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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썬이 Feb 22. 2023

뭔가 있어 보이는 만능빵 포카치아 만들기

사실은 서민들의 빵이라네요


한국인인 내가 ‘포카치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식전빵 또는 가벼운 한 끼로 먹기에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고급 샌드위치에 사용되는 빵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고급스럽고 세련된 정통 이탈리안 빵’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네이버 지식백과의 <세계 음식명 백과>에서 찾아본 포카치아는 기대에 걸맞지 않은 기원과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에 따르면 ‘과거 포카치아는 가난한 서민들이 최소한의 재료로 만들어 먹던 빵’이었다고 한다. 글을 읽다 보니 아차 싶었다. 우리가 고급 간식처럼 대하는 ’빵‘이라는 것이 다른 어느 나라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먹어온 주식이 아니던가. 그리고 오늘 내가 포카치아를 만들고자 했던 것도 사실은 적은 재료로 손쉽게 만들 수 있어서였다. 올리브유, 로즈메리 같은 재료도 우리나라에서나 이국적이고 귀하지, 이탈리아에서는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 음식명 백과> 중에서

포카치아를 만드는 데에 스펀지(사전반죽)를 활용했다. 재료가 심플한 하드계열 발효빵을 만들 때는 가능하면 배합의 일부를 8-16시간 전에 미리 반죽해 두었다가 본반죽에 활용하는 사전반죽법을 쓴다. 아직 나도 사전반죽의 원리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할 만큼 이론지식이 풍부하진 않지만 경험상 사전반죽을 통해 상업용 이스트의 양을 최소화하고 발효시간을 최대한 늘리면 빵의 질감과 풍미가 크게 개선되는 것을 확인했다.


재료를 섞은 직후의 스펀지(좌) / 24도에서 10시간 경과한 스펀지(우)

10시간이 지나 충분히 발효된 스펀지가 준비되면 본 반죽을 한다. 재료에 스펀지가 추가된 것 이외에 특별할 것은 없다. 밀가루, 물, 이스트, 소금, 올리브오일, 생로즈메리 등 모든 재료를 집어넣고 섞어준다.


7년 묵은 허브가위가 드디어 제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서 지낼 당시 쇼핑몰에서 다중 칼날 허브가위(multi- blade herb scissors)를 구매할 때는 사실 김이나 파를 잘게 자르려는 지극히 한국인스러운 목적이었다(솔직히 한국에서 로즈메리, 세이지 같은 생 허브를 다질 일이 얼마나 있겠나). 그런데 막상 김과 파를 잘라보니 기름기와 수분 때문인지 칼날 사이에 재료가 들러붙어서 가위질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 가위는 로즈메리를 다진 오늘까지 무려 7년 동안이나 서랍 안에서 잠자야 했다.


믹싱볼 안에 반죽을 넣고 24도에서 1시간 발효했다

포카치아 반죽은 굉장히 질고 끈적하기 때문에 믹싱볼 안에 담아서 1차 발효를 진행했다. 1차 발효를 끝낸 후에도 반죽은 힘이 없고 질어서 굴려서 모양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플랫브래드(flatbread)인 포카치아는 납작한 상태 그대로 둥글게 혹은 네모나게 펴서 굽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오븐팬 모양에 맞게 사각형으로 펴고자 했다.


작업대에 덧가루를 넉넉히 뿌려놓고 반죽을 올린 뒤에 가장자리 부분을 잡아들고 슬쩍슬쩍 당겨주면 가벼운 성형이 가능하다. 고른 두께의 사각형 모양을 만들기 위해 3단 접기를 한번 해주고 그것을 오븐팬 위에 올려서 다시 팬 크기에 맞게 당겨서 펴 준다.


손가락으로 찔러 생긴 구멍에 올리브유가 고여있다

포카치아를 완성하고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에서 단언컨대 포카치아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정은 손가락으로 반죽 찌르기다. 위 사진에서는 손끝으로 반죽을 톡톡 치듯이 가볍게 눌러 구멍 ‘흉내’만 냈는데, 사실은 손가락이 팬에 닿을 만큼 깊고 세게 눌렀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 빵이 균일한 두께로 부풀게 된다.


한쪽이 좀 더 많이 부풀어 균일한 모양을 내기 어렵다

그렇다. 대충 찌른 내 반죽은 구워지면서 위 사진처럼 불규칙한 언덕을 만들었다. 내가 만들어 내가 먹는 빵이야 이러나저러나 맛만 좋으면 되겠지만, 판매를 목적으로 하고 소비자의 기대에 부흥해야 하는 베이커리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못난이 대형 포카치아는 잘랐을 때 다시 태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카치아를 살리는 방법이 있다. 바로 빵의 내상이 보이도록 반듯하게 자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고급 레스토랑의 식전빵으로 보내도 될 것 같이 식욕을 자극하고 멋져 보인다.


반듯하게 자르니 단정해진 포카치아

앞에서 언급한 균일성 이외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빵 표면에 생긴 수없이 많은 잔기포, 공간을 가득 채우는 올리브와 로즈메리 향, 겉바속촉의 질감까지. 게다가 이 활용도 높은 만능빵은 단독으로 즐겨도, 메인 요리에 곁들여도, 샌드위치나 피자를 만들어도 식사의 만족도를 극대화시켜 주는 마력을 지닌다. 앞으로 며칠, 혹은 몇 주간 포카치아를 어떻게 더 다양하고 맛있게 먹을지 실컷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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