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경제학계의 풍운아, 존 스튜어트 밀
일시: 2021년 3월 10일(수) 5회차 낭독
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저)
읽은 부분: 3장 <4장, 자유무역의 화신, 데이비드 리카도>
참석자: K, Y, H 참석 (j님이 일이 바빠 참여하지 못함 )
밀은 <정치경제원리>에서 연역과 귀납이라는 두 가지 추론 방법을 모두 사용한다. “생산을 지배하는 것은 불변적인 즉 보편적인 법칙이다. 따라서 생산에 대해서는 연역적 추론을 적용한다. 그러나 국부의 분배는 이와 다르다. 그것은 전적으로 관례의 문제다. 그래서 분배에 있어서 인간은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어떤 법칙을 따르기보다는 기존의 사회적 관례나 개인적 선호를 따른다. 다시 말해, 분배에 있어서는 보편적인 법칙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귀납적인 추론을 적용한다. 이는 일종의 혼용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분석 대상에 다른 추론 방법을 적용했다는 측면에서 두 가지 추론을 하나로 혼용한 것과는 다르다. (217)
밀은 구제 수당이나 임금을 높이자는 사회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정책들은 반대했다. 이제 밀에게 남은 일은 자신의 규범적인 정책들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모델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빈민들에 대한 공교육을 지지했다. 그는 읽고 쓰고 셈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가치관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설득하는 것도 교육적 측면에서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231) 따라서 밀은 도덕 교육과 경제적 동기를 결합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화폐, 과세, 국방, 법질서 확립에 더해 소비자 보호, 교육, 사업 규제 등 선택적 기능들에 대한 개입 결정) 그의 이런 주장은 매우 현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늘날 정부의 주요 기능들과 정책들을 앞서 예견했다. (232)
** 밀의 방법론
h: 생산과 분배 중에 생산은 과학적 연역적인 범주이고, 분배는 인간의 행동이기 때문에 우리가 결정을 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며 이후에 이 사람이 던진 화두들, 이것들이 지금까지 제일 중요한 이야기들 같다. 세금을 누구한테 얼만큼 매겨야 하고,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 노동을 해야만 돈을 주어야 한다, 살아있으면 다 주어야 한다등- 이런 논의가 지금도 중요한데, 이런 논의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좀 신기하다. 그전에는 이게 그렇게 중요한 대상은 아니지 않았을까.
k: 저는 여기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 시대가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생산력이 넘쳐나니까 이것을 다른 나라에 팔아야하고, 자유무역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자본주의를 효과적으로 생산력을 높이는 면에만 집중을 하는 시대에 분배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놀라웠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이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h: 복지제도에서 이 사람들에게 돈을 줄거냐, 돈을 주면 일을 안 할 거다. 이런 것들 지금도 매일 나오고 있는 이야기들 아니냐.
k: 저는 신기했던 게 누진세에 대한 밀의 생각, 미국이 어쨌든 누진세를 선택하면서 세계적으로 누진세가 당연시되었는데 누진세를 선택한 게 신기했다. 비례세를 선택할 것 같았는데.
y: 왜냐하면 밀한테는 그게 중요하니까. 기회의 평등. 그런 면에서 이 사람이 최후의 정치경제학자다 (마르크스 빼고) 이런 말을 들을 만한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경제는 생산과 분배로 이루어지는데 경제에서는 분배를 정치의 영역이라고 하면서 모른척 하지 않나. 이 두 개의 영역이 확 분리된 영역이 아니고 의도와 의미부여가 분명히 개입되는 부분인데 경제는 마치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그래프 상에서 만나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런데 사실, 모든 경제의 영역이 생산과 소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분배의 영역도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그것을 정치의 영역이라고 퉁치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져왔던 나로서는 밀이, 분배의 영역에 대해 총체적으로 고민한 사람, 그래서 정치경제학자 라는 말이 되게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중요시여기는게 벤담한테 끌렸다가 결국은 (비용을 중시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다가 아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밀은 도덕의 영역에서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부자고,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가난한데 그런 상태에서 시작을 해서 계속 부자가 되면 그게 과연 바른 사회냐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롤스의 정의론이 지금 현대의 분배에 대한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 사회의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이냐 다루지 않나. 밀이 ‘기회균등의 법칙’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볼 때 이후 롤스로 이어지는 정의와 분배에 과한 논의의 시작점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게 ‘공교육’ 부분이다. 그전에는 귀족들이 개인과외교사처럼 배우고, 애덤스미스가 과외교사로 가다가 지루해서 국부론 쓰고, 모든 사람이 무조건 학교에 가야해 이런게 없었다. 근데 밀이 이게 생산과 분배를 고민하고, 분배를 고민하다보니까 가난한 사람에게 언제까지 그냥 돈을 줄 수는 없어, 그들한테도 어떻나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이들에게 교육을 시켜야겠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건데.
이런 그의 생각이 몇 백년이 지난 우리의 인생의 삶의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것 같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들이든 어쨌든 이 자본주의에 근로자로서의 마인드셋을 하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교양 정도의 수준을 갖추고 그래야 사회에 나갔을 때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게 되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공교육 제도가 나타나면서 아동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전에는 아동기가 없었죠. 9세부터 공장에서 일하고, 아동이란 개념이 없었는데, 공교육제도가 나오면서 그럼 공교육에서 몇 살부터 몇 살까지 공부시키냐 라고 했을 때 15세 정도까지 공부시킨다. 그러면 그때는 사회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시기, 미성숙하고 준비되지 않은 시기, 준비하는 시기. 그럼 이 시기는 아동기라고 하자, 그러면서 아동기라는 개념 자체를 발명해버린 거다. 우리의 생애주기, 라이프사이클의 개념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h: 이 사람이 그렸던 청사진. 이런 것들이 되게 많이 도입된..
** (마르크스 제외) 최후의 정치경제학자
k: 마르크스가 뒤에 나오긴 하지만, 밀과 마르크스 이후의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의 이론을 정치로 투영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밀을 보면서 느꼈다. 200년이 된 지금까지 큰 틀이 바뀌지 않은 거다. 마르크스는 시도했는데 처절하게 실패한 거고, 그래서 밀이 가지는 정치경제학자로서의 밀도와 영향력을 어떻게 정치에 관철시키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y: 그리고 저는 경제학이 철학이나 윤리하고는 괴리되어 있는 학문인 것처럼 (경제학이라고 하면 어떤 과학자가 정답을 알려주는 것처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사실 경제를 바라보았을 때 그 시스템을 바라보는 틀 자체가 철학적인 신념 혹은 윤리적인 가치관이 많이 투영되어 있지 않나, 의지로서 실행화할 수 있느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h: 중간에 저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경제학자들이 철학과 윤리학과 분리하게 된 이유를 보면 모두 통달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너무 논의가 방대하고 실증경제학이라고 하는 실험실의 실험자같은 경제학자, 그런데 이 사람은 굉장히 정교하고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엄청 엄밀하고 정확한 말은 할 수 있겠지만 철학과 윤리학까지 공부할 여력은 없어, 시간이 없어지는 것 같다.
k: 밀은 아버지 덕분에 그걸 할 수 있었네, 어려서부터 혹독한 영재교육으로 사반세기 앞서나갈 수 있었으니 그걸 할 시간이 있었던 거야. 맑스는 천재였고. 지금 경제학자들한테 뭐라고 할 수가 없네.
y: 그런데 저는 이거보고 밀이 조금 좋아졌다. 그전에는 좋다 싫다 할 것도 없이 밀에 대해 잘 몰랐는데 되게 균형잡힌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h: 그리고 우리한테는 자유론으로 더 알려져있는데 이걸 보니까 <정치경제학 원리>를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5권짜리래요.) 그럼;;;
밀의 인간적 안타까움
h: 자유론은 제목부터 멋지잖아요. 그런데 사놓고 읽을 수가 없어. 잘 못 읽겠더라고. 좀 딴 이야기지만, 밀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고 별 인상도 없었다. 다만 이성과 합리를 넘 중시하는 지금 현대를 만들어온 기조라고 생각해서 (그것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근데 이 사람이 되게 인간적으로 안타까웠던 부분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을 지탱해온 모든 기반이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내 모든 행복은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목표가 내 앞에 있다는 것 자체였다.“ (208)
어머 이 사람은 정말 그 정도의 상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는데 있는게 맛있는 건지 잘 모르겟고 좋고 싫은게 안 느껴지니까 너무 무서웠다. 근데 그러고 나중에 이 사람이 감각에 대해서 받아들였다에 안심되는 느낌. 먹을 걸 먹어야 맛있고, 예쁜 거 보면 좋고, 쉬고 싶고 그런 것을 인정했을 때 좀더 행복한. 마침내 세상이 감각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k: 밀이 그런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나보다. 더 이상 부를 추구하지 않고 다른 명예나 고결함 위엄을 추구할 수 있었던 듯. 자유론에도 나오지 않아요? 이부분? my own mode 그렇기 때문에 내 앞에 목표가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나의 오운 모드로 살아야 한다, 이 이야기가 자유론에서 나와요.
낙관적 사회
h: 참 이 사람은 그 시대에 대해 되게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했는데 (236) 그런데 나는 이렇게 말은 못하겠다. 경쟁이 싫다, 혹은 경쟁이 사라지면 인간이 다 나빠질거야 이렇게도 말은 못하겠고.
y: 저는 그 생각은 들더라구요. 국부론에서도 보지만 자유경쟁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결국은 지 나라 부자되고 싶은 욕망이 발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나라, 자본주의라는 게 과연 네이션의 범주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네이션은 (미국이 좀 특이하긴 하지만) 결국 민족주의의 범주에 있는 거고, 결국 그 경계를 넘어서는 자본주의가 과연 존재할까? 나는 아닐 것 같다. 그러니까 뭐야, 귀족제도 없애고 모든 시민에게 자유를 준다는 온갖 래디컬한 척은 다 해놓고 결국은 자기끼리 잘 살면 된다는 거야, 이런 불만이 좀 있었다.
그러다 아, 나도 똑같네. 결국 나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 거잖아. 결국은 작은 단위, 나, 부모님, 자식, 가족 그 안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게 결국 너무 자연스런 나의 욕망인 거예요. 그러면 내가 국부론에 대해 뭐라고 욕을 할 수 있는 건가, 그런 내가 삼성의 세금탈세하고 그런거에 되게 쉽게 욕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욕을 할 수 있을까. 되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인 것 아닌가.
h: 그리고 사실은 삼성의 가족경영을 함으로써 전문경영인이 할 수 없는 영역을 한 것도 있잖아요. 물론 탈세나 이런 것은 당연히 비판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나도 최대한 세금을 아끼고, 지분구조 정리를 해서 나의 지배력을 키우고. 수성을 못할 것 같으면 무슨 방법을 찾으려고, 나도 했을 것 같다.
k: 근데 마르크스가 되게 대단한게, 그 전의 경제학자들은 국가가 굴릴 수 있는 레고를 가지고 움직였다면, 마르크스는 국가를 넘어서 지구를 움직일 수 있는 계급이라는 레고블럭을 가지고 굴릴 생각을 한 거다. 이렇게 지구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계급'이라는 레고블럭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네이션 이라는 한계를 풀 수 있었던 것 같다. 저는 절대 마르크스처럼 생각 못했던 것 같다. 나와 가족 밖에 생각 못하는데.
우리가 정말 복지에 관심이 있기는 했었나?
k: 저는 조세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내가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에 관심있나? 생각했다. 내가 진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조세로 부의 정의, 부의 평등을 정말 바라고 있나? 솔직히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부랑자가 정말 많더라구요. 마스크를 쓰지 않은 그 사람과 떨어져 오는 나를 떠올리며 이제 아니라고 너무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세금탈세하면서 자기 배만 채우는 사람들 욕은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과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지는 않는구나. 내 삶의 문제로 깊숙이 받아들이진 못하는구나.
h: 저는 그렇게 말하는게 되게 정직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디서 누가 이야기했는데, "자기가 되게 착하다고 착각하지 마라. 전 지구인이 인류를 사랑할 순 있지만 내 옆의 부랑자가 다가오면 발로 차버릴거다." 저는 사회복지나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 하나하나 사랑하는 마음은 전혀 없지만 저는 그건 있거든요. 내가 지금 건강하지만 이건 되게 행운이다. 그런데 아까 이야기한 기회균등의 출발선이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내가 태어나는 것은 선택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다음 생에 내가 완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더라도 기본적인 공부는 할 수 있게 한다면, 그건 나의 조금의 돈으로 충당하는 건 괜찮아. 그런 식으로 갈 정도인 것 같다. 인류를 사랑할 수 있어, 인류를 사랑하긴 너무 쉽지.
y: 그리고 거기에 대한 불안이 있죠. 나는 아직은 건강하고, 특별히 장애가 있거나 그렇진 않지만 이게 되게 일시적인 상태이다, 이게 영속적이지 않다는 걸 너무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 그런데 모든 사람한테 사랑을 주긴 너무 어렵고 주고 싶지 않고, 그래서 나는 그런 죄책감을 기본소득 같은 제도로 커버치려고 하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관심은 없지만 인류는 사랑하니까, 정상적인 인간 상태가 한시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내 아이가 혹은 내가 언제 어떻게될지 모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제도로 커버했으면 좋겠다.
h: 저는 그게 진짜 이성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못다한 이야기
h: 비례세와 누진세 논의가 지금도 정치권에서 자꾸 이야기하는데. 자꾸 버는 사람한테 벌주지 마라, 이게 되게 중요한 논의인것처럼 말하는데 이게 되게 쉽고 도식적으로 말하는데 이걸로 세금증세 논의를 누르는데 부의 원천, 과세 대상의 이야기도 하려면 정말 길거든요. 소득에 대해서 과세를 내는 이유는 사실 이것이 매기기 쉬워서이다. 지난 시간 토지에다 매겨야 하는데 그걸 측정하기 어려워서 매길 수도 있고 상속이라는 게 누군가 소득세를 내가면서 번 것을 다른 사람한테 준다고 또다시 과세를 하는 이중과세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밀이 이 노동의욕과 이것을 연관시켰다는 것은 굉장히 순진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k: 그런데 이 레토릭이 여전히 통용되고 누군가에게는 계속 영향을 주고 있다.
k: 그런데 이 장의 제목이 경제학계의 풍운아, 밀이다. 왜 밀이 풍운아일까?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
밀의 방법론-> 최후의 정치경제학자-> 밀의 인간적 안타까움인 우울증에 대하여-> 낙관적 사회와 복지를 사회적인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으로 볼 때-> 이어서 못다한 이야기들까지.. 밀은 정말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는구나. 밀의 다른 저서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음 시간에 마르크스. 기대만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