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설렜다

by 초름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요. 비가 오면 대체로 기분이 꾸리꾸리 합니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맑은 날씨일 것이라고 해서 오늘만 기다렸어요. 햇살 컴온! 그런데 아침 출근길에는 날이 흐리더라고요. 기분은 다운되지만 비 때문에 출근길이 힘들어지진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주위에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퇴근할 때까지도 역시 비는 오지 않았어요.

'귀찮고 무거운 우산 안 챙긴 거 현명했어. 아주 칭찬해.'


문제는 제가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일어났습니다. 유달리 힘들었던 운동을 해서 달달달 떨리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나오는 길이었어요. 어라? 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아니! 안 온다며!"

일기예보 어플을 다시 켜보니까 갑자기 '이슬비'가 떠억. 억울합니다. 기상청에서 비가 내리는 걸 보고 급하게 이슬비로 바꾼 게 분명합니다. 한 시간 오고 그친다고는 하는데... 제게는 소나기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얼른 집에 가서 누워야 했거든요. 서서 비가 그치는 걸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부들거리는 허벅지를 붙잡고 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냥 비를 왕창 맞으면서 걸어가는 수밖에요. 가방을 머리 위에 받치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1/3 정도 왔을까요. 아무래도 엄마 찬스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엄마, 나 데리러 나와줘, 흥애" 엄마랑 저 멀리 보이는 신호등에서 만나기로 하고 빗길을 뚫기 위해 가방을 머리 위에 받치려는데,


"어디까지 가세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우산을 제 쪽으로 가져다 대며 묻는 것이었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라니.

2023년 들어서 들은 어디 중에 단연 최고의 어디 였습니다.

아줌마 설렜다.


"어머니가 데리러 오시는 중 이라서요. 감사합니다!"


어디청년은 머쓱한 웃음을 짓더니 살짝 목례를 하고 신호등 반대편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도 이내 등을 돌려서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엄마에게 걸어갔습니다.


엄마, 나 방금 엄청 잘 큰 청년이 우산 씌워주려고 했다?

저런 동생 낳아주면 안 돼?

... 내가 낳는 게 빠르겠구나.


아직 세상은 따뜻합니다. 아세따, 아세따!

어디청년, 따뜻함을 베풀어주셔서 고마워요.

집 가서 엄마한테 킬바사소시지 구워달라고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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