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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Sep 04. 2024

일상 시작

몸이 뻐근했지만 요가도 안 하고 뒹굴거리며 디즈니 영화를 보다가 꼬르륵 소리에 근처 마트에 가서 아침거리를 사 오기로 했다. 집 앞을 나서자마자 우와-한 풍경이 내게 인사한다. 짝사랑하던 선배가 먼저 인사해 줄 때의 설렘이 이런 거였을까.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두근두근.

유럽 맞네. 나 유럽에 있어.


전에 먹은 마트빵이 기절초풍의 맛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마트빵을 사 보기로. 담백한 빵을 사 먹고 싶었지만 그렇게 보이는 메뉴만 8개였다. 심지어 뭐가 뭔지도 모르겠어서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서 번역기를 돌리고 있는데 마트빵 지키미 아저씨가 내 앞으로 와서는 “뭐 줄까?”라고 말을 걸었다.

이건 기회야. 이전에 해외여행 지침서에서 알게 된 꿀팁을 써먹어보기로 했다.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뭔가요?”

아저씨는 바로 미간을 찌푸리고 손으로 턱을 쓸면서 고민하더니 미니 방석 같은 빵을 “챠바터”하며 가리켰다. 챠바터는 아저씨의 손길에 퐁신, 하고 눌려졌다. 맛있을 것 같아!

근데 챠바터가 뭐지, 챠바터, 챠바터, 아, 치아바타구나.

“저도 챠바터 좋아해요. 그걸로 주세요.” 아저씨는 미소를 가득 담아 챠바터를 내어주셨다. 그가 뿌듯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귀여웠다.

1일 1초코단백질요거트

루꼴라 한 바가지가 3천 원도 하지 않았다. 왕창 먹고 갈 테야. 적적해지기 전에 미리 친구에게 전화 한 번 하고 코르타도를 마시러 집 앞 카페로.

동네 카페인지라 단골손님이 많아 보였다. 나 또한 단골을 대하듯 반갑게 인사해 주는 바리스타였다.

30분 정도 조용히 글을 쓰고 있었는데 바리스타와 친해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다. 여성은 바리스타 앞자리에 앉아서 how are you? 하더니 수다를 떨기 시작.

해외 카페에 있을 때 한국과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점은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다른 언어를 쓰니 당연하다. 그렇다 보니 목소리가 유달리 세게 고막을 때리고 가지 않는다면, 대부분은 백색소음처럼 귀 안에 들어왔다가 곧바로 탈출한다. 이번에도 역시 그 둘이 나누는 대화가 하나도 들리지 않다가, 불쑥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진지하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3년 전에 마지막으로 본 토익 리스닝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들어보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매너 있고 싶어 한다.

그들은 착해 보이고 싶어서 무슨 말을 하든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한다.

다른 의견을 말하면 싸우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인의 진짜 생각이 뭔지 혼란스럽다.


여기까지. 완전히 반대로 이해한 것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대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 이거라도 이해한 게 어디야 싶었다.

본인의 사상을 거침없이 나누는 게 신기했다. 며칠 전 버스를 탔을 때는 젊은 커플이 마주 보고 앉아있었는데 그 옆에 나이 든 부부가 앉더니 30분 동안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현장도 직관했다. 처음 본 사람들끼리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을까 상상도 가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 그 버스에서의 대화도 들어보고 싶어졌다. 다음 기회가 온다면 오늘처럼 집중해서 엿들어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도중에 그 여성은 떠났고, 바로 새로운 남성이 같은 자리에 앉더니 수다 2차전 시작. 이번 손님은 말이 너무 빨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천천히 말해주세요, 속으로 끙끙하다가,

아? 영어가 아니었다. 독일어? 그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인데. 어느 나라 말인 걸까. 여기 사람들은 기본이 2개 국어인가? 어느 나라 말을 하는지까지도 고려해서 들어야 하는구나.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쉽지 않겠어.


슬슬 배가 고파와서 짐을 싸면서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이곳은 음식을 다 먹기만 하면 그릇을 치워대서 꼭 한 두입을 남겨놔야 한다. 빈자리에 앉아있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지만 대한민국인은 다 먹은 빈 그릇에 헛 숟가락질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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