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컵 찢어도 되나요?

by 초름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12시에는 잠에 듭니다. 사실 12시에 자면 다음날은 꽤 힘들어요. '12'라는 숫자를 보기 전에 이마를 탁 치고 잠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저께는 실수로 넘어져서 유튜브를 보다가 늦게 잠들었더니 너무 피곤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제는 무려 10시 반에 잠들었습니다. 제 몸은 기가 막힌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5시부터 눈이 떠지더라고요. 다시 잠들고 일어나기를 세 번 반복하니 여섯 시가 다 되어가더랍니다. 으랏짯짜 잠도 오래 잤겠다!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려는데, 별로 개운하지 않아요. 뭔가 뻐근하고 피곤합니다. 운동 때문이 아니에요. 이건... 저는 이 느낌이 뭔지 압니다. 시작이네.


원래대로라면 어기적 어기적 화장실로 기어갔겠지만, 오늘은 당차면서도 빠르게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생리컵에 도전하는 첫날이거든요. 제 생리용품의 역사 속에는 생리대와 탐폰만이 존재했습니다. 여름에 국토대장정을 갔을 때 생리대를 쓰면 엉덩이가 쓸려서 상처가 날 수도 있다고 해서 탐폰을 처음 썼던 기억이 나요. 함께 갔던 친구는 탐폰 도전에 실패했지만 저는 은근 쉽게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생각보다 되게 편하더라고요. 그런데 뭐랄까, 점점 안 쓰게 되더랍니다. 우선 생리대보다 비쌌고요, 잘못 착용하면 이물감이 느껴져서 앉을 때마다 쿡쿡 쑤시고, 생리가 끝나갈 때 쓰면 자궁이 건조해서 뺄 때 쓰라렸거든요. 무엇보다 잘 때는 쓸 수가 없어요. 3~4시간마다 갈아줘야 해서요. 그러다 보니 다시 스멀스멀 생리대의 길로 우회했습니다.


그런데 생리대는 정말 정말 최악의 단점이 하나 있어요. 그건 바로 수면입니다. 생리를 할 때면 잘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생리대의 위치가 틀어지면 피가 왈칵 샐 수 있기 때문에 옆으로 누워서 잠들고 뒤척이지 않도록 각성해야 하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휴지 비법을 잘 활용해야 해요. 그게 어찌나 불편한지 잠에 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겨우 잠에 들어도 다섯 시간 안에 일어나서 생리대를 갈아줘야 해요. 그 이상 꿀잠을 자버리면... 끔찍합니다. 아침부터 찬물에 이불빨래로 팔 운동을 제대로 해야 해요. 물론 불안한 마음에 수건을 받치고 자긴 하지만 수건이 제 자리에 있는지도 확인해야 해서 자다 깨다를 무한 반복... 선잠을 자다 보니 악몽도 많이 꾸고요.

아놔 열받네. 잠시만요.

생각해보니까 제가 고려하는게 지금 한두개가 아닌데요?


1. 생리대 위치 잘 잡기

2. 옆으로 누워서 안움직려고 각성하기

3. 휴지비법

4. 다섯시간마다 일어나서 생리대 갈아주기

5. 이불 위에 수건 받치기

6. 수건이 제 자리에 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기


새삼 싸이코패스가 되지 않은게 너무 기특합니다.

도저히 이렇게 30년을 넘는 시간 동안 폐경만을 기다리며 살 수는 없습니다.

대체제가 간절했습니다. 그러고보니 10년 전쯤 생리컵이 한국에 도입되었던 시기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때도 생리대를 쓰는 게 너무 불편해서 생리컵에 혹 했었거든요. 그때는 생리컵이 무려 10만 원가량 되었어요. 게다가 저는 학생이었으니 제가 체감하는 가격은 100만 원을 웃도는 명품백 정도였을 겁니다.

그런 저에게 생리컵을 다시 상기시켜 준 것은 제 친구였습니다. 생리컵을 쓴 지 꽤 되었다는 친구는 12시간 동안 갈지 않아도 되니까 잘 때 너무 편하고, 처음에는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생리날이 되어도 하는 것 같지가 않다며 적극 추천했습니다.

이거다. 느낌 왔다. 느낌이 오잖아!

가격을 다시 알아보니까 국내산 제품도 많이 생겨서 3~4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더라고요. 잘 때 오버나이트 대신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뽕 뽑는 가격이네! 바로 구매해 버렸습니다. 생리컵의 접근성이 낮다 보니까 시작할 때 알아두면 좋은 팁을 정리해 둔 책도 받아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생리가 시작하는 날을 기다리게 된 것이에요.


첫 후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생리컵 찢어버릴 뻔했다?

착용하는데 10분이 넘게 걸렸어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각이 분명했습니다. 제 안의 악마세포가 생리컵을 찢으라고 소리쳤지만, 10년 전 생리컵이 비싸서 못 산 자린고비세포가 겨우 말렸어요.

마침내! 결국! 저는 이루어냈습니다. 저는 승리했어요. 만세... 만세... 털썩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이 남았습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9시간.

9시간 후에는 생리컵을 갈아주어야 하는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하나 확실한 것은 초콜릿을 잔뜩 먹어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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