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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Jan 14. 2024

사람이 사물이 되는 경험

지극히 사적인 임신, 출산 이야기

임신했을 때 나는 임신중독증 진단을 받았고, 그로부터 며칠 후 서울의 큰 병원에서 응급 제왕절개술로 아이들을 낳았다. 임신이 시작된 날로부터 30주 3일이 되던 날 아침이었다.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수차례에 걸쳐 의사들이 몇 내 배에 붙여 연결한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가더니, 아침 아홉 시에 “오늘 수술해야겠습니다. 1시간 뒤에 수술 들어갑니다.”라는 말로 나의 출산 일정을 통보했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출산에 몹시 당황했다.


서울과는 거리가 먼 지방에서만 오래 살아왔고 가족 모두가 그러한 탓에 나는 그 병원에 혼자 입원해 있었다. 입원 수속을 할 때만 남편이 같이 갔고 다음 날에 출근해야 해서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나는 온갖 위험천만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의사의 말을 들으며 멍해진 채로 수술동의서에 스스로 서명했다. 지금 내 앞에서 마치 감정이 극도로 절제된 랩을 하는 것처럼 수술 부작용을 읊는 의사의 표정과 목소리와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의서에 서명한 직후부터 내 몸에는 일사천리로 수술 준비 과정이 진행되었다. 갑자기 내가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라간 짐짝이 된 것 같았다. 이것 다음엔 저것, 그다음엔 또 다른 것이 내 몸에, 별다른 설명도 내 몸에 대한 염려도 없이 행해졌다. “좀 이따 수술해야 해서 이것 좀 할게요.”, “10시 수술이라 빨리 할게요.” 같은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수술실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겁이 났다. 나는 그 어떤 보호자도 없이 수술받아야 한다! 만일 수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수술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이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나는 무서워서 미칠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수술을 통보받아서 수술해야 하는 것도 무섭고, 보호자 없이 혼자서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도 무서웠지만 무엇보다 내가 무서웠던 것은 뱃속에 있던 아기들 때문이었다. 정말로 이렇게 빨리 세상에 나와도 되나? 정말로 이 아기들은 멀쩡히 태어날 수 있을까? 어떤 ‘장애’를 갖고 태어나지는 않을까?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내 뱃속에는 아기가 둘 있었다. 한 아기 몸무게가 다른 아기의 절반이었다. 큰 아기는 당시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는 중이었고, 그 아기의 절반인 다른 아기는 주수에 비해 잘 크지 않아서 몇 차례 정밀 초음파 검사를 해 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도 작은 아기는 몸무게가 좀체 늘지를 않았다. 한 뱃속에 들어 있는 두 아기가 이렇게나 다르게 성장하다니 의아했다. 임신 기간 내내 그 아기가 불안했다. 오른쪽 아래에 터를 잡은 큰 아기는 태동도 우렁찼는데 왼쪽 위에 터를 잡은 반쪽짜리 작은 아기는 태동도 미미했다. 큰 아기의 태동은 탄력이 붙은 힘찬 발차기처럼 느껴졌지만 작은 아기의 태동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고양이가 꾹꾹이를 하는 느낌이었고 큰 아에 비해 태동하는 빈도도 훨씬 적었다.     


알지도 믿지도 못하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제발 둘 다 ‘멀쩡하게’ 태어나게만 해 달라고.     


음모를 제거하고 외음부와 아랫배를 닦고 소독한 다음 옷을 벗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채로 수술대에 누웠다. 수술복은 옷이라기보다 차라리 앞치마에 가까웠다. 앞부분만 천이었고 뒷부분은 묶는 끈만 있었다. 그나마 앞부분의 천이 상반신을 모두 덮을 정도로 넉넉해서 어깨와 팔을 뒤쪽까지 감싸주기는 했지만 등과 다리의 뒷면은 보호해주지 못했다. 나는 수술대가 그토록 차가운지 몰랐다. 한 번도 수술을 겪어본 적 없었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동안 아예 관심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알몸에 얇은 천을 덮고 있는 나에게 “차갑습니다.” 한 마디를 건넬 여유나 아량도 이곳에서는 기대해서는 안 될 말인 것처럼 느껴졌다. 냉동실에서 막 꺼내 온 것처럼 차디찬 수술대만큼이나 그곳에서 나를 둘러싼 의사와 간호사 모두에게서 한기를 느꼈다. 누운 몸이 덜덜 떨렸다. 내려다보이는 두 다리가 의심의 여지없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덜 떨고 있었다. 아무도 떨지 않았고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혼자서 벌거벗은 채로 떨고 있는 내가 수치스러워 떨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효과는 없었다. 수치심을 느낄수록 더 수치스러워졌다.     


한 의사가 하반신 마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하반신 마취는 말 그대로 하반신에 있는 감각만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의식이 멀쩡히 살아있다. 그래서 나는 수술 진행 과정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마취 주사를 맞고 얼마 되지 않아 허리 아래에서부터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기해하고 있는 찰나에 수술을 맡은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수술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무슨 농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 같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뉘앙스였냐면 이따가 점심 메뉴를 무얼 먹을지, 어느 식당이 잘하는지, 누가 무슨 음식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 같았다.


내가 너무 긴장한 탓에 그 긴장을 풀어주려는 배려일까? 생각도 했지만 나는 불쾌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배려라고 느낄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 상황이 무서워 죽겠고 내 신세가 서러워 죽겠는데 내가 지금 웃게 생겼는가? 나는 그것이 배려였다기보다,(내가 상처받기 싫어서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뿐이다.) 나에 대한 무관심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수술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수술이었으리라. 수십, 수백 번을 똑같이 반복해 온 수술이었을 테다. 태어나서 처음 수술대에 오른 사람의 사정 같은 건, 이 사람이 지금 오늘 아침에 이 수술을 하리라는 사실을 통보받았으며 이 사람의 아기가 ‘비정상적’으로 작다는 사실 같은 건 아무려나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널리고 깔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손가락에 살짝 베인 상처 하나 가지고 지나치게 엄살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수술실에서 내가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 이를테면 하나의 ‘사물’이 된 것 같았다. 몸뚱이라는 사물이. 나는 그저 그들이 손대어 무언가를 해야 하는 대상, 몸 자체일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꼈다. 아랫배 부근에서 빵칼 같은, 단단하지만 날이 아주 예리하지는 않은 도구로 내 배를 지그시 눌러 긋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뱃속에서 작은 덩어리 하나가 쑤욱 빠져나간 듯하더니, “응아~ 응아~”하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둘 중에 누가 나온 거지? 생각하고 있는데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아마도 아기의 상태를 확인한 것 같다.) 한 의사가 아기를 내 눈앞에 2초간 들이밀며 말했다.

“아기 나왔습니다. 신생아중환자실로 갑니다.”

신생아중환자실? 내가 낳은 아기가 중환자라고? 방금 스쳐 간 그 아기는 내 두 주먹을 합친 것만 했고 검붉었다.(피는 닦은 상태였다. 피가 묻어서가 아니라 피부색 자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빨강이었다.) 사람의 아기 같지 않았고, 내가 낳은 아기는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아기가 하나 더 남았다. 곧이어 나머지 한 덩어리도 쑤욱 빠져나갔고, 아까보다 확연히 작은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는구나. 다른 건 몰라도 울 수는 있구나. 안도감이 밀려와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한 의사가 내 한 주먹만 한 아기를 2초 정도 내 앞에 들어 보인 뒤 급하게 아이를 데려가며 말했다.

“이 아기도 신생아중환자실로 갑니다. 이제 처치하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아이들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아침에 수술 소식을 듣자마자 직장에서 달려온 남편은 내가 처치를 받는 도중에 병원에 도착해 의사에게 수술 결과를 전해 들었다. 수술 결과와 아기들의 출생 시 체중은 남편에게 전해 들었다. 남편이 첫째 아기의 출생 시 체중은 1.56kg라고 했다.(신생아 출생 시 평균 체중은 약 2.5~4.5kg이다. 출생 시 체중이 2.5kg  미만인 아기를 ‘저체중아’, 1.5kg 미만인 아기를 ‘극소 저체중아’, 1kg 미만인 아기를 ‘초극소 저체중아’라고 한다.) 그러나 1.56kg에서 충격을 받을 새도 없었다. 둘째 아기의 출생 시 체중은 860g이었다. 0.86kg, 그러니까 몸무게가 1kg도 되지 않는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편은 재빨리 그다음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이상 없고 멀쩡하대. 괜찮을 거라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간호사들도 내 상태를 확인하러 와서는 한두 마디씩 하곤 했다.

“우리 병원에 산모님 아기처럼 작은 아기들 종종 들어오는데 거의 다 많이 크고 건강해져서 나가요.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면 돼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이 둘을 모두 언제 퇴원한다는 기약도 없이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출산 사흘 만에 퇴원하니 서울에 연고가 없는 내가 갈 곳이 없어 한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산후조리원은 2~3주 정도 머무는 경우가 보통인데, 나는 들어갈 때부터 사정을 설명하고 무기한(언제까지 머물지 모르는 상태)으로 그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 약 10주간 머물렀다. 두 달 하고도 2주 더. 왜냐하면 첫째 아기가 약 한 달이 지난 후에 퇴원해서 데려왔고, 둘째 아기는 약 두 달이 지난 후에 퇴원해서 데려왔기 때문이다. 둘째 아기까지 2주간 산후조리원에 머문 때가 10주가 조금 지난 어느 날이었고, 그날 남편과 나는 둘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 없이 지냈던 4주의 시간, 그리고 첫째 아기와 함께 한 4주의 시간, 마지막으로 두 아기와 함께한 2주의 시간은 마치 내가 앞으로 적응해야 할 세계를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Easy(쉬운) 모드에서 Hard(어려운) 모드로 점차 난이도를 올리면서 미리 체험시켜 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이 모든 시간은 그저 ‘체험판’에 불과했고, ‘본편’은 집에 온 뒤부터 시작이었다. Crazy(미친) 모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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