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잠든 지 두 시간 만이었다. 눈이 퍽, 하고 떠졌다. 다시 잠은 오질 않고, 왠지 핸드폰을 확인해야 할 것 같은 기분. 싸하다. 뭐지.
역시. 알람을 꺼둔 카카오톡에 들어가 보니 회사에서 수십 개의 연락이 와 있었다. 개발한 코드에서 긴급 품질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든 생각은
‘비행기표 바꾸길 잘했네.’
원래는 추석 연휴인 수요일이 끝나고 목, 금요일까지 휴가를 냈었는데, 잠들기 직전, 그러니까 두 시간 전에 비행기표를 화요일 귀국으로 바꾸었다. 고로 목요일에 출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아귀가 맞다니, 신기해. 무엇보다 다행스러웠다.
다음으로는
‘비행기표, 바꾸질 말 걸 그랬나.‘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대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담당 문제 이긴 하지만, 해외에 있었다면 나와 함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수님이 대신 해주지 않았을까. 꼭 나여야 했을까. 외면하고 싶었다. 무책임해, 나쁜 사람이야. 나.
그리고는
‘그만두고 싶어.’
회피성 퇴사 욕구가 다시 샘솟았다. 맞아, 나 이거 싫어했었지. 싫음에 익숙해져 있던 한 달 전까지의 나. 오랜만에 찾아온 감정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해야 하는 일.
반대로 말하면 돈을 안 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다.
적성이란 뭘까 고민한 적이 있다. 내가 내린 그날의 답은, 아무 대가가 없을지라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지금처럼 말이다.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읽어주면 좋겠지만), 돈을 벌지 못해도(벌면 좋겠지만), 알아주는 이 없어도(알아주면 신나지만) 글을 쓰는 지금처럼.
그래서 어쩔 건데, 퇴사하고 글 쓸 거야?
그럴 수는 없다. 나는 돈이 없다. 돈을 벌어야 한다. 재밌는 거 하자고 이번달의 월급을 포기할 형편이 못 된다.
마치 선택할 수 있었던 척했다. 퇴사할 수 있는데 내가 안 하는 거라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사직서 쓸 수 있다고, 돈 때문에 노예로 사는 게 맞는 거냐고, 원하는 거 하며 살아야 한다고.
너 진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야?
거만해.
1년 전의 나는 퇴사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고, 지금의 나는 현실을 볼 뿐이다. 회사를, 일을 좋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한 번도 피하고 싶지 않았던 적이 없다. 늘 도망치고 싶었다.
그걸 인정하면 나는 영영 불행하니까, 마음이 바뀐 거라고 자기 위로했던 것이다. 회사라는 선물을 방 한구석에 고이 모셔두고, 밤마다 쓰다듬고, 아침마다 먼지를 닦아 주었지만, 사실은 화려한 겉 포장지만 사랑했던 것. 그 안의 진정한 선물, 알맹이를 사랑한 적은 없다.
무력한 내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한참을 핸드폰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