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금요일에 회식이 있어서 입사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 모였는데 제 기준으로 두 명의 친구는 근무지가 같아서 매일 보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명은 근무지가 달라서 한 달 만에 보는 날이었어요.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궁금하면서 반가운 마음에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인들 만남의 성지는 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당입니다. 특히 저희 회사는... 모종의 이유로 사당일 수밖에 없어요. 다들 빠른 퇴근을 하고 이른 시간부터 치맥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모임에는 D라는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의 특징은 막내라는 것입니다. 막내가 무슨 특징이냐고요? 막내가 특징이라기보다는... 뭐랄까요... 다른 친구들과는 확실히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우선 저는 2년 동안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뚝 사라진 상태로 입사를 한 케이스입니다. 회사고 뭐고 그냥 쉬고 싶다... 그냥 누워있고 싶다... 다 싫다... 의 마음이랄까요. 두 번째로 S는 이미 저희 회사에서 반년동안 인턴을 했던 친구예요. 어떤 회사인지, 상사가 어떤 사람인지, 밥이 어떤지(?) 다 알아서 기대가 없었던 친구입니다. 마지막으로 M과 C는 다른 회사에서 1년을 근무하다가 이직한 친구들이에요. 더 좋은 회사로 온 거긴 하지만 첫 입사에 대한 두근거림은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고 해요.
자 그러면 여기서 D는 어땠을까요? D는... 아, 다시 생각해도 참 귀엽습니다. 저희 연수 전 날에 잠을 못 잤대요. 설레서요! 정말 귀엽지 않나요? 지금도 미소가 띠어집니다. 연수를 하는 동안에도 애가 웃음을 못 참고 실실 웃는 모습이 풋풋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는 왜 D처럼 애사심이 생기지 않고 들뜨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전에 제가 썼던 '취업은 하고 싶은데 입사는 하기 싫어요'라는 글에서 설레서 밤 잠 못 이뤘던 친구가 바로 D 예요. 연수를 야근이라고 생각했던 저희 넷과는 달리 "노는데 돈까지 주다니!" 하며 잇몸을 만개하던 D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D는 변했습니다.
D는 웃음을 잃었어요. 너무 싸늘하더랍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가 반갑지도 않은 눈치였습니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 말을 하면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웃음기 없이 시크하게 반박만 하더라고요. "야~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다!" 해도 '뭘 봐'라는 눈으로 매섭게 쳐다보더라고요. 아놔, 쫄았네.
도대체 얼마나 힘들길래 애가 표정을 잃었나 싶어서 D의 회사생활에 대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D를 힘들게 하는 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한 달에 한 번 지방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
2. 면허를 따라고 재촉한다.
3. 눈치 보인다.
부끄럽지만 처음에 든 감정은 '별 일 아닌데...?'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생각이 틀렸어요. 모난 생각입니다. 본인이 힘들다면 그것은 힘든 일이 맞습니다.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힘들다고 판단하는 역치는 모두가 다릅니다. D가 힘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왜 시들어가는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요.
기대를 하면 할수록 실망도 커지게 되어있다고 합니다. 회사에 바라는 기대가 하나도 없던 친구 넷은 만족하며 다니고 있고, 기대를 채우고 싶었던 친구는 절망하고 있는 걸 보면 틀린 말 같지는 않습니다. 한 달 동안 어떠한 곡선으로 D의 감정 그래프가 변동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달 전과 오늘날의 점 두 개밖에 보지 못했지만, 무언가가 D의 감정에 (-)를 집어넣은 것이겠지요. 기대에 목말라있던 D는 본인에게 해로울지도 모르는 음의 감정을 냉큼 삼켜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 더, 저는 이 친구를 잘 알지 못합니다. 오래도록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지요. 제가 저번주 금요일에 본 시니컬한 D의 모습이 그의 본모습일 수도 있고, 연수 때 본 방긋한 모습이 본모습일 수도 있고, 저는 아직 D의 정체를 하나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하는 모든 생각은 마치 제가 D를 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섣불리 판단하고 억측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D가 이직 준비를 할 것 같은 느낌은 왜 자꾸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일까요.
이미 서류를 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놈이 그놈일텐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