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스트레칭 없이 굴러다녔더니 몸이 찌뿌둥하길래 모닝 요가를 했다. 여행에 와서까지 요가를 하는 걸 보면 꽤나 숙련된 요기인가 싶겠지만, 오히려 반대다. 완전 초보. 여행을 떠나기 몇 주 전 우연히 친구와 일일체험에 갔다가 그 매력에 빠져서 틈날 때마다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하는 중이다. 영상도 매번 똑같은데, ‘중급 하타요가’를 검색해서 제일 위에 뜨는 영상을 따라 한다.
초급은 쉽고 중급은 어려운 나. 결국 사단이 났다. 머메이드 자세를 하다가 왼쪽 목 아래에 담이 온 것이다. 제발 오바 좀 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이렇게 매사에 열심히이다.
안 그래도 어제는 일할 때도 걸려본 적 없는 터널증후군이 올랑말랑 거려서 개수대에 뜨거운 물을 받아 손목 마사지를 한참동안 하고 잤다.
손등은 시큰, 목은 뻣뻣, 뜨거운 물로 온몸을 지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고된 여행모드를 접고 일상모드에 들어선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몸이 말썽이다. 딱히 무얼 하지도 않고 글만 쓰는데 왜 이래 이거?
이거 이거, 뭐가 원인인지 알겠다. 이거 때문이네! 바로 이거다. 지금 이거.
늘 할 말이 많은 사람이 있다. 친구들과 만나면 빨리 말하고 싶어 가지고 부릉부릉, 엉덩이를 들썩들썩. 말하는 속도는 또 어찌나 빠른지. 엄마는 나보고 입으로 총 좀 그만 쏘라고 다그치곤 하셨다. 몇 시간 총을 쏴대는데 입이 아프지도 않냐며. 하지만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나와 내 친구들은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었을뿐더러, 사춘기 때부터는 우리만 아는 줄임말까지 만들어가며 더 많은 말을 해대곤 했다. 누가 쫓아오냐고.
그래서 일기가 싫었다. 말로 하면 5초면 되는데 연필로 꾹꾹 눌러써야 하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또 쓰다 보면 뒤에 말을 까먹어서 ‘내가 뭐라고 쓰려고 했더라’ 하는 순간도 많았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 중에도 말을 하다가 말면 궁금해 미치겠는데, 나와의 대화에서 내가 할 말을 잊어버리면 답도 없다.
한동안은 양손으로 글을 쓰는 연습도 했다. 며칠 하다가 포기했지만 그때 이후로 왼손 글쓰기를 남들보다는 잘하게 된 것 같다.
어른이 되고 일기를 타자로 쓸 수 있게 되자(스무 살 때 부모님께 첫 노트북을 선물 받았다.) 밤마다 폭풍처럼 글을 써대었다. 타자가 얼마나 빠를지는 여러분의 상상으로.
그리고 지금은 완벽한 자유시간. 하루종일 글을 써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는 타지에 있다.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일기뿐.
홀로 여행에 왔는데 왜 외롭지 않나 했더니 하루종일 수다를 떨고 있었구나. 나와 꼭 맞는 친구와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중이었다. 그래서 손등과 목이 너덜너덜한 거였어.
방금 생각난 글의 엄청난 장점. 글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이 일기를 펴면, 바로 유럽에 도착할 수 있다.
글과 나의 세계인 것이다.
미안하지만 손등과 목은 조금만 더 고생해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