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40분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오후 3시쯤? 사수님께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왔다. 한국 기준으로 오전에 연락했을 수도 있겠지만 배려심이 깊은 그녀는 내가 깰 시간까지 기다려주신 듯했다. 큰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라 메일을 보고 금세 회신을 드렸다.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만, 괜히 심란.
회사원이었다는 걸 까먹고 있었나 보다.
원래부터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본래의 삶이 있었다.
매일 새벽 6시에 버스에 타고,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고, 점심은 늘 먹는 도시락, 다시 일을 하고, 만석인 버스에 꾸겨 타고, 집에 도착해서는 허겁지겁 저녁을 먹는 직장인이었다. 이다. 여전히 직장인이다.
심란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새벽부터 깬 바람에 일찍 장을 보러 나와서 자두와 바나나 한 개씩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펼쳐진 유럽 광경에 유럽 사랑해! 를 외쳤다. 하지만 이 삶은 유효기간이 있다. 퇴사를 하지 않는다면 내년 이맘때를 기약하거나, 어쩌면 그마저도 어려울 것 같았다. 매년 한 달을 통째로 사라지는 MZ사원이라. 점점 높은 직위를 갖고, 책임질 일이 많아질수록 회사를 맘 편히 떠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아닌가?
나중에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을 지금 함부로 예측하는 건 무의미한 걸 알기에 한없이 부정적으로 뻗어가는 생각을 도리도리, 하면서 지워냈다.
내년은 모르겠고, 당장 다음달은 어떡하지? 사실 퇴사 조정기간이라고 해놓고 회사에 대한 생각을 일부러라도 외면하고 있었다. 여행까지 와서 회사 생각을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일단은 앞으로도 한동안 회사 생활은 접어둬야겠다. 언제나 행복이 최우선이니까, 이 순간 심란하게 하는 일들에는 눈을 감아보기로.
라고 했으면서 이렇게 회사에 대한 글도 끄적거리는 걸 보면 마음을 통제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싶다. 지금이야 여행하면서 소비지향적인 생활을 하는 덕분에 약간의 조증 상태에 있지만서도, 한국에 있을 때는 하염없이 부푸는 부정적 생각 때문에 고생한 나날이 많다. 그럴 때 나의 해소 방법은 음식이었다. 이상하게 회사에서는 입맛이 하나도 없는데 퇴근하고 집에만 오면 튀김이 그렇게 땡긴다거나, 아이스크림이 땡긴다거나 했다. 밥을 먹고서도, 배가 터질 것처럼 부르지 않는 이상은 끊임없이 구미가 당겼다. 더 먹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혼내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했지만 통제불능인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신기한 건 떠나온 후로 간식이 먹고 싶지 않아 졌다는 것이다. 배부른 느낌도 불편해져서 스파게티 한 두입이 남았는데 그냥 버렸다. 잠시만,
너 누구야?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낯선 모습이었다. 심지어 유럽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음식들도 굳이 먹을 생각이 없다.
누구세요?
일전에 허니콤보치킨을 먹고 아이스크림까지 다 먹은 후에 배탈이 나서 며칠을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왜 이럴까, 많이 속상했었다. 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음식에 지배당하는 것일까, 왜 그럴까, 하며 자책을 했었다. 대정보화시대에 발맞추어 유튜브로 무한 검색을 하던 중, 정신의학과 선생님의 영상을 봤다. 그는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삶의 불만족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본질을 채우지 못하니까 음식으로 대체해서 채우려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의아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2년 전 대학원에 다닐 때야 극한의 환경에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회사에서 워라밸 챙겨가며 일하고 있는데 왜? 뭐가 불만족스러운 것이지?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여태까지
은근하게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