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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Sep 27. 2024

오늘도 오늘

하루종일 비빔밥만 먹는 중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식욕이 오르고 있다. 안 먹어도 배부르던 시절은 갔구나. 아~ 회사 가기 싫다.

내일부터는 다시 출근이야.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연휴 내내 다스려보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어떤 식으로 글을 마무리 지을까 고민 중인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아무 의미 없는 흐지부지 여행기가 될 것 같달까.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의미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으면서, 다 끝나고 이제 와서 질척거리고 있다. 진작 고민했어야 하는 건가. 한 발 늦은 건가. 지금이라도, 어떻게 안되나. 매듭은 지어야 할 것 아닌가.


늘 그랬다. 끝 힘이 약하다. 매번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니까. 이번 여행에서 막판에 표를 바꿔가면서까지 일찍 돌아온 것만 봐도 그렇다. 운동도 세 달 치를 끊어놓으면 내내 열심히 다니다가 마지막 1~2주는 아예 나가지 않는다. 마지막이니까 더욱 열심히 해볼 만도 한데 이제 곧 끝이라고 생각하면 에너지를 쓰지 못하겠다. 공부도 마찬가지. 벼락치기를 못했다. 학생 때는 암기과목이 많으니까 직전에 힘을 내서 늦게까지 공부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꼭 시험 전 날에는 평소의 절반도 집중하지 못해서 마지막 기회를 놓치곤 했다.

왜 그럴까.


멀리 살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자꾸만 먼 미래를 보니까, 마음이 붕 떠버려 오늘을 포기한다.

내 위치, 대부분 미래 혹은 과거에 있다. 뒤죽박죽 옮겨 다니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그래서 정작 현재를 놓쳐버린다. 


지금의 나는 지금을 살고 있는가. 


다시 회사에 가야 한다는 두려움에, 여행에서 의미를 놓쳤다는 후회스러움에, 정작 맑은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9월의 셋째 주 수요일 오전 9시를 놓치고 있다.

퇴사도 퇴사지만, 오늘도 오늘인 걸.


오늘의 내가 다른 날의 내게 잡아먹힌다는 것,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지도. 하다못해 미래와 과거만큼만 이라도 오늘을 돌봐야 할 텐데, 매번 뒷전이잖아. 이래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래?


지나친 과장이다.

뭐야. 웬 꼰대아저씨 등장이냐고.


끼어드는 사람을 싫어한다. 다들 잘, 은 못해도 어떻게든 해내는데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잘못되면 그럴 줄 알았다며, 잘 되면 또 그럴 줄 알았다며. 알았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그렇다고 알아서 할게요 주의는 아니다. 이전 글에도 써두었지만 오히려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필요하면 잘 물어본다. 너무 잘 물어봐서 탈일 정도다. 다만, 답변자만큼은 직접 정하고 싶달까.

그래서 타인에게도 그렇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함부로 교훈, 감동, 여운 주지 않기. 나도 모르게 한마디 거들고 싶어질 때마다, 어우, 어딜! 하고 입을 다무려고 애쓴다. (이 글에서 내가 함부로 당신에게 영향을 주려 했다면 무시해 주길 바란다. 처음 떠나는 유럽 여행에 신나서 그랬을 것이다. 알아서 잘 살아갈 당신께 무례를 범했다.)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고수는 먹지만 아몬드 껍질은 못 먹는 언니’가 그랬다. 나는 똑같은 일을 해도 누가 시켜서 하면 반감을 가지는 사람인 것 같다고. 결정권이 내게 있을 때, 그러한 자유가 있을 때 행복해하는 것 같다고. 맞는 말 같다. 하긴, 사람들이 하는 말은 어지간하면, 얼추 들어맞긴 하니까. 완벽히 틀린 말은 없잖아.


이 정도 되니 반감은 내 삶의 원동력인가 보다. 청개구리 심보. 하라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조언을 해주려 달려들면 귀를 막고,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한마디라도 더 담아두고 싶어 한다. 돌이켜보니 나, 참 힘들게 산다.

아무튼간에, 힘들게 사는 나는, 합의되지 않은 훈수를 두는 사람을 마주하면 마음속 미간을 빠직 찌푸리게 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방금 내가 나를 함부로 혼내려 했어. 누구는 오늘이 싫어서 뒷전인 줄 아나.


의미고 뭐고, 오늘이고 뭐고 모르겠다. 고민은 여기까지만 할래. 밤에는 하나도 오질 않던 잠이 아침을 먹자마자 찾아오려 한다. 시차적응 대실패. 한숨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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