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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현 Apr 11. 2021

탄소 소재

(커버 이미지 출처: 람보르기니 홈페이지)


갑자기 웬 탄소냐고요? 미래에는 소재 산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기존 소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신소재가 새롭게 개발되면 그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나답니다. "스마트 카"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CFRP(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의 등장으로 자동차에서 철판이 대체되기 시작했고, 항공기에서도 이미 빠르게 CFRP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신소재의 등장으로 많은 산업의 생태계가 바뀌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요. 물론 소비자들은 기술의 혜택을 보게 되고 문명은 발전하게 되지요.


소재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조금만 더 살펴보도록 할게요. 우리는 시대 구분 방법의 하나로 삼시대를 이야기합니다. 돌을 깨거나 갈아서 도구로 사용하던 석기시대, 청동을 녹여 원하는 모양으로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하던 청동기시대, 그리고 철을 이용하여 도구로 사용하는 철기시대로 구분하지요. 우리는 아직도 을 기본 소재로 사용하고 있어요. 이처럼 역사적 시대 구분 조차도 소재를 기준으로 나누고 있는 것을 보면, 소재가 우리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20세기에 들어서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신소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자연에 대한 도전이죠. 최초의 인공 신소재가 바로 1909년에 개발된 베이클라이트라는 플라스틱이라고 합니다. 이후에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이 개발되었어요. 우리 주변을 보면 플라스틱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요. 1938년에는 듀퐁사의 연구원이 플라스틱을 가는 실로 길게 뽑는데 성공하여 최초의 인공 합성 섬유인 나일론을 개발했어요. 1940년에 최초의 나일론 스타킹을 미국에 출시했는데, 백화점이나 쇼핑몰마다 구입하려는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출시 첫해에만 6,400만 켤레가 팔렸다고 하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가시지요? 나일론 이후 폴리에스터 섬유, 아크릴 섬유를 포함하여 3대 합성 섬유가 의류 산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지요. 우리가 입고 있는 대부분의 옷은 합성 섬유로 만들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더 생각해보면, 실리콘으로 반도체를 만들면서 디지털 시대가 시작된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신소재가 우리의 문화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쉽게 동의가 되시지요?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나일론 스타킹을 사려는 줄이 끝이 보이질 않네요 (사진 출처: 듀퐁)


그러면 21세기에 주목해야 할 소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마도 탄소 소재가 아닐까 합니다. 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 아니냐고요? 탄소 배출권이니 탄소 배출권 거래제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탄소는 나쁜 물질인 것 같다고요? 탄소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느냐에 따라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 아주 이로운 신소재가 될 수도 있답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 가스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기체는 이산화탄소(CO2)와 매탄(CH4)입니다. 모두 탄소가 포함되어 있네요. 하지만 탄소 원소로만 이루어진 다양한 탄소 소재들은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소재로 사용된답니다. 그럼 우리의 문화를 바꾸어 놓을 탄소 소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단히 살펴볼게요.


탄소 섬유 (사진 출처: 도레이)


먼저 탄소섬유부터 알아볼게요. 나일론이 끊어지지 않고 질겨서 인기가 있었던 이야기를 잠깐 했었지요? 탄소섬유는 나일론보다 열 배 이상 질기답니다.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철의 대체재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지요. 현재 철로 만들어지고 있는 많은 제품들을 탄소섬유로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섬유로 어떻게 철로 만든 제품을 대체하냐고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소재가 바로 CFRP(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만들고 싶은 모양을 먼저 옷감 짜듯이 탄소섬유로 짭니다. 그러고 나서는 수지를 옷감에 두툼하게 흡수시키고 원하는 모양으로 경화시키는 거예요. 수지가 굳고 나면 철판보다 기계적 성질이 우수한 CFRP가 되는 거지요. 탄성도 매우 뛰어나서 충격을 받아도 찌그러지지 않고 모양이 유지되지요.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 아세요? 같은 크기로 만들었을 경우 무게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비중을 보면 됩니다. 철의 비중은 7.8이고 알루미늄의 비중은 2.7이에요. CFRP의 비중은 1.5 정도 됩니다. 철로 만든 제품보다는 무게가 1/5 수준이고, 알루미늄으로 만든 제품보다도 무게가 거의 절반 수준이지요. 자동차의 내외장재에는 이미 활발히 적용되기 시작했고, 항공기 및 드론,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등의 분야에서는 이미 CFRP가 보편적인 소재가 되었습니다.


람보르기니의 외장재는 대부분 CFRP 탄소복합재로 제작됩니다 (이미지 출처: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 내장재도 대부분 CFRP 탄소복합재로 만들었어요
BMW i3의 CFRP 탄소복합재로 만든 라이프 모듈 (이미지 출처: BMW)


두 번째는 활성탄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활성탄소는 미세한 구멍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가지고 있는 소재예요.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수많은 미세한 구멍의 다공질 표면이 보여요. 미세한 구멍으로 이물질, 세균 등이 들어와 모두 걸리지요. 흡착성이 매우 높아요. 이러한 흡착성 때문에 주로 필터로 많이 사용이 됩니다. 성능이 아주 좋은 필터이지요. 앞으로 환경이 오염되어 갈수록 필터의 중요성은 높아질 것이고, 활성탄소의 역할은 점차 커진다고 보시면 되겠지요. 우리 조상들이 숯을 된장, 간장 등에 띄워 두었던 것도 같은 필터의 원리를 이용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숯이 엄청난 다공질의 탄소이거든요.


활성 탄소 현미경 사진 (사진 출처: www.alarco.gr/filtra-nerou/en/photo)


세 번째는 탄소나노튜브입니다. 탄소나노튜브는 인장강도는 강철보다 100배나 높고, 전기도 너무나 잘 통한답니다. 열전도율 또한 매우 높고요. 기계적 성질을 살려서 활용할 수도 있고, 전기적 성질을 살려서 전자나 반도체 분야에서 활용할 수도 있고, 열전도율에 대한 성질을 살려서 방열 소재로 활용할 수도 있답니다. 탄소나노튜브도 정말 멋진 소재이지요? 사실 이론적으로는 멋진 소재인데 1991년에 처음 등장한 이래 3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헤매고 있는 소재이긴 합니다.


탄소나노튜브 구조 - 동그란 점들이 탄소 원자예요 (이미지 출처: computerworld.com)


네 번째는 그래핀입니다. 그래핀은 2004년에 처음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된 후 2010년에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은 따끈따끈한 신소재랍니다. 탄소나노튜브보다도 13년이나 늦게 발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그래핀이 더 각광을 받고 있지요. 그래핀의 가장 큰 특징은 전기적 특성이 너무나 훌륭하다는 거예요. 상온에서 구리보다 100배나 많은 전류를 흘러가게 할 수 있다고 하네요. 빛의 투과율도 98%가 나올 정도로 아주 투명하고요. 열전도율도 탁월하고 신축성도 좋다고 합니다. 강도는 당연히 강철보다도 100배 이상 강하고요. 놀랍지요? 다만 문제는 크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핀은 6각 탄소 고리가 단층으로 평면을 이루는 2차원 공유 결합의 구조를 갖는데, 이 구조를 갖는 그래핀을 만들어봐야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크기 밖에는 못 만든답니다. 노벨 물리학상 받은 물리학자도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여 최초로 그래핀을 얻었는데, 그 크기는 무려 마이크로미터(0.0001cm) 수준이었답니다. 애걔걔, 너무 작지요? 하지만, 물성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에요. 최근 많은 연구기관들이 그래핀의 우수한 물성을 극대화하여 대량 생산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고 많은 분야에서 적용 개발하고 있기에 앞으로 큰 기대가 되는 기술입니다. 예를 들면, 플라스틱을 만들 때 그래핀을 1%만 섞어서 만들어도 그래핀의 높은 전기 전도성 때문에 전기가 아주 잘 통하는 플라스틱이 된답니다. 뛰어난 전기전도성과 높은 투명도로 인해 구부러지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도 이용할 수 있고, 터치스크린, 태양광 패널 등에도 적용이 가능하답니다. 최근에는 배터리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고, 특히 충방전이 매우 빠르고 수명이 긴 슈퍼캐패시티에는 이미 적용이 되어 상품에 활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핀 파우더 (이미지 출처: Skeleton Technologies)
그래핀 기술을 적용한 슈퍼캐패시터 구조(좌) 및 Roll-to-Roll 생산(우) (이미지 출처: Skeleton Technologies)
그래핀을 이용한 투명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사진 출처: 성균관대학교)


이밖에도 발사된 로켓이 대기권으로 재진입하기 위해서는 3,0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뎌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소재는 탄소복합재 밖에는 없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카본블랙, 인조흑연 등 더 많은 탄소 소재가 있지만 너무 길어지니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이러다가 100년쯤 후의 교과서에서는 역사 구분을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이어 탄소기시대가 추가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내외장재가 모두 탄소복합재로 만들어진 자동차를 타고, 바쁠 때는 탄소복합재로 만들어진 드론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생활이 일상인 시대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와해성기술 #활성화기술 #탄소소재 #탄소섬유 #탄소복합재 #CFRP #활성탄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탄소기시대


(참고로, 본 글은 제가 이전에 작성했던 '미래를 바꿀 요즘 뜨는 기술(3)'의 '탄소 소재' 내용을 업데이트한 글입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2023년 출간된 <세상을 바꿀 미래기술 12가지> 책에서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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