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35화
법학방법론적 관점에서, 작금의 법이론과 법실무는이율배반적 특성을 노정(路程)하고 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특성은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이라는 법이념의 조화라는 고전적 난제를 넘어, 법학방법론 자체의 근본적인 혼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데, 현재로선 크게 두 가지 극단이 존재한다.
첫 번째 극단은, 문제가 된 법적 사태에 대하여 적용 가능한 해당 법규정이 명확히 존재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우리의 법해석학과 판례는 지나칠 정도로 법조문의 문구 자체에만 매달려, 그 배후에 있는 법원리나 현실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법률의 문언을 논리적 연역의 대전제로 삼아 기계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사유방식, 즉 형식주의(Formalismus)적 해석 경향으로 규정될 수 있다. 법관을 법률에 엄격히 구속시킴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법실증주의의 본래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러한 태도는 법해석을 단순한 문리적-논리적 조작으로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두 번째 극단은,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에서 발생한다. 즉, 해당 사안에 직접 적용할 법조문이 부재하거나, 존재하더라도 그 의미가 불명확하여 해석의 여지가 큰 경우이다. 이러한 법의 흠결(Lücke)이나 불확정성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우리의 법이론과 실무는 놀랍게도 형식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구체적인 법원리의 탐구나 체계적 해석 대신,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기대가능성과 같은 불확정개념(unbestimmte Begriffe) 혹은 일반조항(Generalklauseln)을 통해, 추상적이고 미분화(undifferentiated)된 일상도덕의 관념들을 법 영역 안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요컨대, 한국 현행 법해석학의 특징은 법규의 존재 여부에 따라 극단적인 태도 변화를 보인다는 점에 있다. 법조문이 명확히 존재하는 경우에는 19세기 독일의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z)적 사유형태가 지배적인 반면, 법조문이 존재하지 않거나 불명확한 경우에는 구체적인 법적논증을 포기하고 추상적인 도덕률로 피신하는, 이른바 일반조항에로의 도피 현상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법학방법론에 나타난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그 핵심 이념으로 하는 오늘날의 법치국가적 관점에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법적 결정이 법률에 내재한 법원리의 구체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법론적 요청에 비추어 볼 때,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경향은 각각 상이한 방식으로 법치국가의 근간을 훼손하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초래한다.
첫번째, 법조문의 형식논리적인 해석에만 지향하는 이론과 실무는 법적 판단의 실질적인 기초가 되어야 할 법현실(Rechtswirklichkeit)을 도외시하게 된다.
판결의 정당성은 개별적인 사태 안에서 발견되는 구체적인 규범적 타당성에 근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형식주의적 태도는 정당성의 척도를 내용적 타당성이 아닌 외적-형식적 기준에 머물게 한다. 예컨대 판결이 법조문에 논리적으로 부합하는지 여부에만 의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법을 현실과 유리된 형해화된 규범으로 전락시켜, 법의 현실 적합성을 상실케 함으로써 오히려 법적 안정성의 실질적 기반을 약화시킨다.
두번째, 일반조항 등에 의한 판단방식은 법적 분쟁의 해결이라는 사법(司法)의 본질을 "도덕적인 판단"으로 변질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법적 분쟁은 세분화되고 구체화된 법해석학의 기준과 논증에 의해 해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이나 '사회상규'와 같은 추상적 개념에 의존하는 판단은 결국 법관의 주관적 가치판단이나 일상도덕의 척도, 심지어는 여론재판의 형태로 귀결될 위험도 크다.
이는 법적 예측가능성을 현저히 저해하며, 법관의 자의(Willkür)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들어 법적 안정성의 형식적 기반을 파괴한다.
이러한 두 현상은 일견 상반되는 방법론적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동일한 가치를 양극단에서 훼손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형식주의는 경직성을 통해 법의 현실 적합성을 상실시켜 안정성의 내용적 기반을 훼손하는 반면,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는 모호성을 통해 법적 예측가능성을 파괴하여 안정성의 형식적 기반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현상은 법학이 직면한 법적 안정성의 총체적 위기를 드러내는 징표이다. 어째서 이율배반적 현상이 드러나는 것일까.
양천수의 논문에 의하면, 그러한 근본원인은 서구법에서, 특히 독일법의 계수(Rezeption)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법이 전제로 하는 생활사실과 법문화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계수 과정에서 법이론의 배경이 되는 문화적-역사적 맥락은 탈각된 채, 법체계 자체의 형식논리적인 맥락만이 주로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환경과 한국의 그것은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독일에서 사용한 문구만 받아들인 결과, 법을 현실과 분리된 완결적인 논리 체계로 파악하는 개념법학적 사유가 용이하게 수용되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형식적 체계가 현실의 복잡다단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계수된 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손쉬운 일상도덕이나 사회규범으로 도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는 법관으로 하여, 일종의 '유혹'으로 작용함으로서 방법론적 문제로 귀결되고 만다.
이러한 방법론적 문제 상황에서, 법의 원리를 탐구하고 법학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법철학은 그 실천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였다. 오랫동안 '자연법인가 아니면 법실증주의인가'라는, 어쩌면 부적절할 수 있는 양자택일적인 이론적 틀 속에 사로잡힌 채, 한국의 법철학은 이러한 실무의 이율배반적 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계기를 제공했을 수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야 말았다. 왜 그럴까.
구체적으로, 법실증주의의 진정한 헌정사적 의의가 자유주의적 법치국가의 실현, 즉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켜 자의를 억제하려는 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법철학적 풍토는 내용적 타당성과 무관하게 '악법도 법이다'라는 불법논거(Unrechtsargument)로 오해하거나, 법을 단순한 형식논리의 체계로 격하하는 것을 방치하였다.
다른 한편, 자연법론의 적극적인 기능이 법원리(Rechtsprinzip)에 비추어 실정법의 잘못된 내용을 비판하는 데 있음에도, 이를 실정법을 대신하여 판결의 구체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시도로 오용하게끔 방치하였다. 그 결과, 추상적인 자연법적 논거에 대한 불만은 경직된 개념법학적 발상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고, 형식적인 법실증주의에 대한 반작용은 구체적인 법규칙을 무시하고 일반조항에로 도피하는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본고의 일차적인 목적은, 한국의 법학방법론의 양대 병리 현상으로 지적되는 개념법학적 사유와 일반조항으로의 도피의 구체적 양태와 그 문제점을 명확히 기술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차적인 목적은, 법적 안정성과 해석의 문제가 한국의 특수한 법 계수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떠한 함의를 가지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다. 특히 1933년 독일의 헤데만(Hedemann)이 경고했던 일반조항으로의 도피 현상이 현대 법실무, 그중에서도 신의성실의 원칙(Treu und Glauben)의 확대 적용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으며, 이것이 법치국가적 관점에서 어떠한 위험성을 야기하는지 심층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구조로 전개하기로 한다.
제 II장에서는 형식주의적 법해석의 유산으로서 개념법학의 방법론적 특징과 그 한계를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한국 형법해석학에서 발견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검토한다.
제 III장에서는 헤데만의 이론을 중심으로 일반조항으로의 도피 현상이 갖는 법치국가적 위험성, 즉 법률가의 유약화(Verweichlichung), 법 집행의 불안정성(Unsicherheit), 그리고 재판관의 자의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 문제를 상세히 고찰한다.
제 IV장에서는 제 III장에서 제기된 위험성이 현대 한국의 구체적인 판례(통상임금, 과거사 소멸시효, 유치권 등)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나아가 이 두 이율배반적 현상(개념법학과 일반조항)의 실질적 친화성과 그것이 법적 안정성에 미치는 파괴적 함의를 자료에 근거하여 논증한다.
마지막으로 제 V장에서는 응용법철학(Angewandte Rechtsphilosophie)의 관점에서, 법규칙과 법원리의 통합이라는 방법론적 대안을 모색하며 결론에 갈음하고자 한다.
'개념법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놀랍게도, 해당 방법론이 극복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후의 명명(命名)된 것이다.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은 젊은 시절 자신의 스승이자 모범이었던 푸흐타(G. F. Puchta)의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회고하면서, 이러한 형식논리 중심의 법학방법론을 '개념법학'이라 지칭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유 유형 자체는 그 개념보다 훨씬 더 오래된 기원을 갖는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등장한 것일까. 그 논리적 연원은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가 주창한 논거제시방법(Demonstrationsmethode)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개념들 간의 형식논리적인 구조와 연역적인 추론방식을 중시하며 이를 실정법에 응용하려 한 시도였다. 이후 역사법학파의 창시자인 사비니(F. C. v. Savigny)는 법의 연원을 민족정신에서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발견된 법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러한 논리적 방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유방식을 독자적인 법학방법론으로 완성시킨 인물은 푸흐타이다. 이 때문에 그를 고전적인 개념법학의 창시자라고 부른다. 그는, 법을 일종의 논리적인 체계, 즉 개념의 피라미드(Begriffspyramide)로 간주하였다. 푸흐타에게 있어 법학의 임무란 개별적인 법명제들을 그 체계적인 연관성 하에서 파악하여, 그 계보를 최상의 원칙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고, 또한 역으로 그 원칙으로부터 가장 미세한 하위 명제에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법명제들은 학문적인 연역의 산물로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갖게 되며, 법학은 입법, 관습법에 이은 제3의 법원(法源)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푸흐타의 주장에서 드러나는 개념법학의 방법론적 특징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폐쇄적 체계(System) 개념'이다. 개념법학은 법을 외부의 사회적 사실이나 윤리적 요구로부터 분리된,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개념의 체계로 상정한다. 이는 사비니가 생각했던 유기적 체계가 아니라, 순수하게 관념적인 사유의 체계이다.
개념의 계보(Genealogie der Begriffe)라는 묘사처럼, 이 체계 안에서 상위의 개념은 하위의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포괄하며, 순환논법을 피하기 위해 최상위의 개념(푸흐타의 경우 칸트의 '자유' 개념)은 이미 고정된 내용을 가진 것으로 전제된다.
따라서 개별 법명제의 정당성은 그것이 현실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는가가 아니라, 오로지 체계 자체의 논리적인 진리값(眞理價)에 근거하게 된다.
둘째, '연역적 추론방식'의 절대화이다. 여기서 상정하는 일련의 법은 어디까지나 논리적인 체계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 체계 안의 법명제를 파악하는 유일한 학문적 방법은 형식논리, 즉 연역적 추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위의 법명제는 상위의 법명제로부터 도출되고, 이러한 연역적 추론을 통해 법명제들 간의 상호연관성을 밝히는, 이른바 법적 구성방법론(juristische Konstruktion)이야말로 법학의 제1차적인 임무라고 보았다. 개념법학자들은 이 방법을 통해 이론적으로 사고 가능한 모든 사태에 대한 법적 해결책을 미리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셋째, '개념의 생성적 기능'에 대한 맹신이다. 개념법학에서의 '개념'은 법적으로 유의미한 사실을 단순히 반사적으로 재현하는 수동적 기능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념'들은 외부사실과의 연관이 아니라 체계상의 논리적 맥락으로부터 그 의미를 부여받기 때문에, 이러한 개념들 간의 상호연관성을 통해 자발적으로 [새로운 법명제]가 창출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법의 흠결보충(법형성, Rechtsfortbildung)과 관련하여, 이른바 역추론방식(Inversionsmethode) 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역추론방식이란, 어떠한 특정사실(A)을 뒷받침하는, 하위 법명제로부터 상위의 법명제(X)를 추론하고, 다시 이 상위 법명제(X)로부터 법이 미처 상정하지 못했던 유사한 사실(B)에 대한 하위 법명제를 연역해내는 과정을 지칭한다.
이러한 법개념의 창조적 기능으로 인해 법의 흠결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므로, 베르그봄(Bergbohm)이 "법률 자체에 흠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적용자의 머릿 속에 흠결이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 것도 가능해진다.
개념법학을 위시(爲始)한 체계적인 사고(Systemdenken)는, 법이라는 복잡한 제도를 손쉽게 개관할 수 있게 하고 법해석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체계화하는 데 공헌한 건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념법학은 그 방법론적 편협성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점들을 예고하였다. 그것이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문제점은, 법과 '법적 사태'의 연관성을 은폐한다는 비현실주의적 비판이다. 법의 일차적인 임무가 구체적인 분쟁의 올바른 해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념법학은 오로지 형식적인 체계만을 중시한 나머지 법적 분쟁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이익법학의 창시자인 필립 헥크(Philipp Heck)가 적절히 지적하였듯, 개념법학의 형식주의는 법명제와 법적 사태 간의 '현실적인 연관성'을 법체계의 '논리적인 연관성'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 결과, 법적판단의 결정적인 척도를 제공해야 할 구체적 사태는 법체계라는 형식적인 구조를 통해 희석화되어, 결국에는 그것의 논리적인 틀만 남게 된다. 이익법학과 자유법운동이 이러한 행태를 은폐사회학(Kryptosoziologie) 이라고 비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법개념의 정형화와 체계화를 곧 '법인식'의 문제라고 오해하는 '체계주의'적 비판이다. 개념법학은 법률에 내재한 '법원리'를 탐구하는 대신, 단순히 개별 법개념을 정의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것을 법학의 첫 번째 과제라고 역설한다.
그 결과, 법해석학의 여러 개념들은 그것들의 실질적 근거가 되는 법원리로부터 분리되고, 해석학적 개념들을 내용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토대 또한 상실된다. 즉, 법해석학적 개념의 타당성 근거는 그 개념에 내재한 법원리가 아니라, 오로지 각 개념들 간의 '체계적인 맥락'이 될 뿐이다.
세 번째는, 역설적이게도 '법적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다. 개념법학은 법관을 법률에 엄격히 구속시킴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려 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법론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법적 구성은, 그것의 전제가 되는 법현실과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법원리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행해질 수 있다. 개념법학은 단지 '연역적인 추론'일 것만을 요구할 뿐, '어떤' 특정된 추론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관은 법적 구성방법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사실상 '폭넓은 재량'을 행사하게 된다.
이론적으로 어떻게 구성하든 그 법적 효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안일함 속에서, 법적 안정성은 오히려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지적한 '문제'들은 현실의 한국 법실무에서 어떻게 드러나길래, 「문제점」으로 승격된 것일까. 19세기 독일의 개념법학적 사유형태는, 바로 법의 계수 과정을 통해 현대 한국의 법학, 특히 형법의 이론과 실무 곳곳에서 발견된다. 양천수는 이를 크게, 네 가지로 파악하고 있다.
첫째, 형법의 개념사용법에서부터 그 흔적이 발견된다. 예컨대 한국의 통설적인 형법이론은 범죄의 개별요건에 관한 이론을 범죄론 '체계(System)'라고 부르지, 단순히 사례해결을 위한 도식(Schema)으로 칭하지 않는다. 그 결과, 개별적인 범죄론 체계들을 마치 형법적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법칙, 즉 도그마(Dogma)인 것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도식들은 올바른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하나의 보조수단'에 불과하며, 그 자체가 이미 올바른 법적 결정을 보장하는 척도가 결코 아니다. 구체적인 법적 결정이 범죄론 체계를 따랐기 때문에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별적인 사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때에만 해당 범죄론이 설득력을 지닌다.
범죄론 체계는 본질적으로 법학교육방식(juristische Didaktik)에 불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도그마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개념법학적 태도이다.
둘째, 구체적인 결과와는 무관한 '형식적인 개념정의'에 법학의 일차적인 임무를 두는 경향에 있다. 대표적으로 형법학자들이 가장 난해하게 여기는 '행위론' 논쟁이다. 인과적 행위론, 목적적 행위론, 사회적 행위론 등 어느 이론을 취하더라도, "반사작용", "절대적 폭력", "수면 중 행위" 등 극히 예외적인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결론에서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론에 관한 논쟁이 그토록 '현학'적인 이유는, 행위론의 '체계'로부터 모든 범죄현상을 연역적으로 체계화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현실적인 분쟁해결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현학적인 개념들의 퍼즐맞추기에 있다.
셋째, 개념이 현실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다른 개념으로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현상이다. 이는 특히 형법상 '미수범'의 영역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형법상 범죄의 실현단계를 범의, 예비, 실행, 기수, 종료 등으로 나누는 것은, 어디까지나 행위의 '현실적인 진행과정'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이, 어느새 행위의 현실과정과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체계적인 맥락에서, '예비행위'에도 적용되어, '예비의 예비', '예비의 미수', '예비의 기수'와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자발적으로 창조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미수범은 예외적으로 그 행위의 위험성이 있을 때만 처벌된다는, 자유주의 형법원리는 도외시된 채, '예비의 예비'라는,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가려낼 수 없는 개념을 둘러싼 공리공론(空理空論)의 논쟁이 시작된다.
넷째, 실무에서의 '해석론과 입법론의 철저한 구별' 및 이에 기초한 법률가들의 역할 이해에 있다. 대다수의 법관들은 자신의 임무를 법체계 내의 개념기술자로 파악함으로써, 법률 자체의 문제나 불합리성은 전적으로 입법자의 소관으로 미루어 버린다.
이와 동시에 판결 이후의 사회적인 결과, 예컨대 형의 집행이나 사회 복귀와 같은 문제는 형법체계 밖의 문제로 간주하여, 결국 해당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경향을 보인다.
요컨대, 이러한 네 가지 문제는 법을 현실과 분리된 폐쇄적인 체계로 보는 개념법학적 사유의 전형적인 귀결이다.
III. '일반조항으로의 도피' 현상, 그리고 법치국가적(Rechtsstaatlich) 위험성
개념법학이 법이론에 관한 특정 학파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이번에 소개할 "일반조항"이라는 개념은 법학방법론의 특정된 문제 영역을 지시한다. 특히 1933년, 독일의 민법학자 유스투스 빌헬름 헤데만(Justus Wilhelm Hedemann)이 『일반조항에로의 도피(Die Flucht in die Generalklauseln)』라는 저서를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하였다. 헤데만의 저서는 그 부제가 '법과 국가에 대한 하나의 위험'이듯, 일반조항의 비대화가 초래할 심각한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었다.
헤데만이 이를 출간한 1933년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하고 나치 제3제국이 등장하던 격변기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법학계가 기존의 경직된 법실증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리고 자유법운동(Freirechtsbewegung)의 영향으로 법의 흠결을 메우기 위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선량한 풍속(gute Sitten)과 같은 일반조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을 목격하였다.
헤데만은 이러한 '도피'가 법과 국가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말한 것일까. 그는 세계사에 출현했던 독재자들이 '국가복지', '공공의 안녕과 질서', '정의'와 같은 일반조항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하였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들이 구체화되지 않은 채 법적 판단의 근거가 될 때, 이는 필연적으로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법, 나아가 '사법살인(Justizmord)'의 근거에 이르기까지 될 수 있음을 정확하게 예견하였다.
입법기술적인 측면에서, 그러니까 입법자들이 만드는 방법에 있어, 일반조항은 해당 사례유형들을 낱낱이 조문화하는 결의론(Kasuistik)과 대조된다. 일반조항에 의한 입법방식은 법외적인 규범들을 법체계 안으로 유연하게 수용함으로써 급변하는 사회현실에 법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을 수반하는데, 즉, 일반조항은 그 개념의 '추상성'과 '모호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저해할 위험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위험은 법률가의 '유약화(Verweichlichung)'다. 일반조항의 비대화는 법률가 집단, 즉 학자, 재판관, 입법자 모두를 사상적(思想的)으로 유약하게 만든다. 결국 학자들은 철두철미하게 논구해야 하는 어려운 사례(Hard cases)나 심도 있는 개별 원칙에 대한 탐구를 기피하게 되어, 복잡한 사안을 '신의칙' 혹은 '선량한 풍속'이라는 편리한 개념을 통해 쉽고 간결하게 해결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자들은 일상적인 무기력을 맞이하게 된다.
입법가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규율해야 할 자료를 철저히 숙고하여 구체적인 구성요건을 확립할 능력이나 의지, 혹은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그들은 자연스럽게 일반조항으로 도피하게 된다.
가장 위험한 유약화는 재판관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재판관들은 과도할 정도로 유혹적인 일반조항, 즉 아주 손쉬운 해결책으로 도피함으로써 사법부 전체의 역량을 저해하게 된다. 구체적인 법적 논증 대신 '보편적 정의관과 윤리관' 이나 '주관적인 감정' 에 의존하여 판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두 번째 위험은 법 집행의 '불안정성(Unsicherheit)'에 있다. 일반조항으로 도피하는 경향이 심화할 경우, 법률생활 전체가 극도의 불안정 상태에 빠지게 된다. '선량한 풍속', '신의성실', '공공의 안녕과 질서', '가혹한 것', '관용' 등의 개념은 그 자체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추상적이고 불확정한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헤데만은 이러한 경향이 법과 도덕의 경계를 혼미하게 만들며, 확고한 법규범이 '재판관의 주관적인 감정'으로 대체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하였다. 그 결과, 법률은 더 이상 법원의 판결을 위한 객관적인 척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결과 법적 안정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법치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예를 들어, 특정 행위가 신의칙에 반하는지 여부가 정권의 성향이나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가변적이 된다면, 국민은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법적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세 번째 위험은 재판관의 '자의성(Willkür)'이다. 일반조항의 확대는 재판관의 자의적인 판단 영역을 확대시키는며, 실질적인 내용이 윤리적, 경제적, 혹은 정치적인 척도들 사이에서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 만큼 매우 위험하다.
재판관은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에 가치충전(Wertausfüllung)을 행하면서, 자신을 더 이상 '조문의 노예'가 아니라 '신의칙의 선전자' 혹은 '하나의 세계관의 보호자'로 여기게 될 수 있으며, 특히 '국가복지', '공공복리', '국민의 보호'와 같은 거대 담론의 뒤에 숨어, 초법률적인 정의의 실천자로서 재판하려는 유혹에 빠질 때 자의성은 기만적인 정의의 외피를 쓰고 나타난다.
결국 정의의 심판자라는 미명 하에, 법관 개인은 허영과 독선으로 무장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재판관의 자의성이 정치권력과 연계될 때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
헤데만이 1930년대 독일에서 경고했던 이러한 위험성들은, 놀랍게도 21세기 한국의 법실무 현장에서 거의 동일하게 재현되고 있다. 특히 우리 민법 제2조에 규정된 '신의성실의 원칙'은, 사법(私法) 영역을 넘어 상법, 민사소송법, 행정법, 세법 등 공법(公法)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적용 영역을 확대하며 가히 '제왕적인 조항'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기우에 지나지 않을까. 실례는 이를 반박한다. 법원은 애매하고 어려운 법적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새로운 법리를 개발하거나 입법적 해결을 촉구하기보다는, '신의칙'이라는 간편한 도구로 도피하려는 경향이 수많은 판례를 통해 확인된다.
첫 번째 예시는 노동법 영역의 '통상임금 판결(2012다29399)'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장기간 노사합의를 통해 결정하였으나, 이후 해당 합의가 근로기준법이라는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임이 밝혀졌을 때, 근로자들이 과거의 미지급 법정수당을 소급하여 청구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강행법규 위반의 효과로서 노사합의는 원칙적으로 무효이며, 근로자들의 청구는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 성문법 국가의 법논리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근로자 측의 이러한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노사합의의 신뢰를 기초로 경영 계획을 세워 온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 이는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헤데만이 경고한 위험의 총체적 발현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첫째, 성문법국가에서 추상적인 일반조항인 '신의칙'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강행법규'의 적용을 사실상 개폐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는 법적 안정성(Unsicherheit)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둘째,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지극히 경제적이고 정책적인 판단 기준을 법관이 '자의적으로(Willkür)' 설정하고 적용하였다. 셋째, 이는 강행법규의 엄격한 적용이라는 어려운 법적 결단 대신, '경영 현실'이라는 명분 하에 간편한 신의칙으로 도피한 재판관의 유약화 현상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다행히도 해당 판례(2012다29399)는 10여년 후, 대법원 전원합의체(2024. 12. 19.선고 2023다302838, 재직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에서 폐기되었다. '경영 현실'이라는 명분 하에 간편한 신의칙으로 도피하는 것은 강행법규의 목적에 반한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두 번째 예시는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소송에서의 소멸시효 판결'이다.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불법행위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여 피해자들을 구제하였다. 이는 일견 일반조항의 순기능적 활용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이 축적되던 중, 대법원은 특별한 이유 없이 태도를 바꾸어 "신의칙에 의해 시효 완성이 배제되더라도, 채권자는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 하며, 이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헤데만의 일반조항으로 도피에 관한 연구에서, 윤철홍은 이러한 법원의 태도 변화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최초 판결 이후 정권이 교체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너무 자의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동일한 '신의칙'이라는 일반조항이, 처음에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 시효 주장을 배척하는 논거로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상당한 기간(3년)'이라는 새로운 요건을 창설하여 피해자의 권리 행사를 다시 제한하는 논거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조항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세 번째 예시는 '유치권 남용 판결'이다. 부동산경매절차에서, 채무자가 채무초과 상태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제3자가 의도적으로 공사대금 채권을 발생시키고 목적물을 점유하여 가장(假藏, 거짓된 허위)유치권을 행사함으로써, 선순위 저당권자 등 다른 채권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러한 유치권 행사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행사 또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일견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유치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이해될 여지는 있다다. 그러나 윤철홍은, 이것이 우리나라 물권변동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으며, 본질적으로는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가장 유치권'의 문제를 사법부가 '신의칙'이라는 편리한 도구로 해결하려는 '재판관의 유약화' 현상이라고 비판한다.
이 외에도, 대법원은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을 취득할 지위에 있는 자에 대한 토지소유자의 건물철거 청구를 신의칙 위반으로 배척하거나, 부당하게 과다한 '변호사보수 약정'을 신의칙을 근거로 감액하거나, 키코(KIKO) 사건에서 '사정변경의 원칙'을 신의칙의 파생원칙으로 원용하거나 , 악의적인 '조세 감면' 신청을 신의칙 위반으로 거부하는 등 , 사실상 법의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신의칙'이라는 하나의 일반조항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법학방법론은 법규정이 명확할 때는 개념법학적 사유에 매몰되고 법규정이 불명확할 때는 '일반조항으로 도피'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인다. 얼핏 보기에, 이 두 경향은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전자가 분석적인 시각, 법체계의 폐쇄성, 엄격한 형식논리적 추론을 요구한다면, 후자는 오히려 종합적인 판단, 법체계의 개방성, 직관적인 법감정을 지향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향은 자세히 살펴보면 동일한 뿌리에서 자라난, 깊은 친화성(Affinität)의 가능성이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럴 수 있을까.
첫째, '역사적 연원'의 공통성이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독일에서의 개념법학이 로마법 계수 이후 이질적인 법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할 역사적 필요성으로부터 탄생했듯, 한국 법학의 개념법학적 사유 역시 서구법 계수라는 역사적 사실과 지대한 영향을 맺고 있다. 법이 전제로 하는 생활사실과 법문화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서구법을 그들의 문화적 맥락에서 파악하기보다는, 법체계 자체의 '형식논리적인 맥락'으로부터 그 기준을 발견하는 것이 훨씬 손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정확히 동일한 맥락에서 '일반조항으로의 도피' 역시 설명될 수 있다. 즉, 계수된 서구법의 개별적인 법적 요건들과 한국의 생활관계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괴리를 메우기 위해, 혹은 번역상의 문제로 인해 모호해진 개념들을 통해, '사회상규'나 '신의칙'과 같은 법외적인 규범(일상도덕)이 법체계 안으로 유입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둘째, '논증구조'의 유사성이다. 두 경향 모두 법을 그 실질적 기반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개념법학이 법을 생활관계, 즉 '법적 사태'로부터 '유리'시켜 그 논리적인 껍데기만 남겨 놓는다면,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는 법개념을 구체적인 법규칙으로부터 분리시켜 '추상적인 도덕'이라는 껍데기만 남겨 놓는다.
또한 개념법학적인 사유방식이 판결의 기준을 형식적으로는 '체계의 논리일관성'에서 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체계의 정점에 자리 잡은 윤리적인 전제로부터(예를 들면, 철학자 칸트의 자유개념과 같이) 획득하는 것이라면, 일반조항에 의한 분쟁해결은 판결의 척도를 표면적으로는 법조문에서 찾지만, 내용적으로는 '법외적인 도덕의 상당성'으로부터 얻어내는 것이다.
셋째, '사실적 기능'의 동일성이다. 두 경향 모두 역설적으로 법해석자, 즉 법관에게 부여된 '판단의 폭' 혹은 '재량'을 극대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개념법학적 사유방식이 대부분 그 법적 결과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다양한 법이론의 구성방법들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자유롭다면, 일반조항을 내용적으로 구체화하는 소위 가치충전 과정에서도 법해석자의 주관적인 일상도덕적 관념에 의한 '재량의 폭'이 지나치게 넓다.
결국 두 경향 모두 법개념이라는 미명 하에 은폐사회학(Kryptosoziologie) 적인 사실들, 즉 법관의 주관적 가치판단을 감추고 있는 셈이다.
개념법학, 형법에서의 그것은 표면적으로 '구성요건, 위법성, 책임'이라는, 형식적인 개념을 가지고 범죄의 개별요건들을 고도로 세분화하는 것으로 보이나, 실질적인 운영은 대부분 '사회상당성'(구성요건), '사회상규'(위법성), '기대가능성'(책임), '정상참작'(양형)과 같은 일반조항에 의해 수행된다고, 윤철홍은 비판한다. 다시 말해, 개념법학적 외피를 뒤집어 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개념법학에 대한 비판으로서, 한편으로 법과대학의 이론교육은 실제 법적 분쟁 해결과는 무관한, 고답적인 개념의 암기에 그치게 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법학을 현실과 유리된 공리공론의 장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는 폐해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법실무는 합리적인 법적 논거와 세분화된 규칙 대신 '일상적인 도덕'이나 '보편적 정의관' 에 의존하여 판결을 내리게 된다.
이 상황이 함의하는 바는 분명하다.
법적 안정성을 지탱해야 할 법규범이, 개념법학에 의해 '형식'만 남아 화석화되고, 경직된 법규범의 한계를 보완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실현해야 할 법원리(Rechtsprinzip)는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를 통해 '주관적 도덕'이나 '자의적 정책 판단'으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그 궁극적인 귀결은 '방법론적 허무주의(Methodologischer Nihilismus)'이다. 이는, 법학이 객관적 '규칙'도, 보편적 '원리'도 아닌, 상황에 따른 '자의성'과 현실과 무관한 '공리공론'만이 남는 지적 유희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개념이다. 결국 한국 법학에서 '법적 안정성과 해석'의 문제는, 법을 법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인 방법론의 실종, 나아가 '법의 실종'이라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 법학방법론이 직면한 '개념법학적 사유'와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라는 이율배반적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법철학은 더 이상 추상적인 이론의 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법적용을 통해 드러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는 응용법철학(Angewandte Rechtsphilosophie)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론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현재의 해석방법이 지니는 문제점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개념법학적 사유방식의 본질적인 징표가 되는 개념과 법체계의 맹목적 숭배를 타파해야 한다.
개념법학적 발상법에 의해 서로 분리된 '법개념'과 '생활사태(법적사태)'를 다시금 연결시킴으로써, 법개념 및 법적 결정의 정당성이 형식적인 개념의 체계성으로부터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만이, 아무런 실천적인 의미도 가지지 못한 채 공리공론으로 전락한 개념법학적 논의(앞서 살펴본 '예비의 예비'와 같은 개념과 같이)의 허구성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개념 혹은 법적 논거의 정당성은 체계적인 논리가 아니라, 바로 '개별적인 사태의 규범적인 타당성'에 의해 주어진다는 점이 밝혀질 수 있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마련될 때, 형법해석학의 법개념들은 실정법상 규정된 법규칙의 영역을 넘어서서, 그 상위에 존재하는 법원리와 서로 연관지어질 수 있다. 법문의 해석과 해석학적 체계의 준수는 판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오히려 판결의 정당성에 대한 '충분조건'은, 개별 사태가 지니는 규범적인 의미를 법원리적으로 구체화시킨 '법적 논거'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 해석학적 개념 혹은 체계들은 정당한 판결을 이끌어 내기 위한 하나의 '보조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둘째, 가능한 한 법치국가적 요청이 강한 형법과 같은 영역에서는 일반조항적인 개념을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그것이 입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해석론에 있어서는 일반조항적인 개념이 지니는 기능이 올바로 파악되어야 한다.
일반조항적인 개념은 그 본질적 특성상 법적 판단을 도덕적인 판단으로 변질시킬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개념의 적용은 '세분화된 해석학적 법규칙'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에만 보충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일반조항적인 개념들은 법외적인 영역으로 편성될 것이며, 법적 판단은 개괄적인 도덕적인 판단과 구별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관의 법률에의 구속이라는 법치국가의 원칙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반조항의 원용이 다양한 법적 사태를 개념화하기 어려운 입법상의 난점, 그리고 사회상규와 같은 법외적인 척도를 법체계 안의 기준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지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조항이 제시하는 기준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세분화되기 힘들기 때문에, '일반조항에로의 도피'는 곧 '법해석학의 포기'이자 '재판관의 유약화'로 귀결될 소지가 너무나 크다. 앞서 살펴본 통상임금 판결에서처럼, 일반조항이 강행법규를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과거사 판결에서처럼 정치적-정책적 판단에 따라 자의적으로 그 해석의 기준이 흔들리는 것은 법적 안정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일반조항적인 개념들은 형법해석을 포함한 모든 법 영역에서 단지 '최후보충적인 원칙(ultima ratio)'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닌다고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법원리를 무시하는 형식주의적인 개념법학적 발상법도 문제이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세분화된 법규칙 대신 개괄적인 윤리 기준만을 들이대는 일반조항의 원용도 방법론상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개념법학적인 사유방식과 일반조항적인 개념의 원용은, 그 방식은 다르지만, 법관의 자의적 재량을 확대하고 법적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법치국가의 동일한 시험대라고 말할 수 있다.
'법의 계수' 과정에서 단절되었던 한국 법의 현실 적합성과 이론적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법철학은 이제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법원리만을 탐구하는 '법'철학이 아니라, 개별적인 분쟁에 대해 법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법'철학, 즉 '응용법철학' 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법적 안정성은, 현실과 유리된 경직된 형식주의나 법관의 주관적 감정에 좌우되는 자의성 속에서 발견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구체적 사안에 적용되는 '법규칙'과 그 규칙의 배후에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보편적 '법원리'가, 법현실 속에서 상호작용하고 긴장하는 역동적인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이 두 극단을 지양하고 법규칙과 법원리의 통합이라는 방법론적 과제를 완수할 때, 비로소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의 조화라는 법치국가의 이념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2025. 12. 14.
양천수, 《법적 안정성과 해석: 이른바 '아름다운 판결'을 예로 하여》, 국민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논총』 제28권 제2호, 2015. 10., 123-168면
김영환, 《법의 계수의 결과현상들: 개념법학적인 사유형태와 일반조항에로의 도피》, 한국법철학회, 『법철학연구』 제4권 제1호, 2001. 5., 149-174면
윤철홍, 《헤데만의 ‘일반조항으로 도피’에 대한 수용적 고찰》, 숭실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논총』 제43집, 2019. 4., 219-25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