 강력한 형태의 사법적 개입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의 기속력은 입법자에게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고 ‘합헌적 상태를 회복’해야 할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입법의무’를 부과한다. 이는 입법자가 재량을 가지는 일반적인 입법의무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그 이행이 강제되는 ‘사후적 개선입법의무(ex-post-Verbesserungspflicht)’이다.
헌법재판소는 동성동본 금혼 규정(헌재 1997. 7. 16. 95헌가6) 이나 재산세 과세표준(헌재 2004. 1. 29. 2002헌바40)사례에서처럼, 입법자에게 '개선 시한'을 명시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이 의무의 이행을 더욱 강력하게 강제한다. 만약 입법자가 이 시한을 도과하는 경우, 해당 법률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개선입법의무는 최윤철이 언급한 ‘입법촉구결정(Appellentscheidung)’과도 연관된다. ‘입법촉구’는 사형제 합헌 결정 처럼 합헌결정에 부수되기도 하지만, 헌법불합치 결정과 병행될 경우(예를 들면, '조속한 시일 내에 개선할 것을 촉구한다'), 입법자의 ‘사후적 개선입법의무’가 단순한 정치적 재량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기속력에 의해 강제되는 '법적 의무'임을 확인하는 강력한 논거가 된다.
본고는 입법자의 국가배상책임(Staatshaftung)을 구성하기 위한 '위법성' 판단의 논리적 전제를 구축하기 위해, 입법자의 '구체적 헌법적 의무'를 확정하는 과정을 탐구하였다. 본 논증을 통해 입법자의 '헌법적 의무'는 다음과 같은 '이중적 구조'로 체계화될 수 있다.
입법자의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한 핵심 요건은 입법행위의 '위법성'이다. 전통적으로 입법자의 광범위한 '정치적 재량(politisches Ermessen)' 영역으로 간주되어 위법성 판단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역에서, 본고가 정립한 두 가지 '구체적 헌법적 의무'는 위법성 판단의 명확한 시금석을 제공한다.
'사전적 이유제시의무'의 불이행(예를 들면, 신뢰할 만한 통계나 합리적 산정 과정 없이 최저생계비를 자의적으로 산정하는 행위) 또는 '사후적 개선입법의무'의 불이행(예를 들면, 헌법재판소가 부여한 개선 시한 내에 헌법불합치 법률을 개정하지 않는 입법부작위) 은, 더 이상 입법자의 '정치적 재량' 영역에 속하지 않으며, '구체적 헌법적 의무'의 명백한 '위반'을 구성한다.
입법자의 '이유제시의무' 는 입법과정의 '절차적 위법성'을 구성하는 동시에, 그 이유의 부재나 불충분함은 실체적 합헌성의 입증 실패를 추단하게 한다. 나아가 '개선입법의무' 의 불이행은 헌법재판소의 기속력 있는 결정을 위반한 명백한 '실체적 위법성'을 구성한다.
이처럼 본고가 제시한 '사전적·절차적 의무'와 '사후적·교정적 의무'의 위반을 확정하는 것은, 향후 입법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의 '위법성' 요건을 충족시키는 핵심적인 ‘논리적 전단계’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제언한다. 이는 입법자의 '정치적 결정'을 '헌법적 의무'의 영역으로 포섭하고, 입법책임을 법적으로 구성하는 결정적 논거가 될 것이다.
배중화, 《입법자의 이유제시의무》, 한국헌법학회, 『헌법학연구』제29권 제2호, 2023. 6., 373-396면
최윤철,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입법자의 대응》, 한국헌법학회, 『헌법학연구』제18권 제3호, 2012. 6., 205-247면
이계정, 《입법자의 의사와 법률해석의 문제》,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서울대학교法學』제63권 제4호, 2022. 12., 121-1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