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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썬이 Jan 17. 2023

유명 빵집 소금빵 따라잡기

학교에서 소금빵은 못 배웠습니다


내가 소금빵을 처음 먹어본 건 다둥이 임신, 출산, 육아에 지쳐 베이킹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을 때였다. 가까운 지인이 유명 레스토랑에서 한정된 수량만 살 수 있는 맛있는 빵이라면서 한번 먹어보라고 가져다주셨다. 큰 기대 없이 입에 넣었는데, 안은 버터로 촉촉하고 겉은 바삭하며, 고소하면서도 짭짤하게 마무리되는 맛의 전개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내 무의식 중에는, 나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소금빵 정도는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망원동의 한 카페에는 다양한 부재료가 들어간 소금빵 메뉴가 있다.

그 후로 시중에 판매되는 소금빵을 맛볼 기회가 몇 번 더 있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비교적 가까운 망원동을 검색해 보니 소금빵을 주력 메뉴로 하는 베이커리 카페와 유명 베이커리가 있어서 몇 번 사 먹어 보았다. 모두 기본 이상의 빵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맛의 차이는 크지 않았고, 다르게 말하면 엄청나게 차별화된 맛의 소금빵이랄 것도 없었다(기본 소금빵에 다양한 부재료를 더해 파는 곳은 있었다). 기본 소금빵 한 개의 가격은 2500~3000원 정도여서 엄청 비싼 느낌은 아니었는데, 집에 다섯 개 정도 사가서 다 먹기까지 만 하루도 걸리지 않는 것을 보고 자주는 못 사 먹겠다 싶었다.


쌍둥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고 드디어 나는 자유시간이 생겨서 먼지 쌓인 우녹스 오븐을 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쌓아두었던 소금빵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보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다닌 베이킹 학교에서는 소금빵이라는 것을 배워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오파토(O'pato)라는 이태원의 브런치 카페에서는 소금빵이 식전메뉴로 제공된다는 말을 듣고 발효빵의 기본이 되는(나의 경우, 학교에서 ‘Bread’ 과목을 배울 때 가장 처음 접한) '소프트롤빵(Soft rolls)' 배합표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소프트롤빵과 다른 성형 과정은 제빵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블로그와 유튜브를 참고해서 따라 했다.


1차 시도

내가 좋아하는 교재 <On Baking>의 'Soft Yeast Dinner Rolls'의 배합표를 그대로 사용하되, 배합표의 탈지분유와 물 대신 그 두 가지를 합한 양만큼의 우유를 사용했다(수업시간에 셰프 소랍이 알려준 팁이다). 반죽기를 이용해 스트레이트법으로 반죽하고 1차 발효를 24도에서 30분 진행했다. 그리고 70그램씩 분할하여 유튜브에서 참고한대로 성형했다. 버터를 일정한 무게(여기서는 15그램)와 모양으로 잘라서 길쭉한 삼각형으로 얇게 편 반죽 위에 올려 예쁘게 말아주는 성형 과정이 아직 익숙지 않아서 많이 버벅댔다. 설상가상으로 시간이 지체되자 잘라놓은 버터가 녹기 시작하고 마음이 급해져서 서둘러 완성하기에 급급했다.


외관은 일정하지 않고 투박한 모양새지만 내부는 버터 구멍이 크게 잘 만들어졌다.

내심 전문가처럼 모든 소금빵이 균일한 모양으로 나오길 바랐는데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엉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성형하면서 갈팡질팡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빵의 외관에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빵맛은 내가 먹어본 그 소금빵 맛에 근접했고 빵을 자른 단면에서 보이는 뻥 뚫린 버터 구멍도 내 기억 속 소금빵과 흡사했다. 이제 성형만 잘하면 모양까지 예쁜 소금빵이 될 것 같았다.



2차 시도

첫 번째 시도에서 꽤나 자신감이 붙은 나는 2차 시도에서의 성공을 확신하여 반죽량을 1.5배 늘리고 성형에 좀 더 공을 들였다. 그런데 반죽량을 늘렸더니 초반 믹싱 단계에서 반죽기가 자꾸 과열되어 한 번 당황하고, 소금빵 외관 개선을 위해 성형 과정에 공을 들였더니 예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또 한 번 진땀을 뺐다.


1차 소금빵을 먹어본 남편은 빵의 식감이 가볍지 않고 너무 오일리하다고 했다. 나는 그 문제들이 적절한 2차 발효(Proof)와 버터 필링의 양 조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앞선 소금빵에서는 2차 발효를 상온에서 했지만 이번에는 뜨거운 물로 실내온도와 습도를 높여둔 오븐을 발효기 삼아 2차 발효를 진행했다. 이렇게 하면 상온에서 발효시킬 때보다 더 가벼운 질감의 빵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버터 필링의 양은 기존 15그램에서 8그램으로 과감하게 줄여보았다.


크로아상 빰치는 예쁜 외관(좌), 크기가 작아진 버터 구멍(우)

2차 테스트 결과는 놀라웠다. 처음에 오븐에서 구워져 나온 소금빵들의 외관이 크루아상처럼 섬세하고 예뻐서 '역시 난 금방 감 잡았어' 라며 자만하려던 참에, 빵을 반으로 갈라보니 심하게 작아진 버터구멍이 보였다. 빵의 질감이 가벼워진 것 같기는 한데 녹은 버터로 윤기가 흐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3차 & 4차 시도

정확히 뭘 바꿔야 빵이 개선될지도 모르면서 막연한 희망에 기댄 채 소금빵 3차 및 4차 시도가 진행됐다. 애먼 밀가루도 바꿔보고, 성형도 정성껏 해보고, 2차 발효 온도도 높여보고, 버터 필링의 양도 다시 늘려보고. 그야말로 '아무거나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변화를 줘 보았다.


소금 없는 외관(좌), 버터 없는 내부(우)

이렇게 여러 가지 요소에 변화를 주면서 신경을 쓰다 보니 빵을 만드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구워져 나온 소금빵들이 모두 식은 후에야 내가 소금 토핑을 잊었음을 알아차렸다. 소금 없는 소금빵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빵 단면을 확인해 보니 버터구멍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내가 넣은 버터 필링은 어디로 간 걸까. 나는 결과적으로 소금빵을 먹는 이유인 소금과 버터 두 가지 모두 놓친 것이다.


1차 시도에서도 잘 나왔던 버터구멍이 왜 시도를 거듭할수록 점점 작아지더니 4차 시도에서는 사라지고 만 걸까? 고민을 거듭해 보니 두 가지 이유로 좁힐 수 있었다. 첫째, 성형 시 버터 필링을 반죽으로 완전히 감싸지 않았다.  1차 시도에서는 버터가 보이지 않게끔 양옆을 꾹 눌러줬는데, 2차 시도 이후에는 모양에만 집중하느라 버터가 반죽 밖으로 보이도록 말았다. 둘째, 2차 발효 시 온도를 지나치게 높게 만들었다. 4차 시도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발효 온도를 높게 유지하겠다며 반죽 하단에 뜨거운 수증기가 직접 닿도록 했다. 아마도 이때 버터 필링은 이미 상당 부분 녹아서 오븐으로 굽기도 전에 반죽에서 탈출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5차 시도

5차 시도에서는 4차 소금빵에서의 잘못된 점을 수정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혼란을 없애기 위해 반죽 배합표는 1차 시도 때와 동일하게 했다. 다른 모든 과정도 동일하게 유지하되 성형 시에 버러 필링을 밀폐하는 것과 2차 발효 시 온도가 25도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하여 완성된 5차 소금빵에서는 과연 앞선 문제점이 해결되었을까?

  

2차 발효 중인 소금빵 반죽
완성된 5차 소금빵
5차 소금빵의 외관
한입 베어 물자 드러난 커다란 버터구멍


소금빵의 외관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성형할 때 버터 필링의 밀폐에만 신경 쓰느라 균일한 모양을 내는 데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빵의 질감과, 눈에 띄게 커다란 버터구멍은 거의 완벽했다. 아, 이게 내가 기억하는 첫 소금빵 맛이지. 오븐에서 방금 나온 빵이기에 사실은 그것보다 더 맛있었다. 소금빵이 도대체 뭐길래. 이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는 이렇게나 빙 돌아왔다.




소금빵 한 개에 2500원 짜리라고 했을 때, 나는 약 6만 원어치의 소금빵을 구워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맛있게, 그리고 넉넉하게 이 빵을 즐기고 나서 지인들에게 선물까지 했다. 이 얼마나 가성비, 가심비 훌륭한 베이킹인지! 시행착오도 충분히 거쳤으니 이제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외관까지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소금빵을 구워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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