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못 하겠네.
나의 변덕도 여간 심한 게 아니다.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돌아서면 딱지 뒤집 듯 바뀌는 마음. 시시각각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기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물론 나는 포기했지만 내 입장만 있는 건 아니니까. 내 말을 듣는 타인들은 당황스러울 것 아닌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너 누구야? 할 것 아닌가. 그걸 알기에 함부로 의견을 내는 걸 자중하는 편인데, 글에서만큼은 쉽지가 않다. 지금이라도 미리 언질 해두자면 나는 어제 생각 다르고 오늘 생각 다르다. 그러니 예스(yes)라고 해도 내일은 노(no) 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니더(neither) 일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여주기를...
왜 이렇게 뜸을 들이냐 하면, 그건 바로 한식이 너무나 먹고 싶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국이 그립지 않고, 한식은 더욱 그립지 않다고 떵떵거렸는데 그러자마자 참치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죽겠다.
결국 히든카드로 남겨둔 누룽지에 볶음김치를 먹으며 어흐, 어흐, 으아아, 했다. 비엔나 한복판에 한국아저씨 등장. 앞으로 남은 볶음김치는 세 개, 누룽지는 한 개. 아까워할 것 없이 먹고 부족하면 한인마트 가서 오모리김치찌개라면이라도 사 먹어야겠다. 어흐.
누룽지에 볶음김치를 먹으니 좀 힘이 나길래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원래 오늘은 장 보는 것 이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으려 했지만 또 막상 집에 갇혀 있으려니 지루해진 것이었다. 관광지 하나만 볼까? 하는 변덕쟁이의 미련도 있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선크림 바르고, 선글라스까지 챙겨서 호기롭게 나왔지만 30분 정도 걷다가 다시 집으로 복귀해 버렸다. 요 며칠 무리해서 걷다가 다친 허리가 아직 낫지 않은 탓이었다. 계획으로는 카를 성당을 봤다가 벨베데레 궁전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루트였는데 성당만 보고 돌아왔으니 아쉬울 만도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웬일로 쿨하게 안볼란다 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카를 성당이 생각보다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우선 공사 중이었고, 날씨가 흐릿했고(처음으로 비가 내린 날이었다.), 그 앞 쓰레기통에 시선을 강탈당하였고, 무엇보다 오늘의 나는 관광지 자체가 불편했다. 그러니 성당이 정말 별로였던 것은 아닐 것이다. 취향의 영역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의견을 나누려 한다. 그러니 내일이 되자마자 입장이 뒤집히지는 않을 거라고 조심스레 예견해 보면서,
모든 자연스러움을 좋아한다.
편하잖아.
편한 게 좋다.
편한 걸 누가 안 좋아하겠냐고 하면, 불편한 걸 유독 싫어하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예뻐지고 싶은 마음에 화장품을 샀다가도 3번 이상 쓴 비비크림이 없었다. 속눈썹 연장술을 받고도 일주일이 안 돼서 손가락으로 똑 똑 떼어내고, 네일아트를 해도 곧장 수업시간에 사부작사부작 긁어내고, 허리가 조이는 원피스는 몇 벌이나 사두었지만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다. 구두는 두말할 것 없다. 신을 생각조차 한 적 없음.
나이가 들수록 불편함을 잘 참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떨어지는 건지 자연인이 되어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양품들이 많아졌다. 대표적으로는 속옷. 이제는 출근하는 게 아니면 명치를 조이는 브래지어도 하지 않고, 삼각팬티를 대신하여 널널한 트렁크팬티를 반바지 삼아 입는다. 풍기문란의 주범이 되기는 무서우니까 니플패치와 속이 보이지 않는 트렁크팬티를 잘 구비해두고 있다.
햇빛에도 승부 보려고 했지만 선크림은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에 내가 한 발 물러섰다. 몇 년 전에 선크림을 안 바르고 부암동에 놀러 갔다가 얼굴이 죄다 벗겨진 전적이 있다. 사실상 완패. 이후로는 최대한 로션 같은 재질을 찾아 쓴다. 얼굴이 건조한 편인데, 로션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해주어 오히려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관광지에서 불편을 느끼고 있었다.
자, 이것 봐라, 여기 엄청난 곳이거든, 기대해도 좋아, 엄청 기대되지?, 자, 봐라, 자, 간다, 간다, 지금이야, 짜잔-!
관광지는 완벽한 짜잔의 장소였다. 며칠 전, 어쩌면 몇 달 전부터 기대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짜잔을 위해 여행준비를 시작했을 것이다. 며칠 전 한인타운에서 만난 룸메이트가 내게 물었다. 캐리어 몇 킬로에요?
15킬로였던 것 같아요.
룸메이트는 좌절했다. 자신은 30킬로란다. 10일간의 여행이라 옷을 열 세트를 가져왔단다. 고데기도 두 종류나 챙겨 와서 무거워 죽겠다고 침대를 퍽퍽 내리쳤다. 그날 인생 최고의 와인을 마셨는데 캐리어가 꽉 차서 하나도 챙겨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짐을 줄였는지 비결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나는 민망해졌다.
그냥, 그냥, 무거운 게 싫었다. 무거운 건 불편하니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룸메이트는 불편을 잘 감수할 줄 아는 어른이다. 내가 그녀처럼 30킬로짜리 짐을 챙겼다면 세 번째 날 정도에 고데기를 버렸을 것이다. 그녀는 10일 동안이나 무거운 짐을 들고 세상을 여행했다. 정작 비결이 궁금한 건 나였다.
나도 멋진 장소에서 인생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되려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을 이기지 못하기에 입었던 옷을 입고 또 입으며 매일 밤 비누로 빨래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그런데 뭐, 가볍게 생각해 보면 누울 자리 보고 눕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살아도 문제없을 것 같으니 계속 이렇게 살아보기로 한다.
게다가 오늘은 또 하나의 취향을 적립했다. 성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해산물마켓을 구경하면서 알았다. 나는 이런 곳이 더욱 끌리는구나. 길가에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직원들, 호객행위에 넘어간 건지 자리에 앉아 술과 안주를 주문하고 있는 손님들, 4시부터 이미 취해서 헤롱거리며 걸어 다니는 행인들. 나처럼 우연히 지나가다가 이게 뭐야? 하고 들린 것 같은 이방인들까지.
이런 게 좋다. 관광지에서 찍는 인생사진보다 일상의 동영상을 훔쳐보는 것이 더 좋다. 그게 더 진짜 같잖아.
물론 아니겠지만. 우리는 타인의 삶을 전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