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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Sep 07. 2024

첫 인종차별

“니하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서 그런지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정면만 보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 후로도 등 뒤로 몇 번이고 외쳐지던 목소리. 니하오, 니하오, 니하오.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을 한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오직 남자라는 것과 두껍고 걸걸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놀라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진정될수록 점점 착잡해졌다. 그리고 궁금했다. 내가 궁금한 건, 인종차별을 왜 할까가 아니라 하지 않을까였다.

지금까지 나를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왜 내게 인종차별을 하지 않았을까.


‘인종에도 계급이 있다’라는 생각은 외부로부터 주입되지 않으면 시작하기 어렵다. 특히, 특정 피부색을 가진 인종이 계급이 낮다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학습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내가 그렇다.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는 인종차별을 당하거나 가해한 적이 없을뿐더러, 우월한 인종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정확히는 인종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피부색이란, 그저 쌍꺼풀처럼 유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성장기에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지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양한 인종에 노출된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겠지.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못 배운 놈이야.”라고 했다.

속으로는 하염없이 궁금증이 일었다. 배워야 안다는 거야? 그럼 배우지 않으면 인종에 계급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사실 이곳 사람들의 내면에는 인종에 계급은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인이라면 그 마음을 숨겨야지,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인종은 당연하게도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며칠 지내면서 길도 익숙해지고 생활도 편해지고 있었는데, 다시 낯선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발언, 과연 인종차별이 맞을까. 내가 더 건장했더라면, 그때도 소리를 지르며 나를 쫒아왔을까. 그 걸걸한 목소리로 유추해 봤을 때, 주먹이 내 얼굴만 할 것 같았으니까. 그 사람에게 나는 약자니까. 나랑 싸우면 그가 이길 게 뻔하니까. 사실은 성차별을 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나약한 존재였다.


기가 죽은 나는 집까지 가는 길에 모든 남자들이 나에게 “니하오”라고 할 것 같았다. (아까 니하오를 외친 사람이 남성이어서 그랬다.) 바깥이 무서워졌기에 마트에서 저녁거리만 금방 사서 집으로 귀가하기로 했다. 사과와 빵을 골라 계산대 앞에 섰다. 아쉽게도 셀프계산대 없이 두 명의 직원이 계산을 해주고 있었다. 둘 다 남자네. 어쩔 수 없이 짧은 줄 뒤에 섰다.

사납게 대하지 말아 주세요. 혼자 속으로 되뇌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hi.

아, 인사. 이곳에서는 인사를 꼭 해야 했지. 당황한 나는 손을 펼치고 hello 했다. 바보 같아...

계산은 금방 끝났고 나는 이번에는 자신 있게 말해야지, 하고 thank you 했다.

그러자 그, 나에게 윙크를 해준다.


나에게 윙크를 날렸어!

기분이 다시 방방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여기 살아도 되는 사람이지?

다시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 사과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히히. 조금 이따가 엄청 맛있는 브리치즈-애플-루꼴라-땅콩버터-샌드위치를 해 먹을 거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웃었다.

오늘 저녁 친구는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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