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뻔하게 반복되는 일주일 세트가 네 번 반복되었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일, 똑같은, 똑같은, 똑같은.
매일 다른 하루였을 수도 있겠지만 한 달이 지나 돌이켜본 나의 일상은 그러했다.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거창한 결말을 기대하고 떠난 여행에서 아직까지도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하여.
열린 결말을 싫어한다. 특히 몇 달 동안이나 감정소모를 함께하는 드라마에서 열린 결말? 뒷 목 잡는다. 긴 시간 동안 행복한 결말만을 기다리며 위기-절정을 넘겨냈는데 결말이 비어있으면 뭐라고? 이게 끝이야? 하면서 텅 빈 허탈감 속에 분노가 차오른다. 마지막 화 방영 후 인터넷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구경하면 대부분은 나와 엇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
그런데 나도 글 한 번 써봤다고 작가들이 열린 결말을 내는 이유에 대해 이해해 버렸다. 완전한 오해일 수도 있음 주의. 법정스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오해는 이해 직전의 단계라고 했다. 오해라고 할지라도 무려 이해 직전까지나 온 것이다. 긍정의 힘 발휘!
열린 결말은 결말을 내길 포기한 작가들의 작문 위탁 행위일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이렇게.
결말 어쩌지? -> 내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 그들은 어떤 마무리를 원할까? -> 기대를 만족시킬 자신이 없는 걸 -> 에라 모르겠다 -> 너네가 알아서 생각해 -> 결말 개방
의 흐름이 아닐까? 나 지금 완전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건가? 모든 게 서투른 나는 프로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은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해피엔딩이라거나, 세드엔딩이라거나, 어쨌든, 이런 류의 만족스러운 결말을 기대했을 독자들을 실망시킬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무엇보다, 나는 엔딩이 없다. 실망스러운 엔딩조차 없는 걸. 아무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결말을 만들어내냔 말이다. 아, 무능하다. 하지만 거짓을 선보일 수는 없다. 퇴사했습니다~ 할 수도 없고 우리회사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다.
정직할 수 밖에.
그러니까 나는 작문 위탁 행위를, 어쩔 수 없이... 열린 결말로써 구현하려 한다. 어쩔 수 없는 거 맞나.
나도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어떤 의미를 찾았어야 했던 건지 알고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해본 적도 많다. 도서관에 가서 여행 에세이를 모조리 빌려와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다. 의미 없는 여행 없다지만, 세상에 의미 없는 짓이 어디 있겠냐지만, 정말 모르겠다.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나. 의미를 찾아다니는, 그러니까 의미가 없이 사는 나. 임시의 나인가? 그렇다면 진실의 나는 어디에?
진실의 나를 쫒고 있는 임시의 나.
이제는 의미라는 게 무엇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지금 찾고 있는 게 뭔지는 알고 찾는 거야?
어, 나는, 그게, 어... 그게.
여행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나는 의미가 뭔지 모른다. 아직도 모르는 게 이렇게 많다. 특히, 알고 있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몰랐던 것들이 너무 많다. 아직 세상이 새롭게 느껴진다는 점에서는 모르는 것도 마냥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의미, 의미란 뭘까. 사전에서는 뜻이란다. 의미가 뜻이란다. 뜻은 뭔데. 또, 가치라고도 한단다. 가치라.
가치는 뭐지? 가치를 가져본 적이 있었나? 그게 뭔지 모르니까 가져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아무런 답이 보이지 않는 흐릿한 나의 세계에서 점점 분명해지는 한 가지는 눈앞이 흐릿하다는 사실뿐이었다.
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의미가 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나 헤매고 있었구나.
아니지, 몰랐기 때문에 헤맸을 거야. 그럴 수도 있어. 아무도 안 알려줬잖아.
너무 자책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나간 오늘에도 의미가 있었을지 모른다. 내일도, 그다음 날에도 의미를 가진 하루가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릴 적 보석 찾기를 할 때가 떠올랐다. 나는 쌍둥이라서 쌍둥이오빠와 놀이터 중앙에 마주 앉아 물이 나올 때까지 합동하여 모래를 파대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면 저녁을 먹을 때가 되어야 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을이 지면 우리를 데리러 나온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가도, 다음날 다시 나와서 물을 마주할 때까지 똑같이 굴을 팠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손톱에 흙이 다 끼도록 모래를 팠다. 그 물이 우리에게는 보석이었다. 어쩌면, 이런 게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오늘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여행에서의 의미도 알 수 있겠지.
여행에서 의미를 찾을 일이 아니었다. 의미를 찾는 모든 걸음이 여행이었던 거야.
그렇다면 나의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나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떠날 수 있어. 언제든지. 떠나자!
활짝 열린 결말에 대한 심심한 사과를 남겨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