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이 싫어요

by 초름

저는 겨울을 몹시 싫어합니다. 어머, 너무 부정적 단어를 써버렸네요. 저는 겨울을 제일 덜 좋아합니다. 겨울은 너무 춥습니다. 너무너무너무 추워서 저번 겨울에는 2주 동안 치앙마이로 떠나버렸어요. 그리고 겨울의 서늘한, 싸늘한, 쓸쓸한, 처절한 분위기. 센치해지는 가을을 지나 고독해지는 겨울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침체되는 기분을 느낄 때면 겨울을 원망하게 됩니다. 겨울 냄새가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요. 하지만 제게 겨울 냄새는 뭐랄까, 상한 에어컨 맛이 난달까요?


그리고 하나 더, 겨울에는 양말을 신어야 합니다. 양말을 신으면 많은 수고를 수반하게 되지요.


첫째. 양말 빨래는 너무 번거롭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제가 대학생 때는 빨래의 기준이 양말이었어요. 양말이 떨어질 때쯤 빨래를 돌리는 주기를 가져야만 했습니다. 양말이 적은 것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찌나 잘 사라지던지.

그리고 양말을 빨래통에서 뺄 때도 꼭 몇 개가 잘 안 집어져서 빨래통에 머리를 넣고 읍, 읍, 하면서 주워야 합니다. 빨래걸이에 거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에요. 옷이나 수건은 턱, 턱, 널면 되는데 양말은 슈웅 착, 슈웅 착, 널어야 합니다. 발은 또 왜 두 개라서 하루치 빨랫감이 두 개나 되는 건지. 다 말린 빨래를 갤 때도 짝을 찾아가지고 묶어서 똥똥하게 보관해야 해요. (방금 말하면서도 귀찮아서 그만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게 디자인도 다 다릅니다. 분명 한 번 살 때 같은 디자인으로 왕창 샀거든요? 그런데 빨래할 때 보면 비슷한데 다른 애들 천지삐까리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만에 하나 같은 디자인일지라도 낡은 정도가 다르거든요. 이것도 고려해줘야 하는데 사실 고려 안 한 지 한참 됐습니다. 그것까지 하면 한겨울 맨발의 소녀가 바로 저였을 것이에요.


둘째. 양말 사는 건 골 아프다. 질 좋은 양말을 사기에는 뭔가 아깝습니다. 그래서 그냥 희거나 검은 양말로, 발목까지 올라오거나 아닌 디자인으로 대애충 사지 뭐 하고 사잖아요? 그러면 몇 번 신지도 않았는데 밑창이 해지거나 고무줄이 약해서 걸을 때 슬슬 벗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양말을 사봤는데 아침에는 하얗고 보드랍던 양말이 저녁이 되자마자 꼬질꼬질해져 있더랍니다. 얼마나 고심해서 고른 소중한 양말인데. 상처받아버렸습니다. 새 양말은 고작 반나절짜리 행복일 뿐이에요.


셋째. 답답하다. 양말을 처음 신을 때는 뽀송하고 따뜻합니다. 그래서 양말을 신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착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대단한 오산입니다. 네시간만 지나도 생각은 바뀝니다. 답답해 답답해! 양말 벗고 발 쓱싹쓱싹 닦고 탈탈탈 털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기대서 허리디스크 걸리는 자세로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차오릅니다. 이게 정말 난감한 게 뭐냐면요. 추워서 두꺼운 양말을 신으면 실내에 들어가서 따뜻해질 때 꿉꿉하고, 그렇다고 얇은 양말을 신으면 추운 밖에서 발가락이 오돌오돌 시리다는 거예요.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원! 고등학교 때 제 친구 민국이는 하루에 양말을 세 번 갈아 신고는 했거든요. 제가 그때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저희의 루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석식 냠냠 -> 운동장에서 회전초밥마냥 산책 -> 화장실 가서 발 쓱싹 -> 새 양말 개시 -> 야자

그러고 보니 그때 빨래통 속은 죄다 양말이었겠지요. 꽤나 불효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을 10년이 지난 지금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직 4월 초이긴 하지만, 아침에는 기온이 9도 정도밖에 안 되긴 하지만! 낮에는 24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반팔을 입어도 되는 날씨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끈하게 맨발에 샌들을 신고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뭐랄까요. 세상 사람 모두가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혼자 맨발의 청춘이라 살짝 엄지발가락을 움츠리게 된달까요. 그래도 당당해지겠습니다. 이제 반년가량은 양말을 (거의) 신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엄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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