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고 고대하던 실내마스크 해제. 아차, 정확히는 '대중교통에서' 실내마스크가 해제되었습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지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답답함이 역치를 넘어가고 있었거든요. 찐득하게 바른 선크림 위에 마스크를 얹고 후덥지근한 열이 나오면 그렇게 불쾌할 수가 없었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 마침내! 저는 지하철에서도 멀미를 할 때가 있는데 마스크를 벗으니까 아무리 차가 덜컹거려도 멀미가 안 나더랍니다.
그런데 생각도 못한 부작용이 있었어요. 바로 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년 동안 저는 마스크 안에서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싸이코패스가 되는 제 인성을 숨겨왔거든요.
오늘만 해도 그렇습니다. 출근길에 옆자리에 서 있던 아저씨가 가방으로 제 엉덩이를 툭툭 치는 거예요. 사람이 많지도 않았는데 굳이 옆에 딱 서서! 몸을 흔들면서! 가방으로 치는 게! 너무 불쾌하더라고요. 평소처럼 오른쪽을 흘깃 쳐다보면서... 욕을 해버렸습니다.
"이런 미친놈을..."
오우, 아저씨가 바로 가방을 옮겨 쥐시더니 옆칸으로 도망가시더라고요. 도망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고 알았습니다.
아, 나 마스크 안 꼈구나. 세상에
얼떨결에 아저씨한테 냅다 욕을 해버린 거예요.
아저씨가 실수로 그런 거일 수도 있는데 제가 너무 오버한 것 같은 민망한 마음 반, 저렇게 딱 걸린 표정을 짓고 도망가는 걸 보니 실수는 아니었구나 하는 분노 반. 그런데 정말 실수는 아니었어요. 어떻게 실수로 가방을 스윙하면서 엉덩이를 퍽퍽 치나요? 이런 미친놈.
자리를 떠난 아저씨를 곱씹으면서 신명 나게 욕을 하다가 요즘 보던 드라마를 이어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번 화에는 싸움씬이 있었습니다. 약간 그런 장면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많은 상처를 받은 여주인공이 또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 현재 남자친구에게 먼저 헤어지자고 하는 장면.
여주인공: "네가 날 사랑하는 마음이 며칠이나 가는지 보자. 너도 날 떠나겠지."
남주인공: "그래 한 번 봐. 얼마나 가는지. 넌 나를 너무 하찮게 봤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푸확!-"
남주인공의 대사를 듣자마자 침을 뱉어버렸어요.
저렇게 말을 한다고? 저렇게 오글거리게 말을 할 수 있다고 진짜?
'넌 날 넘후 하촪게 퐈써, 내카 널 을마놔 싸랑하눈테...!'
아니 너무 귀엽고 웃기고 오글거리잖아요.
저는 이내 양쪽 사람이 저를 흘깃 쳐다보는 걸 느껴버렸습니다.
아, 나 마스크 안 썼지.
하지만 저는 이미 잇몸을 만개하며 웃는 중이었기 때문에 웃음을 그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손으로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손마스크를 써야만 했어요.
오늘 한 시간의 출근길은 정말이지 길고 다채로웠습니다. 출근도 하기 전에 기가 쪽 빨려버렸어요.
생각해 보니 어제는 지하철에서 드라마를 보면서 엉엉 울었는데 그때도 마스크를 안 쓰고 있었네요.
어제의 저는 지하철에서 훌쩍훌쩍 우는 사연 있는 인간이었겠습니다.
... 아무래도 표정 숨기는 법을 연마해야겠습니다.
그도 아니면 마스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